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기자 초년병 시절이던 20여 년 전, 이런 기사가 경북 북부지역에서 왔다. 인터넷이 뭔지도 모르던 시절, 원고지에 쓰인 기사가 행낭에 담겨 편집국에 도착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대략 '상여 멜 젊은이가 없어 장례도 못 치를 판'이라는 내용이었다. 젊은이들이 자꾸 농촌을 떠나다 보니 농사지을 사람은커녕 상여 멜 사람조차 없다는 기사였는데, 그때만 해도 '60대 노인이 상여를 메야 할 판'이라는 표현이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있다. 시간은 흘렀고, 장례 풍습도 달라졌다. 상여꾼이 없어 걱정이던 농촌 마을들은 이름조차 사라질 위기를 맞게 됐다.
인구 구조의 변화나 사회'경제적 현상이 우리나라보다 앞서는 일본에선 '지방소멸-인구감소로 연쇄 붕괴하는 도시와 지방의 생존전략'(마스다 히로야 씀'2015년)과 '도쿄는 교외 지역부터 사라져간다!'(미우라 아쓰시 씀'2016년)라는 책이 출간돼 일본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일본 전체 지방자치단체의 절반가량이 오는 2040년 소멸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일본의 '지방소멸'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우리나라에 적용한 보고서가 나왔다.
한국고용정보원의 '한국의 지방소멸2'라는 연구 보고서다. 분석 결과는 상당히 놀랍다. 전국 228개 지자체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30년 후 없어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근거는 소멸위험지수라는 수치다.
고령 인구(65세 이상) 대비 가임 여성의 90%가 분포하는 20~39세 여성 인구의 비중이 바로 소멸위험지수인데, 두 연령층의 인구가 같으면 소멸위험지수는 1.0이다. 이보다 낮으면, 즉 20~39세 여성 인구가 65세 여성 인구보다 적으면 '소멸 주의'이고, 0.5 미만이면, 즉 절반도 안 되면 '소멸 위험'이다. 소멸위험지역이 됐다는 말은 극적인 해결책이 없다면 30년 내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는 뜻인데, 그런 기초자치단체가 전체 228개 중 85개나 된다.
5년 만에 15곳이나 늘었다. 증가 속도가 무서울 만큼 빠르다. 특히 85곳 중 7곳은 소멸위험지수가 0.2 미만인 소멸고위험지역이었다. 여기엔 의성(0.158), 군위(0.174), 경남 합천(0.174) 등이 포함됐다. 올해 조사에선 안동시(0.48)가 새로 소멸위험지역에 포함됐고, 광역시 중에는 부산(0.86)과 대구(0.92)가 소멸주의지역이 됐다. 우리나라 전체 소멸위험지수도 갈수록 위태로워지고 있다. 지난해 7월 1.0이던 지수는 1년 만에 0.95로 떨어졌다.
앞서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의 1천383개 읍'면'동이 '인구 소멸지역'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인구 소멸지역은 사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뜻이다. 설마 그렇기야 하겠느냐고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아직 정확한 집계도 나오지 않았지만, 한때 산자락 아래 자리 잡고 10여 가구 남짓이 옹기종기 살던 마을들은 부지기수로 사라졌다. 그런 마을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면, 언젠가 읍'면'동이 이름만 남아 있고 사람의 흔적이 아예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구 1만∼3만 명 규모의 미니 지자체는 전국에 31곳인데, 경북이 7곳으로 가장 많다.
정부는 저출산을 극복하겠다며 10조원을 쏟아부었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자체들마다 앞다퉈 출산장려금을 올리고 있지만 파도에 쓸려가는 모래를 손으로 주워담는 격이다. '경북 지방쇠퇴 문제의 진단과 대응' 세미나가 대구경북연구원에서 21일 열린다. 인구절벽 시대에 지방소멸의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 것인지에 대한 허심탄회한 논의가 기대된다. 당장 기발한 해결책이 나올 수는 없겠지만 지금 닥친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마을이 사라지고 있다. 추석 명절에 찾아갈 추억 어린 고향이 없어지고 있다. 한 세대가 지난 뒤에 경북에서 과연 몇 군데의 마을이 제 기능을 하며 생존해 있을지 심히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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