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에도 고향만 생각하면 항상 가슴이 벅차요. 서울 생활하면서도 늘 꿈 속에서는 부모님과 함께 살던 그 시절, 고향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어린시절뿐입니다."
(사)한국정수문화예술원 전옥상(69'대화강건 회장) 이사장은 구미시재경향우회장과 대구'경북 시도민회장으로 누구보다 고향 구미를 위해 열정을 보탠 인물이다. 구미시 도개면 낙동강 일선교 건너 작은 산골 신림리 마을에서 지독히도 가난한 농부의 6남1녀 중 다섯째로 태어난 그는 중학교도 채 졸업하지 못하고 무작정 서울로 떠났다. 수중에는 돈 한푼 없었다. 오직 성공하겠다는 일념뿐이었다.
그는 "당시 아무리 살펴봐도 주위에 가장 잘된 사람은 면서기뿐이었다. 시골에서 내 인생 모두를 걸 수 없다는 생각에 사람이 많은 서울에 가 꼭 성공하겠다고 다짐을 하고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며 그때를 회상했다.
막상 서울로 올라왔지만 그를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거지나 다름없는 생활이 이어졌다. 밥과 간장 하나로 간신히 끼니를 때우기가 일쑤였다. 다시 시골로 내려가면 보리밥이라도 실컷 먹을 수 있었지만 그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학교는 못 가도 학식은 있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낮엔 일하고 밤엔 학원을 다녔다. 머리에 든 것이 있어야 장사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먼 친척의 소개로 조명회사에 취직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직장이었다. 제조공장은 원효로에 있고, 점포는 청계천 인근에 있었다. 공장에서 앞만 보고 열심히 1년 6개월쯤 일했는데 사장이 영업을 시켰다. 1년간 열심히 영업에만 몰두했는데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기술을 배워야 겠다'고 다짐한 그는 사장에게 "공장으로 보내달라"고 졸랐지만 거절당했다.
전 회장은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맞서니 할 수 없이 공장으로 보내줬다. 기술과 영업을 익혔으니 독립해 내 공장을 마련하기로 결심했고, 그때 나이 21살이었다"고 했다. 기존 공장 한쪽에 임대료 주고 기계 몇 대 빌려 놓은 게 고작인 작은 조명업체를 직접 차렸다. 상경 4년 만의 성과이다. 워낙 열심히 일한데다 영업할 때 거래처 사장들로부터 인정을 받은 터라 공장은 순풍에 돛단배처럼 성장해 3년 만에 동종업계 최고로 자리 잡았다.
그동안 번듯한 공장을 짓기 위해 경기도 화성에 땅도 사놓고, 결혼해 서울에 집도 마련했다. 하지만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그의 조명사업 실패의 계기가 됐다. 2, 3일 만에 한 번 8t트럭으로 1대씩 물건을 광주로 보냈는데 광주사태 18일 동안 납품이 중단됐고, 절판 등 재료값으로 끊어준 어음이 쉴새 없이 돌아오면서 결국 부도가 났다. 상경 15년 만에 아끼던 공장 터도 집도 다 날려버리고 또다시 무일푼 신세가 됐다.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 없었다.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는데는 고향 지인들의 도움이 컸다. 한국전력공사에 근무하던 고향 선배의 도움으로 한전 발전소 보수공사를 맡아 성공적으로 시공했다. 이를 바탕으로 당시 5공화국 실세의 도움을 받아 대우건설 협력업체로 참여하게 됐다. 당시 대우건설 하청업체로 도장'미장'방수 분야 전문건설업에 전력을 쏟아부었다.
전 회장은 "150만원짜리 화장실 공사부터 안 한 게 없었다. 성실성 하나로 밀어붙였지. 공사기일을 100% 맞추는 등 신용관리에 주력했고, 2년 만에 도급순위 385위에서 우수협력업체로 선정됐다"며 "이 결과 매년 물량이 20%씩 늘어나고, 계약금의 10%를 선급금으로 받았다. 몇 년 만에 도급순위 10위권을 제치고, 대우건설 전체 공사 중 도장'미장'방수 분야 공정 물량의 85%를 거머쥐었다"고 했다. 전성기에는 대우 공사 46개 현장과 한전 발전소 공사 15개 현장을 한꺼번에 맡아 하루 일용직 1천500명을 동원하기도 했다. IMF 때 많은 기업들이 줄도산할 때 그는 오히려 최고의 성과를 냈다. 임금이 싼 대신 좋은 기술자를 골라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향 지인과 선'후배들의 도움으로 재기에 성공한 전 회장은 1992년부터 국제라이온스클럽 봉사활동을 시작으로 재경 구미향우회장 6년, 재경 대구경북시도민회 상임부회장 4년, 회장 2년 임기를 마치고 한국정수문화예술원 이사장을 맡아 '애향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지난해 구미시로부터 자랑스러운 구미사람 대상을 받았다. 40년 기업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정수문화예술원의 산적한 현안 해결을 통한 성공적인 운영과 향우회 기반 마련, 그리고 향우인의 자부심과 애향심 고취에 역할을 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전옥상 회장은 "대구경북은 2명의 대통령을 배출하고도 서울에 지역출신 학생들이 공부할 학사 하나 만들지 못한 것이 늘 아쉽다. 조속한 시일 내 대구경북학사를 건립하는 것이 작은 소망"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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