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개성공단을 나가는 날이다. 컨테이너 문을 열자, 새벽안개 사이로 송악산이 희미한 윤곽을 드러낸다. 몸을 감싸는 시원한 아침공기를 들이마신 후, 텅 빈 8차선 도로를 따라 식당으로 향했다.
흰 셔츠, 검은 바지를 입은 여성동무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언젠가 부산갈매기가 히히거렸다.'여기 가시나들은 브라쟈도 안 하는 모양이라, 끈짜국이 안 보인다 아이가.'속이 비치지 않는 흰 셔츠는 품도 넉넉했다. 장 동무에게 북한 여성들도 가슴띠를 하는 지 물어볼까?
불광동에서 노 소장을 처음 만난 날, 사진과 함께 몇 가지 서류를 준비하라는 말을 들으며 그의 손을 보았다. 거칠고 굵은 손가락. 고향친구인 배 부장이 공사를 엉망으로 한 탓에 개성공단 공사는 완전히 까졌다는 말을 그가 덧붙였을 때, 내 귀에는 월급인상 따위는 생각하지 말라는 뜻으로 들렸다.
며칠 후, 따뜻한 햇살아래 도라산 역에서 노 소장의 트럭을 타고 느릿느릿 움직이는 차들과 함께 철책을 통과했다. 어느 한적한 지방도로를 가고 있다는 착각도 잠시, 북한군 초소가 나타났다. 차량선도를 하던 국군 레토나 군용차량이 갓길로 비켜선다. 붉은 별이 그려진 도로 장애물을 지나자 작은 전조등과 둥그런 보닛 때문에 맹꽁이처럼 보이는 북한군 UAZ 군용 지프가 레토나 자리를 이어받는다. UAZ 뒤에 매달린 스페어 타이어에서'HANKOOK TIRE'라는 영문자를 보고 잠시 어리둥절해진다. 얼마나 갔을까, 다시 철책이 눈에 들어오며 빗물에 생채기가 난 민둥산이 펼쳐졌다. 북한군 병사들이 부동자세로 서 있는 철책문 초소 앞에 다다랐다. 한국군의 어깨에나 닿을 왜소한 체구의 앳된 하전사들은 권총을 차거나 AKS74U를 메고 있다. 접이식 개머리판에 총신이 짧아 장난감 총처럼 보이는 신형 AK소총. 낡은 군복 대신 총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하전사들의 봄볕에 탄 얼굴과 거친 손, 귀에 앉은 동창 딱지.
개성공단에 들어오기 전, 통일교육원에서 교육을 받을 때, 북한사람들에게'선생'이라는 호칭을 쓰라고 했지만 들어와 보니 현장소장은 북한 철근공들을'동무'라고 불렀고 오히려 그들이 소장에게 '선생' 이라고 했다. 내 표정이 어색했던지 배 부장이 설명을 해주었다.'선생 하면 못 알아들어.'용산 미군기지에서 일하던 때가 생각났다. 아침에 미군 감독관을 만나면 우리는'Good morning'이라고 인사를 했고 그는'안뇽하세요'라고 답했다.
첫날, 나는 그네들에게 깔끔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땀이 잘 마르고 주머니가 여섯 개인 얼룩무늬 미군 하복바지와 작업복으로 입기에는 아까운 칼라가 달린 하얀 티셔츠를 가방에서 꺼냈다. 슬래브에 올라서자 황색 안전모를 삐딱하게 쓴 철근공들은 곁눈질로 내 얼굴과 위장색 미군 군복바지를 훑어내렸다. 한국군의 얼룩무늬 군복을 부러워했다는 귀순 북한군의 말이 떠오르며 그네들의 눈빛이 나이에 따라 다르다는 걸 알아챘다. 사오십 대들은 시골로 전학 온 도시아이를 보는 눈빛이었고, 누런 군복 바지를 입은 갓 제대한 삼십대들의 눈에서는 어린 시절 내 친구들의 눈빛을 보았다. 서울역 사창가 아이들과 싸움으로 단련된 우리는 좋은 학교에 다니는 하얀 얼굴의 H동 아이들을 질시했다. 나는'똥통'이라는 접두사가 붙는 공고라도 다녔지만 국졸인 친구들은 이상하게 기른 장발에 외날 도루코 면도칼을 혁대 뒤에 감추고 공장생활을 했다. 유독 한 친구가 기억나는데 별명이'삐릿비'였다. 녀석은 비틀즈의'Let it be'가'삐릿비'로 들렸는지'삐릿비, 삐릿비'하며 흥얼거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돈이 궁하면 남영동으로 나가 H동 아이들의 주머니를 털곤 했다. 컴컴한 골목에서 아이들이 떨리는 손으로 내놓은 큰돈은 우리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고 초라함은 곧 주먹질로 바뀌었다.
나는 턱끈을 풀고 안전모를 거꾸로 썼다. 볼에 생기는 하얀 턱끈 자국을 피하려고 한여름에나 하는 짓이었지만 벽철근을 세우던 동무들이 입을 벌쭉거렸다.
동무들은 툭하면 전동공구를 빌리러 와 우리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핸드그라인더의 경우, 남쪽에서는 값싼 날일망정 새 절삭날을 끼워 돌려주지만 이곳에서는 500원짜리 동전만한 날이 되어야 돌아왔다. 노 소장이 조금씩 사다줘서 우리도 아껴 쓰는 외제 절삭날이었다. 드디어 핸드그라인더가 탄내를 풍기며 돌아왔다. 우리들이 핑계를 대며 공구를 안 빌려주자 그들은 공동으로 쓰는 연장을 안 주는 양 성을 냈다. 어떤 날은 펜치도 빌려달라고 했다. 펜치가 없으면 전기쟁이는 아무 일도 못한다. 한번은 빌려준 펜치를 기다리다 못해 찾으러 가보니 돌려가며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말없이 펜치를 빼앗자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아이들처럼 동무들의 표정이 머쓱해진다. 괜스레 미안해져 어색한 분위기를 넘겨보려고 한마디 던졌다.
"국산이랑 일제 펜치도 있는데 미제를 못 따라가. 그래서 미국 놈 펜치를 쓰지."
미국 놈이란 말 때문인지 그들의 시선이 내 얼굴에 모아졌다. 갑자기 장난기가 돌았다.
"미국 놈 철수하라고 데모도 해." 동무들의 눈이 커졌다.
5월 끝자락의 햇살이 민둥산을 넘어가던 날, 철근공들이 빠져나간 3층 슬래브에는 철재 거푸집만 가득했다. 전기도면을 펼쳐들고 벽철근에 취부한 전기박스를 확인하며 좁은 거푸집 사이를 빠져나갔다. 멀리 보이는 계단출입구에서 황색 안전모가 봉곳이 솟아오르더니 거푸집 뒤에서 숨박꼭질을 한다. 동무들은 혼자 일하지 않는다. 놓고 간 연장을 찾으러 올라 왔나보다.
개성공단에서 남북한 건설근로자를 구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하얀색 안전모는 남측, 황색은 북측 근로자다. 이곳에 들어오는 모든 남쪽 차량은 번호판을 가리고 황색 깃발을 다는데 안전모는 하얀색이다. 궁금한 마음에 몇 사람에게 물어보았지만 별스럽다는 표정만 얻어내었다. 하얀색의 때깔이 더 좋기 때문에 현대아산이 우겼다. 나는 멋대로 결론을 내렸다.
'쿵'하는 소리. 심상치 않은 느낌에 도면을 철근 사이에 끼어놓고 발걸음을 옮겼다. 손을 붙잡고 있는 황색 안전모가 나를 보자 슬그머니 등을 돌린다. 남반부 동무들에게 약한 모습 보이지 말라우. 우리들은 위대한......
다가가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주춤했다. 배 삼용 코미디언을 보았다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까맣게 그을린 배 삼용은 철 지난 겨울 점퍼의 안주머니에 오른손을 넣고, 왼손으로는 건설회사 로고가 새겨진 부분을 잡고 있었다. 개성공단 안에서만 입는 남쪽 점퍼, 때 절은 옷에서 속주머니가 가장 깨끗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바닥에 떨어진 핏방울. 쓰러진 거푸집 사이로 철근 절단기의 빨간색 자루가 보였다. "동무, 손 좀 봅시다."
눈만 껌벅거리는 그의 손목을 잡아챘다. 반쯤 빠져버린 검지 손톱에서 피가 솟는다. 휴대용 티슈를 꺼내 두툼하게 감은 후, 꽉 조이지 않게 조심하면서 전기 테이프를 반창고 대용으로 썼다. 절단기를 꺼내주고 돌아서자,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 수고하셨습네다."
다음날, 손가락에 누런 붕대를 감은 그가 눈인사를 했다. 그렇다고 통성명을 한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장 동무'하며 그를 불러서 성을 알았을 뿐이었다.
하루는 장 동무가 다가와 담배를 권했다. 그의 담뱃갑에서'첨성대 려과담배'라고 인쇄된 글씨를 보고, 개성에도 첨성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불을 붙여 한 모금 빨아 당기자 모닥불 연기가 목구멍을 넘어갔다. 기침을 하며 답례로 음료수가 든 페트병을 건네자 그가 손사래를 쳤다.
"전기반 선생들이나 드시라요. 우리도 먹을 것 많습네다."
오후 5시에 동무들이 현장을 떠나면 우리가 남긴 빈 페트병도 사라졌다.
한날, 지각한 철근공이 자전거를 타고 공장 정문을 들어서는 모습을 보았다. 한참 후, 자전거를 둘러멘 그가 3층 계단에 모습을 드러냈다. 통일 교육원에서 북한 주민들이 갖고 싶어 하는 생활용품에는 5장7기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5장: 이불장, 양복장, 책장, 찬장, 신발장.
7기: 수상기(T.V), 냉동기(냉장고), 세탁기, 선풍기, 재봉기, 녹음기, 사진기.
끝말이'거'자인 탓에 자전거가 에서 빠졌다고 나는 또 멋대로 결론을 내렸다.
노 소장은 설치비와 요금이 비싸다는 남쪽의 유선전화를 컨테이너에 놓는 대신 구두공장 사무실의 전화를 눈치껏 쓰고 있었다. 첫 월급날, 사무실에 들어가 김 과장의 양해를 구하고 책상 위의 전화로 집사람과 통화를 했다. 통장에 입금된 돈은 없었다. 한 이틀 늦어지는가 보다 생각했지만 며칠 후에도 집사람의 대답은 똑같았다. '수금이 안 되어 봉급이 늦어집니다.'이런 말을 기다렸지만 노 소장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집에 가는 날, 노 소장과 함께 개성공단을 나와 도라선 역에서 맡긴 휴대폰을 찾았을 때 그의 손전화에서 노래가 흘러 나왔다.'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 여자의 마음은 갈대랍니다, 안돼요, 왜 이래요.'노 소장은 옆으로 몇 걸음 옮기더니 작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아, 지금 작업자가 다쳐서 병원에 가는 중인데 나중에 통화하자구."
그때, 나는 현장을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집에서 수첩을 뒤적이며 여러 곳에 전화를 했다.
"왜 전화기를 꺼놓았어? 사채 썼냐?"
"개성공단에서 일하구 있어서 그래, 핸드폰도 못 갖고 들어가고 한 달에 두 번 밖에 집에 못 오니까, 현장이 나오는 대로 우리 집사람에게 연락 좀 해놓아."
월급은 찔끔거리며 통장에 들어왔다. 앉기만 하면 발목을 까닥대는 부산갈매기에게 넌지시 물어 보았다. 회사의 경리일을 보며 사채놀이도 한다는 노 소장 사모님은 그렇게 돈을 준다는 말과 함께 자기는 돌아온 총각이라 괜찮다고 한다. 집에 올 때마다 전화통에 매달렸지만 때늦은 현장소식만 들을 뿐이었다. 아파트 현장이 7월초에 나온다는 친구의 말을 집사람에게 듣고서야 노 소장에게 이달 말까지 근무할 테니 사람을 구하라고 했다. 나를 말없이 쳐다보던 노 소장이 꺼낸 말은 의외였다.
가는 날까지 공장 직원들에게는 내색을 하지 말라고 한다. 7월이 되면, 나는 졸지에 교통사고 환자가 될지도 모른다. 보름의 말미를 주었는데도 노 소장은 사람을 못 구한 눈치였고 만만한 배 부장만 채근에 시달렸다.
철근이 공장마당에 도착한 날, 철근공들은 외벽의 비계발판에 올라섰다. 층마다 서있는 그들의 손을 통해 세 가닥의 철근이 4층 슬래브로 올라갔다. 아니, 새천년을 넘은지가 언제인데 받아치기를 하다니. 그러나 의문점은 곧 풀렸다. 그날, 마당에 놓인 철근더미는 잘해야 한 시간 정도의 크레인 일감이었지만 크레인을 부르면 반나절 장비대인 30만 원을 줘야한다. 철근공의 월급은 남녀평등의 나라답게 여자 미싱사와 같은 70불 내외였고 제일 많이 받는다는 철근 직장장(팀장)의 봉급은 102$이었다. 25일로 70$을 나누면 일당이 2.8$이다. 크레인 대신 50명을 쓰면, 일당 2.8$x50=140$. 내가 도라산 역에서 환전할 때 1$당 1050원이었으니까, 약 15만 원이었다. 철근은 오전 중에 4층 슬래브로 올라갔고, 그날 철근 양중비는 7만5천 원이었다.
현대아산의 4천 원짜리 식권 한 장 값도 안 되는 일당마저 당에서 걷어가고 배급표와 얼마 안 되는 지폐를 손에 쥐는 그네들.
건물의 5층 골조가 완성되어 철근공과 형틀목수가 철수한 후, 현대 마크가 선명한 파란색 통근버스가 공장 앞 큰길에 여성동무들을 쏟아냈다. 다음날, 컨테이너를 실은 트레일러가 들어왔다. 컨테이너의 문이 열리자 미싱사들이 중국 상표가 붙은 미싱들을 공장마당에 내려놓기 시작했다. 마른 몸매의 여자들이건만 궂은 일이 몸에 밴 듯 일하는 솜씨는 여느 남자들 못지않다. 흰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은 두 명의 남자가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젊은 남자 옆에서 모택동 모자를 쓴 배 삼용이 웃음을 보냈다. 내가 입을 떼려는 순간 노 소장이 말을 가로챘다.
"여기 두 분이 1층에 들어갈 작업대를 만들 겁니다. 공구도 빌려주시고 컨테이너 도 같이 좀 쓰세요"
노 소장의 속셈이 보였다. 그는 이번 공사를 디딤돌로 삼아, 인천에 있다는 구두공장의 확장공사에 참여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미싱사들이 작은 테이블과 의자를 컨테이너에 들여놓았는데도 둘은 밖에 서있었다. 한 미싱사가 물통과 걸레를 갖고와 테이블과 의자를 닦고 나오자 그제야 컨테이너로 들어선다. 걸레를 한 번도 안 잡으시던 아버님이 생각났다.
장 동무와 달리 공무(작업반장)는 아침인사를 제외하고는 우리와 말을 섞지 않았다. 컨테이너 앞에서 사각파이프를 자르고 용접하는 그들을 보면서 공구 다루는 솜씨가 서투르다는 것을 눈치 챘다. 구두공장 김 과장의 말이 떠올랐다.
"서둘러 미싱사를 뽑은 이유가 있어요. 개성의 여성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일찍 입주한 기업들은 처녀동무들을 뽑았지만 지금은'개풍군의 여성인력을 차출 해야 하는 것 아니냐?'하는 이야기마저 나와요. 3개월 수습기간 동안, 초보미싱사 들에게는 월급의 70%인 50여$만 주면 되지만, 출퇴근이 안 되는 개풍군 인력을 뽑으면 기숙사도 지어야 하고 세끼 밥도 줘야 합니다. 싼 노임 때문에 중국 공장 을 철수하고 이곳에 공장을 지었는데 남쪽에서 식재료를 갖고 오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요. 이번에 협동농장에서 일하던 100여 명의 아줌마들을 확보한 것만으로 도 감지덕지하고 있죠."
공장에 들어온 북한남자는 장 동무, 공무, 직장장, 3명뿐이었고 직장장은 북한 구두공장 공장장 출신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공무와 장 동무는 협동농장 출신인지도 모른다.
장 동무는 나보다 여섯 살이 어렸지만, 통근버스를 놓쳐 트럭 짐칸을 얻어타고 왔다는 날, 모택동 모자를 잃어버린 대머리는 그를 나의 동년배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장 동무, 철근공이었다가 어떻게 이곳에 오셨어?"
"그렇게 됐습네다."갑자기 그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리 선생, 촛불집회는 참가해 보셨습네까?"
"나야 개성에 있으니까 못 가고 아들 녀석이 나가지요."
공무가 나타나는 바람에 대화는 끊어졌지만, 그의 말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들도 촛불집회를 안다는 이야기인데.'남반부 닌민들은 쇠고기를 얼마나 많이 먹길래 수입하는 기야? 북한당국은 이런 의아심이 생길 소지는 아예 빼버렸으리라. T.V에서 본 북한 여자 아나운서의 모습과 억양을 상상해본다.'승냥이 같은 미국 놈들과 이명박 괴뢰정권이 만들어낸, 굴욕적인 무역협상으로 남조선 닌민들은 미국 놈들이 버리는 미친소병에 걸린 소의 뇌와 내장을...... 이에 남조선 닌민들은 떨쳐 일어나 촛불집회를.....'
집에 갔을 때, 신문에서 배후세력이라는 활자를 보았다.
"정원아, 촛불집회의 배후세력이 있다는데 사실이냐?"
"있죠, 아부지, 양초 공장과 종이컵 사장님들이 배후세력입니다."
장 동무와 공무는 우리가 점심을 먹으러 간 후에야 컨테이너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한번은 벗어놓은 조끼에서 지갑을 꺼내려 되돌아갔을 때 그네들의 시커먼 밥을 보았다. 유난히 해가 뜨거웠던 날, 콘센트를 점검하러 기계실 철문을 여는 순간 컴컴한 물탱크 뒤에 숨어 시간을 죽이던 황색 안전모의 말을 듣고 말았다.
"당간부 놈들처럼 이밥 좀 실컨 먹어 보아스믄 소원이 업갓서."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어 일본군과 싸운 위대하신 장군님은 솔방울로 쌀은 왜 못 만들었는지.
점심시간이면, 이곳도 북측과 협의된 국 대신 여느 공장들처럼 간편한 컵라면을 주었다. 온수기가 놓인 큰 테이블과 의자들이 있는 2층에서 미싱사들은 도시락을 먹었고, 오후 5시면 그곳에서 일일총화를 했다. 점심시간이 지난 후, 종종 2층에서 작업을 하였으나 김치 냄새만 날 뿐이었다. 장 동무와 공무도 컵라면과 오후에 간식으로 주는 초코파이를 가방에 넣어가는 눈치였다. 노 소장이 급한 일로 공단을 나간 날, 일찍 일을 마치고 트럭으로 개성공단의 외곽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연두색 휀스너머로, 지붕에 기와를 얹은 연립주택 모양의 집들이 보였다. 멀리서 볼 때와는 달리, 가까이 다가가자 초라한 몰골을 드러냈다. 주저앉은 지붕, 페인트가 떨어져 나간 벽, 베란다 난간에 걸쳐놓은 낡은 옷. 그곳을 지나자, 야트막한 언덕에 60년대 산동네 집들을 옮겨놓은 듯 허름한 집 몇 채와 예닐곱 살의 아이들이 보였다. 아이들은 공단이 아닌 한 곳을 주시하며 붙박이처럼 서있었다. 쵸코파이와 컵라면을 갖고 고개마루를 올라서는 엄마, 누나를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새벽안개가 걷히기 시작한다. 누렇던 민둥산이 어느덧 녹색이다. 종달새 소리.
식당 유리문을 열자 책상 뒤에 앉아있는 두 명의 딸나미가 나누던 말을 끊는다. 식권을 내밀며 본 벽시계, 6시 10분이다. 뜬금없이, 희미한 그 시절에 계집아이가 했던 말이 머리를 스친다.'시계는 왜, 10시 10분일 때가 제일 예쁜 거야? 맥없다.
시간이 일러서인지 식당 안에는 몇 사람밖에 없다. 아침에는 우유와 잼, 식빵도 나오고 내가 좋아하는 숭늉의 누룽지 밥도 있다. 입안이 깔깔한 아침, 구수한 숭늉은 식욕을 깨워준다. 조류독감 때문에 닭고기와 계란이 반입 안 될 뿐, 반찬은 다양하고 깔끔하다. 한동안 안 보이던 도시락용 포장김이 반찬 테이블에 쌓여있다. 나도 모르게 포장김을 한 움큼 집어들었다. 식당에 포장김이 나오면 내 조끼 주머니는 부풀어 올랐다. 노 소장의 등쌀에 떠밀려 아침 7시에 슬래브에 올라오면 철근더미에서는 이슬땀이 흘렀다. 철근더미 밑에 포장김을 놓았다. 8시 반이 되어서야 나타난 황색 안전모들이 농담을 던졌다.
"와, 그리 남쪽 선생들은 렬정적으로 일을 합네까?"
나는 대답대신 손가락을 목에 대고 가로로 그었다. 몇 시간이 지난 다음 딴청을 피우며 철근더미를 지나가면 포장김 위에 올려놓았던 굵은 철근 동강이만 시치미를 떼고 나를 쳐다보았다.
식탁에 앉아 조금 전 두 딸나미가 나누던 말을 되새겨본다.
"집값도 비싸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데도 돈 많이 든다고 하디 안티? 하디만 우리는 당에서 집도 주고 학교도 그냥 보내주디 않니?"
언제부터 평안도 사투리를 쓰는 것일까? 개성에서 팔십 리 떨어진 금천군이 고향이신 아버님은 사투리를 안 쓰셨다. 약주 한잔 하시면 고향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아버님.
"소학교 2학년 때 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때 네 큰아버지는 5학년이었구. 나중에 네 할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새벽만 되면 뒤주에서 쌀 푸는 소리가 들리더래. 나가보면 아무도 없고 다시 누우면 소리가 들리고, 환청이 들리신 게지. 일 년이 채 안 되어서 새엄마가 들어왔어. 나쁜 계모는 아니었지만'큰애만 학교 보내면 되지 둘째까지 보낼 필요가 있느냐'는 새엄마의 말에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다. 누이동생이 태어나자 젖먹이도 내 차지가 되었지. 아침에 애기 업구 서 있다가 학교 가는 아이들을 보면 괜히 눈물만 나오구, 어느 날, 동네 형이 금강산에 가면 돈 많이 번다구 꼬드겼어. 편지 한 장 써놓고 둘이서 내뺐지. 금강산의 한 여관에서 잔심부름을 하다가 기생집 뽀이로 취직했다. 며칠 지내보니까 왜놈 말을 잘해야 팁도 받을 수 있겠드라구. 일본어 교본을 사서 열심히 공부했지. 일본말을 조금 하게 되니까 글 모르는 기생들이 편지 대필을 부탁해. 편지를 전해주고 답장을 받아와 읽어주면 양쪽에서 받는 심부름 값이 짭짤했지. 고향에 돈도 부쳐드리며 몇 년을 보내자 기생들 뒤치다꺼리가 지겨워지기 시작하더라구.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 하던 차에 하루는 양복점에 심부름을 갔는데 쪽 빼입은 재단사 모습이 제비새끼 같애.'그래, 양복 기술을 배우자.' 마음 먹구 틈만 나면 양복점에 가서 졸라댔지. 재단사가 되는데 5년이 걸렸다."
"해방 후, 지긋지긋한 일본에서의 징용생활을 끝내고 고향에 와보니 멀쩡한 몸으 로 살아 돌아온 사람은 내가 마지막이었어. 징병을 피해 만주로 도망간 네 큰아버 지의 소식은 없었고, 왜놈 순사에게 받은 고문으로 거동을 못하시는 네 할아버지 는 내 손을 잡고 눈물만 흘리셨지."
"마을 청년들은 친일파 문제로 고심하고 있었어. 왜놈 앞잡이들을 응징해야 하는
데 대부분이 당숙, 사돈 등, 친인척이었거든. 왜놈들도 몸만 추슬러 남쪽으로 도망 간 직후라 땅과 집을 갖고 있던 일본놈 앞잡이들은 넋이 빠진 채 남아 있었어. 묘 안이 나왔지. 밤늦게 고갯마루에서 이웃 마을의 청년들과 친일파 명단을 교환한 후 바꿔 털었어. 그날 밤, 두 마을에서 비명소리가 요란했지. 그러나 그 일도 시작 에 불과했단다. 왜놈 주재소에 내무서가 들어서자 내무서원들이 제일 먼저 한 일 은 친일파 싹쓸이었어. 그네들에게 끌려가면 정말 강원도 포수가 되었지. 그때서야 공산주의가 무섭다는 걸 알었어. 얼마 지나지 않아 로스께 군대가 들어오더라구, 사람들은 부녀자 보호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지. 신의주에서는 녀석들의 악행 때문 에 만주에서 도망쳐 나온 왜놈 여자들을 잡아다 주었다는 소문도 있었거든. 키도 그닥 크지 않은 놈들이 다발총을 메고는 사람들에게 '다와이'라고 하며 자전거나 시계를 빼앗았지. 해방군이라 내무서원도 어쩌지 못하고 주민들에게 조심하라고 할 뿐이었어. 그나마 주둔병력이 많지 않아 다행이었다, 짜식들."
아버님의 얼굴에 웃음이 돌았다.
"해바라기 씨를 까먹었는데 씨가 입으로 들어가면 바로 껍질이 튕겨나왔어. 껍질 까는 기계도 그보단 빠르진 않을 걸. 징용 끌려가기 전, 재단사로 일했던 읍 내 양복점에 다시 취직했는데 하루는 내무서원이 찾아왔어,'이 동무, 잠깐 갈 데 가 있습니다.' 그러는 거야, 그래 따라나섰지."
"내무서원이랑 나가시면서 무섭지 않으셨어요?"
"무서울 게 무엇 있냐? 지주의 아들도 아니고 친일파도 아니구, 소학교 중퇴에 그저 농사꾼의 자식인 내가..... 읍내에서 조금 떨어진 로스께 부대로 가더니만 한 집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어. 집안에는 금발에 파란 눈을 한 자그마한 로스께 여 자가 서 있었는데 내무서원은 여자 앞에 나를 세워놓더니 말없이 나가버리는 거 야. 아니 저 자식은 그냥 가버리면 어떻게 해? 하고 있는데 여자가 무어라고 하 면서 방안에 있는 일제 미싱을 가리켰어. 왜놈 집에서 털어온 미싱에 문제가 있는 듯싶어 손으로 미싱 바퀴를 돌리려니까 안 굴러가. 그제서야 내가 온 이유를 알았 지. 로스케 여자의 말이 더 많아져서 다시 여자의 얼굴을 봤는데 고년, 주근깨가 있어서 그렇지, 예쁘장하게 생겼드라구. 몸을 숙여 미싱 밑을 봤지. 북집에 실이 잔뜩 껴있었어. 사용미숙이지. 슬그머니 여자를 놀려주고 싶어지더라구. 미싱 여러 곳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끌다가 북집을 꺼내 엉킨 실을 없앤 후 다시 끼웠지. 발틀을 밟자 미싱이 차라락 거리며 돌아갔어. 인사하고 나가려고 하니까 여자가 손으로 식탁 옆 의자를 가르켜. 맛있는 걸 주려나 싶어 앉았지. 여자는 난로처럼 생긴 화덕위에 지짐판을 놓더니 두툼한 고기 한 토막을 올려 놓고는 한번 뒤집더 군. 이내 소금을 뿌리더니만 고기를 잘라 접시에 담아 내놓는 거야. 고기에서 피가 흘러. 소련군 장교 마누라 같은데 음식 솜씨는 형편없구먼. 하고 앉아 있는데, 하 얀 병이랑 큰 철제 컵을 놓더니 마시라는 시늉을 해. 술인가 본데 하얘. 얘들도 왜 놈처럼 청주를 마시나? 생각하며 한잔 가득 따라 주욱 들이켰지. 속이 짜르르 하 는데 술맛은 괜찮았어. 오늘 마침 일거리도 없어 잘됐다 싶어 다시 컵에 따라 마 셨지. 그런데 여자의 눈이 화등잔만해지더니 손으로 자꾸 고기를 가르키는 거야. 하는 수 없이 핏물이 덜 흐르는 고기 한 점을 골라 입에 넣었지. 물컹거렸지만 뱉 지도 못하고 가까스로 목구멍을 넘겼어. 다시 한잔을 가득 따라 마시자 이상한 취 기가 올라 와. 이거 안 되겠다 싶어 서둘러 눈인사를 한 후 밖으로 나왔지. 햇빛이 하얗게 느껴지는 거야."
아버님의 말씀을 지금도 기억한다.
"앉은 자리에서 소주 세 병을 먹는 내가 아무리 낮술이라도 그렇지. 부대 정문을 나온 후, 양복점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이 않나."
"해방 된 다음 해에 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일류 재단사가 되고 싶은 욕심에 서울로 와 종로 4가에 있는 양복점에 취직했지. 그리구 네 엄마를 만났다. 삼팔선 이 막혀 고향에 못 가게 되었을 때도 네 큰아버지의 소식은 없었어. 아마 만주에 서 객사하신 듯싶다. 네 누나 세 살 때 6.25가 터졌는데 피난을 못 갔지, 38따라 지가 딱히 갈 데도 없지만. 네 엄마가 쌀이 떨어졌다고 하길래 양복점 주인도 만 나볼 겸 왕십리에서 종로 4가까지 털그럭거리며 걸어갔지. 8월초였을 게야, 엄청 무더웠으니까. 양복점에 들렸다가 쌀을 사러 광장시장으로 가는데 갑자기 내무서 원 두 놈이 양팔을 잡더니 뒷골목으로 데리구 들어가는 거야. 장총을 멘 내무서원 의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멍해져.'동무는 위대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의 용군으로 자원입대 하였음메.'꼼짝 못하고 한 건물로 끌려 들어갔지. 이미 많은 청년들이 붙잡혀 와 있었어. 조금 있더니 광화문의 한 소학교로 끌구가더라구. 운 동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자 한숨 밖에 안 나와, 해가 저무니까 장총 멘 인민 군들이 사람들을 4열종대로 세우더니 다시 길을 나서게 하는 거야. 가는 방향을 보니 세검정 쪽이야. 그러면 불광동, 북쪽으로 가는 거지.'젊은 나이에 마누라랑 어린 딸나미 남겨두고 이렇게 죽는구나.' 한탄만 나오는데 길갓집 대문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손짓을 하며 보구 있구. 끌고 가는 인민군보다 구경하는 사람들이 더 야속하게 느껴져. 구부러진 좁은 길로 들어설 때'이래 죽나 저래 죽나 마찬가 지다'라는 생각에 뒤를 슬쩍 보고는 애기 업은 아주머니가 서있는 집의 열린 대 문으로 쑥 들어갔지. 그 아주머니, 나를 보고 어둠 속에서 얼굴이 하얘지는데, 다행 히 아주머니는 얼어붙은 듯 꼼짝 않고 서있었어. 조용할 때까지 그 집 대문 뒤에 숨어 있다가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컴컴한 골목으로 해서 화신백화점 앞까 지 왔지. 그런데 광장 분수대에 인민군 두 놈이 서있는 거야. 한 놈은 괜스레 허공 에 한 방씩 총질을 하구, 골목에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놈들이 한눈을 팔 때 쏜살 같이 도로를 건너 청계천 다리 밑으로 내뺐다. 금방이라도 등 뒤에서'땅'하는 총소리가 날 것 같아 다리가 후들거리고 식은땀이 얼마나 나던지. 집에 들어 서자 마자 너의 외할아버지와 함께 마루 밑에 굴을 팠어. 9.28수복이 되구서 마루 밑에 서 나왔는데 이번에는 국군으로 징집됐지. 징용 때, 삐이십구랑 구라망 폭격을 엄청 겪어서 그런지 몰라도, 용케 살아남았다."
쌓인 눈이 녹아 병원 앞 도로가 질척거리던 날, 아버님은 항암치료가 너무 힘들다는 말씀과 함께, 죽으면 화장해서 임진강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기셨다.
장 동무에게'아버님의 고향이 금천군인데 내가 그곳에서 태어났으면 어떻게 되었을까?'라고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짧았다.'고생했디요.'
흰 조리복을 입은 통통한 딸나미가 노래를 부르며 대걸레로 바닥을 닦는다. 딸나미의 맨얼굴과 외꺼풀 눈은 어렸을 때 동네에 살던 계집아이들을 찾아낸다. 내가 남몰래 좋아했던 새침데기 경희, 공부 잘했던 명숙이, 지지리도 못생긴 영자.
미싱사들과는 달리, 딸나미의 뒷머리는 윤기가 흐른다. 일을 마치고 노 소장과 함께 식당에 도착하면 항상 배식마감시간 5분 전이었고, 딸나미들이 한자리에 모여 저녁을 먹는 때이기도 했다. 그네들의 식판에서 내가 먹는 양보다 더 많은 밥과 반찬을 보았다.
정수기의 찬물 한 컵을 마시고 식당을 나서자, 걸어오는 배 부장과 부산갈매기의 모습이 보인다. 어쩐 일인지 부산갈매기의 머리가 까치집이 아니다. 그제야 녀석이 노 소장 사모님에게 연변여자를 소개받는 날이 오늘임을 깨닫는다. 새벽에 슬그머니 돌아누워 주먹밥(?)을 먹던 녀석은 안 하던 아침샤워를 하며 혹시나 하고 사타구니도 열심히 닦았으리라.
눈인사를 하고 큰길로 들어선다. 가방을 든 동무들이 호텔 옆 언덕길로 접어든다. 그 길을 따라 올라가면 황색 안전모들이 옷을 갈아입고 점심 도시락을 먹는 컨테이너들이 놓여 있다. 언젠가, 지나치던 동무들의 말이 바람에 실려왔다.
"운반식사 하게 생겼드만."
운반식사?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장 동무에게 묻자 웃는다.
"어데서 들었습네까?"
"아니, 어디서 들었든 무슨 뜻이오?"
"군대에서, 못 생긴 여성동무를 그렇게 부르디요. 하도 못 생겨스리 식당에 오디 못하고 병실(내무반)로 밥을 운반해서 먹는다는 뜻입네다."
그는'가방끈이 짧아서 노가다 한다'는 나의 말을 이해 못했다. 노가다란 말은 알지만 가방끈은 힘든 모양이다.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서당개 3년이면 사표도 쓴다'라는 말을 설명하는 편이 더 빠르지 않을까? 설명할 방법이 떠올랐다. 학교를 오래 다니면 가방끈이 늘어나 길어진다. 그런데 나는 학교를 얼마 못 다녀서 가방끈이 짧다. 그제야 배 삼용의 입가에 미소가 돈다.
김 과장이 졸린 눈으로 열어준 1층 작업실에 들어섰다. 아침에, 노 소장은 작업실에 임시 콘센트를 달아주라고 했다. 구두공장 사장님은 네 개의 콘센트를 이야기했다는데 노 소장은 다섯 개를 달으라고 한다. 마지막 날인데 네 개면 어떻고 다섯 개면 어떠랴? 천천히 일을 시작한다. 밖이 시끄러워지며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미싱사들이 몰려 들어온다. 콘센트 세 개를 달자, 전선이 부족하다. 시계를 본다. 9시 30분. 건물 밖으로 나오자, 김 과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서있다.
"뭘 좀 가르쳐 주려고 앉아있는 미싱사에게 고개를 숙였는데, 머리냄새 때문에 토할 뻔 했어요. 빨리 샤워장을 완공해야지, 원."
샤워장 완공이 늦어진 이유는 연휴로 설비팀이 공단을 나갔을 때 도둑을 맞았기 때문이다. 용접기와 전동공구는 물론, 전날 갖다 놓았다는 샤워기가 달린 비싼 혼합수전까지 박스 채로 잃어버린 설비소장은 넋 나간 표정이었다. 다음날, 그들은 공단을 다시 나갔고 사흘 후 트럭에서 새 공구를 내리는 설비팀을 보았다.
"이번 공사, 죽 쒔습니다."
나 또한, 이곳에 온 지 며칠 안 되어 공구를 잃어버렸다. 2층 실내에서 일할 때였다. 화장실에 가려고 안전모를 벗고 샤쿠(우리는 허리에 차는 가죽 공구집을 이렇게 부른다)를 풀어 놓았다. 돌아와 보니 빈 샤쿠만 남아 있었다. 실내에는 아무도 없었고, 외벽의 비계위에서 메지(벽돌사이의 줄눈 마무리)를 넣는 황색 안전모들이 보였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다. 나는 공구함에서 찾아낸 녹슨 중국산 펜치로 가까스로 버틴 후, 영등포 공구가게에서 미제 펜치와 일제 드라이버를 사는데 5만 원을 써야만 했다.
설비팀 막내가 설비 컨테이너에서 자기 시작했다. 내가 전기 컨테이너에서 자겠다고 했을 때 노 소장의 허락이 떨어진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숙박인원 한 명이 추가될 때 붙는 호텔비 20$ 때문인지, 공장직원들과 친해지기 위해서인지, 공장 5층의 직원숙소에서 빌붙어 자는 노 소장은 그곳에 있던 여분의 이불도 갖다 주었다. 그러나 송악호텔의 케이블T.V와 뜨거운 샤워물을 마다하고 컨테이너에서 자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저녁마다 호텔방에서 벌어지는 배 부장과 부산갈매기의 술판 때문이었다. 노 소장이 저녁을 먹고 공장으로 돌아가기 무섭게, 둘은 긴 줄이 서있는 호텔 1층의 당구장과 노래방을 지나 훼밀리마트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 호텔방에 들어서면 그들은 소주 네 병과 안주를 펼쳐 놓았다. 술은 둘에게 일용할 양식이었다. 처음에는 어울렸으나, 술판이 길어질수록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알고는 끼지 않았다. 둘은 술이 취해 소리를 지르며 다투었다.
"야, 너 오늘, 4층에 콘센트 박스를 취부하면서 왜 카버를 달지 않았어?"
"부장님, 나중에 해두 됩니데이."
"미장이 끝나면 다시 손을 봐야 하잖아? 한 번에 일을 끝내야지, 임마."
"그렇게 잘 아시는 부장님은 와 전번에, 3층 전등입선을 개판으로 해놓았슴니꺼? 내가 다 새로 했심더."
그들에게 기술은 고집이고, 고집이 기술이었다. 그러면서 낮에는 같이 일했고, 저녁이면 어김없이 싸웠다. 설잠을 자고 새벽에 호텔을 나올 때마다, 나는 카운터에 현대아산 직원이 없기만을 바랬다.
오후 3시. 줄지어 선 미싱 옆에서 작업대를 설치하는 장 동무와 공무를 보자 서둘러 컨테이너로 갔다. 도시락김 열두 개가 들어있는 포장김과 스팸 두 캔, 말보로 네 갑을 장 동무의 가방 속에 넣었다. 순간, 장 동무는 지짐판에 스팸을 부쳐 먹지는 못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지난 토요일, 집에 갔을 때 A4 용지만한 포장김에 넓은 투명 테이프로 스팸 두 캔을 단단하게 붙여, 세관원의 주머니에 못 들어가게 만들었다. 빨간 말보로 한 보루(장 동무는 한 막대기라고 불렀다)를 뜯어 네 갑을 조끼 주머니에 넣은 후, 남은 담뱃갑은 담배 두 가치씩 빼내어 상품성을 없애 버렸다. 입경 첫날, 차안에 놓아둔 옷가방에서 말보로 두 갑이 없어진 탓이다. 차량검사는 군관과 감색 제복의 세관원이 한조가 되어 조사를 했는데 말보로와 던힐에 눈독을 들였고 뜯어놓은 담배와'에쎄'같은 순한 담배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3시 50분, 작업복을 갈아입고 컨테이너 옆 큰길에 세워놓은 부산갈매기의 트럭에 옷가방을 넣었다. 건물로 다시 들어가 노 소장과 배 부장에게 작별인사를 한 후 화장실에서 대충 씻고 나왔다. 컨테이너 앞에서 용접을 하고 있는 장 동무가 보인다. 어제, 장 동무에게 귀띔을 해주자 그의 얼굴에서 섭섭함이 배어 나왔다.
"통일이나 되어야 장 동무를 다시 보겠지."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통일이 되어 우리 공화국의 군사력과 남쪽의 경제력이 합해지면 강성대국이 될 겝네다."
장 동무에게 다가가 용접 장갑을 서둘러 벗는 그의 손을 잡았다.
"통일이 되면 장 동무네 집에 가서 닭 잡아 달라고 할 거야."
"꼭 오시라우요."
트럭 차창을 닦던 부산갈매기가 히죽거리며 농담을 던졌다.
"장 동무예, 이 차 타구 서울 가서 술이나 한잔 합시데이."
"토, 통, 통일이 되면 그때 가보겠습네다."
그때, 컨테이너에서 나오던 공무가 부산갈매기를 노려보았다.
로만손 시계공장을 지나 사거리에 다다르자 부산갈매기가 신호를 무시하고 좌회전을 했다. 순간, 하얀 상의를 입은 교통보안원이 튀어나와 차 앞을 가로 막았다.
"선생은, 와 불신호를 안 지키십네까? 남쪽에는 불신호도 없습네까?"
"아! 내가 신호를 못 봤슴데이."
촌스런 갈색 썬그라스를 쓴 교통보안원이 눈살을 찌푸린다.
"선생, 운전면허증 내보이시라요."
운전면허증을 낚아챈 그의 목소리가 더욱 강경해진다.
"발동 끄고 날래 내려오시라요."
얼굴이 벌개진 부산갈매기가 그를 따라 다른 교통보안원이 서있는 나무 그늘로 간다. 다음 블록에 개성공업지구 관리위원회가 있고, 그 앞 도로가 출경라인이다. 제 시간에 출경라인에 도착하기는 어렵게 생겼다. 교통보안원은 스티커를 발부하지는 않지만 도로를 무단횡단한 동무들을 안전지대에 벌세워 놓듯이 우리를 마냥 붙잡아 놓을 수 있다. 오늘 출경시간을 놓치면 내일 아침 출경시간에 맞추어 나가야 한다. 그러면 하루를 불법체류한 죄로 개인당 100$의 벌금이 기다리고 있다. 시동을 끈 차안이 이내 후덕지근해진다. 차키를 만져 창문을 내렸다. 두 명의 교통보안원 앞에 선 왜소한 부산갈매기, 선생님에게 혼나는 초등학생이 영락없다. 조바심 속에서도 실없이 웃음이 나왔다. 교통 보안원이 뺏어든 남쪽의 운전면허증. 10년 전이라면 상상이나 했을까? 무언가를 적는 그들, 다행히 그들이 부산갈매기를 풀어준다.
"재수 없을래니까, 쓰발."
정말, 재수 없을 뻔한 사람은 나다. 출경라인에 들어섰다. 시계를 본다. 4시 35분.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조금 있으면 개성관광버스들이 지나갈 테고 그 뒤를 따라 출발하면 된다. 조끼 주머니를 열고 남쪽의 감색 방북증명서와 북한에서 발행한 갈색 체류등록증을 다시 확인한다.
차량과 인원을 체크하는 현대아산 직원이 뒷차로 가자, 차에서 내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가로수 그늘로 들어섰다. 예순이 넘어 보이는 용달기사가 입을 연다.
"공단이 마악 생겼을 때 들어오니까 북한 애들이 수군거리더라구, 서울역 노숙자 들을 학습시켜 보낸 사람들이 남쪽 근로자들이라구, 그때는 북한 아이들에게 말을 걸면 도망갔는데 이제는 나를 벗겨 먹을라구 그래. 공단을 나갈 때 빈 차로 나가 느니 담뱃값이나 벌려고 관리위원회의 직장장 녀석에게 훼밀리마트에서 나오는 빈 박스를 실어달라구 했는데, 갈수록 요구하는 커피, 사이다, 쵸코파이의 양이 많아 져, 요즘 파지 값이 안 좋아 남는 게 없는데도 말이야. 이제는 공무 놈까지 사달라 고 해."
조금 전, 포크레인 바퀴를 발로 차보던 기사가 말을 잇는다.
"현장소장이 오배수관 묻을 자리를 파라면서 북한 애들 두 명을 붙여줬어요. 흙 이 좋아 바가지가 잘 들어가더라구요. 일이 빨리 끝나서 차안에 있던 빨간 장갑을 주었죠. 그랬더니만 왜 네 켤레가 아닌 세 켤레를 주냐고 하면서'훽'집어 던지 고 가는 거에요. 세 켤레가 있길래 준건데, 꼭 똑같이 나누어 가져야 하는 겁니 까?"
다른 사람이 말을 받는다.
"차 안에서 신문지 쪼가리가 나왔다고 벌금 100불을 매겼던 세관원 놈이 이번에 는 MP3를 하나 사다 달래요. 중국산이 남쪽에서 5만원 정도일거라고 가격도 이 야기하면서 말이죠, 대시보드에 넣어둔 일회용 반창고나 건전지를 집어가는 것까 지는 참겠는데, 내가 회사를 때려치든가 해야지 증말 드러워서......"
이번에는 감색 망사조끼를 입은 사람이다.
"한 녀석이 물어봐요.'남쪽에 미군이 5만 명이나 있습네까?'미장일해서 먹구 살기도 바쁜데 주한미군이 5만인지 2만인지 제가 압니까?"
민둥산 정상의 군막사 근처에서 하얀 염소들이 움직인다. 멀리 보이는 도로 옆, 초소의 북한군이 차단봉을 올린다. 개성 관광버스가 오는 모양이다.
세관 검색대를 통과한 후 확성기에서 나오는'반갑습니다'노래를 들으며 출입경 사무소의 계단에 앉아 트럭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껑충한 군모와 함께 팔을 좌우로 흔들며 걸어온 하전사들이 호각을 불며 차량들을 통제한다. 세관의 하전사들은 철책의 하전사와 달리 체격이 크다.'뿌걱뿌걱, 뻐꺽뻐걱, 꺼걱꺼걱. 그들이 내는 호각소리는 제각각이다. 남쪽의 호루라기보다 큰 호각은 속이 비어 있는 듯했고 하전사들은 엄지손가락으로 바람이 나오는 구멍을 눌렀다 떼며 소리를 만들어냈다.
오늘 나가면 다시 북한 땅을 밟을 일이 있을까? 밭으로 개간한 자드락에 올려놓은 낡은 자전거. 탱크를 막기 위해 커다란 바위를 줄지어 놓은 민둥산. 군사시설인지 얕은 계곡에 여자의 그곳처럼 숨어있는 작은 숲. 마주보며 펄럭이는 커다란 인공기와 태극기. 푸른 숲에 둘러싸인 도라산 역에 도착할 때마다 느끼던 묘한 안도감. 갑자기, 장 동무의 말이 머릿속에 들어선다.'통일이 되면 공화국의 군사력과 남쪽의 경제력이 합해져 강성대국이 될 겝네다, 장 동무가 말하는 통일은 어떤 통일일까?
노랫소리가 뚝 그쳤다. 마지막 개성 관광버스가 떠난 모양이다.
차량검사를 마치고 나오는 부산갈매기의 차문을 열었다. 꼬리를 문 차량을 따라가려는 순간 뛰어온 두 명의 군관이 앞을 막고 갓길로 대라는 손짓을 했다.
"선생들, 체류등록증이랑 방북증명서 좀 봅세다."
당황한 손으로 증명서를 꺼냈다.
"대화기로 확인해보라우."
키 큰 군관이 무전기로 인적사항을 불러주더니 옆의 군관에게 고개를 끄떡인다.
"동무들, 차에서 내리라우."
"아니,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키 큰 군관이 째려보았다.
"썅, 잔말 말구 내리라우."
두 군관이 앞서 걸었다.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 따라 붙었는지 두 명의 군관이 뒤에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지나가는 차량들이 창문을 조금 내리다가 이내 닫는다. 네 명에게 둘러싸여 건물의 계단을 되짚어 올라갔다. 북한 술을 파는 매점을 지나 좁은 복도의 두 번째 방으로 끌려 들어갔다. 테이블과 의자밖에 없는 방에 우리를 남겨놓고 구두소리와 함께 군관들이 사라졌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부산갈매기의 차에서 손전화라도 나온 것일까? 그렇다면 차량검사장을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라곤 장 동무의 가방에 넣어준 물건밖에 없다. 여럿 동무들 앞에서 멋모르고 장 동무가 가방을 열었다면? 물건에도 사상이 있다고 믿는 그들이다. 총화시간에 직장장 앞에서 곤욕을 치르는 장 동무가 떠오르며 가슴 한편이 서늘해진다.
"헹님, 머 잘못한 그 있지예?"
다리를 포개고 앉아 한 발을 떨고 있는 녀석이 새우 눈으로 쳐다본다. 잔망스럽게 까딱대는 녀석의 발이 거슬려 눈길을 돌리며 축축해진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렀다.
복도를 울리는 발자국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공화국 닌민에게 남반부로 가자구한 개 똥대가리, 쎄이코 새끼가 뉘기야?"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