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우리의 20세기

대공황 시기'베이비부머'페미니즘 시대…

3녀 2남 등장시켜 아프지만 아련하게 풀어

1970년대가 끝나던 마지막 낭만 시점 배경

따뜻하게 회고한 감독의 성장기 모티프로

1979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산타바바라에 위치한 한 낡은 2층 집에서 한데 어울려 살아가던 세 명의 여성과 10대 남자아이, 그리고 한 남성의 이야기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없고, 소련이 존재하며, 신자유주의가 뭔지 알 수 없던 그 시절을 돌아본다. 소년뿐만 아니라 50대, 20대, 10대 여성과 40대 남성도 다 함께 혼돈의 시기를 겪으며 성장하고 있었다.

82세의 크리스토퍼 플러머에게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안긴 '비기너스'(2010)를 연출하고 각본을 썼던 마이크 밀스의 작품이다. 이 영화는 전작처럼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다.

그가 10대였던 1979년, 레이건이 등장하고 신자유주의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 히피즘이 종말을 고하고 청춘과 자유의 시대가 마무리되던 마지막 낭만의 시기, 그때를 아련하게 기억하는 영화다. 그러나 영화는 추억과 향수로 점철되지 않는다. 아프고, 혼란스럽고, 엉망진창이다.

난해한 펑크 음악이 울려 퍼지고, '신뢰의 위기' 연설로 미국의 위기를 말한 지미 카터 대통령의 인기는 땅에 떨어져 있고, 페미니즘의 열풍이 일고 있던 그때, 차 한 대 달랑 남기고 떠나버린 아버지를 잊은 채 엄마와 사는 소년과 늦둥이 아들 때문에 고민이 많은 엄마의 시각에서 과거가 소환된다.

셰어하우스를 운영하는 55세 도로시아(아네트 베닝)는 사춘기에 접어든 15세 아들 제이미(루카스 제이드 주먼)의 변화하는 행동이 슬슬 걱정된다. 도로시아는 아버지가 없는 제이미에게 남자 어른과 교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자동차 수리공 윌리엄(빌리 크루덥)과 가깝게 지내게 하지만, 성향이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 힘들어한다.

그녀는 결국 대안책으로 함께 사는 사진작가 20대 애비(그레타 거윅)와 아들의 절친한 친구 줄리(엘르 패닝)에게 제이미를 위한 인생 교육을 부탁한다. 하지만 성숙한 조언을 하리란 기대와 달리 두 사람은 제이미에게 혼란만 안긴다.

영화에는 각각 다른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1920년대에 태어나 1930년대 대공황 시기를 살았던 도로시아는 조종사가 되고 싶었지만, 시대적 한계 때문에 꿈을 실현하지 못했다.

1950년대 생 베이비부머인 20대 애비는 1970년대 펑크와 페미니즘의 무드 한 가운데에서 자유분방하게 살아가지만, 암의 위협 속에 공포를 느끼며 불임이라는 진단에 절망한다.

1960년대 생 줄리는 성의 유희에 눈뜨지만 임신할까 봐 전전긍긍한다. 조용하고 말 없는 윌리엄은 지식인 전처 때문에 히피 공동체를 경험했지만 잘 맞지 않아 홀로 살아간다.

세 명의 여성과 한 명의 남성, 그들은 제이미의 정신적 성장의 공동 양육자이다.

히피즘의 시대에서 신자유주의 시대로 넘어가는 다리 같은 시대인 1970년대 말, 어쩌면 마지막 낭만과 순수의 시대였던 그 시절을 회고하는 시선에는 그리움과 아쉬움이 가득하다.

전작인 '비기너스'가 늙어버린 아버지와 그들의 친구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우리의 20세기'는 어머니와 그들의 친구에 관한 이야기이다.

영화의 시작이 아버지가 남겨준 유일한 물건인 자동차가 불타버리는 장면에서 시작하는 것은 상징적이다. 이는 아버지와 한 시대의 종말을 뜻한다.

아버지를 회상하거나 그리워하지 않는 모자의 씩씩함과 개성이 영화의 분위기를 독특하게 만들어간다. 영화는 캐릭터가 각각 한 세대와 특정 집단을 대표하는 상징성을 지니면서, 이 모든 복잡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던 낭만의 시대를 즐겁게 회고한다.

도로를 달리는 몽환적인 장면과 이해되지 않는 음조의 펑크 음악은 결핍으로 점철된 삶을 이겨내고 싶었던 그때 그 사람들에게 필요한 자극제 같은 것이다.

이미 어떤 시대가 도래했는지 아는 21세기 관객에게는 꿈결 같은 장면과 시끄러운 음악은 보수적이고 전체주의적이 되어 버린 세상에 대한 탄식처럼 여겨진다.

영화는 각자 우아하게 자신의 결핍과 맞선 여성들에게 보내는 사랑의 시이다. 언제나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사랑에 너그럽고 부족한 것에 당당한 사람, 열린 시선으로 타인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로 이 영화는 풍성하게 채워져 있다.

사건의 연쇄가 아닌, 사람들의 행동을 지켜보는 재미가 풍부하다. 바로 우리 각자의 20세기도 되돌아보게 한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