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만학도 어르신 글 몰라 겪었던 불편, 배운 뒤의 행복…『처음 쓰는 편지』

대구내일학교 학생들의 안전테마파크 체험학습 모습.
대구내일학교 학생들의 악기 연주 수업 모습. 대구시 교육청 제공
대구내일학교 학생들의 안전테마파크 체험학습 모습.
국어 수업 장면.
대구내일학교 학생들의 악기 연주 수업 모습. 대구시 교육청 제공
국어 수업 장면.

처음 쓰는 편지/2017 대구내일학교 졸업시화 작품집/만인사 펴냄

대구내일학교(교장 우동기 대구시교육감) 2017년 졸업생 259명이 졸업기념 시화집 '처음 쓰는 편지'를 펴냈다. 시화작품은 총 6개 주제이며, 1부 늦게 피는 꽃, 2부 눈치백단, 3부 학교는 나의 놀이터, 4부 조잘조잘 수다꽃, 5부 선생님의 향기, 6부 엄마의 장독대로 구성돼 있다.

◆처음 쓰는 편지 눈물부터 앞서네

'칠십 넘어 처음 쓰는 편지/ 누구에게 쓸까 무슨 말부터 쓸까/ 가슴에 꽉 차 있건만/ 겨우 배운 실력으로 내 마음 전달하려니/ 눈물부터 앞서네/ 칠십 넘어 처음 쓰는 편지/ 선생님 감사합니다/ 요만큼 내 마음 전달하고 보니/ 늦게 시작한 공부 힘들고 어렵지만/ 시작하기를 잘했네.' -처음 쓰는 편지-전옥분(70)

글을 배운 뒤의 감상과 고마움, 그러나 아직 마음에 든 말을 모두 글로 표현해내지 못하는 아쉬움이 묻어난다.

수준급의 은유를 자랑하는 작품도 있다. 이영희(70) 내일학교 졸업생은 자신을 '몽땅연필'에 비유하고, 그 짧은 연필에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담아내는 한편 앞으로 맞이할 날들을 희망적으로 그려낸다.

'새로 산 연필/ 얼마 쓰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닳고 닳아/ 몽땅 연필이 되어 있네/ 필통 속에 섞여 있는/ 몽땅 연필/ 나를 서글프게 쳐다보네/ 몽땅 연필아/ 얼마 남지 않았지만/ 나랑 같이 새롭게/ 다시 시작하며 살자.' -몽땅연필-

'후일에 만난 남매들/ 자수정 동굴 구경하고/ 공연을 관람했네/ 중국 어린이 재주를 부리는데/ 보는 내 마음이 아프네/ 어린 나이에 공부는커녕/ 이국만리에서 돈을 벌려고/ 고생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파/ 그 옛날 없던 시절/ 배움 놓친 나를 보는 것 같아/ 눈시울이 붉어지네.' -옛날 내 모습-장춘자(72)

오늘날 우리나라 20, 30대가 높은 학력과 세련된 매너, 국제인의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장춘자 선생님 같은 선배세대들이 공부는커녕 밤잠 자지 않고 일을 하고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한 덕분이다. 어린 시절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면 무심코 지나쳤을 '중국 어린이들의 돈벌이'를 선배세대들은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늦게 시작한 공부, 학교생활의 즐거움

'이 세상에서 나 하나만/ 글을 모르는 줄 알았네/ 어릴 적엔 부모님 원망을 많이 했네/ 내일학교 입학하던 날/ 못 배운 원망도 서러움도 모두 씻었네/ 글 모르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네/ 교실에서 글도 배우고/ 운동장을 걸을 때마다/ 진짜 학생이 되었다는 것이 꿈만 같네/ 하루하루가 너무 고맙고 행복하네.' -진짜 학생-최필선(63)

화려한 자태를 자랑하는 봄꽃보다 학교에 가기 위해 거울 앞에 앉고, 가방을 멘 자신이 더 예쁘다며, 학교생활의 기쁨과 설렘을 노래한 시도 있다.

'뜰에 핀 진달래 철쭉/ 봄이면 곱게도 피는구나/ 등교하는 나에게 인사하는 듯/ 활짝 핀 네가 예쁘구나/ 늙지도 않는 네가 참 부럽구나/ 학교 간다고 꾸민 나만큼 예쁠까?/ 책가방 맨(멘) 금녀만큼 예쁠까?/ 학생으로 활짝 핀 금녀꽃이 최고란다!' -활짝 핀 꽃-성금녀(76)

'내일은 소풍 가는 날/ 평생 처음 가는 소풍/ 꿈에만 그리던 소풍/ 소풍 간다니 아이처럼 좋아하며/ 김밥 싸 갈까 사이다 사 갈까/ 옷은 무엇을 입을까/ 선생님 김밥 내가 싸 갈까/ 마음이 둥둥 떠서 잠 오지 않아/ 내 인생에 잊지 못할 즐거운 소풍 가는 날.' -소풍 가는 날-임말내(74)

◆글자 알고 나니 은행'관공서 안 두려워

'못 배운 탓에/ 은행과 관공서에서 일 볼 때/ 죄인마냥 겁나고 가슴 두근거렸네/ 이제는 내일학교 덕분에/ 더 이상 겁먹지 않아도 되니/ 공부하는 재미 하루하루 즐겁네/ 그러나 나이 탓에/ 배운 것 자주 자꾸 잊어버려/ 걱정이네/ 그래도 열심히 공부할 것이네.' -내일학교-최노미(65)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은 "처음 내일학교 설립을 고려할 때는 간단한 영어회화나 컴퓨터 등을 주교과목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실태조사를 해보니 '가전제품 사용 설명서를 읽고 싶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관공서와 은행을 구별하고 싶다'는 응답이 많아 문해와 산수, 악기 등에 초점을 맞추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앞 작품은 내일학교 학생들이 감당해야 했던 어제의 고민과 오늘의 즐거움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내일학교 학생들이 평소 수업시간에 쓴 시와 그린 그림으로, 가족에 대한 애틋한 마음, 삶의 애환, 글을 몰라 겪었던 불편과 글을 배운 뒤 느끼는 행복, 학교생활을 통해 배운 공동체에 대한 느낌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내일학교 졸업생들의 시화집 '처음 쓰는 편지'는 아름답고 위대한 오늘의 대한민국을 건설한 선배세대들의 삶을 담고 있다. 오래 지난 옛일 같지만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20, 30대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285쪽, 1만5천원.

▷대구내일학교는…

대구내일학교는 학령기에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한 성인을 위해 대구시교육청이 운영하는 초등'중학 학력인정 문해교육기관이다. 대구에는 명덕초등학교, 달성초등학교, 성서초등학교, 금포초등학교, 중앙도서관, 제일중학교 등 6곳에 설치되어 있다.

2011년 첫 입학생을 받은 대구내일학교는 지금까지 918명(초등 647명, 중학 271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올해는 초등 과정 123명, 중학 과정 148명이 9월 21일 졸업했다. 9월 22일 현재 재학생은 386명(초등 127명, 중학 259명)이다. 재학생 평균연령은 초등 과정 67세, 중학 과정 65세로 60대 이상이 81%를 차지하고 있다. 내일학교는 매년 7월에 신입생을 모집하고, 9월 입학식과 졸업식을 연다.

교육 과정은 초등 주당 3회 6시간, 중학 과정 주당 3회 10시간이다. 수업 과목은 국어'수학'사회'과학'영어'재량활동 등으로 편성돼 있다. 교육기간은 입학 때 진단평가를 거쳐 초등 1년, 중학 2년 과정으로 운영하며 교육비는 무료다.

2015년 인구주택 총 조사에 따르면 20세 이상 우리나라 국민 중 초등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은 163만여 명이고, 중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은 354만1천여 명이다. 대구에는 초등졸업 미만이 6만8천500여 명, 중학졸업 미만이 18만1천300여 명이다. 경북에는 초등졸업 미만이 15만6천400여 명, 중학졸업 미만이 29만1천여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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