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가 9일 '571돌 한글날' 축하 행사를 '마음을 그려내는 빛, 한글'이라는 주제로 갖는다. 그런데 행사의 순서 명칭을 쉬운 우리말로 바꿔 풀어 적기로 했다. '개식'은 '여는 말', '애국가 제창'은 '애국가 다 함께 부르기', '훈민정음 서문 봉독'은 '훈민정음 머리글 읽기' 등으로 쓴다. 지금까지 없던 일로 이번이 처음이다. 유난히 한자 용어를 앞세우는 정부 부처의 변화로 바람직하고 반길 만하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1443년 세상에 내놓은 이후 서러운 날들을 보내야만 했다. 백성을 위한 바른 소리로 세상에 나왔지만 남의 글자인 한자 사용을 고집하는 조선의 지배층과 유학자들이 한글을 쓰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 한글이 조선의 공식 문자인 국문(國文)으로 정식 채택된 것은 1894년 갑오경장 때였다. 한글이 만들어지고부터 무려 450년이나 흐른 뒤였다. 한글이 걸어온 긴 가시밭길이었다.
물론 한글의 값어치는 종교가 먼저 알아봤다. 1860년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가 '용담유사'라는 포교 가사집을 한글로 내고 외국 선교사들이 한글 성경집을 만들어 배포한 일이 그렇다. 청나라 원세개가 중국인의 높은 문맹률 해결을 위해 한글 사용을 제안했다는 이야기, 조선 조정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미국인 호머 헐버트가 한글의 우수성을 깨닫고 한글 보급에 힘쓴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일제강점기 한글 탄압과 말살 정책 속에서 숱한 학자들의 희생 속에 살아남은 한글은 오늘날 문맹률 '0'의 놀라운 성과와 함께 한국의 발 빠른 산업화 적응에 기여한 소중한 자원이 됐다. 이제 한글은 세계 12위의 사용 인구를 가졌고 2010년 인도네시아 소수민족 찌아찌아족의 공식문자로도 됐다. 1989년 유네스코가 세종대왕상을 제정하고 1997년 한글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했다. 이처럼 한글의 우수성에 대한 국제적인 인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한글의 앞날을 위해 할 일은 많다. 어렵고 딱딱한 법률 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과 행안부의 한글날 변신과 같은 일을 보다 널리 퍼뜨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어지럽게 퍼진 국적 불명의 말도 가릴 때다. 가꾸고 아낄수록 빛나는 한글로 나라 품격까지 높이는 일,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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