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어떤 경험

이곳에 오는 마지막 날이다. 어르신들과 헤어지려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가라앉는다. 늙고 병든 모습에 더욱 마음이 짠해지는가 보다. 요양시설에 계신 분들에겐 가족도 곁에 없으니 더욱 그러하다. 나와 눈 마주치는 것이 마지막인 줄 모르는 어르신들의 눈빛이 자꾸만 따라온다.

어떤 심리적인 문제인지 모르나 자신의 몸을 자꾸만 손톱으로 긁어 상처를 내는 분, 쉬지 않고 배회하는 분, 종일 아무 말 없이 머리를 숙이고 있는 분, 느닷없이 날짜만 물으시는 분 등 모두가 소설 같은 사연 하나씩 감춘 듯하다. 종종 있는 일이지만 오늘도 한 할머니께서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가셨다. 며칠 동안 식사도 잘 못하시더니 어쩌면 다시 이곳으로 못 오실지도 모른다.

어르신들도 그렇지만 그분들을 돌보는 이곳 일꾼들의 정신건강도 참 중요하다. 한 사람이 한두 분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예닐곱 분을 관리하다 보니 줄곧 곁에서 손을 써 줄 수가 없어서 순식간에 문제가 일어난다. 대소변을 받아내고 목욕을 시키는 일은 알다시피 아무나 못 할 일이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어르신들이 낙상하거나 위험한 상황을 일으키는 것도 살펴봐야 한다. 달랑 최저 시급만을 받으며 모두 꺼리는 이 일을 하는 분들이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이다. 어르신들도 중요하지만, 어르신들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들의 심신이 더 건강해야 한다. 그들의 심리 상태가 양호하지 못하면 그 피해가 어르신들에게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처우는 아주 부족했다. 현대인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우리 가까이에 요양시설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사업에 이익이 되는 어르신들 모셔오기에만 관심을 두지 말고 그 어르신들을 보살피는 분들의 대우도 좀 더 개선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사람들은 생명에 끝이 있다는 것을 알아도 눈앞의 삶이 영원할 것처럼 욕심을 부리며 산다. 이 세상 누구도 죽음 앞에선 모든 것을 놓고 영원히 가야 하는 것을 거스를 수 없다. 삶이 막바지에 다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이곳에 와서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나 자신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정신도 온전치 않고 기운도 없는 어르신들을 보며 느꼈던 슬프고 안타까운 일, 때로는 웃기도 했던 사연을 뒤로하고 긴 복도를 빠져나오는데 요양보호사님들이 웃으며 배웅을 해 준다. 어떤 일이든 끝은 대개 아쉬울 때가 많다. 하물며 생의 마감을 기다리는 분들의 심정은 어떠하랴. 부디 요양원에 계신 모든 분이 끝까지 평화로운 마음으로 지내시길 빌며 약속했던 마지막 방문의 발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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