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와 함께 있는 집이 좋다. 근데 사실은, 친구들이랑 놀 수 있는 유치원이 쪼금 더 좋다. 두 밤 자면 유치원에 가는 월요일이다. 유치원에 가면 도훈이한테 새 로봇 얘기를 해줄꺼다. 동익이를 만나면 내가 만든 멋찐 블록을 자랑할꺼다. 빨리 두 밤이 지났으면 좋겠다. 근데 엄마가 세 밤을 자야 유치원에 갈 수 있다고 했다. 왜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쌤들이 파업한다고 했다. 파업이 뭐냐고 물어봤다. 파업은 쌤들이 자기 얘기를 들어 달라고 유치원도 안 오고 떼를 쓰는 거라고 했다. 이제 나도 6살 형아가 돼서 떼를 안 쓰는데 쌤은 어른인데 왜 그럴까. 쌤은 나를 사랑한다고 했는데 왜 유치원에 안 온다는 걸까. 슬프다. 빨리 친구들도 만나고 싶고 쌤도 보고 싶다.'
아이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렁그렁해진 눈에서 아이의 마음이 읽혔다. 엄마 다음으로 좋다는 유치원이고 선생님인데 내 설명이 너무 지나쳤나. 말을 뱉자마자 후회했지만 홧김에 '떼를 쓴다'는 표현이 나와 버렸다. 사립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보름 전 공문을 받아 왔다. 사립도 국공립만큼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서명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국공립 추첨에 떨어진 것도 서러운데 부당하게 차별 지원을 받고 있다니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달 유치원비만 40만원이 넘어 경제적으로 만만치 않은 상황에 동등한 지원을 받아 가계 부담을 줄일 수만 있다면 뭔들 못하랴.
'내 아이의 평등한 권리를 찾기 위해 어머님의 목소리를 높여주세요'라는 호소문을 읽고 감정에 치우쳐 서명하기 전, 얄팍하게 쌓인 직업의 원칙이 떠올랐다. 냉정하게 양측의 주장을 따져봐야 한다는 것. 정당하게 세금을 내는 가정의 아이들을 이 나라는 왜 차별하는가, 사립유치원의 요구를 왜 수용하지 않는가, 교사들이 아이들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기사를 찾았다. 뉴스를 클릭할수록 마음이 불편해졌다. 유치원의 민낯이 드러날수록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 유치원은 아니겠지'라는 믿음을 부여잡고서.
국무조정실 부패척결단 등이 2015년부터 올해 7월까지 80개 유치원을 감사한 결과, 62개원 부당한 회계 집행 적발, 나머지 18개원 수사 진행, 조사 대상 전체에서 비리가 발견됐다는 기사를 보고야 말았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주장하는 지원금 액수는 사실과 다르고 "사립유치원 3년 흑자면 건물을 산다"는 말이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현실도 기어이 알아버렸다. 이번 사태의 결론은 '교육을 위해 쓸 테니 돈은 더 달라, 하지만 사유재산이니까 감시는 줄여라'는 한유총의 요구를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 불편한 진실은 숨긴 채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했던 유치원 측에 배신감을 느꼈다.
"흰 백지에 그림을 그리듯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맑고 빛나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한 유치원 원장의 인터뷰를 보며 그나마 쓰린 속을 달랬다. 한유총의 주장은 이익 추구를 위해 운영되는 일부 임대형, 기업형 유치원의 목소리가 크게 반영돼 전체 유치원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전국사립유치원연합회장의 발언에 분노는 사그라들었다.
휴업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불씨는 여전하다. 이를 계기로 유치원과 정부 모두 뼈아프게 성찰해야 한다. 사립유치원은 공정하고 투명한 재정 관리를 약속하고 정부는 재정을 늘려야 한다. 선생님은 오롯이 아이에게만 집중할 수 있도록 속히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성공적으로 시범 운영되고 있는 '공영형 유치원제'를 늘리는 것도 대안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바람이 하나 더 있다. 이 글을 우리 아이 유치원 선생님들은 절대 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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