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한글의 공공기관 홀대, 지금부터라도 되살필 일이다

제571돌 한글날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만백성 모두가 문자를 사용할 수 있게 해 누구나 자신의 뜻을 쉽게 표현하고 소통할 수 있게 한 것,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뜻은 오늘날의 민주주의 정신과 통한다"는 글을 올렸다. 국내외 전문가들이 인정할 만큼 한글이 배우기 쉽고 의사소통과 나라 발전에 기여한 바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 문 대통령의 말처럼 '참으로 자랑스럽고 소중한 우리의 한글'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런 한글이 갈수록 다른 나라 말에 밀리고 이리저리 치여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일이 넘친다. 특히 정부 부처나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에서 내놓은 숱한 자료를 보면 더욱 그렇다. 어렵고 딱딱한 한자말은 제쳐 두고라도 번듯한 우리말 대신 굳이 남의 말을 앞세우기 일쑤다. 한글의 푸대접이 이만저만 아니다. 이런 홀대는 한때 번진 세계화 바람의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공공기관의 한글에 대한 무관심과 한글의 소중함을 모르고 잊었기 때문이다.

한글날 대구시와 경북도에서 언론기관에 나눠준 홍보 자료는 좋은 사례이다. 행정안전부가 한글날 행사 절차 용어를 어려운 한문투 대신 쉬운 우리말로 고친 것과 달리 종전처럼 그대로이다. 또한 애써 쓰지 않아도 될 남의 나라말도 숱하다. '서예퍼포먼스', '글로벌 물산업', '허브도시', '국제네트워크', '힐링공간', '패밀리파크', '데크로드', '생태테마파크', '에코갤러리', '미션' 등처럼 뭇 말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이는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글의 앞뒤를 짚어보면 우리말로 바꿔 적어도 소통은 되고도 남는다. 언론의 보도 역시 다르지 않다.

이 같은 일의 되풀이는 무엇보다 공공기관의 무책임이 빚은 결과이다. 이미 정부는 2005년 '국어기본법'을 만들고 2006년부터 정부기관, 지자체 등에 '국어책임관'을 지정해 운영토록 했지만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 공공기관에서 제대로 거르지 않은 채 남의 나라 말을 마구잡이로 쓴 까닭이다. 여기에다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용어를 제대로 골라 쓰지 않은 언론의 책임도 크다. 자료 제공 기관과 언론의 소홀함의 합작품인 셈이다. 저마다 되돌아 살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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