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독서 간증

"우리 반 아이 때문에 너무 속상해요. 어쩌면 좋지요?"

"산에 다녀 보세요."

"너무 피곤해요. 방법이 없을까요?"

"산에 가 보세요."

바빠서 잠을 잘 시간도 없는데, 무슨 산이란 말인가. 뭔가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바랐는데, 속도 몰라주고 산타령만 하는 그가 야속했다. 그러나 야속한 마음과 달리 월요일이면 어김없이 그에게는 일상의 냄새 대신 주말 내내 그를 품었던 산 냄새가 그윽했으며, 그런 그가 부러웠다.

수술한 지 한 달 후 경과는 좋았지만, 여전히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서서히 몸은 회복되고 있었지만, 문제는 마음이었다. 가족들 앞에서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했지만 언제 어떤 모습으로 죽음이 다가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산에 가야겠다.'

속상할 때도, 피곤할 때도 언제나 산에 가보라고 권했던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마침 멀지 않은 곳에 저수지를 낀 야트막한 산이 있었다. 처음에는 한 걸음 앞만 보였다. 먼저 디딘 한 걸음은 다음 걸음을 부르고 쌓인 걸음들은 몸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산을 오르게도 하고 내려가게도 했다.

걸음이 익숙해질수록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 대신 시시각각 달라지는 주변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머니와 함께하는 산행은 온갖 약재와 열매가 무성한 먹거리 장터에 온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면 아이들과 함께하는 산행은 지렁이와 개미, 풀꽃이 인간과 대화를 나누는 판타지 동화를 연상시킨다.

어찌 보면 산에 오른다는 것은 책을 읽는다는 것과 같은 일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좋다고 권유를 해도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진심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점이 그러하며, 오랜 시간이 걸려야 몸에 배게 된다는 점이 또한 그러하며, 같은 길을 반복해서 걸어도 그때마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게 된다는 점이 그러하다.

누구도 자기의 우주 바깥으로 나가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자기가 만든 우주 안에서만 숨 쉬고 생각하며 살 수 있어요. 책을 읽는다는 건 그 우주의 경계를 더 넓게 밀어 가며 확장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의 우주가 넓어지면 그만큼 운신의 폭이 넓어지니 자유로워지는 것이고요. 그래서 나는 책 읽기를 자기만의 우주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하곤 합니다.(장석주, '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

'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라는 장석주 작가의 말처럼 나는 책을 통해 삶의 경계를 넓힌 것은 물론이고 상처를 치유하고, 세상으로 나갈 힘까지 얻었다. 독서 간증이라고 치부해도 좋다. 이 가을 같은 믿음으로 책을 읽을 동지가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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