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전쟁 발발 시계

1962년 10월 27일은 '자정 1분 전'이었다.

쿠바 미사일 사태를 들먹일 때마다 미국 역사가와 언론인들이 자주 쓰는 말이다. 그날 인류는 핵전쟁으로 종말에 이를 뻔했으므로 '운명의 날 시계'(Doomsday Clock)가 째깍째깍 움직여 '0시 1분 전'까지 다가간 순간이었다는 것이다.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 직전에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으니 그런 표현이 나올 법하다.

그 배경을 살펴보면 여기에는 미국의 극단적인 우월주의와 독선, 케네디 대통령에 대한 영웅신화 등이 뒤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기분 좋은 판정승으로 끝난 사건인데다, 그 승리의 원인이 케네디의 결단력이라는 점에서 두고두고 우려먹기에 그저 그만이었다. '운명의 날 시계가 자정 1분을 가리켰다'는 표현도 미국의 위대함과 케네디의 치적을 홍보하는데 다시 찾기 어려운 적절한 비유였던 셈이다.

그 당시 실제 '운명의 날 시계'는 23시 53분, '자정 7분 전'을 가리키고 있었으니 '자정 1분 전'과는 거리가 한참 먼 것이다. '운명의 날 시계'는 매년 초 시카고대학에서 발행하는 '핵과학자 회보'에 부정기적으로 게재되는 것으로, 그해 중간에 일어나는 사건을 반영하지 않는다. 1947년 이후 24차례 시각이 바뀌었고, 올해 1월 26일에 게재된 시각은 '23시 57분 30초'다. '자정 2분 30초 전'은 1953년 미국과 소련의 수소폭탄 실험 때의 '자정 2분 전'을 제외하고는 사상 두 번째 높은 수치다. 그 이유는 국가주의의 대두와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기후변화 협정 파괴 등이었으니 '트럼프 리스크'가 큰 몫을 했다.

북한이 이달 초 수소탄으로 6차 핵실험을 했다고 발표한 뒤에는 '운명의 날 시계'는 종말로 더 가까이 움직이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미국에서는 특수부대와 보병사단이 한반도로 이동하고 있다는 둥 '북한 공격설'이 파다하고, 한국에도 이런저런 섣부른 예단과 추측이 난무하고 있어 온통 뒤숭숭하다.

'한반도 전쟁 발발 시계'가 있다면 아마 '자정 1분 전'을 가리키지 않을까 싶다. 우리 의지와 관계없이 미국과 북한의 전쟁이 될 수 있으니 정말 난감하고 서글픈 현실이다. 일부에서는 '전쟁 통일론'을 주장하고 있지만, 세상 물정 모르는 궤변일 뿐이다. 전쟁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 옛말에 "백성이 현명하다면 군주들은 전쟁이라는 게임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민족의 현명함을 믿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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