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미약 '키미테 패치'로 잘 알려진 명문제약의 박춘식(56) 대표이사에게는 남들과 다른 도드라지는 경력이 몇 개 있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회사를 대표하는 대표이사직에 오른 장본인이며 그가 울릉도 출신이라는 것이다.
회사의 최고경영자 자리는 모든 직장인들의 '로망'이지만 아무나 이룰 수 없는 일. 그가 어떤 노력으로 살아왔는지를 가늠케 해주는 궤적이며, 열심히 살아왔다는 데 대한 '훈장'이나 다름없다. 여기에 울릉도 저동 출신이라는 점이 덧보태지면 '경외심'(敬畏心)까지 갖게 한다. 출신 지역과 학교를 따지기 좋아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1만 명 남짓 사는 울릉도는 매력적인 곳이 못 된다. 사회에서 끌어주고 당겨줄 사람이 그만큼 적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 대표는 "울릉도야말로, 저에게 강인함을 길러줬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사실 그도 울릉도에서 살 때는 몰랐다. 울릉도는 그저 탈출하고 싶은 곳이기만 했다. 고등학교까지를 울릉도에서 보낸 박 대표는 "학창시절, 가정형편이 넉넉지 못해 수업을 마치면 곧장 집으로 와 소, 돼지를 키워야 했다. 그때 '나는 절대로 이런 삶을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무엇을 하든지 울릉도에서는 살지 않겠다고 자신에게 채찍질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대학 진학을 명분으로 막상 울릉도를 탈출(?)했으나,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우리 사회가 말하는 소위 '백그라운드'가 없었으니 길을 알려주는 이도, 또 돕겠다고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도 없었다. 기댈 곳은 오직 자신뿐이었다.
1987년 명문제약에 공채(4기)로 입사한 그는 온 힘을 다해 일했다. 남들이 1번 찾아가는 거래처를 10번이고 찾아갔다. 스쿠버다이버, 골프 티칭프로 자격증을 땄고, 드럼 실력도 익힌 것도 고객 관리 차원이었다.
그의 노력과 정성은 사람들의 마음을 열었다. 회사도 그런 그를 인정했고 급기야 위기가 불어닥치자 영남본부장 등 25년을 대구에서 근무한 그를 본사로 불러 '극복과 정상화'라는 중책을 맡겼다. 2013년이었다.
낯선 서울에서 그는 뛰고 또 뛰었다. 그러자 매출이 3배로 상승했고, 이제는 연간 1천500억원 규모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로 성장했다. 2016년 회사는 그에게 회사의 미래를 맡기며 '대표이사'직이라는 포상을 했다.
그가 입사한 지 꼭 30년째 되던 해였고 신입사원 환영회 때 당시 박방홍 대표의 모습에 반해 "나도 꼭 저 자리에 올라 '회전의자' 노래 불러보고 싶다"는 꿈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성공'이니, '출세'했다는 말에 박 대표는 손사래를 친다. 그는 "이제부터가 승부다"며 '필드형 대표이사'를 자칭, 현장을 직접 뛰고 있다.
"힘든 과정을 거쳐 이 자리까지 오르고 보니, 무엇이 나를 이끌었나 생각해 봤어요. 문득, 그렇게 벗어나려 했던 울릉도가 그 힘의 원천임을 깨달았죠. 해풍이 몰아치는 낭떠러지 위 나무는 바람에 부러질듯하면서도 수많은 세월을 이겨내고 우아한 자태를 뽐냅니다. 울릉도는 저에게 고독 속 강인함을 심어줬습니다."
박 대표는 울릉도 출신임을 감추지 않았고 오히려 이를 부각, '박춘식=울릉도'를 공식화하기도 했다. 관리자로서 그는 경영 제1원칙을 사람에 두고 있다. 직원들과는 격의 없는 대화의 장을 열고, 무수한 이야기에 자신의 노하우를 입혀 회사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감성을 가질 수 없다'는 철학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 최대의 자본은 사람임을 강조, 영업 현장에 나서는 직원들의 사기도 진작시킨다. 자기계발도 소홀히 하지 않아 지난해에는 영남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앞만 보고 달려온 그는 이제, 자신을 이 자리까지 서게 한 고향에 되갚음을 다짐하고 있다. 박 대표는 재경 울릉도향우회 운영위원장과 저동초교 동창회 부회장 직함을 넘어, 울릉도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울릉도 저동초교 학생들이 서울로 수학여행을 왔을 때, 선걸음에 달려가 반겨줬다는 박 대표는 "울릉도 사람의 자부심으로 다시 신발끈을 묶고 명문제약을 연매출 5천억원대 회사로 성장시키겠다"고 포부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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