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쓰듯 펑펑 쓴다는 비유도 있지만 사실 물만큼 귀한 자원도 없다. 지구상의 물 가운데 인류가 쓸 수 있는 양은 고작 0.03%다. 특히 우리 민족에게 벼농사용 물 확보는 절박한 일이었다. 물을 확보하지 못하면 식구가 아사 위험에 빠질 수 있기에 자기 논에 물을 대려는 농부의 노력은 필사적이었다. 농부들 간의 물꼬 경쟁은 때로 칼부림으로까지 이어졌다.
물로 인한 살벌한 경쟁도 있었지만, 마음 한쪽을 데우는 미담도 있다. 나그네가 우물에서 물 긷는 아낙네에게 물을 청한다. 여인은 섬섬옥수로 물 한 바가지를 전하는데 버들잎 한 장을 물에 띄운다. 나그네가 연유를 묻자 "목이 몹시 마를 때 급히 마시면 체하기 쉬우니 버들잎 휘휘 불어 천천히 드시라는 뜻"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성격 다른 두 이야기이지만 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담았다는 점에서 공통분모가 있다. 두 이야기를 장황하게 거론한 이유는 10년째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대구 취수원 이전 문제에 관한 칼럼을 쓰려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다. 1991년 구미 페놀 사건을 경험한 대구로서는 낙동강에 수돗물을 의존하는 것 자체가 큰 걱정거리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구시는 취수원을 구미로 옮기는 방안을 10년 전부터 모색하고 나섰다.
대구시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큰 착각이었다. 20여 년 전 부산 시민의 극렬한 반대로 위천국가산업단지 조성이 무산된 전례를 통해 광역 수계 관리가 엄청난 지역 갈등을 불러 일으키는지 경험했음에도 대구시는 배운 것이 없었다. 대구시의 안일한 접근 방식은 구미 시민들의 극렬한 반대에 직면했고 되레 불신과 반목을 키웠다. 취수원 문제 해결을 위한 대구시의 상황 판단도, 시기도 적절치 못했다.
우스갯소리로 대구 수성구'동구 주민들은 한여름에도 보일러를 튼다는 말이 있다. 수돗물로 공급받는 청도 운문댐 물이 하도 차서 데워 써야 한다는 것인데, 낙동강 물을 쓰는 달서구'북구'서구 사람들로서는 마냥 부럽기만한 소리다. 심지어 수성구에 낙동강 물이 공급됐더라면 취수원 문제는 진작 해결됐으리라고 보는 이조차 있다. 대구지역 리더들이 많이 사는 수성구 사람들에게 취수원 이전 문제는 관심 밖 사안이었고, 다선 국회의원이 많은 수성구'동구의 정치권도 사실상 힘을 보태지 않았다.
정권이 바뀐 이후 국무총리가 뒤늦게 나섰다. 대구 시민들은 이제 문제 해결의 물꼬가 트일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지만 결과는 역시나였다. 지난달에는 총리 주재로 대구시와 구미시가 모여 대책을 논의하자는 제안까지 나왔지만 열리지도 못했다. 회동 무산의 원인을 놓고 구미시와 경상북도가 거절했다는 설에서부터, 취수원 갈등의 폭발력을 간파한 총리실이 알아서 미뤘다는 설이 엇갈리는 등 진실 게임마저 펼쳐졌다.
필자 혼자만의 상상인지 몰라도 이낙연 총리는 이 문제에 괜히 끼어들었나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광역수계 관리는 엄연한 국가사무, 즉 정부의 일이다. 지자체 갈등을 이유로 정부가 뒷짐질 사안은 결코 아니다. 정부는 이 문제를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해야 한다. 대구시도 노력을 다했다고 말하기 힘들다. 절박한 만큼 더 주도면밀하게 사업을 추진했어야 했다. 구미 사람들의 마음을 세심하게 보듬고 취수원 이전에 따른 충분한 보상 방안도 이제 내놔야 한다.
구미시도 구미산단에서 나오는 유해 화학물질이 대구 시민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 최근 남유진 구미시장이 차기 경북도지사 출마를 선언하고 나섰다. 그가 도백(道伯)을 꿈꾼다면 취수원 문제 해결을 선거 공약에 반드시 넣으라고 주문하고 싶다. 도지사 출마를 저울질하는 다른 주자들도 마찬가지다. 취수원 이전 문제를 두고 대구와 구미 두 지자체가 보여준 반목과 불신은 유감스럽게도 농부들의 물꼬 다툼 모습과 겹친다. 물 한 사발에도 인심을 듬뿍 담아 나그네에게 대접한 우리 조상들의 넉넉한 인심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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