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부자도 배고프다

미 세인트루이스대 국제경영학 박사. 동아대학교 졸업
미 세인트루이스대 국제경영학 박사. 동아대학교 졸업

부자 무작정 적대시하고 차별하면

끊임없이 재산 움켜쥐고 살 수밖에

기득권으로 공정한 미래 건설하는

진정한 강남 좌파 늘고 지지되어야

만나면 "밥 좀 사도" 하시는 대기업 총수가 있었다.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매우 조심스러운 이야기일 수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야 할 부분은 역시 역지사지다. 그분은 평생 밥을 사기만 하였지 얻어먹어본 적이 거의 없다. 어쩌면 공짜 밥 하나가 '로망'일 것이다. 아니면 모두가 자신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는 부담에서 찰나라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다. 그것이 사람의 마음이라 생각한다. 이유가 뭐든 간에 밥은 살아 있는 모두에게 소중하다. 그리고 미래의 '밥'을 위해 사람들은 돈을 모은다.

몇 년 전에 무상급식으로 아이들 간 경계를 나눈 지역이 있었다. 지금도 자녀 지원비, 교복 무상지원 등의 정책에서 그 경계를 두고 찬반의 논리가 뜨겁다. 누구든 어떤 사안을 객관적으로 볼 수는 없으므로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빈곤층 아이들에게만 무상급식을 한다는 일은 표면적으로 보면 매우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하고 역지사지도 가세한다면 어떤 경계는 없어야 한다. 경계는 빈곤층 아이들을 인위적으로 나누었다는 얘기다. 나누는 데 필요한 논쟁과 조사 비용은 차치하고라도 예민한 시기의 아이들이 그 상처를 받을 의무는 없다. 혹자는 부잣집 아이들에게 왜 무상으로 밥을 줘야 하느냐고 따지지만 현실적으로 그들의 부모가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있다. 유사한 예로 최근 한국민이 OECD 국가 중에서 병원 방문율 1위인 사안에 대해 많은 댓글이 현재의 건강보험제도를 칭찬하였다. 사실 수십 년 전부터 각국이 한국의 보험제도를 배우고 있었다. 하지만 편한 방문의 비용은 세금과 더불어 상대적 소득상위층들이 내는 연간 1천만원에 가까운 보험료에서 나온다. 여기서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이야기하면 부유층이라도 국가가 조금도 베풀지 않고 끊임없이 뜯어갈 궁리만 한다면 아무리 큰 부자라도 재산을 움켜쥐고 살 수밖에 없다. 인간이 100년까지 산다는 흉흉한 소문도 들리는 마당에 어느 재벌이라도 그 부를 유지한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그리고 안심하고 기부 활동을 할 수가 있을까? 재원이 부족하면 "너희들은 부자인데 왜 밥을 얻어먹으려고 하느냐?"가 아니라 차라리 "모두 다 주고 싶은데 돈이 모자라 어쩔 수 없다. 미안하다"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세율이 높은 유럽의 복지 방향이 대중적인 이유는 인간의 기본 욕구를 국가가 보장함에 있다. 만약 우리도 다른 건 몰라도 노후에 밥 세 끼, 살 곳, 의료비만이라도 국가가 보장해준다면 얼마나 행복해질까? 아니면 미국의 밀 쿠폰(meal coupon)처럼 밥 세 끼라도 보장해준다면 반쯤은 행복해질 것이다.

최근에 강남 좌파(gauche caviar)가 부자라서 논란이다. 한국에서는 특이하게 개인의 행위가 아닌 특정 지역을 지칭하고 있는 이 파를 세계적으로 보수에서는 위선이라 하고, 진보에서는 서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공격하고 있다. 다른 말로 보수는 자기편이 아니기에 공격하는 것이고 진보는 옷 무늬가 다르다는데 그 이유가 있다. 살기 바쁜 국민들이 편 가르기에 이용되는 현실도 지양되어야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다른 생각이다. 부자들이 캐비어를 먹는 것도 아니고 사치는 경험상 졸부들의 몫이다. 그리고 능력이 좋든 운이 좋든 힘센 사람이 약한 사람을 도와주는데, 너는 기득권층이기 때문에 우리 편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우를 범하는 일이다. 슬픈 이야기지만 약한 계층이 힘을 합쳐도 쉽게 개선되지 않는 것이 지금의 우리 사회다. 아시다시피 한국에서 상대적 빈곤층은 생계에 매여 숨조차도 쉴 시간이 없다. 그래서 요즘 유행하는 "단언컨대" 강남 좌파는 많아지고 오히려 지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중에 위선도 다른 무늬가 있겠지만 진정한 강남 좌파는 자신들이 가진 기득권의 힘으로 훗날 후손들이 차별받지 않는 평등하고 공정한 미래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개인들이다.

현실적으로 부자도 배가 고프고 가끔은 얻어먹고 싶기도 하다. 의식 있는 해외 부자들은 사회와 상대적 약자를 위해 기부를 많이 한다. 예를 들어 빌 게이츠와 최근 디캐프리오의 기부는 찬란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처럼 무작정 적대시, 역차별 등이 발생한다면 그들은 기득권을 이용하여 보다 손쉽게 그리고 끊임없이 '밥'을 축적하려고 할 것이고, 그 결과 지금처럼 미래에도 상대적 약자들은 그만큼 허탈해질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사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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