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는 오로라를 보았다…제3회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 우수상-최재운

세계 경제위기 I M F에 우리 가정도 흔들렸다. 학원 피아노 소리가 멈추고 나는 일을 찾아야 했다. 친구 남편이 사장인 택시회사에 문을 두드렸다. 사장은 조금하고 말겠지, 하는 생각으로 채용했다며 열심히 하는 나를 보고 신기하다고 했다.

몇 달 만 하겠다고 나선길이 어년 20년이 흘렀다. 마흔다섯, 그 예쁜 나이 길에 다 뿌렸다. 잠자는 시간 다섯 여섯 시간 빼고 운전했다. 다른 일을 그렇게 열심히 했다면 나는 지금 어떤 사람으로 살고 있을까? 생각해 본다.

택시 운전 첫날, 마지막 손님은 여대생이었다. 학생의 집은 해변이 가까운 시골이었다. 출발할 때는 안개가 입김처럼 밤을 밀어내고 있었다. 학생의 집이 가까워지자 안개가 에워싸 앞을 볼 수가 없었다. 학생은 오른쪽 왼쪽 지시를 했고, 나는 암울한 시야에만 신경을 썼다. 학생은 내려 안개 속으로 총총 걸어갔다. 큰길까지 나가는 길을 한 치도 알 수 없었다. 무서워 문을 잠그고 멍청하게 앉아있었다.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가 멀리서 암울하게 들렸다. 여자가 머리를 풀고 차 보닛으로 올라올 것만 같았다. 고속도로에서 간간이 자동차 불빛은 뿌옇게 굴러갔다. 한참 후 내 앞을 가린 안개도 서서히 열어주었다. 나는 내려서 바퀴가 굴러갈 길을 가늠하고 한 바퀴 한 바퀴 후진했다. 조금만 비틀어지면 논 아래 절벽으로 떨어지는 상황, 큰길에 바퀴가 닫을 때 나는 한숨을 길게 쉬었다. 차 불빛에 도로 가장자리 풀들이 이슬을 머금어 반들반들하다. 검푸른 하늘에는 밤새 살이 찐 새벽 별은 유난히 반작거렸다. 멀리 안개가 놓아버린 불빛이 보였다. 나는 돈을 세고 하품 한 번 했을 뿐인데 회색빛 아침이 눈앞에 있었다. 트럭기사는 내 잠을 깨우려는 듯 '빵' 소리네 아침을 열어놓고 도망쳤다.

나는 베스트 개인택시 기사, 영화의 주인공처럼 살아온 삶, 지금, 그때 파고든 안개가 내 머리에 파고들어 어둠으로 밀어내도 끊임없이 피어난다. 혹독하게 부려 먹은 내 수족들이 앙탈이다. 눈은 나를 놀라게 하느라 불빛을 지질편편하게 펴놓고 어깨가 작고 앞으로 쏠린다. 손목은 핸들이 싫다며 벌들을 키우는지 밤이면 와글거려 단잠을 깨운다. 나는 일어나 앉아 손바닥을 맞대고 벌이 날아가길 빈다. 잠깐 다 날아가면 나는 잠을 청한다, 허리는 더는 못 참겠다며, 3번이 앙탈을 부린다고 의사가 말했다. 다리, 다리는 살살 계단을 오를 때면 어찌 잘 아는지 이빨도 없는 것이 빠득빠득 이 가는 흉내를 낸다. 솔직히 내 육신한테는 정말 미안하다. 특히 오른발, 오른발 누르고 떼고, 이 십 년…나는 힘이들 때면 '죽으면 썩을 것 들'이라고 했지. 나의 육신들한데 부탁하고 싶다. 이제까지 참았으니 조금만 참자고, 내 인생 마무리 단계니까.

나는 달린다. 가로수 녹색이 예쁜 6월의 거리를, 이제는 길에서 자는 일도 없고, 손님이 나를 안개 속으로 끌고 갈 일도 없다. 오전 일을 마무리하고 도서관에 간다. 나를 위한 시간을 세 시간씩 갖는다. 택시 운전 장점은 시간이 자유로워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긴 여행도 하고, 일하다 잠시 멈추고 근사한 음악이 있는 찻집에서 차를 마시기도 한다. 컴퓨터를 열고 자판을 두드리는데 피아노 소리가 난다. 히쭉히쭉 웃는 나를 보고 앞자리 학생이 이상하게 쳐다본다. 그러다 씩 웃는다. 무엇인가 써 보고 싶고, 내 눈가에 예쁜 주름이 잡힌 걸 보면 나는 행복한가? 마우스가 화살표를 찾느라 옆 학생 자리까지 밀고 가기도 한다. 학생은 내 손을 보더니 키득거렸다. 책 읽기에 몰두하다 보면 누가 시계를 '확' 돌려놓은 것 같다. 어느새 유리창에 어둠이 붙어있다. '에이 돈은 낼 벌어야겠다.' 죽치고 앉아 있다. 엉덩이를 떼라는 종료 스피커 소리에도 내가 제일 늦게 나간다. 라디오 FM에 사이클에 맞춰 온종일 시내를 누빌 때면 즐겁다. '비발디 사 계 중 봄이다.' 손님 분위기와 딱 맞다 고 생각했다.

"제가 이 곡을 좋아하는데 잠깐 볼룸을 높이면 안 될까요?"

듣고 있는 손님이 근사하게 보여 더 즐겁다. 많은 사람과 대화한다. 나는 어느 손님에게는 엄마이고 누나이다. 내리면 그만이라는 생각인지 손님들은 속내를 다 털어놓는다. 어느 기러기아빠는 아내와 아이들을 캐나다로 유학을 보냈는데 아내가 바람이 났단다. 아이들만 보낸다고 했다며 떨리는 음성을 참느라 침을 꿀꺽 삼키는 옆모습을 보았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내도 언젠가는 후회할 거예요" 건강에 신경 쓰면서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져보라고 했다. 시간은 모든 걸 몰고 사라지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흐르는 시간만큼 아이들이 자라고. 내 차에 다 두고 내렸는지 홀가분한 듯 손을 흔든다. 어둠으로 걸어가는 처진 어깨가 안쓰러웠다. 병원 택시 승강장에서 암 투병 중인 환자가 탔다. 머리는 어울리지 않는 모자를 쓰고, 나를 보더니 제일 부럽다고 했다. 건강해서 일할 수 있어 얼마나 좋으냐고, 환자는 손으로 눈을 훔쳤다. 이제까지 힘들다고 투정부린 것이 사치라는 것을 알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6월 마지막 일요일 스님을 태우고 절에 갔다. 나는 외각으로 나갈 때면 그날은 일을 잠깐 접는다. 6월의 푸른 산이 병품처럼 둘러있다. 절 굴뚝 하얀 연기가 어느새 하늘에 피어있다. 계단 뜸 사이에 핀 민들레가 올라서는 스님을 반긴다. 절 담장 뒷길에 장미가 내 나이처럼 꽃잎을 떨어뜨리며 시간을 세고 있다. 꽃잎 하나가 거미줄에 걸려 아쉬운 듯 흔들거린다. 너무 빨리 달린 시간들, 무엇으로 가늠해 보아야 하나, 내 앞에 녹색 등이 켜져 달린다. 오로라가 눈앞에 펼쳐있다!!! 나는 내릴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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