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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자윤유산 그랜드슬램] <9> 서양문화의 근원지 이탈리아

기운 피사의 탑을 손으로 받치며 자세를 취하는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 전종훈 기자
기운 피사의 탑을 손으로 받치며 자세를 취하는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 전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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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엣이 저랬을까?" 로미오가 줄리엣을 만나려고 올랐다는 난간에 아름다운 금발 미녀가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전종훈 기자

이탈리아는 서양문화의 근원지다. 로마 대제국이 태동한 곳으로 자신들의 문화를 서양 곳곳에 뿌리내리게 했다. 14~16세기 들어서면서 이미 오래전 사라진 고대 로마'그리스 문화의 부활을 꾀하기도 했다. 수천 년이 흘러도 자신들의 뿌리문화에 대한 자존심과 우월감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이 바로 이탈리아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문화는 화려함과 뛰어난 예술성으로 평가되는데 수백 년에서 수천 년이 흘러간 지금에도 원형을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기후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겨울 우기를 제외하면 1년 내내 비가 내리지 않기 때문에 자연적 문화재 파손이 적고 대리석 등을 이용한 석조문화이기 때문에 보존성이 뛰어나다.

국민 스스로 역사에 대한 의식도 뚜렷하다. 문화재가 있는 곳이면 스스로 불편함을 감수하며 그것을 지키려 노력한다. 이탈리아 어느 도시를 가든 수백 년 된 건물을 아직도 그대로 쓰는 모습도 종종 본다. 편리함에 앞선 역사 의식이 자연스럽게 오늘날까지 이어오면서 세계 최대의 유산을 간직한 강대국 이탈리아를 만들어낸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 배경 베로나

고대에서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는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도시가 베로나(Verona)다.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셰익스피어의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기도 하다. 실제로 셰익스피어는 베로나에 와 보지도 않고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렇다고 베로나에 '로미오와 줄리엣'이 '가짜'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베로나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줄리엣의 집'(casa di Giulietta)이다. 집 입구부터 들어오는 벽 전체에는 세계 각국에서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사랑의 메시지'가 적혀 있어 장관을 이룬다. 다양한 국가의 언어로 표현된 사랑 고백이 이색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어느 때부터인가 정원 한가운데 서 있는 줄리엣 동상의 오른쪽 가슴을 만지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말이 전설로 내려오고 있다. 이 때문에 동상의 오른쪽 가슴만 유난히 빛을 내며 사람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로미오가 줄리엣을 만나기 위해 기어올랐다는 줄리엣 집의 난간이 있는데 이곳은 웬만큼 미인이 아니면 엄두를 내지 못하는 곳이다. 난간에 누군가 얼굴을 내미는 순간 관광객들의 카메라 셔터가 마구 터지기 때문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다녔던 전통시장도 인근에 있다. 피아차 에프베(Piazza Erve)라는 곳으로 다양한 시골 먹을거리와 기념품을 노점상에서 판매하고 있다.

아레나 디 베로나 오페라 축제(Arena di Verona Festival)도 유명하다. 고대 로마 원형경기장인 아레나 디 베로나에서 매년 6~9월 열린다. 1913년 8월 10일 베르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처음 열렸고,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오페라 작곡가인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와 자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i), 조아키노 로시니(Gioacchino Antonio Rossini)의 작품을 중심으로 다양한 오페라가 공연된다. 축제 기간 중 곳곳에서 행위예술 공연도 펼쳐진다.

◆피사의 탑과 폼페이

피사(Pisa)의 탑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다. 피사의 두오모 광장에 들어서면 기울어진 종탑에 불안감이 머리카락을 쭈뼛 세울 정도다. 피사의 탑은 1173년 처음 건축을 시작했다가 지반 침하로 공사가 중단됐다.

그러다가 1350년 완공했지만 그 이후 매년 조금씩 탑이 기울면서 지금의 기울기까지 넘어간 것이다. 전문가들은 피사의 탑이 조만간 쓰러질 것이란 의견을 내고 있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 정부는 여러 가지 장치를 이용해 탑을 지지하고 있으며 관광객 등이 탑을 직접 만지지 못하게 보완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매년 관광객이 더욱 급증하고 있다. 언젠가는 무너져 원형을 볼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관광객이 줄을 잇고 있다. 피사는 이탈리아에서도 아주 작은 시골마을에 속하며 이곳은 피사의 탑 이외에는 별다른 볼거리가 없는데도 그들의 목적은 오직 '쓰러지는 탑을 지지하는 자세로 사진찍기'다.

기원전 5세기 항로를 이용해 상업이 번영한 폼페이(Pompeii)는 서기 79년 8월 베수비오(Le Vesuve) 화산이 폭발하며 그대로 사라진 도시다. 18세기 중반 도시 원형이 그대로 발굴되면서 큰 파장을 일으킨 곳이 바로 폼페이다.

그리스식 고대 주택 양식이 그대로 남아 있고 초기 로마의 화려한 별장, 그리고 그 안에 치장된 모자이크도 원형 보존이 잘 돼 있었다. 뛰어난 수리시설과 공동 목욕탕 등은 그들이 얼마나 발전한 사회를 건설했는지를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학계에서 숨기고 싶었던 과거들이 폼페이 발굴에서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수일 동안 항해를 한 가장들은 집에 들어가기에 앞서 사창가를 들러 윤락을 즐겼다. 벽화 등에서 이성뿐만 아니라 동성과 사랑을 나누거나 심지어 동물까지도 그들의 성적 대상이 됐다. 문란한 성생활이 자칫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의 부흥을 꾀하는 르네상스 문화에 오점을 남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와 관련된 대부분 발굴 유적은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 중이라고 한다.

◆르네상스의 중심 '피렌체'

피렌체(Firenze)는 14~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중심지다. 도시 곳곳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등의 예술가가 만든 걸작이 남아 있다. 피렌체를 설명할 때 꼭 빠져서는 안 될 가문이 있다. 바로 메디치가(Medici family)다. 평범한 중산층 가문이었던 메디치 가문은 은행업으로 부를 축적해 최고의 명문가로 성장했다.

이들은 1400년부터 1748년까지 350년 가까이 피렌체를 호령했다. 또한 가문 출신 혹은 가문의 혼인관계로 교황을 배출하며 절대 권력을 누리기도 했다. 이후 메디치가는 교황청의 힘을 등에 업고 사업 영역을 유럽 전역으로 확대하며 정계까지 진출하게 된다. 하지만 출신 성분이 귀족이 아니었기 때문에 신분 상승을 위해 가까운 나라들의 왕족과 혼인관계를 이어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재산 관련 암투가 끊임없이 생기고 결국 후대를 보지 못하게 여자들에게 독약을 먹이면서 메디치 가문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이 메디치 가문에 대해 존중하며 회자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예술가들을 후원해 유럽 예술계를 한층 더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이들의 재정과 예술가들의 실력이 만나 이탈리아 곳곳에 아름다운 예술품을 탄생시켰다. 또한 예술가들은 다양한 분야에 걸쳐 활약하며 이탈리아의 새로운 문화를 꽃피웠다는 평가다. 지금도 피렌체를 지탱하는 것은 이런 예술혼과 장인정신이다.

현재 피렌체는 가죽으로 유명하다. 상업이 발달한 지역이었던 만큼 가죽공예로 대를 이어온 장인들이 많다. 최고급 가죽제품부터 손쉽게 살 수 있는 생활용품까지 다양한 가죽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이 도시의 특징은 어떤 제품이든 구매하게 되면 구매자에게 맞게 제품을 새롭게 재단해준다. 이 때문에 가게마다 가죽공예 전문가가 있어 직접 자신의 물건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이태리 장인'의 손맛을 느낄 수 있다.

자문 대한관광경영학회 김영규'박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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