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황유선이 만난 사람] 변양호 보고펀드 고문

"1960년대 경제 시스템, 이제 3만달러 시대 패러다임 바꾸고 가야"

변양호 보고펀드 고문. 사진 이무성 객원기자
변양호 보고펀드 고문. 사진 이무성 객원기자

행정고시 수석 합격.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국내 사모펀드회사인 보고펀드 전 대표. 변양호 보고펀드 고문을 수식하는 단어는 그가 어떤 능력자인지 충분히 설명하고도 남는다.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고민과 희망이 무엇인지 변양호 고문을 만나 들었다. 그는 매우 명쾌하고 간결하게 향후 대한민국 경제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줬다.

-정권이 바뀌면 경제정책도 바뀐다. 우리나라 경제를 결정하는 것은 정치인가 정책인가.

▶흔히 공무원을 두고 영혼이 없다고 하는데 영혼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가치중립적 입장을 유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회간접자본(SOC) 확충과 복지예산 증액 가운데 어떤 것을 우선시할 것이냐는 가치 판단의 문제다. 이런 것은 정치와 국민이 판단한다. 이번 정부가 복지예산을 늘리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면 복지의 구체적인 내용은 어떻게 구성하고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경제 운영과 어떻게 결부할지 등을 고민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이 관료들의 일이다.

-나라의 경제정책이 5년에 한 번씩 바뀌면 곤란하지 않나.

▶선진국의 경우, 정권이 바뀐다고 그렇게 많이 바뀌지 않는다. 미국도 공화당과 민주당이 다투긴 하지만 시장경제 원칙의 큰 틀은 바뀌지 않는다. 어려운 사람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 정도의 차이가 날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움직임의 폭이 커서 국민들이 더 어렵다.

-현 정부는 소득주도의 경제 성장이란 모토를 제시했다.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통해 소득이 늘어나면 경기가 살아날 것이라는 논리다. 어떻게 보는가.

▶그냥 간단하게 '어렵고 힘든 사람 더 도와주자'고 표현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거창한 프레임을 만들지 않고 복지지출을 늘려 어려운 사람들을 돕겠다고 하면 된다.

경제정책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 경기조절과 경기성장 차원이다. 경기는 일정한 사이클을 두고 활황과 침체를 반복한다. 변화 양상이 극단적이면 곤란하기 때문에 진폭을 줄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활용되는 것이 경기조절 정책이다. 또, 1인당 국민소득을 2만달러에서 3만달러 이상으로 어떻게 성장시킬 것이냐에 관심을 갖는 것이 경기성장 정책이다. 그런데 소득주도 성장론은 경기조절 차원인지 경기성장 차원인지 불분명하다. 이름은 소득주도 성장이지만 경제학자들 관점에서 보면 그런 방법으로 경기성장은 불가능하다. 어려운 사람들의 소득이 늘어나면 그들의 한계소비성향이 높아서 경기조절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경기성장을 시키려면 생산성을 어떻게 높일까, 기업가정신을 어떻게 고취시키느냐와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 기업 이윤을 줄여서 그것을 어려운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으로 경제가 성장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현재 우리 경제 규모는 세계 상위권이다. 그런데 중국은 빠르게 발전하고, 국내 안보는 불안하며, 실업률도 높다. 우리나라 경제가 건실한가.

▶교역 규모로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이다. 그 위치를 유지하느냐 혹은 더 올라갈 수 있느냐는 성장론 내지 발전론 입장에서 봐야 한다. 그동안의 성장전략은 수명을 다했다.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힘들다. 예를 들면, 회사를 세우거나 가게를 만들 때 어느 정도 수요가 있을지 예측을 한다. 100명의 손님이 찾을 것으로 예상했다면 그 수요에 맞게 설비, 결제 시스템, 종업원 등을 준비한다. 그러다가 손님이 200~300명 방문하면 그 가게 운영에는 무리가 따른다. 기업과 경제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경제 시스템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0년대에 만든 시스템이다. 그 시스템으로 지금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이대로는 3만달러, 4만달러로 가기 힘들다. 컴퓨터 운영체제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지 않고 그냥 사용하는 양상이니 당연히 무리가 따른다. 시스템을 바꾸고 가야 한다.

-경제정책 최고 엘리트의 식견으로,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을 어떻게 찾아야 한다고 보나.

▶내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3+1'이 있다. 첫째, 공정경쟁이다. 둘째, 능력 있는 민간 영역이 담당할 경제활동의 자유화다. 셋째, 능력이 모자라거나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다. 여기에 널리 인재를 구한다는 한 가지를 더 추가하겠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보면 국가는 능력 있는 사람이 큰 역할을 할 때 번영했다. 가문도 마찬가지다. 장남, 차남 따지지 않고 능력 있는 사람이 이끌 때 번영했다. 그런데 경쟁이 불공정하면 능력 있는 자가 아니라 권력 있는 자가 승리하고, 능력자가 권력자에 의해 배제되면 번영은 어렵다. 능력 있는 자가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능력을 발휘해야 혁신도 경제성장도 가능하다. 하지만 능력 있는 사람 위주의 사회구조는 민주주의 정신과 안 맞을 수 있다. 능력이 좀 모자란 사람, 어렵고 힘든 사람을 위해 정부가 복지지출을 늘려야 하는 이유다. 이번 정부는 첫 번째와 세 번째는 잘하는 것 같다. 다만, 두 번째 조건인 개인의 기업 활동을 자유화해야 한다는 생각은 못 하는 것 같다. 가령, 종합편성채널, 면세점, 케이블카 설치 등은 규제 때문에 진입 장벽도 높고 민간이 역량을 펼치지 못할 때가 많다. 환경과 안전에 문제가 없다면 다 허락해야 하고, 그게 더 효율적이다. 우리나라는 기업 하는 사람들이 눈치 봐야 할 곳이 너무 많다.

-경제자유화를 강조하다 보면 자본의 사회지배력이 너무 강력해질 우려가 있지 않나.

▶그래서 공정경쟁과 복지정책이 필요하다. 선진국에서는 재벌 대기업이 아들에게 기업 승계를 안 한다. 드물게 가문의 기업 승계를 하는 경우에도 철저하게 능력을 검증해서 가장 능력 있는 사람에게 승계한다. 아니면 그 기업은 제3자에게 간다. 반면, 우리는 재벌, 중소기업 모두 다 자기 자녀들에게 회사를 물려주려고 한다. 자녀의 채용과 승진에서도 기업주 마음대로다. 선진국 중에는 이런 기업이 없는데 왜 우리나라에서 가능한지 모르겠다. 대기업 오너는 전체 지분의 10~20%만 가지고 있지만 나머지 지분을 가진 사람들이 오너가 마음대로 하는 것을 눈감아 주는 것이다. 설사, 지분을 100% 가지고 있어도 회사 운영을 마음대로 할 수 없게 한 것이 회사법이다. 회사에는 종업원, 거래 상대방 등 이해관계자가 많기 때문이다. 일반 개인 주주는 오너의 전횡에 대해 얘기하기 어렵다. 하지만 국민연금, 연기금, 금융기관, 자산공사 같은 곳들은 기업 주식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기업을 견제할 수 있다. 기관투자가가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가 활성화돼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기업 임원이 오너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실정이다.

-지금 시급한 금융정책이나 바꿔야 할 정책이 있다면 무엇일까.

▶간단하게 얘기하긴 어렵다. 현 정부가 일자리를 늘리고 싶어 하는데 질문을 좀 던져 보겠다. '기업이 고용을 더 많이 하게 하려면 해고를 쉽게 해야 할까, 아니면 어렵게 해야 할까?' 해고가 쉬워야 고용이 는다. 노동시장 유연성이 그래서 중요하다. 지금 독일이 잘나가고 있는 데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의 공이 크다. 그가 집권하던 2000년대 초반 독일도 실업률이 높았다. 그래서 슈뢰더 총리는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는 조치를 했다. 당시 반대가 엄청났다. 그 여파로 2005년 총선에서 정권을 넘겨줬고 앙겔라 메르켈이 이어받았다. 그런데 슈뢰더 전 총리가 닦아놓은 고용시장 유연화의 효과는 메르켈 재임 시절에 꽃을 피우게 된다. 기업이 새로운 활동을 못 하게 하면 어떡하나.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중단하면서 어떻게 일자리를 늘릴 수 있나. 기업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부담을 주면 안 된다.

-북유럽 복지 모델이 우리나라에도 과연 가능할까. 무상급식, 무상접종, 지하철 무료 등 각종 '무상 시리즈'가 이어지고 있다.

▶원치 않는 방향이다. 우리나라 복지지출 규모는 OECD 주요국 중 멕시코 다음으로 낮다. 당연히 늘려야 한다. 다만 체계적으로 다시 생각해야 한다. 무질서하게 이것저것 해줄 게 아니라 어떠한 경우에도 국민이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현재 중소기업 지원제도가 많다. 중소기업이 도산하면 종업원은 실업수당 몇 개월 받고는 그것으로 끝이다. 차라리 중소기업 지원제도를 아예 없애고 중소기업이 자기 힘으로 운영하도록 노력하되, 도산하면 종업원이 계속적으로 기본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금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한창 문화예술계가 떠들썩하다. 왜 정부가 문화예술 진흥에 돈을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 자유롭게 놔두고 안 되는 사람에게 정부가 나서서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 주면 된다.

소위, 선별적 복지에 의한 기본소득 보장이다. 정부가 산업을 지원하는 것은 잘못됐다. 기존에 있는 산업 지원제도를 없애거나 최소화하고 그 예산을 정부가 어려운 사람에게 직접 지원해 최소생활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이거야말로 혁명적인 일이다. 각 부처 예산을 부처 관련 협회, 단체 등에 나눠주면서 큰소리치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러니 이런 개혁이 쉽지 않다. 국회의원조차 이해관계를 함께한다. 예산, 복지, 조세 다 합쳐서 다시 만들어보면 길이 있을 것이다.

-현 정권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있다고 보나.

▶젊은이들이 장래에도 풍요롭게 살 수 있을지 자신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평생소득을 고려해서 여유가 있을 때 소비가 늘어난다. 사람이 5년, 10년만 살게 아니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이 새로운 영역에 과감하게 도전해야 한다. 실패하더라도 정부가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 주면 그들은 주저 없이 도전과 모험에 나설 것이다. 그러한 활력이 필요하다. 정부가 특정 산업을 인위적으로 육성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요즘 많이 회자되는 4차 산업혁명 역시 정부가 주도할 것이 아니라 능력 있는 개인에게 맡기고 정부는 국민 생활의 기본선 이상을 보장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대선 전에 안희정 충남지사와 안철수 캠프에 자문했다. 향후 어떤 계획이 있는가.

▶나는 공무원을 하면서 관료 출신 장관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민간에서 경력을 쌓고 다시 돌아갈 생각도 했는데 지금은 다시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다. 후배들을 격려하고 또 누구든지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줄 수 있다. 안 대표와 안 지사에게 자문할 때도 정부에는 안 들어갈 테니 그런 이해하에 도울 수 있다면 돕겠다고 했다.

-경제와 산업이 개방되고 더 세계화될 것 같다. 미래 주역인 청소년에게 조언을 준다면.

▶지식을 쌓는 노력과 지식을 갖고 있는 전문가에 박수를 보낼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공부하기 싫은 사람은 자기 적성에 따라 그 분야에서 능력을 쌓으면 된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이 17세기 네덜란드다. 당시 원대한 꿈을 품고 성공하고 싶은 사람은 모두 네덜란드로 갔다. 경제적으로 마음껏 도전해볼 수 있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스티브 잡스가 대한민국의 산업 벤처 환경에 매력을 느껴 대한민국에서 애플을 출발시킬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얼마나 좋겠나.

-엘리트와 전문가 역할에 기대가 큰 것 같다. 엘리트의 부패 문제는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예외 없이 처벌하는 것 외에 무슨 특별한 방법이 있겠나. 법 앞에 평등이 중요하다. 누구나 잘못이 있으면 처벌받고 잘했으면 박수 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다만 전문가 몇몇이 잘못했다고 전문가가 처리해야 할 일을 비전문가에게 맡기면 안 된다. 후진국으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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