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어(銀魚)는 어릴 때 바다로 나갔다가 다시 고향 하천으로 돌아오는 물고기다. 해마다 은어축제가 열리는 봉화 출신 기업인 정상훈(62'에이앤티 대표이사) 재구봉화군향우회 회장은 그런 삶을 살았고 또 꿈꾸고 있다. 봉화에서 나고 자라 대구에 혈혈단신으로 와서는 해외로 자동차 부품을 수출하는 기업을 일궈냈다. 그런 그가 올해부터 향우회 회장을 맡아 고향 사랑에 더욱 매진하고 있다. 은퇴 후에는 귀향해 고향 사랑을 이어나갈 인생 2막 청사진도 그리고 있다.
정 회장은 봉화군 재산면 출신이다. 재산초등학교와 재산중학교를 졸업하고 강원도 태백공고 기계과를 나왔다. 고교 졸업 후에는 잠시 고향에 와 집안 농사일을 도왔다. "당시엔 미래가 보이지 않았어요. 농사지을 땅이 많지도 않았고요." 결국 1974년 10월 대구로 왔다. 아르바이트도 하고, 야간중학교 교사로 봉사활동도 하며 사회 초년병 시절을 보냈다. 해병대 339기로 군 생활을 하고는 다시 대구로 와 직장 생활을 했다. "직장 생활은 얼마 안 가 그만뒀습니다. 제가 잘할 수 있는 것, 기계 기술 전공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결국 1990년 3월 금형 부품 회사 에이앤티를 창업했다.
부푼 꿈을 안고 회사를 경영했지만 우여곡절이 많았다. 자동차부품을 만들어 납품하는 현대자동차가 파업을 자주 해 공장 운영이 힘들어지자 섬유부품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들어 대구의 섬유업체가 줄줄이 무너져 다시 어려움을 겪었다. 1995년에는 화재로 공장이 전소되기도 했다. 또 어음이 부도나 도산 직전까지도 가봤다.
그렇게 10년을 버텼더니 빚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2001년 해외로 부품 수출길을 연 것이 큰 몫을 했다. 그것도 기계 부품을 잘 만들기로 유명한 일본으로, 미국으로, 독일로 수출길을 개척했다. 2000년 10월에는 공장을 서구 이현동에서 현재의 성서공단으로 이전했다. 꾸준히 성장한 에이앤티는 현재 직원 70여 명을 고용하고 있다.
"회사가 자리를 잡고 여유가 생기니 마음 한쪽에 고향이 들어섰어요. 고향을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실은 그간 모진 타향살이를 하던 정 회장에게 어려운 일이 있을 땐 위로를, 기쁜 일이 있을 땐 격려를 해준 곳이 바로 향우회였다. "향우회에 나가 고향을 소재로 나누는 작은 대화가 일상의 큰 즐거움이 됐습니다. 고향은 제 인생에 존재 그 자체로 큰 도움이 됐습니다."
정 회장은 고향에 보답하기 위해 우선 재산면향우회장을 5년간 했다. 가장 보람을 느꼈던 일은 향우회와 함께 고향 어르신 800여 명을 모시고 연 효도잔치였다. "제 부모님은 30여 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하지만 고향에 부모님의 이웃, 교류하셨던 분들, 동 세대 어르신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분들을 부모님처럼 챙기는 게 출향인의 도리라고 생각했어요."
면 단위 향우회 회장으로 활동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군 단위 향우회 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하게 됐다. 결국 주변 추천을 받아 올해부터 임기 2년의 재구(대구)봉화군향우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재구향우회 회원은 모두 1천300여 명. 전국에서는 재경(서울)향우회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 정 회장은 임기 동안 향우회의 가장 기본인 향우(故鄕'고향의 벗)의 의미를 강조할 계획이다. "회원들끼리 돈독하게 우애를 쌓을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고향 사랑 활동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22일 대구 북구 검단동 유통단지에서 봉화고향장터를 열었다. "향우회원들의 화합의 장이자, 봉화 우수 농산물을 판매해 고향 농민들을 돕는 일이며, 봉화 홍보의 장이었습니다." 정 회장은 조만간 기업인으로서는 은퇴할 계획이다. 하지만 고향 사랑은 계속 이어나갈 생각이다. 봉화로 귀향해서 말이다.
"대구에서 쌓은 인맥을 활용해 봉화 농산물 직거래 길을 터주는 등 봉화와 대구, 도농 간 가교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이런 활동이 봉화라는 지역 브랜드를 가꾸는 일이라고 정 회장은 주장한다. "과거에는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봉화를 설명하기 힘들어 그냥 근처 큰 도시인 안동이나 영주라고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당당하게 봉화라고 대답합니다. 봉화가 청정 이미지가 강한 하나의 브랜드가 됐거든요. 요즘 주변에서 봉화 은어'송어 축제 언제 하느냐고 물어볼 정도입니다. 고향의 브랜드 가치가 올라가니 저의 브랜드 가치도 함께 높아졌어요. 고향이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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