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손녀 바보…제3회 매일시니어문학상 시 특선-조성연

상식으로 묶은 내 페이지의 말미에

첫 손녀가 응애응애 삽입 되었을 때

믿을 수 있기까지 띄어 쓰는 한 줄이 걸리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찍고 있던 마침표 뒤로 페이지를 늘리고 있었다

쌔근쌔근 구절이 와이파이를 타고 도착할 때면

쉼표를 건너 부리나케 느낌표를 줄줄이 세웠고

쪽쪽이를 물고 마구 모음을 빨아들일 때는

겹자음으로 된 구절을 다음 줄에 이어 쓰느라

아버지 귀를 닮았어요

엄마가 된 딸의 소감을 적을 여백을 찾지 못했다

 

액정화면에 똑같은 오랑우탄이 여럿 등장해갈수록

모빌 숲 사이로 메아리치는 외마디 문자를 받자마자

답신에 하트를 첨부하는 횟수가 늘고

다이아몬드표에서 별표까지

특수문자가 거덜난 후에도

되풀이 써먹는 게으름에 부끄럼을 느끼지 않았다

 

나는 살아가는 중이었고

살아오고 있는 그 애 앞에서

문장의 뒤를 거슬러 첫 페이지의 오자를 발견할 때면

그렇지 이건 희망이야! 서슴없이 고쳐 썼다

아버지 그건 애한테 부담스러운 고백이라고요

딸이 정정을 요구할 때면

아서, 너는 애와 살아오고 있는 길이 바쁘겠지만

나는 편집 후기에 이런 말 꼭 쓰겠다

사랑한다 내 페이지의 첫 장에서 맺는말의 마침표까지

사랑한다가 가장 알맞은 낱말이라고

 

삼백육십오 페이지가 배로 늘어난다고 해도

받아 적을 문장들을 멈추지 않을 거다

엉금엉금 의태어가 신세계의 묘사처럼 다가올 때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