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개소리'

"이런 개나리를 봤나?"

얼핏 개나리꽃을 가리키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개(犬)나리'를 뜻하는 일종의 욕이다. 일제강점기 때, 월남 이상재 선생이 YMCA 강연회를 감시하러 온 일본 순사를 보고 "때아닌 개나리꽃이 왜 이렇게 많이 폈는지 모르겠군"이라고 재치 있게 비유한 일화도 있다.

'개' 자를 붙인 비속어는 숱한 세대를 거치면서도 여전히 생명력을 잃지 않고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10대들은 인터넷이나 일상생활에서 '개' 표현을 사용하면서 기성세대와의 차별성을 보여준다. '개좋다' '개멋지다' '개웃기다' '개빡친다' '개이득' '개피곤' '개고생' 등등. 여기에서 '개'라는 접두사는 '아주' '매우' '정말로'를 의미한다. '좋다'의 강한 표현을 '개좋다'로, '멋지다'의 강한 표현을 '개멋지다'라고 하는 식이다.

이런 비속어는 국어사전에 없는 10대들만의 언어다. 인터넷 동호회나 카페 등에는 이런 표현이 들어 있는 게시물의 제재 여부를 두고 연일 논란이 벌어진다. "'개' 표현은 욕설로 비치고 유저들의 불쾌감을 유발해 제재한다." "우리 세대의 언어 습관이므로 '개꿀' '개이득' 같은 욕설이 아닌 은어의 사용은 허용해야 한다." '개' 표현을 막는 커뮤니티가 상당수지만, 말썽이 계속되는 걸 보면 10대들의 거친 언어 습관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개' 표현이 한국에서만 논란이 되는가 했더니, 며칠 전 미국 뉴욕 한복판에서 공개적으로 사용되는 웃지 못할 일이 빚어졌다. 북한 리용호 외무상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완전 파괴' 발언에 대해 "개 짖는 소리"라고 응수했다. '개' 표현은 그 옛날부터 세계 공통으로 부정적인 의미나 욕설로 흔히 쓰여 왔으니 리 외무상 발언의 의미를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개소리'는 남의 의견이 합당하지 않을 때 이를 무시하기 위해 쓰는 욕이다. 10대들이 흔히 쓰는 '개뿔'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와 같은 뜻이고 '개드립'과도 비슷하다. 아무리 막가는 국가라고는 하지만, 외교관의 입에서 '개' 표현이 나온 것은 정상적인 정신 상태가 아니다. 우리 민족의 언어 습관이 왜 이렇게 '개판'이 됐는지 모르겠다. 우리의 반려견들이 자신들의 이름이 이렇게 잘못 사용되고 있음을 알게 되면 얼마나 분개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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