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대구 섬유와 양복인 총회

"섬유산업이 특화되는 과정에서 대구는…기계산업을 제외하고 대구에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타 산업은 억제를 받았다…푸에르토리코가…사탕수수 생산이 매우 적합했기 때문에 푸에르토리코 경제에서…'사탕수수 심리학'으로 언급할 정도로 사탕수수 산업이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했다. 사탕수수 산업에 대한 친숙함과 사탕수수 지배자들의 사회적 명성으로, 투자자들이 다른 작물이나 산업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하는 결과가 초래됐다. 대구에서는 '섬유 심리학'이 다른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1968년 국제개발학회가 개발도상국 도시화 연구를 진행하며 한국 '대구'를 선택, 한'미 학자와 전문가의 연구를 묶어 1971년 펴낸 '전환의 도시 대구'(2012년 대구경북학회 번역)에서 위스콘신주립대 이희상 교수의 '경제조사:효율, 형평, 성장'에 나오는 대구 섬유 관련 내용이다.

대구경북의 섬유 명성은 오랜 역사를 가졌다. 양잠이 일찍 발달해서다. 신라 때 비단은 중동에까지 소개됐다. 일본에서는 신라 사절단이 도착하면 서로 사려 했다는 기록이 아직 일본에 남아 있다. 심지어 20세기 들어 신라 무덤 속 천 조각을 살폈더니 천년 세월 뒤 조선조 천의 질보다 우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신라 섬유는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돋보였다. 대구 주변 경북이 양잠에 최적인 천혜 자연환경을 가진 탓에 대구는 섬유공장 터가 됐다. 당시 대구 생사는 한국 전체 생산량의 40%였고 이는 대구 전 산업 생산량의 20%를 넘었다. 광복 이후 한국전쟁을 피한 덕분에 대구는 여전히 전국 섬유 생산량의 30%를 맡았다. 반세기 이상 대구는 섬유도시였다.

그러나 '섬유 심리학'이란 말처럼 섬유 외 다른 산업은 빈약했고 세월이 흘러 급격한 산업구조와 환경 변화로 대구 섬유는 쇠퇴했다. 섬유도시 대구도 이제 옛말이다. 이런 즈음, 대구 섬유의 옛 명성을 되살리려는 행사가 준비되고 있다. 2년마다 열리는 아시아 주문 양복인 축제인 제27차 아시아주문양복연맹총회가 내년 7~8월 지방에서는 대구에서 처음 열린다. 아시아 17개국 양복인들이 낯선 대구를 찾는다.

한국맞춤양복협회 김태식 수석부회장이 섬유도시 대구 홍보와 대구 섬유 부활의 작은 디딤돌을 놓겠다며 공을 들여 유치한 대회라니 남다르다. '대구에 비행기가 다니느냐'고 묻는 나라 밖 양복인들에게 오랜 대구 섬유 역사를 알리고 대구 섬유 부흥도 덤으로 거두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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