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 고향 구미] 해평면 출신 트라코월드 이철규 대표

사장 부당지시 반기 들다 실직, 경영 본때 보여주려 사업 시작

고향 이야기만 꺼내도 입가에 행복한 미소를 띠고 있는 (주)트라코월드 이철규 대표.
고향 이야기만 꺼내도 입가에 행복한 미소를 띠고 있는 (주)트라코월드 이철규 대표.

"맨손으로 서울로 올라가 갖은 고생을 하면서 일에만 집중했어요. 가족들과 함께 변변한 여행조차 한 번 가지 못했지요. 한동안 고향도 잊고 지냈는데 10년 전부터 조금씩 여유가 생겼고, 동창회와 향우회 등을 맡아 활동하면서 고향에 대한 소중함과 사랑을 새롭게 느끼고 있습니다."

구미시 해평중'고 총동창회장과 재경해평향우회장을 맡아 고향 사랑에 앞장서고 있는 ㈜트라코월드 이철규(60) 대표는 1957년 구미시 해평면의 과수원집 둘째 아들로 태어나 이곳에서 상업고교를 졸업했다.

서울로 가기 전까지 손에 물집이 터지도록 농사일을 하면서 공부하던 어김없는 촌놈이었다. 맨손으로 서울로 간 후 30년 만에 경제계가 주목하는 강소기업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특유의 근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작정 서울로 올라간 그는 어렵게 무역회사에 취업했다. 하지만 부당한 것을 참지 못하는 강직한 성격 때문에 '사장의 부당한 지시에 반항'하다 어렵게 얻은 직장을 잃고 말았다. 이 대표는 "당시를 생각하면 앞날이 캄캄했다"고 회고했다.

"경리 일을 했는데 사장이 회사에 돈이 없는 줄 뻔히 알면서 저보고 자금을 집행하라는 겁니다. 처음 몇 번은 이리저리 돈을 빌리려 다녔는데 너무하다 싶어 사장에게 반기를 들었지요. 그날로 쫓겨났습니다. 화가 나고 자존심도 상했습니다. 돈을 번다는 생각보다 회사 경영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한번 보여주고 싶어서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모은 전 재산을 긁어모아 전세보증금 600만원을 걸고 조그마한 사무실을 마련해 '삼화교역'이란 상호로 사장이 됐다. 개인 회사라 예기치 못한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자 회사를 법인으로 설립했다. 현재의 트라코월드의 전신인 ㈜삼화실업이다. 본격적으로 무역업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또 한 번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해 위기를 맞게 됐다. 당시 담배 필터를 생산하는 삼화실업이 "상호를 도용했다"며 "3대 일간지에 3단 규모의 사과 광고를 하라"며 내용증명을 보낸 것이다. 1개 신문사 광고료만 600만원. 사무실 전세보증금 모두를 빼야 할 수 있는 금액이다. 비용을 감당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대기업 임원으로 있던 먼 친척과 고향 출신 국회의원 비서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가진 사람들이 더 지독하다"는 것을 소중한 경험으로 삼고 뒤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을 겪으면서 상호를 바꿔야 했지만, 유사한 상호를 피해 새로운 한글 상호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무역을 뜻하는 트레이드(Trade)와 기업을 뜻하는 코프레이션(Corporation)의 합성어로 '트라코월드'란 상호가 탄생한 것이다.

그는 "공장은 돌아가고 있지만 이름 없는 회사에 관심이 없으니 직접 몸으로 뛰었다"며 "브라운관을 세척하는 펌프를 공급했는데, 불산과 같은 화학약품이 묻어 있는 기계를 맨손으로 수리하다 보니 화상으로 양손의 피부가 벗겨져 3년 전만 해도 눈으로 보기 흉할 정도였다"고 했다.

고비마다 힘든 과정을 견디며 성장해 온 트라코월드는 1988년부터 일본 월드케미컬사와 기술 제휴를 통해 케미컬 펌프 제조 판매에 나섰고, 연구'개발을 통해 축적된 기술로 인쇄회로기판(PCB), LCD, 반도체 리드 프레임, 화학, 환경 관련 각종 기자재 토털 솔루션을 구축했다. 2007년에는 ISO9001 인증도 획득했다.

트라코월드가 생산하고 있는 제품은 케미컬 펌프 및 관련 기기 제조 공정에 필수인 초순수 소재다. 약품에 강한 내식성의 특수 플라스틱제 펌프, 밸브, 파이프, 각종 플라스틱 판재, 환봉 등 독자 개발한 다양한 기자재류까지 다양하다.

이 대표는 동종업계가 주목하는 강소기업으로 회사를 성장시켰지만 그동안 주변을 돌아보지 못했던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10년 전부터 사업이 안정되면서 조직이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기 시작하자 고향 친구들과 만나는 기회도 조금씩 늘어났고, 이들의 권유로 해평중'고 총동창회장을 맡았다.

이후 그의 노력은 침체된 동창회를 활성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 같은 노력이 알려지면서 재경해평향우회장직도 맡겨졌다. 향우회 활성화를 고심하던 이 대표는 고향 어르신을 초청해 야유회 행사로 향우회를 준비했다. 지난해 경기도 화성시 동탄면 청려수련원에서 열린 해평향우회는 해평 어르신 60여 명을 비롯해 향우회원 가족 등 200여 명이 참석하는 큰 잔치가 펼쳐졌다. 10대에서 80대 노인들까지 참석한 이날 행사 후 마을별 사진 촬영도 있었다.

이 대표는 "제가 한 것은 돈 조금 내는 것뿐이었지만 고향을 지키는 많은 사람들이 지혜를 모으고 힘을 보태 어르신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너무 감동해 눈물이 났다"며 "이 같은 행사를 통해 마을별로 모든 주민들이 함께 찍은 사진을 액자에 담아 기증할 생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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