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대영의 새論 새評] 패러독스에 빠진 문재인 정부

서울대 정치학과 박사. 동북아역사재단 기획실장. 경희대 공공대학원 겸임교수
서울대 정치학과 박사. 동북아역사재단 기획실장. 경희대 공공대학원 겸임교수

사드 배치 문제로 지지기반 분열

文대통령'민주당의 잘못은 아냐

당황한 집권세력 무기력에 주의

새로운 동력으로 전환 지혜 필요

문재인 정부가 정치의 패러독스에 빠졌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65%로 떨어졌다. 정치인에 대한 지지율은 상황에 따라 부침이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문제가 될 것은 없지만, 그 안에 내재한 지지기반의 분열은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반대로 표출되는 불만은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 박근혜 정부 초기의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 사퇴와 비교되는 대표적인 정치의 패러독스이기 때문이다.

동양인들은 정치의 패러독스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 패러독스(paradox)를 우리말로 표현하면 '역설'이나 '이율배반'이 되는데, 그 말이 더 어려워서 그냥 패러독스를 사용할 정도로 우리에게는 낯선 개념이다. 동양에서는 위대한 정치가의 상을 정해놓고 부단히 노력해서 그에 접근하는 것이 정치의 요체였기 때문에 올바른 정치만이 존재한다. 이런 관점에서는 논리적으로 해법을 찾을 수 없는 패러독스가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에 서양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를 공동생활의 방법론으로 이해했는데, 이에 따르면 정치에는 여러 길이 있을 수 있고 개인의 선한 의지와 공동체의 정의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정치의 패러독스를 등산에 빗대자면 등반대장과 대원 간에는 방향 감각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상에 도달하기 위해 등반대장은 구불구불한 길로 인도하는데, 길을 잘 모르는 대원의 입장에서는 정상은 보이지 않고 계속 방향을 바꾸는 대장에 대해 한 번쯤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 의심보다 대장에 대한 신뢰가 강할 때에는 문제가 없지만 신뢰가 약해지는 순간 등반대는 깨지고 제각기 산을 헤매다가 조난하고 만다. 정치의 패러독스도 방향에 대한 감각 차이로부터 생겨난다.

완고하게 한 방향만을 고집하는 정치 지도자는 파국을 초래하기 쉽고 능동적으로 상황에 대응하는 지도자는 지지세력의 이탈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정치의 피할 수 없는 패러독스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자행하는 상황에서도 남북대화와 평화만을 주장했다면 문 대통령은 국내적으로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고립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드를 배치하고 대북 제재를 주장한 결과 일부 지지자들로부터 "내가 찍은 대통령 맞나"라는 불만이 생겼고 급기야 "문재인을 찍었던 이 손이 부끄럽다"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다.

이 와중에 고 조영삼 씨가 '사드 반대'와 '문재인 정부 성공'을 외치며 분신자살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논리적으로는 두 가지 주장이 모순되지 않지만, 현실에서는 그가 외친 사드 반대가 문재인 정부의 지지기반을 붕괴하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 작은 구멍이 큰 제방을 무너뜨리듯 방향 선회에 대한 불만이 모여 정치의 토대를 붕괴시킨다. 외부로부터 몰아쳐 오는 폭풍우는 헤치고 갈 수 있지만 내부에서 피어오르는 불신은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다. 방법이 있다면 패러독스가 아니다.

현재 문재인 정부가 당면한 패러독스는 문 대통령이나 민주당의 잘못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이 시점부터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차적으로는 사드 배치에 대한 논쟁의 과잉이 우려된다. 생각의 차이가 감정적 비난으로 이어지고 정치적 반대로 전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과거 정부들도 그렇게 집권기반이 약해졌다. 더 큰 문제는 당황한 집권세력이 무기력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금주 초에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사드특위의 공청회가 맥없이 끝난 것처럼.

그러나 정치적 패러독스의 종착역은 절망이나 무기력이 아니라 지혜이다. 세종대왕의 예를 들어보겠다. 1432년에 여진족이 압록강을 침범하자 세종은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고 판단했는데, 여기에 황희 정승만 동조했을 뿐 이조판서 허조나 병조판서를 지낸 역전 노장 최윤덕은 기존의 방식대로 국경 방어에 치중할 것을 주장했다. 수차에 걸친 토론의 결과 마침내 최윤덕 장군이 다음 해 봄에 토벌하자고 입장을 바꾸었고 토벌사령관직을 맡아 대승을 거두었다. 정치의 패러독스를 피할 수는 없지만 그 파급력을 완화하거나 나아가 새로운 동력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지혜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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