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추억의 명절 풍속도] 친척들 보는 반가움에 마냥 좋았던, 40년 전 그땐 그랬지

예나 지금이나 명절은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 친지들과의 오붓한 시간을 갖는 소중하고 의미 있는 날이지요. 추석 명절을 맞으며 40여 년 전 1970년대의 추석 명절을 잠시 회상해 보았습니다. 요즘은 사라진 풍습과 달라진 모습도 있지만 과거의 추억을 더듬어 보고 좋은 풍습은 후대에 전하고 시대에 맞게 변화한 요즘의 문화도 존중하는 것이 급격히 변한 문화의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과 함께하는 지혜라 생각해 봅니다. 이번 추석은 가족들과 훗날 추억에 남는 특별한 날로 기억되시길 바라면서 홍사흠 혼다 대구지점장이 40여 년 전 추억 속 추석 명절로 다시 돌아가 보았습니다.

◆조상 산소 벌초

음력 팔월에 접어들면 추석 보름 전쯤 산소 벌초가 시작됩니다. 요즘 같은 예초기는 당연히 없었지요. 벌초 장비라곤 낫과 깔꾸리, 톱이 전부였어요. 도심에서 자란 저로서는 쪼글시 앉는 것도 딘데 낫질은 고사하고 그냥 쥐어뜯는 수준으로 처삼촌 벌초하듯 그저 흉내만 내다시피 했습니다. 그래도 벌초 시즌이 다가오면 일 년 농사하는 느낌으로 걱정이 앞섰어요.ㅠ

◆귀향 차편 예약'귀향 모습

(열차는 특급, 통일호, 비둘기호 타고 버스는 서울에서 대구까지 10시간 내외)

서울 여의도 광장에 전날부터 자리 깔고 고향 가는 열차표를 예매하는 모습은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중요하고 힘든 일이었어요. 있으나 없으나 온 가족 새 옷 사 입고 선물 들고 고향으로 향하는 모습에 명절이 더욱 실감 나지요. 어쩌다 차편을 못 구해 고향에 오지 못하는 이들은 쓸쓸한 추석 명절을 홀로 외롭게 지낼 수밖에 없었죠. 지금 중국의 명절 귀향 행렬을 보면 옛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추석 방앗간

추석 이틀 전쯤은 방앗간에 온 동네 다라이가 다 모입니다. 자기 쌀 다라이 앞세우고 나래비(줄 서는) 서서 해나(혹시) 누가 새치기할까 봐 가족이 돌아가며 순서를 기다렸죠. 재래식이라 방앗간 기계는 돌아가다 벨트 빠지기 일쑤지만. 노련한 주인장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금세 몽둥이로 원상복구하십니다.

◆송편 만들기

쉽게 보이는 송편 빚기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흉내 내며 만들어 보면 달도 별도 아닌 것이 괴상망측한 모양으로 나와서 몇 개 만들다 쿠사리(핀잔) 먹기 싫어 관둡니다.ㅋ 요즘은 누구나 떡집에서 송편을 사서 먹지요. 어느새 추석을 대표하는 음식이면서 집에서 가족들이 둘러앉아 빚어 먹던 송편은 그냥 추억의 음식으로 우리 가슴속에 자리 잡고 말았습니다.ㅠ 훈훈하고 정겨웠던 그 시절이 더욱 그립기만 하네요.

◆추석빔

요즘은 연중 철에 맞춰 맘에 드는 옷을 사 입어 명절에 그다지 옷을 사지 않는 사람이 많지만 그 당시는 대부분 명절에 입을 꼬까와 새 신발을 며칠 전부터 고이 모셔 놓았지요. 추석 전에 입고 다니다간 부모님께 혼납니다. 처음 신는 깨끗한 신발이 쪽팔리는 줄 모르고 보무도 당당하게 뛰쳐나갑니다.

◆명절 택시 잡기

저희는 고향인 군위 한밤마을에 가진 못하고 추석 당일에 종조부님 차례 모시러 남산동'원대동 작은집으로 갔었어요. 가려면 105번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는데 그 당시는 택시가 많지 않은 데다 더욱이 명절은 택시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 혼자가 아니라 합승도 힘들었어요. 택시 못 잡으면 결국 경유 냄새 진동하는 버스로 가야죠.ㅠ 안내양이 버스 탕탕 치며 "대봉동~ 대덕탕~ 남문시장~대신동~ 자갈마당~ 원대주차자앙~~~" 코스 안내 멘트 들으면서 친척집으로 갔죠.ㅋ

◆추석 차례 지내기

차례를 모실 때 어른들의 근엄한 표정과 달리 철모르는 애들은 엎드려 짓궂은 모습으로 장난치다 야단맞는 모습은 어느 집이나 있었지요. 누구 제사인지는 알기나 하는지 그냥 절하면 따라 하고 헛기침 소리 나면 눈치 보고 일어나고. 제례의 순서와 의미는 제주(祭主)가 되기 전엔 절대 모릅니다.ㅎ 좀 안답시고 조율이시, 홍동백서, 좌포우혜, 두동미서, 어동육서 주장해 봤자 "야들아~ 제사는 가가예문이다" 아재 한마디에 깨갱!

◆추석 성묘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고 햇곡식과 햇과일로 며칠 전 벌초하고 단장한 산소를 찾아 조상님께 음식을 대접하는 일이죠. 저희는 추석 성묘 대신 음력 시월 묘사(시제) 때 조상님을 뵙지요. 요즘은 벌초 때 술잔 올리고 묘사 대신하는 경우도 많다네요. 참 부럽습니다~.

1970년대 가정의례준칙을 제정하여 한국적 전통문화의 토착화를 시도했었는데 그다지 실효를 거두지 못했지요. 앞으로의 세대를 보면 지금쯤은 기성세대가 전통문화를 지키되 시대에 맞게끔 더욱 간소하게 방향성을 잡아줄 필요가 있다고 개인적으로 느낍니다.

◆한가위 보름달 소원 빌기

사는 곳, 직업, 나이에 따라 소원은 다르겠지만 한가위 보름달만큼 넉넉한 풍요와 행복을 기원하는 것은 모두의 같은 마음입니다. 건강'행복'사랑'풍요'합격 기원… 올해도 함께 빌어봐요.

◆윷놀이 모습

가족이 함께 모여 하는 놀이 중에 윷놀이만큼 재미있고 스릴 넘치는 놀이가 없지요. 윷놀이 격언에 "안지(安地)에 도착하면 호랑이도 못 물어간다"는 말이 있지만 그것도 알 수 없습니다. 뒤지다가도 신들린 사리꾼이 대여섯 번 모를 연거푸 해서 기적적인 역전을 하기도 한답니다. 도, 개, 걸, 윷, 모, 모도, 모개, 방여, 숙여, 안지, 내타, 도밭, 개밭, 글밭, 지과, 송윷, 두모, 찔도, 찔개, 찔걸, 꽂여, 받지, 날도, 날개, 날글…. 순서는 다 기억 안 나지만 윷판은 자리마다 이름이 다 있지요. 요즘은 퐁당, 잉태, 지옥, 뒷도 같은 변수를 넣어 재미가 더하지요.ㅎ 저희 엄니와 어른들은 윷판 없이 위치별 이름을 말하며 윷말을 쓰시곤 했답니다. 윷은 실력보다 말을 지혜롭게 잘 써야 이깁니다. 이 세상에서 전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놀이 중 윷놀이만큼 재미있고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놀이도 없다고 봅니다.

◆화약놀이, 딱지놀이, 병정놀이

남자 아이들은 명절날 받은 특별수당으로 화약 딱총, 플라스틱 칼 등 평소에 구입하기 힘든 장난감을 사서 폼을 잡지요. 장난치다 꼭~ 한 아이는 울음보가 터집니다.ㅋ

◆추석의 문화극장

비디오, 티브이 영화 채널이 없고 영화는 유일하게 '주말의 명화'나 '명화극장'의 장고, 튜니티 시리즈, OK목장의 결투 등 서부 영화나 로마의 휴일, 벤허, 사운드 오브 뮤직 같은 매년 명절 단골 영화만 나오죠. 그게 싫어 그나마 추석 특집 개봉영화를 보려면 극장마다 북새통이었어요. 연인들도 그다지 갈 데가 없는지라 오후 늦게는 다들 극장가로 몰렸지요.

글 홍사흠 혼다 대구지점장

삽화 강지윤(이상한나라예술쟁이'캐릭터'캐리커처작가'설치미술가'프리랜서큐레이터'경북대 미술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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