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센터에서 걸어나오는 박지훈(가명'37) 씨는 걷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물리치료를 받던 방에서 병원 입구까지 10여m를 움직이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근육병과 지적장애를 동시에 안고 있는 박 씨는 주변의 도움 없이는 거동조차 쉽지 않은 상태다.
박 씨가 앓는 근육병은 점차 근육이 말라가 장기적으로는 걷지 못하며 결국은 숨도 제대로 쉴 수 없게 될지 모르는 희귀병이다. 박 씨는 매일 오전 근육 퇴화를 막으려 물리치료를 받지만 시간이 갈수록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최소한 제대로 걸을 수는 있어야 일을 해 생계라도 유지할 수 있을 텐데 점점 쇠약해지는 것 같아 불안해요. 나중에는 평생 앉은뱅이로 살아야 할 수도 있다는데 더 나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네요."
◇어릴 때 가족에게 버림받으며 홀로 생활
몸과 마음이 모두 불편한 만큼 다른 사람들보다 비교적 많은 배려를 받으며 컸어야 할 박 씨에게 오히려 운명은 가혹했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는 박 씨를 버려두고 개가했다. 부모님이 먼저 떠나가 버린 상황에서 친척, 이웃들이 박 씨를 챙겨줄 리 만무했다. 일반인에게도 힘들었을 소년가장의 역할을 너무도 이른 나이에 떠안았다. 과부가 된 상황에서 장애인 자녀까지 있으면 살아가기 힘들지 않았겠느냐고 말하는 박 씨의 눈에는 어머니에 대한 작은 원망이 비치는 듯했다.
주변에 부모님도, 친구도 없는 상황에서 박 씨는 작은 실수에 큰 대가를 치르기도 했다. 20대 혈기 왕성한 나이에 자연스레 생긴 성욕을 이겨내지 못하면서다. 몸이 편치 않아 욕구를 건전한 방향으로 풀기도 어려웠던 박 씨는 하루 종일 전단지를 돌리고 정신병원에서 단순노동을 하며 번 돈을 오롯이 성매매에 써버렸다. 돈을 모두 탕진하고 밥도 굶고 있던 어느 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성매매 사실을 인지한 경찰마저 들이닥쳤다. 박 씨는 "이렇게 죄를 지으면서까지 욕구를 해결해야 하나 자괴감이 들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며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살고 있지만 본능을 억누르는 것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다행히 현재 박 씨는 월세 10여만원의 그룹홈에서 다른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한다. 그룹홈에는 시설에 들어가지 않고 자립해 생활하는 장애인들이 모여 있어 평생 혼자였던 박 씨에게는 낯설지만 따뜻한 공간이다. 박 씨는 "15년 전쯤 병원과 환자를 연결해주는 사업을 하는 분을 만나 많은 도움을 받았다. 지금 살고 있는 그룹홈도 그분 집 바로 위층"이라며 "지금은 주변에 가까운 사람들이 많아 사는 것이 비참하지는 않다.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남들처럼 결혼해 평범하게 사는 것이 꿈
설상가상으로 악화 중인 근육병도 박 씨의 시름을 더한다. 박 씨는 매일 병원에서 한두 시간씩 재활치료를 받고 있지만 그마저도 근육 약화를 늦추는 정도에 불과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느린 걸음으로나마 손수 전단지를 돌리는 일을 했던 박 씨는 이 일마저도 그만둔 상태다. 현재 박 씨의 수입은 기초생활수급비에다 정신병원에서 매일 6시간씩 일을 해 번 돈을 합친 40여만원이 전부다. 방세와 병원비를 내고 나면 최소한의 생활비조차 남지 않는다.
박 씨의 유일한 꿈은 결혼이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당연할 만큼 소박하게 느껴질 일이지만 건강도 좋지 않고 본인 생계를 유지하기에도 벅찬 상황에서 결혼은 꿈과 같은 일이라고 박 씨는 털어놨다. 그럼에도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는 본인 건강이 우선인 만큼 박 씨는 몸이 언젠가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정신병원에서 생활하다 상태가 호전돼 환자들끼리 결혼한, 어찌 보면 롤모델 같은 사람도 봤어요. 앞으로는 외롭지 않게 같이 의지하며 살아갈 사람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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