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너하고 말을 끊는다."
친구에게 기어이 그 말을 뱉고 말았다. 속으로 무척 미안했다. 그때 나는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덩치 큰 애들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친구를 따돌린 것이다. 대꾸할 힘도 없는 듯 친구는 슬픈 표정으로 집을 향해 걸어갔다. 넓고 푸른 봄날의 논둑길에 작은 섬이 되어 홀로 멀어져가던 하굣길의 그 모습을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했다. 요즘, 어른이 저지른 짓이라 해도 믿기 어려울 만큼 잔인한 악행을 어린 학생들이 일으켜서 국민들이 경악하고 있지만, 우리가 어렸을 적의 아이들은 말을 하지 않는 정도가 폭력이라면 폭력이었지 싶다.
오늘 낮, 식사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었다. 마당가에 한 남자가 미동도 없이 홀로 앉아 있었다. 물끄러미 그 뒷등을 바라보았다. 햇살의 물결 위에 고요히 떠 있는 그 남자는 하나의 외로운 섬 같았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 돛 폭을 올린 것처럼 바람마저 철썩였다. 문득, 옛날의 그 친구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그렇게 헤어지고 만나지 못했던 친구의 소식을 알아보기로 했다. 몇 사람을 거쳐 전화번호를 알아내고 친구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내 안에 늘 섬으로 남아 있었던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게 무척 반가워했다. 나는 안부를 물은 다음 사과를 했다. 그때 일은 미안했다고. 비록 전화로 말했지만 생각날 때마다 불편했던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친구도 그 일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친근하게 받아주었다. 점심때에 만난 섬 하나가 잃어버렸던 또 하나의 섬을 찾아 주었던 것이다.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아들과 함께 남해의 어느 지역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흰 이빨을 드러내고 달려드는 파도 머리에 구멍 난 한 폭 세월을 기워보는 듯 그물을 깁는 어부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가족이 함께한 여행길이었으므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우리보다 걸음이 빠른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문득, 형제를 만들어주지 못한 미안함에 내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외동아들의 모습이 또 하나의 섬같이 보였다. 살아가며 세상 풍파를 겪을 일이 있을 텐데 외롭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흩어져 있는 섬을 바라보다가 우리는 모두 하나, 하나의 섬이라는 생각을 다시 떠올렸다. 크기와 모양이 다르고 각자의 자리나 색깔도 다른 섬들이다. 서로 마음의 발길이 닿아야만 생기 있고 행복한 섬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무인도처럼 쓸쓸할 것이다. 세상 가운데 홀로 뜬 유배지 같은 섬이 아니라 모두가 손을 뻗어 길이 되는, 그리하여 평화로운 광장을 이루어 갔으면 좋겠다.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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