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신암선열공원… 국내 최대 단일 집단묘역, '7번째 국립묘지' 청신호
대구 동구 신암선열공원의 국립묘지 승격 지정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국립묘지법 개정안이 21일 국회 정무위를 통과하면서 신암선열공원이 국내 7번째 국립묘지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현재 국립묘지법은 서울현충원 등 6곳을 국립묘지로 정하고 있다.
신암선열공원은 건국훈장 독립장(1기), 애국장(12기), 애족장(33기), 대통령 표창(2기), 서훈 미취득(4기) 등 국내 최대 규모의 단일 독립유공자 집단 묘역(52기'3만6천800㎡)이다. 이날 국회 정무위 통과를 두고 정부와 국회가 독립유공자에게 합당한 예우를 갖췄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신암선열공원은 애초 남구 대명동 시립공동묘지 일대에 산재해 있던 애국지사 묘를 1955년에 현재 위치로 이전, 1987년 공원이 됐다. 대구시 복지정책관실에서 3명의 무기계약직을 두고 연간 1억원의 예산으로 관리하고 있다.
그동안 신암선열공원의 국립묘지화는 '정치적 역량이 필요한 사업'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지방자치단체에서 현충시설로 지정했던 공원을 국립묘지로 승격한 선례가 없어 국회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여타 국립묘지의 경우 정부가 나서서 조성한 반면 이미 조성된 묘지를 국립묘지로 승격한 사례는 지난 1997년 완공 후 2002년 국립묘지로 승격된 '국립 5'18 민주묘지' 정도가 꼽힌다.
신암선열공원을 관리해온 김명환 광복회 대구지부장은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국립묘지로 승격되면 대구를 대표하는 국립묘지가 될 수 있어 애국지사의 공훈을 더 널리 알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전국의 다른 합동묘역과 비교해도 신암선열공원만큼 묘소가 많은 곳을 찾을 수 없다. 국내 최대 단일 독립유공자 집단묘역으로서 국립묘지 승격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통, 주차 등 인프라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묘역 관리 주체를 정부로 이양하는 과정도 순탄치 않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해 대구시 관계자는 "올해 16억원을 들여 대대적인 정비에 나선다"며 "앞으로도 보훈처와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국립묘지 승격 과정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구민수 기자 msg@msnet.co.kr
◆2·28민주운동…탄핵 정국에 법안 표류, 15개월 만에 의결 절차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대구 '2'28민주운동'기념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자는 결의안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함에 따라 2'28민주운동기념일의 국가기념일 지정에 청신호가 켜졌다. 하지만 결의안이 통과되기까지에는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지난해 6월 조원진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하고, 대구지역 여야 국회의원 18명이 함께 이름을 올렸지만 탄핵 정국과 맞물리면서 1년 3개월간이나 표류했다.
기념일 지정은 행정안전부, 국가보훈처 등 정부에 건의해 대통령령(시행령)을 개정하도록 하는 방법과 국회 의결 절차를 밟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정부가 2'28민주운동에 대해 4'19혁명과 3'15의거 기념일 등에 그 정신이 이미 포함됐다는 점을 들어 기념일 지정에 부정적 반응을 보이면서 지역 정치권이 결의안을 발의해 의결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2'28민주운동기념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자는 움직임은 지난해 4월 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범시민추진위원회가 꾸려지면서 시작됐다. 추진위가 진행한 서명운동에는 전국에서 124만여 명이 참여했고, 국가기념일 지정을 위해 범시도민 결의대회, 국민대토론회 등도 열렸다.
특히 2'28민주운동은 고교생들이 순수한 정의감으로 부패 권력에 저항했던 거의 유일한 사례로 세계 학생운동사에서도 보기 드문 역사로 인식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일찌감치 국가기념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지만 참가자 희생이 적고 민주주의 발전에 미친 영향이 미미하다는 의견 등으로 탄력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지역 정치권과 지역민들이 적극 나서면서 국가기념일 지정에 한발 다가가게 됐다.
노동일 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 공동의장은 "이번 결의안 통과로 2'28민주운동기념일의 국가기념일 지정에 탄력을 받게 됐다. 국회 본회의 통과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며 "국가기념일 지정을 위해 한마음으로 뜻을 모아준 시민들과 결의안 통과에 힘써준 정치권에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2'28민주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바로 세울 수 있도록 끝까지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1960년 부패한 이승만 자유당 정권에 항거해 대구지역 학생들이 주도한 2'28민주운동은 3'15마산의거와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민주화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봄이 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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