매일신문

[의창 醫窓] 메르스의 교훈

"선생님, 손자가 수술을 받고 병실에 왔다는데 못 들어가게 막아요." 회진 중 병동 입구 스크린 도어 앞에서 마주친 한 할아버지가 하소연했다. 지난달부터 출입증을 받은 보호자 한 명을 제외한 일반인의 병문안이 오후 6~8시로 제한되면서 생긴 일이었다. 의료진도 인식표를 리더기에 댄 후에야 출입이 가능하다. 감염 예방과 병문안 문화 개선을 위한 조치다.

사망자 39명, 사회'경제적 손실 10조원이라는 피해를 준 '메르스'(MERS)는 유독 한국에서만 크게 유행해 '코르스'로 불리기도 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한국 특유의 '가족 간병'과 '병문안 문화'를 메르스 확산의 원인으로 꼽았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각급 의료기관에 병문안 개선을 권고했고, 최근 상급종합병원 평가 항목에 병문안객 통제 여부를 포함시켰다. 대학병원들이 서둘러 차단문을 설치한 이유다.

지난 2015년 메르스 확진을 받은 186명 중 무려 73명(39%)이 가족이나 면회객, 간병인이었다. 우리나라 병원 내 감염관리 수준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사실 병원 내 감염 예방에서 가장 중요한 건 스크린도어가 아니라 간호와 간병을 전담할 충분한 인력이다. 병실에 보호자나 간병인이 상주하지 않아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호 인력이 부족한 우리나라 병실에는 여전히 보호자가 상주하고, 국가와 병원은 간병을 가족의 책임으로 미루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환자와 보호자를 간병의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하겠다"면서 '보호자 없는 병동'으로 불리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의 확대를 약속했다. 감염을 예방하고 '긴 병에도 효자 노릇'을 할 수 있는 제도이기에 환영할 일이다.

이 약속이 장밋빛 청사진에 그치지 않으려면 간호 인력 확보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인구 1천 명 당 평균 간호사 수는 4.8명으로 OECD 국가 평균인 9.3명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열악한 근무환경과 장시간 노동으로 '백의의 천사'가 '백의의 전사'가 된 채 지쳐 병원을 떠나는 경우도 많다. 노동 환경 개선을 통한 간호 인력 확보가 시급한 이유다.

병문안 문화 개선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병원의 노력이 중요하다. 아울러 국민들도 눈도장 찍기식 병문안이나 단체 방문, 감염에 취약한 유'소아의 병문안부터 삼가야 한다. 아기가 태어나면 삼칠일(21일) 동안 금줄을 치고 출입을 삼갔던 우리 조상의 지혜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IT 기술을 이용해 모바일 메시지나 화상통화 등으로 위로의 마음을 전하면 어떨까?

메르스로 확진돼 2년 넘게 입원 치료를 받아 온 74번 환자가 최근 사망했다. 메르스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안전한 병문안 문화를 만들고 또 다른 신종 전염병의 유행에 대비해 정부와 의료계, 국민들이 뜻을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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