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파월특명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군인성당 작은 창문에는 두꺼운 얼음이 얼어붙어 있다. 성당 마룻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상처 입은 짐승처럼 발악을 해 보지만 괴어올라 오는 울분을 주체할 수 없다.
"주님! 하필이면 왜 저입니까? 왜 제가 월남 전선으로 가야만 합니까?"
하고 많은 놈들 가운데 왜 내가 그 특명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주님은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걸까? 내가 무슨 죄를 그리 많이 지었다고 ... ,
신열에 들뜬 몸뚱이는 얼음장보다 차가운 마룻바닥에서도 냉기조차 느낄 수 없다. 이젠 눈물마저 말랐다. 가끔씩 숨이 막히는 울먹임에 어깨만 들썩일 뿐이다.
'세상이 싫다. 아! 모든 게 이대로 끝나버렸으면 ... ,'
좀 전에 연대본부에 가서 한바탕 뒤집어 놓고 나왔다. 이판사판이다.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죽긴 매 마찬가지다. 원래대로라면 모레 두 번째 정기휴가를 출발할 예정이다. 지금쯤 한창 휴가복 다림질하고 워커 광내야 할 시간인데 ... , 마른하늘에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어머님을 도와 가족생계를 꾸리다보니, 두 번이나 입영연기를 하다가 결국 친구들보다 2년 늦게 입대한지 어언 15개월이 넘었다. 36개월 제대만기를 채우려면 아직 반(半)고개를 넘지 못했다. 그래도 일병 말년에 두 번째 정기휴가 일정이 잡힌 것이다. 첫 휴가는 연대본부에 있는 중학교 동기인 강 정수가 손써준 덕분에 전방부대에서 있을 수 없는 군대생활 7개월 만에 다녀왔다. 이번 휴가는 기가 막히게도 설날 아침에 출발이다.
사실 휴가보다는 상병 진급이 희망사항이지만 진급은 3월 1일부로 된단다. 휴가 중에 진급이 되겠지만 어쩔 수 없이 일병 계급장을 달고 두 번째 휴가를 가야할 처지다. 여기는 전방부대이다 보니 사병들의 진급이 대체로 늦은 편이다. 상병 전역을 흔히 볼 수 있다.
'다른 복은 몰라도 내가 휴가 복은 있나 보다.'
이미 집에는 설날 휴가 출발한다고 편지를 띄웠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목숨을 걸어도 아깝지 않을 영아한테도 물론 연락을 했다. 휴가준비에 돈을 적잖이 날렸다. 무엇보다 목돈을 들인 것은 미제 야전점퍼였다. 두 번째 휴가인데 광 좀 내고 싶었다. 사병뿐 아니라 장교들 사이에도 인기 상종가인 미제 야전점퍼를 월남에서 귀국한 대구 출신인 11중대 박 하사한테 구했다. 자그마치 일병 봉급 10개월 치를 주고 산 것이다. 세탁소에 맡겼던 휴가복을 찾아 입고 통신병의 상징인 빨간 머플러까지 두르니 내가 봐도 완전히 각(角)이 섰다.
이제 대대장에게 휴가신고만 하면 29일간 구름위의 날들을 보낼 터였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이냐 말이다. 오전에 연대 사병계로부터 휴가특명이 취소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무슨 이유인지 물어보았지만 자기도 모르겠다면서 알아보는 중이라는 것이다.
지옥에라도 떨어진 기분에 점심밥도 넘어가지 않았다. 오후에 중대장 호출이 있어 중대장실로 갔는데, 인사계와 중대장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말을 끊었다. 무언지 모를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독실한 가톨릭신자인 중대장은 유아세례를 받은 나를 끔찍이 챙겨주었다. 우리부대 안에는 성당이 없어 주일이 되면 중대 통신병인 나에게 훈련이나 특별한 상황이 없는 한, 읍내에 있는 군인성당에 갈 수 있도록 외출증을 끊어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읍내에 있는 중대장 신혼집을 드나드는 잔심부름도 도맡아 했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와 달리 왠지 알 수 없는 부자유스러움을 느꼈다.
"김 일병, 오전에 휴가특명 취소는 전달 받았지?"
중대장은 의자에 앉아 팔짱을 끼고 있고, 인사계가 실눈을 뜨고 쳐다보며 물었다.
"예, 받았습니다."
"방금 전에 육본으로부터 파월특명이 떨어졌다. 212 이동외과병원으로 가서 신체검사 받으라는 연락이 왔다."
" ... "
무엇이 강하게 정수리를 내리친 것 같다. 이게 무슨 말인가? 지금 그 말은 나를 두고 하는 말인가? 눈앞이 캄캄해지고 현기증이 났다. 내가 월남 전선으로 가야 한다니 ... ,
"군대는 어차피 명령이니 어쩌겠나. 김 일병! 딴 생각하지 말고 마음 굳게 먹어,"
"군바리는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별 수 있나. 준비나 잘 해. 일주일 내 오음리로 가야 돼."
중대장과 인사계가 뭐라고 했지만 이명(耳鳴)처럼 귓바퀴를 맴돌 뿐 현실의 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왜 하필 나일까? 수십만 육군 졸개들 가운데 왜 나한테 명령이 떨어졌냐 이거야! 연대 내에 그 많은 통신병 중에 유독 나에게 특명이 날아왔느냐 이거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갑자기 서러움이 해일처럼 밀려오고 눈물이 쏟아져 내린다. 모포를 뒤집어쓰고 밤새도록 얼마나 울고 몸부림쳤는지 모른다. 중풍으로 쓰러져 투병중인 아버지의 모습과 새벽부터 밤늦도록 가족생계를 꾸리느라 고생하시는 어머니, 소아마비로 바깥출입도 못하는 막내와 어린 동생들의 모습이 뇌리에 꽉 차오른다. 이 가족들을 두고 내가 월남 전선으로 가야 한다니 ... , 새벽녘에는 분노와 울분으로 '컥 컥' 숨이 넘어갈 지경이 되었다.
특명통보를 받은 다음 날 오전, 중대장을 찾아 외출을 요청했다. 읍내 성당에 가서 군종신부한테 작별인사를 하고 준비물도 좀 구입하겠다고 했다. 때가 때인 만큼 중대장은 꺼림칙하게 여겼다. 혹시 무슨 사고를 치거나 탈영이라도 하면 어쩌나하는 눈치였다. 그러면서도 평소의 행동과 신앙심을 봐왔기에 용단을 내려 외출증을 끊어주었다. 단 중대본부의 정 수철 상병과 함께 나가 오후 4시전에 귀대한다는 조건이었다.
"김 일병, 딴생각하지 말고 준비나 단단히 해."
먼저 부식수령을 위해 연대로 가는 트럭을 타고 연대본부로 갔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정 상병한테는 1시간 후에 정문 위병소 앞에서 만나자고 하고는 연대 행정실로 들이쳤다.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정수를 찾았다.
"야! 정수야, 사병계 새끼가 언놈이냐?"
"어 어! 영곤이 너. 너 ... , 왜 이래. 진정하고 이리 와 봐."
"진정? 내가 지금 진정하게 됐어? 씨팔 사병계가 언놈이냐고?"
"저 새끼 뭐야?"
연대 인사참모인 듯 중령 계급장이 소리 질렀다.
"뭐냐고? 나 월남 뒈지러 갈 놈이다. 왜? 언놈이 날 보내는지 상판대기나 좀 보자 왜. 씨팔!"
"저 새끼 아주 돌았구만!"
"그래 돌았다. 씨팔!"
철제 걸상을 걷어차며 책상을 내리치면서 사병계인 듯 얼굴이 사색이 된 놈이 있어 그쪽으로 향했다. 정수가 몸을 날려 뒤에서 껴안았다. 동시에 주위에 있던 병사들이 팔과 목을 비틀며 발길질을 날렸다. 나도 악을 박박 쓰며 닥치는 대로 발길질을 날렸다.
"좆도 오늘 죽으나 내일 죽으나 ... , 나 오늘 여기서 죽는다. 죽여라!"
훈련소 동기 최 기석이도 소식을 듣고 뛰어와 정수와 함께 나를 문밖으로 밀어냈다. 분에 못 이겨 씩씩거리며 밖으로 밀려나왔다. 뒤에서 깍지를 끼고 안고 있던 정수가 갑자기 눈물을 쏟았다.
"야! 이 씨발놈아! 내가 너 마음 모르겠나? 다 안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나. 새끼야!"
"야 임마! 운명이라고 생각해라. 우리 연대에 계급과 주특기 해당자가 너밖에 없었어. 우리도 너 안 보내려고 노력 많이 했단 말이야."
"영곤아, 너는 주특기가 713이니 최하 연대나 대대에 배속될 거고 정글 박박 기지는 않을 거야. 어쨌건 몸조심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라. 무운을 빈다."
" ... "
정 수철 상병과 걸어서 연대본부와 가까운 읍내로 왔다. 늘 다니던 국숫집에 가서 막걸리 한 되를 시켰다. 맞은편에 앉은 정 상병이 신경이 쓰이는지 술은 마시지 않고 슬슬 눈치만 살피고 있다. 주전자가 거의 바닥이 날 즈음 바깥에 있는 화장실에 가기 위해 일어섰다. 정 상병도 따라 일어섰다.
"정 상병님, 탈영할까봐 그래요? 탈영 안할 테니 신경 끄소."
"김 일병, 왜 이래. 잘 알면서 ... , 내 입장도 있잖아."
정말이지 간밤 뜬눈으로 보내면서 어떻게 하면 탈영할 수 있을까 수도 없이 생각했다. 탈영 후 어떻게 될지 경우의 수를 모두 셈해보기도 했다. 사실 오늘도 일단 읍내로 나오면 달아날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맘대로 하소."
막걸리 한 되를 더 시켜 혼자서 주전자를 모두 비웠다. 그동안 주일마다 미사를 마친 후 국수 한 그릇에 막걸리 한 잔으로 목을 축이던 정든 국숫집을 뒤로하고 나왔다. 비틀거리며 아무 생각 없이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 정면의 십자가를 보자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지며 마룻바닥에 그대로 무너지고 말았다. 고된 군대생활에서 큰 위안이 되었는데, 이 모든 것이 부질없는 짓이었단 말인가?
회의가 들면서 술기운과 뒤섞여 회한이 회오리치듯 치밀어 올라 오열을 터뜨리고 말았다.
"베드로 형제! 이 모든 것이 주님의 뜻이라 생각하고 진정해.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잖아."
어느새 들어왔는지 군종신부가 뒤에 와서 가만히 어깨에 손을 얹었다.
또다시 회한의 눈물이 흐른다. 군종신부의 위로는 설움만 더할 뿐 더 이상의 위로일 수 없다. 내 모습이 초라하고 눈물도 보이기 싫어 얼굴을 외면한 채 일어섰다. 군종신부는 어깨에 손을 얹고 뭐라고 말하려다가 잠자코 호주머니에 무언가를 넣어 줬다.
묵주였다.
2, 동병상련
남은 희망은 단 하나뿐이다. 온갖 꾀병을 부리면서 받은 212 이동외과병원의 파월장병 신체검사 결과 불합격 통지만이 유일한 구원의 밧줄이다. 신체검사를 받는 동안 죽는 상을 하고 '폐가 좋지 않다' '탈장이 잦고 치질이 있다' ' 밤중에 식은땀을 흘리고 헛것이 보인다'는 핑계를 댔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사항일 뿐, 다음 날 '정상' 통보가 날아왔다. 결국 모든 걸 하늘에 맡기고 중대장에게 파월 전출신고를 했다.
사단본부 집결지에 도착했다. 모두 나와 똑같이 불안한 눈동자를 굴리며 여남은 명이 모여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나도 담배 한 개비를 빼다 물었다. 성냥을 찾아 뒤적였지만 얼른 잡히지 않았다. 마침 나와 같이 작대기 두 개를 단 친구가 무리에서 약간 떨어져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불 좀 빌립시다."
"몇 연대요?"
불을 붙이는 동안 이 강대라는 명찰을 단 그가 물었다.
"31연대요."
"경상도네. 어디요? 난 봉화요."
"난 대구요. 반갑소. 나 김 영곤이요."
손을 내밀며 악수를 했다. 이 강대 일병은 내무생활이 고되고 적응하기가 힘들어 월남가면 목돈을 만질 수 있다기에 자의반 타의반 지원을 했다는 것이다.
'지원을 하다니 ... , 설마?'
믿어지지가 않았다. 인원점검이 끝나자 대기하고 있던 트럭에 분승하여 오음리를 향해 출발했다. 화천의 오음리는 파월장병의 월남 적응훈련을 받는 곳이다.
"이 엄동설한에 월남 적응훈련을 받는다니 뭘 적응하란 말이냐?"
"군대는 까라면 까는 것이 아니겠어?"
"우리 소대 고참 하나는 월남 지원해가서 한 밑천 잡았다 하더라고. 까짓 우리도 가서 한 몫 잡아오지 뭐."
"그래. 그까짓! 한번 죽지 두 번 죽나? 흐르는 대로 가보자."
이 강대 일병과 같은 차에 오른 우리는 오랜 친구라도 되는 양 마구 지껄여댔다. 혼자 당하는 난리가 무섭지 여럿이 당하는 난리는 무섭지 않다고 했던가. 그 가운데서도 돈벌이하겠다고 월남에 지원해서 가는 사람이 적지 않다니 나도 모르게 용기가 솟았다.
눈이 하얗게 쌓인 오음리 훈련소. 그곳에는 나와 같은 운명의 사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자의건 타의건 여기에 모인 수 백 명의 사내들 모두 죽음의 전장으로 가아할 처지인 것이다. 죽든 살든 운명을 하늘에 맡겨보자. 몸부림친들, 낭패감에 젖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래! 이 많은 병사들이 모두 죽을 리 없을 터이고, 나 역시 살아나오면 되지 않겠나. 이 중에는 한 몫 잡겠다는 치들도 많다지 않은가. 지원한 친구들이 세상이 끝난 듯 절망하는 나를 보면 얼마나 비웃겠나. 애써 불안감을 억누르며 마음을 다잡았다.
"야! 땡삐! 너 영곤이 아니야?"
트럭에서 내려 이 강대 일병과 연병장 쪽으로 향하는데 누군가 뒤에서 어깨를 툭 치면서 내 별명을 불렀다.
땡삐! 한 동안 잊고 있었던 내 별명 땡삐.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친구들이 불러주던 내 별명이다. 누가 여기서 땡삐를 찾는단 말인가!
경상도 지방에서는 땅벌을 두고 땡벌, 또는 땡삐라고 부른다. 몸집은 말벌보다 작고 땅속에 집을 짓고 사는데 악착스럽고 매섭다. 조금만 틈이 있으면 비집고 들어가 쏜다. 건드리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만 일단 건드리면 옷 속에까지 기어들어 쏘아댄다. 추석 전에 벌초하다가 벌집을 건드려 많이 쏘이기도 한다. 바로 땅벌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쯤일 거다. 동네 형이 소아마비로 목발을 짚은 동생을 절름발이라고 부르며 놀려댔다. 옆에 있던 나는 눈에 불똥이 튀었다. 앞 뒤 잴 것 없이 면상에 박치기를 하면서 돌진했다. 서로 엉겨 붙어 엎치락뒤치락 하다 보니 나이도 적고 덩치도 작은 내가 힘에서 밀리게 되었다. 악에 받힌 나는 이빨로 어깨를 깨물고 늘어졌다. 결국 살 속에 이빨이 박히고 그 형은 죽는다고 고함을 질렀다. 결국 살려달라고 숨넘어가는 소리를 하자 어른들이 뜯어말려 싸움은 끝나게 되었다. 그 사건 이후, 일단 건드리면 악바리같이 달려들어 끝장을 보고 만다고, 그때부터 친구들이 나를 땡삐라고 불렀다.
뒤돌아보니 필수였다. 전 필수. 어릴 적 불알친구로 같이 자랐다. 화끈한 면이 있어 친구들 중에서도 죽이 잘 맞는 편이다. 필수 집은 동네 시장 입구 이발관 집이다. 필수 아버지는 코흘리개 까까머리 때부터 입대 전까지 내 머리를 깎아 줬다. 그런 필수를 이곳 오음리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 ,
지옥 불구덩이 가는 길에 천사라도 만난 기분이다. 필수도 반가워 어쩔 줄 몰라 둘은 끌어안고 풀쩍풀쩍 뛰었다. 필수는 2개월 빠른 선임이 워낙 심하게 구는 바람에 실컷 두들겨 패주고 월남 지원을 해버렸다고 했다. 필수를 만나고 또 이 강대 일병과 함께 한 후로 어디를 가든 살아나올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필수도 강대도 같은 기분으로 서로 도우고 위로하며 훈련을 받았다.
4주간의 훈련기간 동안 사격, 유격, 매복, 동굴수색 뿐 아니라 베트남인들의 생활, 베트콩의 습성 등 전투에 필요한 것들을 배우고 익혔다. 모두 새로 부여받은 '올빼미 넘버'를 달고 죽지 않으려고 열심히 훈련을 받았다. 훈련소 내 모든 운영은 제대 자체 계획으로 하고, 내무반에서는 상하관계를 따지지 않으니 더없이 편했다.
한 코스 훈련이 끝나고 휴식시간이면 '이동주부' 광주리 아주머니들이 어김없이 찾아와 빵이며 음료수를 팔았다. 일과시간이 끝나면 화장실 뒤 철조망에서 라면을 끓여먹고 술도 마실 수 있었다. 명색이 철조망이지 밖으로 나가 할머니 집으로 삼삼오오 짝을 지어가 술판을 벌이기도 했다. 알고 보니 일종의 대민사업인 것이다. 물론 음식이나 술값은 외상이다. 얼마든지 먹고 올빼미 넘버만 보여주면 된다. 퇴소할 때, 1년 치 봉급을 주는데 외상값을 떼고 준다. 그래서 자기 봉급 한도가 넘으면 본인 돈으로 해결해야 한다.
월남 전선으로 출발할 날이 가까워오자 면회 오는 가족들이 부쩍 늘었다. 갑자기 어머님 생각이 사무쳐 온다. 설날 휴가 온다던 아들이 왜 오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고 계실 것이다. 월남 파병 사실을 꿈에도 모르실텐데, 도무지 이 기막힌 사실을 알려 드릴 수가 없었다. 출발 3일을 앞두고 어머님께 편지를 썼다.
'휴가를 못가 죄송하고 연락드리지 못해 더욱 죄송하다고, 갑자기 월남 전선으로 가게 되었다고, 이 못난 자식을 용서해 달라고,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꼭 살아서 건강하게 돌아오겠다고, 소아마비로 다리를 못 쓰는 막내 동생을 잘 보살펴 주시고, 투병중인 아버님께는 알리지 마시라고, 그리고 어머님 건강하시라고 ... ,'
겉봉에 주소를 쓰고 우표도 붙였다. 마침 대구에서 면회를 오신 전우의 어머님께 편지를 드리며 대구에 도착하시면 우체통에 꼭 좀 넣어 달라고 부탁드렸다.
이제 적응훈련이 끝났다. 새 군복과 맹호마크, 수첩 따위가 지급 되었다. 저녁에는 각서를 쓰게 했다. 죽어도 좋다. 내가 죽은 후 유산, 유물 등 뒤처리는 어떻게 한다는 따위의 내용을 적도록 했다. 각서는 유물봉투에 넣어 봉한 후 내가 죽을 경우 집으로 보내진다는 것이다.
어떤 병사는 손톱, 발톱을 깎아 넣고 더러는 짧은 머리칼 몇 올을 뽑아 넣기도 했다.
'내가 죽은 후 남는 건 이것이 모두인가?'
허망함이 와락 몰려왔다. 모두 저만의 상념에 젖어 내무반은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유물봉투를 반납하고 나니 1년 치 봉급이 나왔다. 2월부터 12월까지의 일병봉급 3,960원이 지급 되었다. 나는 오두막집과 이동주부 외상값을 제하고 남은 돈 모두를 집으로 송금했다. 훈련소에서도 월남에서는 사용할 수 없으니 가능한 모두 송금하라고 독려했다. 그리고 가급적 소지품도 집으로 보내라고 했다. 손목에 찬 시계까지.
떠나기 전 군인성당에 들렀을 때, 군종신부가 호주머니에 찔러준 묵주가 손에 잡혔다. 집으로 보낼까 하다가 그냥 호주머니에 넣어뒀다.
3, 비 내리는 부산항
날이 밝았다. 이제 말로만 듣던 월남 전선으로 가는 거다.
출항일자는 3월 19일. 끝도 없이 늘어선 트럭. 희끗희끗한 잔설(殘雪)이 남은 오음리 훈련소를 뒤로하고 우리는 춘천 역을 향해 달렸다.
춘천 역에서는 파월장병 환송식이 열렸다. 만국기가 펄럭이는 역 광장에는 헌병들이 줄줄이 늘어선 가운데 군악대 연주가 우렁차게 울려 퍼진다. 환송 나온 여학생들이 손에 손마다 태극기를 흔들며 무운장구를 빌어주고 있다.
더블 백을 메고 줄지어 역으로 들어갔다. 가끔 가족과 연인들이 울부짖으며 대열로 뛰어들어 잠깐씩 소동이 일기도 한다. 그때마다 헌병들이 달려와 제지하여 대열은 순조롭게 특별열차에 올랐다.
대열 맨 후미까지 모두 열차에 올랐다. 가족과 연인들은 차창에 붙어 이 순간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자식과 남편, 애인의 손을 잡고 오열한다. 한 노모는 플랫폼에 퍼질고 앉아 땅을 치며 대성통곡을 했다.
애를 끊는 노모의 모습을 본 열차 안 전우들은 저마다 고개를 돌려 눈물을 훔쳤다. 그때 누군가가 군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자유통일 위해서 조국을 지키시다/ 조국의 이름으로 임들은 뽑혔으니,
그 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 가시는 곳 월남 땅 하늘은 멀더라도/ 한결같은 겨레마음 임의 뒤를 따르리라. ... ,"
순식간에 한 목소리가 되어 눈물을 흘리며 목이 터져라 군가를 불렀다. 그 사이 가족들은 열차 차창으로 먹을 것을 올려 주었다. 빵, 김밥, 삶은 계란, 과일, 정종, 소주병이 쏟아져 들어왔다. 전우들은 내 것 네 것 없이 술을 들이키며 군가를 부르고 또 불렀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전투와 전투 속에 맺어진 전우야 ... ,"
눈물의 이별 속에 마음이 착잡하다. 아직 집에서는 내가 월남 전선으로 가는 줄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 지금 내가 이역만리 월남전선으로 떠난다는 게 꿈만 같았다. 정녕 가야만 하는가? 전우의 어머님께 부탁한 편지는 내일이나 모레, 내가 태평양 바다위에 떠있을 무렵 받아 보시겠지. 휴가 온다던 놈이 소식이 없다가 갑자기 월남 전선으로 간다니 얼마나 황당하고 억장이 무너지실까. 어머님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못난 이 자식을 용서해 주십시오.
내 심정을 눈치 챘는지 옆자리 필수가 통조림 깡통에 소주를 따라 내밀었다. 단숨에 들이켰다. 울적하던 기분이 한결 가라앉는다. 길게 기적이 울고 헌병들이 차창에 붙어 선 가족들을 물러나도록 통제했다. 열차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고 가족들은 열차를 따라오며 손을 흔들고 있다. 전우들도 차창 밖으로 몸을 내밀고 가족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목 놓아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열차는 속력을 내기 시작하고 병사들은 이별과 두려움을 잊으려고 모두 술을 마시며 군가를 목이 터져라 부르고 있다. 파월장병 수송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객차는 전 좌석이 4명이 서로 마주보고 앉도록 되어 있었다. 필수와 이 강대, 또 같은 내무반에서 생활했던 이 창재 하사와 넷이 앉았다. 우리는 깡통 술잔을 돌리며 마시고 또 마셨다.
정오를 지나 도시락 식사를 하고나니 열차가 청량리 역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객차 안은 다시 부산스러워졌다. 열차가 역구내에 들어서자 군악대의 군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까만 교복 흰 칼라의 여학생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전우들은 차창 밖으로 몸을 내밀고 가족들은 정차하는 열차를 따라 뛰면서 서로 이름을 소리쳐 부르고 있다. 차창 쪽에 앉아 창밖으로 목을 빼고 있던 이 창재 하사가 소리쳤다.
"이 일병! 저기 누가 이 강대를 찾아."
"어디?"
이 강대가 용수철 튕기듯 차창으로 몸을 내밀었다. 이 강대 일병의 동생들이 봉화에서 올라와 열차가 정차하자 '이 강대' 라고 쓴 피켓을 흔들고 있었다. 이 강대는 차창으로 온 몸을 내밀고 동생들과 머리를 맞대고 울었다. 여동생은 오빠의 목을 끌어안고 매달려 통곡을 한다.
"오빠, 가지 마! 가지 마!"
그 광경을 본 객차 안 전우들도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슬픔을 주체하지 못한 전우들은 술을 올려 달라고 소리쳤다. 가족들은 역사 밖으로 나가 닥치는 대로 술을 사와 차창 안으로 밀어 넣었다.
10분간의 짧은 정차가 끝났다. 열차는 길게 기적을 울리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강대 여동생이 '오빠, 오빠'를 숨이 끊어질 듯 부르다가 끝내 땅바닥에 주저앉아 땅을 치며 통곡을 한다. 그 모습을 바라본 전우들은 말을 잃은 채 긴 한숨을 토해낸다. 세상은 어느 듯 어둠에 묻혀버리고 열차는 계속 달리고 있다. 모두 술에 골았는지 지쳐 잠들어 있다. 얼마나 지났을까 열차가 대전 역에 잠시 정차한다는 방송이 흘러 나왔다. 열차가 정차를 하자 호남지역에서 올라온 부모님들이 자식을 찾느라 애타게 이름을 부르며 차창을 두드린다. 우린 잠에서 깨어나 또 한 번 눈물을 삼켜야 했다. 열차는 다시 적막을 뚫고 어둠속을 달린다. 열차 바퀴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었나 보다. 언뜻 눈을 떴다. 아직 밖은 캄캄한 밤이다. 차창너머 어둠속에서 눈에 익은 산하가 그림처럼 지나가고 있다. 열차가 지천 철교를 지나가고 있고 그 아래 밤나무 숲과 금호강이 흐르는 게 보인다. 아! 대구가 가까웠나 보다.
어느새 열차는 와룡산 모퉁이를 돌아 철로 변에 위치한 내가 다니던 성당의 종탑이 보이고 내가 살던 동네를 지나가고 있었다.
"대구다. 대구! 대구에 도착했다."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혹시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봐 정종 포장 박스 안쪽 면에 볼펜으로 큼지막하게 '김 영곤'이라고 썼다. 잘 보이도록 몇 번이나 덧 씌어 썼다. 열차가 플랫폼으로 진입하고 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 이름을 쓴 정종 포장지를 옆에 끼고 승강구에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열차가 플랫폼에 정차하자 많은 사람들이 1호 객차부터 차창을 향해 이름을 부르면서 뛰어오는 맨 앞에 형이 보였다. 내 눈을 의심했다. 다시 확인해도 틀림없는 형이다. 너무 반가운 마음 에 뛰어내려 형과 부딪쳤다. 형은 '잠깐' 하고 뛰어가더니 어머님과 아버님, 그리고 고모님까지 모시고 왔다. 어머님은 내 옷자락을 부여잡고 소리치며 울부짖었다.
"아이고 영곤아! 이게 무슨 난리고! 월남이 무슨 말이고? 안 된다. 날 두고 못 간다. 아이고!"
어머님은 가슴을 치며 우셨다. 중풍으로 쓰러져 거동이 불편한 아버님은 무슨 말을 하시려고 얼굴을 찡그리시다 헛기침을 하시며 돌아섰다.
아마도 이국전선으로 떠나는 자식 앞에 차마 눈물을 보이기 싫으신 것 같다.
"형, 어떻게 알고 왔어?"
"면회 갔던 아주머니께서 편지를 들고 집으로 찾아 왔었어."
그랬었구나. 정말 고마우신 전우의 어머님, 감사합니다.
"아이고, 영곤아! 너 떠나고 네 형도 떠나고 나면 우리는 누굴 믿고 사노?"
"형, 형도 떠난다니 이게 무슨 소리고?"
"그리 됐다. 마."
형 말로는 도저히 이대로 집안을 꾸릴 수 없을 것 같아 공무원 사표를 내고 해외취업을 하게 됐단다. 이미 모든 절차가 끝나 이틀 후 출국한다고 했다. 참으로 황당했다. 이틀 후면 모레가 아닌가?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반신불수 아버님과 소아마비로 장애가 된 동생 등, 다섯 명의 어린 동생들을 어머님 혼자 어떻게 건사할 것인지 ... , 눈앞이 캄캄하다. 그래서 영아의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참담한 기분도 잠시, 헌병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탑승할 것을 재촉했다.
곧이어 기적이 길게 운다. 아버님 어머님께 큰 절을 올렸다.
"아버지, 어머니 죄송합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꼭 살아서 돌아오겠습니다."
눈물이 보일까봐 얼른 열차에 오르는데 형이 큼지막한 보따리 하나를 들려주었다. 필요 없다고 하자 형이 출국할 때 가져가려고 장만한 밑반찬과 김치를 좀 나누어 담았다고 했다. 미처 자리에 앉기도 전에 열차는 길게 기적을 울리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차창 밖 형과 어머님은 이 못난 놈 얼굴 한 번 더 보려고 열차를 따라오며 손을 흔들었다.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고개를 묻고 흐느꼈다.
갑자기 영아의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영아한테 편지라도 할 걸. 처음부터 집에도 알리지 않고 떠나고 싶었던 것이다. 무척 보고 싶다.
특별열차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부산항 제3부두에 도착했다. 부두에는 거대한 빌딩과 같은 어머 어마한 크기의 배가 정박해 있다. 맹호마크도 선명한 군복들이 줄지어 배에 오른다.
배에 오른 우리들은 배정된 선실에 짐을 풀고 식당으로 가서 아침식사를 했다. 얼마간 휴식을 취한 뒤, 환송식을 한다고 갑판으로 집결했다.
뿌연 안개비가 내리는 가운데 배에서 늘어뜨린 오색 테이프가 휘날리고 군악대의 주악이 장중하게 울려 퍼진다. 부두는 안개비에도 아랑곳 않고 태극기와 환송 플래카드를 든 인파로 물결을 이뤘다. 환송식이 시작 되었지만 무슨 말인지 귀에 들어오지도 않고 그저 담담할 뿐이다. 다만 남진이 목청 높여 '가슴 아프게'를 부른 뒤, 은방울 자매가 애절하게 삼천포 내 고향으로 돌아오라고 노래 부를 때는 모두들 심란한지 대열 속에서 작은 한숨 소리가 새어나왔다.
환송식이 끝났지만 몰려든 가족들은 떠날 줄을 모른다. 부두에서도, 까마득한 갑판에서도 서로 알아볼 수가 없다. 갖고 온 것들을 전달한다고 작은 소동이 이는 가운데 뱃고동이 길게 운다. 닻이 오르고 배는 무수히 늘어진 오색 테이프를 끊으며 부두로부터 천천히 멀어져 간다.
떠나는 자, 보내는 이, 서로를 향해 손을 한없이 흔들고 있다. 이제 떠나는 것이다. 다시 볼지, 못 볼지 기약 없는 고국산천을 뒤로 하고 안개 자욱한 부산항 제3부두를 떠나고 있다.
고동이 운다. 길게, 그리고 짧게. 언젠가는 이 항구로 다시 돌아오겠지.(?) 바다! 바다! 그리고 저 하늘아! 아버님, 어머님 안녕히 계십시오. 영아! 기다려다오. 꼭 이기고 돌아오겠다.
4, 맹호의 깃발아래
배 위의 시간들은 단조로웠다.
하루 한 차례 갑판에 모여 조난교육을 받고, 운동장 같은 식당에서 하루 세끼 식사하는 것이 일과의 전부다. 종일 하는 일은 침대에 드러누워 앞으로의 날들이 어떻게 전개될지 상상하는 것이다. 아니면 불쑥불쑥 고개를 쳐드는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전우들과 잡담으로 시간을 죽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필수, 강대와 셋이 떨어지지 않으려고 기를 쓴 덕에 '룸 B2'의 3단 침대에 나란히 자리를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셋은 침실 배정을 할 때도 눈치를 살피며 전우들한테 양해를 구하고 앞뒤로 붙어 움직였다. 덕분에 월남 땅을 밟을 때까지 한 방에서 지내게 된 것이다.
배는 현해탄을 지나면서 심하게 요동을 쳤다. 10층 빌딩 높이의 배가 사정없이 흔들리면서 뱃머리는 하늘로 치솟았다가 수면 아래로 내리 꽂힌다. 하나 둘 배 멀미로 나뒹굴었다. 병사들은 월남 전선에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멀미와의 전쟁을 한바탕 치러야 했다. 봉화 촌놈 강대는 멀미로 아예 초죽음이 되어 버렸다. 식사시간이 되어도 식당에 갈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이러다가는 월남 땅 내리기도 전에 송장 치겠다면서 밥 때가 되면 필수와 둘이서 억지로 끌고 식당으로 갔다.
양식(洋食)이 입에 맞지 않아 힘겨운 판에 어머님께서 주신 한 조각 김치는 큰 위안이다. 또 이 김치는 식당에서 대인기였다. 모두 멀미로 고생한데다 시큼한 김치냄새를 맡고 와서 모두 한 조각씩 나누어 먹었다.
남지나해를 들어서면서부터 파도는 더욱 높아지고 열기를 품은 해풍이 불어오기 시작한다. 남국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것이 실감났다. 선상의 병사들은 전투복을 한 꺼풀씩 벗기 시작하더니 종내는 아예 런닝셔츠 차림이 되어버렸다. 후텁지근한 선실을 벗어나 갑판으로 올라가면 드넓은 바다 위 멀리 수평선에 뭉게구름이 피어오르고, 가끔 날치들이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것도 볼 수 있다. 때로는 무리지어 지나가는 돌고래 떼들도 만날 수 있었다. 뜨거운 태양과 해풍에 얼굴과 팔뚝은 벌겋게 익어갔지만 그만큼 갑판 위의 상념도 깊어갔다.
'형은 지금 이국땅 어디쯤에서 낯선 시간들을 보내고 있겠지. 어머님은 오늘도 시장에서 새벽부터 장사하고 계시겠지. 반신불수의 아버님과 소아마비 동생은 챙길 사람도 없는 집에서 어떻게 지낼까. 영아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휴가 간다는 연락 후 다시 소식을 전해야 했었는데, 후회스럽다.
뜨거운 상념의 시간들이 지루하게 흐르는 가운데 6일째를 맞았다.
우리가 탄 배는 언덕 위 성당의 첨탑이 보이고 야자수 드리워진 해안을 따라 항진하고 있다. 말로만 듣던 바로 그 월남인가 보다. 도대체 저 미지의 땅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단 말인가?
내가 월남에 대해 아는 것은 오음리 훈련소에서 주워들은 게 전부다.
월남은 현지에서는 비엣남이라고 한다는 것. 옛날에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고, 2차 대전 중에는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는 사실. 또 종전 이후에는 프랑스와의 전쟁 끝에 1954년 독립했으나 서방 강대국들의 제네바 협정에 의해 북위 17도를 경계로 월남과 월맹으로 남북이 갈렸다는 것. 우리나라와 같이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는 것과 공산당과 대치하고 있다는 것에서 비슷한 처지인 나라라는 정도로 알고 있다.
거기에 몇 가지 덧붙이면 따이한, 정글, 안남미, 호치민, 꽁까이, 베트콩 정도인데 ... , 이런 나와의 촌수 관계, 인연도 없는 이역만리를 왜 와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목숨을 걸고 싸우러 말이다.
그래. 전 세계의 공산화를 막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고 치자. 그렇지만 그 원대한 일에 하필이면 내 목숨을 걸어야할 것은 무엇인가? 전 세계의 자유수호보다 나는 불쌍한 우리 가족 먹여 살리기가 더 급한 사람이다.
백번 양보해서 6.25 전쟁 때 자유우방국들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한다고 치자. 왜 그 빚을 내 피와 목숨으로 갚아야 하나 이거야. 나는 도무지 채권. 채무가 맞지 않고, 아귀가 맞지 않는 이 지랄 같은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힘겹다. 때문에 내가 저 땅에서 죽는다는 것은 너무나 억울한 처사가 아닌지. 이 불합리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기필코 살아서 돌아가야겠다는 오기가 생기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왼쪽 손을 가슴에 얹고 오른손으로 성당 첨탑을 향해 성호를 긋고 있었다.
'1년 후, 여기서 이 풍경을 다시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며 기도했다. 이때부터 이국 전선의 불구덩이 속에서 내일의 태양을 다시 볼 수 있도록 항상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며,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것이 나의 간절한 기도가 되어버린 것이다.
5박6일의 항해 끝에 배는 긴 여정을 마치고 퀴논 항에 정박했다.
우리는 맹호부대 깃발을 앞세우고 열을 지어 하선했다. 항구에 환영나온 시민과 학생들은 플래카드를 들고 뜨겁게 맞아주었다. 월남 땅의 첫발. 배에서 내리니 이젠 땅이 기우뚱기우뚱 기운다. 거기다 정수리를 달구는 햇살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하선을 하자마자 우리는 트럭에 분승하여 사단사령부로 향했다. 트럭에서 내려다보이는 거리의 풍경은 차라리 평온하다. 삼륜차, 오토바이들이 달리고, 희고 검은 옷을 입은 월남민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길가에는 야채나 과일을 파는 사람들과 생필품을 파는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거리의 사람들은 무심한 표정들이지만, 가끔씩 꼬마들이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어 준다. 도무지 여기가 전쟁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사단본부 연병장에서 사단장에게 전입신고가 있었다. 신고식 후에 중식이 주어졌다. 말로만 듣던 바로 그 C-레이션이다. 햄, 비프스테이크, 닭고기, 칠면조 고기, 콩과 미트볼, 소시지와 콩, 스파게티 중 하나가 한 끼 식량이고, 파인애플, 복숭아, 살구, 배, 후루츠, 사과죽 등의 후식과 과자 깡통이 있고, 비닐 백에는 인스탄트 커피, 설탕, 프림, 소금, 1회용 휴지, 4개비가 든 담배 1갑, 성냥 등이 들어있다. 모두들 신기해서 이 것 저것 살펴보고 따 먹는다.
"앞으로 질리도록 먹을 거다."
배식 담당 병사가 한 마디 툭 던지고 간다. 운명의 여신은 필수, 강대, 나 모두 제1기갑연대로 같이 가도록 해주었다. 우리는 다시 트럭에 실려 퀴논 서북방 45마일 떨어진 빈딩성 빈캐시에 있는 제1기갑연대로 향했다. 연대본부에 도착하자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멀리서 포성이 들리고 수시로 뜨고 내리는 헬기소리가 지축을 뒤흔든다. 이곳이 전쟁터임이 실감난다.
더블 백을 맨 우리들은 나무그늘에 앉아 잠시 땀을 식히며 대기하고 있었다. 그때 한 무리의 귀국자들이 몰려왔다. 혹시 아는 사람이라도 있는지 와 본 것이다. 새카맣게 그을린 귀국자들은 하나같이 눈에 핏발이 서고 묘한 광채를 내뿜었다. 마치 쥐약 먹은 개가 날뛰며 내뿜던 파란 불과 같은 그런 눈빛 ... , 눈을 마주치기 섬뜩하고 살벌하다.
그들은 담배를 권하면서 선문답(禪問答)이라도 하듯 전투 경험담을 한 마디씩 툭툭 던진다. 그 중 한 마디가 오래도록 귓가에 맴돌았다.
"살아 돌아가는 놈이 장땡이야!"
5, 따이한 전사
다시 교육이다. 앞으로 열흘간 이곳 연대에서 현지적응 및 실전교육을 받아야 한다.
한낮. 연병장은 달궈진 냄비다. 아직 얼음이 꽝꽝 얼던 오음리에서 1주일 만에 불볕 같은 월남 땅으로 오니 몸이 적응하지 못한다. 계속 땀이 줄줄 흐르고 갈증이 심해 고통스럽다. 온몸에 힘이 쏙 빠진다. 이곳에서는 하루에 정제소금 한 알과 말라리아 예방약을 꼭 먹도록 했다. 탈수증을 막고 말라리아 예방을 위해서란다. 일단 말라리아에 걸리면 사망 아니면 폐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럼 안 되지. 매일 꼭꼭 잊지 않고 챙겨 먹어야겠구나.'
실로 긴 하루. 월남에서의 첫날 해가 지고 있다. 어둠이 짙어지자 낮 동안 들리던 포성이 더욱 가까이서 또렷하게 들린다. 밤에도 헬기는 연달아 출격하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는 조명탄이 올라 하늘을 하얗게 밝혔다. 무장헬기에서 쏟아지는 예광탄 불줄기가 허공중에 연줄처럼 사선(斜線)을 그리고 있다. 곧 내가 저 불바다 복판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두려움에 온몸이 굳어지고 불안한 마음에 잠도 오지 않는다. 옆자리에 누운 필수도, 강대도 잠이 오지 않는지 뒤척이고 있다. 대중없는 생각들로 머리가 어지럽다.
'까짓! 사내새끼 태어나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는 생각을 하며 잠을 청하였다. 설핏 잠이 들었을 때 비상이 걸렸다. 이어 막사를 뒤흔들며 헬기들이 연이어 출격하고 있다. 밖에서 설쳐대는 서슬에 가슴이 콩닥거리며 더 불안해 진다.
'오늘 밤 출동하는 저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잠이 천리만리 달아난다. 가까운 곳에서는 포성과 총성이 더욱 거세게 귓전을 어지럽힌다.
날이 새고 부터는 본격 교육이 시작되었다. 전투경험이 풍부한 교관들로부터 정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실전기술들을 익혔다. 매복, 수색뿐만 아니라 무기 취급요령, 부비트랩 설치 및 제거요령 등 ... ,
이글대는 태양아래 땀이 범벅이 된 가운데도 모두들 살아야겠다고 열심이다. 이곳에서의 교육을 끝으로 우리는 목숨을 건 실전에 임해야 한다. 앞으로 우리가 배치되어 전투를 치를 정글에서는 실수나 용서 따위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정글에서는 삶 아니면 죽음, 이분법(二分法)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열흘간 연대에서 교육과 훈련을 마치고 우리는 자대배치를 받았다.
- 주월(駐越) 맹호부대 제1기갑연대 1대대 2중대 -
드디어 나의 소속이 정해진 것이다. 연대나 대대 배속의 꿈은 사라지고 정글을 헤치며 전투를 해야 하는 중대로 배속 받은 것이다. 모든 걸 체념하고 베트남에 관한 나의 지식과 어깨너머로 주워들은 것들을 총동원해서 내가 1년간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곳을 가늠해 보았다.
월남은 북위 8도에서부터 북위 24도까지 남북으로 남지나해에 걸쳐 길게 뻗어있는 국가이다. 북위 17도를 기준으로 월남과 월맹으로 나뉘어졌다. 그러나 현재는 라오스, 캄보디아 국경을 따라 내리뻗은 산악지대의 거점마다 월맹군들이 전선을 형성하여, 호치민루트로부터 병력과 물자를 공급받아 월남과 월맹정규군이 대치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월남 곳곳에는 민족해방전선(NLF)으로 불리는 남월남의 베트콩조직이 편제되어 있고 이와 별도로 지방 게릴라들이 활발하게 암약하고 있다는 것이다.
월남의 남북 간 해안 등뼈를 따라 길게 이어진 도로가 1번국도이다.
이 1번국도 허리쯤인 퀴논에서 분기(分岐)되어 내륙을 관통하여 캄보디아 국경을 향해 뻗어나가는 도로가 19번 도로다.
우리 맹호 제1기갑연대는 월남의 허리에서 내륙으로 향하는 평야와 산악이 만나는 지점인 19번 도로를 중심으로 전술지역이 형성되어 있다. 현재 이곳은 월남에서 가장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전장 가운데 하나다. 월맹정규군, 민족해방전선, 지방 게릴라들이 모두 우글대는 곳이다. 내가 배속된 2중대 작전 전술지역은 19번 도로상에 있는 제 15교량을 지나 똥포 마을과 20고지, 누에고지를 거쳐 제16교량, 제17교량을 지나 안캐 페스까지 동서로 걸쳐있고, 남북으로는 OP 북쪽 송콘강에서 째째산을 넘어 19번 도로를 가로 질러 20고지의 광활한 지역을 거쳐 소도산 까지다.
부대배치에서 우리는 서로 헤어져야 했다. 셋이 끝까지 같이 갈 것만 같았는데, 결국 이 강대는 2대대 5중대로, 필수는 같은 1대대의 3중대로 배속 받았다. 처음 양구 사단에서, 그리고 오음리에서 만나 연대에 오기까지 언제나 붙어 다니며 서로 많은 위안이 되었는데, 이제 여기서 헤어지게 된 것이다. 오랜 친구를 잃은 듯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다. 병사는 명령에 따르다 보니 헤어짐도 운명인 것이다.
"꼭 살아서 고국에서 다시 만나자."
우리는 연대에서 이 강대와 헤어졌다. 피차 앞날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한마디 말로 서로를 위로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필수와 일단 대대까지 같이 가게 되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필수와는 같은 대대이지만 여기서 헤어지면 만나기는 무척 힘 들것 같다. 물론 국내 같으면 대대 안에서 자주 볼 기회가 있겠지만 이곳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이곳 월남에서는 중대전술 개념으로 중대의 전술지역이 워낙 넓은데다 통상 생활은 대부분 분대단위로 이루어진다. 때문에 같은 대대라지만 만날 기회는 그리 많지 않고 다만 생사여부 정도는 알 수 있다는데 위안을 가져야 한다. 대대에서 필수와 서로 다른 차에 오르기 전에 힘껏 껴안았다.
"몸조심 해! 자주 연락 하자."
2중대 OP는 온통 땅속 동굴과 같은 벙커로 되어있다. 외관상 보이는 것은 마대포대로 쌓은 교통호와 관망대, 그리고 휴게실 막사와 취사장 건물, 손바닥만 한 연병장이 전부다. 다만 주변지역에 비해 100고지 정상에 위치하여 주변 전술지역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어 숨통이 확 틔었다. 이곳이 바로 내가 1년 동안 생사고락을 함께 해야 할 곳이다.
중대전술지역 주위에는 송콘강 건너 장백산과 녹도산에 월맹정규군 3사단 18연대와 8대대가 주둔하고 있고, 남쪽으로 소도산과 똥태산에는 9대대가 있으며 이들 2개 대대가 수시로 공격해 오는 지역이라고 한다. 또 강 건너 후장산 넘어 화니 계곡에는 놈들의 신병훈련소가 있다고 한다.
이번에 2중대로 배속된 20명의 신병들은 중대장에게 전입신고를 한 후 개인면담이 있었다. 중대장은 신상에 관한 내용과 건강에 대해 판에 박힌 질문을 했다. 그리고는 조국에 대한 충성심을 발휘하여 따이한의 명예를 드높이는 군인이 되어줄 것을 당부했다.
개인면담이 끝나고 우리는 다시 상황실로 집결했다. 하루 중 가장 더운 오후 2시.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비 오듯 하다. 이 시각 월남 사람들은 '씨아스타 타임'이라 하여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낮잠을 자는 시간이다.
상황실에는 검게 탄 얼굴의 각 소대장과 선임하사와 고참들이 핏발선 눈을 날카롭게 굴리고 있었다. 살벌한 느낌이다. 전장(戰場)에서는 한 명 신병이 잘 들어오느냐 못 들어오느냐에 따라 그 소대 운명이 갈린다. 때문에 우수한 병력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어깨가 딱 벌어진 3소대장이 자신을 소개하더니 구보를 시켰다.
"지금부터 구보를 실시한다. 목표는 정문 위병소 앞 대민진료소를 돌아온다. 선착순 3명이다. 실시!"
비록 체구는 작지만 구보에는 자신이 있었다. 2사단 복무시절 김 신조 사태로 모래주머니를 차고 산악구보로 이미 단련한 몸이다. 고지를 뛰어 내려가는 동안 이미 땀은 눈 속으로 흘러들었지만 이를 악물고 뛰었다. 숨이 턱까지 차지만 헐떡이며 골인했다.
같은 2사단 출신 경산의 서 재윤 일병과 내가 1, 2위로, 박 성호 병장이 3위로 들어왔다. 우리 셋은 3소대로 픽업되었다. 다른 전우들은 다시 대민진료소까지 '선착순 3명 구보'다. 다음번 1,3위로 들어온 최 화규 하사와 유 재철 하사도 3소대로 합류했다. 3소대로 간 우리들은 샤워를 한 뒤 서 재윤 일병과 박 성호 병장은 화기분대, 유 하사는 2분대장, 최 하사는 3분대장, 나는 1분대로 각각 흩어졌다. 결국 말단 소총수로 월남전 최전선 전사가 되어 버렸다.
6, 마이 홈
"일병 김 영곤, 1분대 배치를 명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소속이 정해지고 우리는 각자의 분대 벙커로 향했다. 화기분대로 배속된 서 재윤 일병과 박 성호 병장은 분대가 OP밖 3A도로상에 있는 교량에 파견 나가있어 차량으로 이동했다. 유 재철 하사는 2분대로, 최 화규 하사는 3분대로, 나는 1분대로 각각 흩어졌다.
교통호를 따라가니 동굴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이곳이 최전선임이 확연하게 피부로 느껴졌다.
그래. 동굴이면 어떻고 맨땅이면 어떤가! 기왕 이렇게 굴러온 것, 온몸을 한번 던져보자. 내 별명이 뭔가! 땡삐 아닌가. 본디 땡삐는 땅속으로 기어들어가 층층이 집을 짓고 산다. 그뿐인가! 무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목숨을 던져 기어코 최후의 일격, 침 한방을 날리지 않은가. 나는 땡삐로서 이곳에 적응할 것이다. 그리고 땡삐로서 내 영역을 지키기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
월남에서는 병장이건, 상사건 처음 오면 모두 신병 취급을 받는다고 한다. 연대에서 교육을 받을 때 익히 들었다. 말하자면 계급과 상관없이 '월남신병'인 것이다. 어느 정도 전투 관록이 붙어야 상급자 대우를 해준다는 것이다.
더블 백을 메고 벙커 안으로 들어가 경례를 부치며 신고를 했다. 전입신고 때 내무반 분위기는 거수경례 손 내리는 순간 알 수 있다. 워커 짝이 날아오는지, 더블 백을 받아 주는지에 따라 ... ,
분대장과 분대원들은 진심으로 반갑게 맞아 주었다. 마치 오랜 친구나 후배를 만나기라도 한 듯 진정성을 보였다. 첫눈에 봐도 무척 화기애애한 느낌이다. 분대원들의 환영에 긴장과 초조함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내심으로는 신참이라고 군기 잡으려 들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없잖아 있었다. 그러나 그건 혼자만의 기우에 불과했다. 특히 장 필호 분대장은 경남 동래 기장 사람으로 2사단의 같은 연대, 같은 대대 출신으로 안면도 있었고, 나를 동생처럼 대해주며 월남생활에 필요한 자잘한 것까지 챙겨 주었다.
분대장은 이곳에서 전투는 주로 매복 작전으로 분대단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분대원들 간 지극히 긴밀한 관계를 갖는다고 일러주었다. 전투 중 어떠한 상황에서도 말이 필요 없고 눈빛만 보고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내 생명을 지켜줄 사람은 바로 이 벙커 안의 전우들뿐이고, 그런 만큼 내 목숨을 걸고 전우들을 지켜줘야 한다는 것, 이것만이 다 함께 살아 돌아가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전우애가 과연 그렇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아직 실전에 나가 보지 않은 나로서는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분대장의 말로는 전장(戰場)의 전우는 서로 생명을 연대보증(連帶保證)한 관계라는 것이다. 나의 목숨을 지켜줄 사람은 내 부모도, 내 형제도, 내 친구도 아닌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전우들뿐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서로 목숨을 담보했기 때문에 전쟁터의 전우, 분대원들은 집단 생명체라고 했다.
분대장은 그야말로 이등병 신병 안내하듯이 벙커 안 구석구석을 설명해 주고 내 장비들을 일일이 점검해 주었다. 그리고는 나를 옆에 앉혀두고 내 대검을 빼들더니 숫돌에 갈기 시작했다.
"어이! 김 일병, 교회 다녀?"
분대장은 힐끗 내 손목에 감고 있는 묵주를 보더니 무심한 듯 물었다.
"아닙니다. 성당에 다닙니다."
"여기서는 하느님을 믿기보다 네 총칼을 믿는 게 좋아. 명줄 지키기에는 말이야. 하여튼 장비는 틈나는 대로 정비하고, 대검 날은 면도할 수 있도록 항상 새파랗게 세워 둬."
국내에 있을 때도 대검이 지급되었지만 날은 세우지 않았다. 분대장은 갈던 대검을 엄지 끝으로 훑으며 세운 날을 가늠해 보고 갈기를 되풀이 했다. 칼 갈기가 웬만큼 끝나자 대검을 넘겨주었다. 대검을 칼집에 넣자 이번에는 내 M16 소총을 집어 들었다. 노리쇠를 몇 차례 후퇴 전진한 후 격발을 해보고 소총의 멜빵을 고리에서 풀어냈다.
"멜빵은 그냥 관물함에 넣어 둬. 여기서는 멜빵이 필요 없어."
"왜 그렇습니까?"
"월남에 있는 동안 총 멜 일은 없어. 정글에서 이동할 때 방해만 돼. 총은 언제나 손에 들려 있어야 해. 어떤 상황에서도 총알이 바로 튀어 나와야 한다고. 0.1초 이내."
그러고 보니 내무반의 총들은 모두 멜빵이 없었다.
"상황은 어느 순간에 벌어질지 몰라. 살아서 돌아가려면 총과 한 몸이 되어야 해. 잊지 마! 손에서 절대 총을 놓지 마!"
저녁에는 나의 환영파티가 열렸다. 하얀 쌀밥에 비록 소시지를 넣었지만 된장국과 파래무침과 햄과 미트볼에 분말고춧가루를 넣어 끓인 찌개도 안주로 나왔다. 오늘 온 신병을 환영해 주는 고참들의 지극한 마음 씀씀이가 오히려 미안할 정도다. 식사가 끝나자 맥주가 나왔다. 분대 벙커 내무반에는 맥주가 박스째 쌓여 있었다. 그동안 긴장했던 탓인지 몇 캔 마시지 않았는데도 취기가 오른다.
"어이, 신병! 노래 일발 장전!"
귀국 대기 중인 안 병장이 소리쳤다. 최근 국내서 유행하는 노래를 부르라고 했다. 신고식이란다. 차 중락의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불렀다. 모두 박수를 치며 앵콜을 청한다. 다시 펄 씨스터즈의 '커피 한 잔'을 부르며 곡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모두 일어서서 따라 춤을 추었다.
분위기가 익어가자 소총을 들고 기타를 치는가 하면, 팬티 바람에 알 철모를 쓴 채 서로 얼싸안고 블루스를 춘다고 비벼댄다. 차 경철 병장은 제 흥에 겨워 런닝셔츠 속에 철모를 넣고 곱사춤을 신나게 추었다. 난리가 났다.
'마이 홈'에서의 첫 밤을 달게 잤다. 월남 땅을 밟은 후 깊은 잠을 못 이뤘는데 지척에서 헬기와 포 소리, 총소리가 요란해도 간밤은 세상모른 채 골아 떨어졌다. '내 집'이란 것에 이토록 마음이 편해지는가 보다. 아침에 기상해도 일조점호도 없다. 여기서는 집합도 사역도 없다고 한다. 복장도 자유다. 맨발에 팬티차림으로 돌아 다녀도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자기 할 일, 특히 근무만은 철저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출동명령이 떨어지면 5분 이내 출동보고를 해야 한다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주의를 준다.
여기 내무반 생활이 국내와 확실히 다른 점은 강한 전우애와 고참들의 솔선수범이다. 고참이라고 해서 입으로 때우거나 빈둥거리지 않는다. 기상과 함께 위병소와 관망대 근무 교대, 도로정찰조 편성, 기지 내 청소, 개인호와 공용화기 벙커 점검, 설치된 크레모어 격발기 점검, 식사준비 등 각자 맡은 바 임무를 아무 말 없이 일사불란하게 하고 있다.
분대장은 오늘은 푹 쉬면서 고참병들 하는 것을 잘 봐두라고 했다. 그러면서 전입신병은 1개월까지, 귀국 전 3개월부터 전투에서 열외 시켜준다는 것이다. 앞으로 한 달간은 고참병들로부터 전술화기 다루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했다. 크레모어 분해 결합, 캐리버 30(LMG), 50 사격요령, M79 유탄발사기 사용법, 조명지뢰, 네이팜탄 설치와 부비트랩 설치 방법, 수류탄, 가스탄, 연막탄, 수타식 사용법을 익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또 매복 진입요령과 전술지역 내 지리, 지명, 위치와 적의 습성, 주민들의 생활 등을 익히고 나면 전투에 투입 될 것이라고 했다.
'이거 정말, 월남에서 살아 돌아가기가 만만찮겠네.'
7, 악어 사냥
아침식사를 마치고 분대장은 편지지와 봉투 한 묶음을 주면서 집에 편지부터 쓰라고 했다. 먼저 부모님과 영아에게 편지를 썼다. 지금까지 소속이 결정되지 않아 편지를 띄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머님은 머나먼 월남 땅 전쟁터에 자식을 보내 놓고 얼마나 걱정을 하고 계실까? 그리고 얼마나 애타게 소식을 기다리고 계실까?
어머님에게는 보직을 잘 받아 직접 전투에는 나가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적었다. 투병 중인 아버지와 막내 동생 뒷바라지에 고생이 많으시겠지만 1년만 참아 주시면 제가 돌아가서 집안일을 도맡아 하겠다고 썼다.
영아에게 편지를 쓰는데 갑자기 영아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환하게 웃는 모습만이 희미하게 떠오를 뿐, 가슴이 먹먹하고 체한 듯 답답하다. 담배 한 대를 빼어 물거나, 건너 숲을 바라보거나, 심지어 소변볼 때도 문득문득 떠오르던 영아의 환영은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절절한 그리움을 담아 글자마다 정성을 다 해 썼다. 1년만 참고 기다려달라고, 귀국하여 제대하는 대로 결혼식을 올리고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썼다.
편지 봉투를 붙여 소대 전령에게 넘기고 착잡한 기분에 내 개인호에 기대어 먼 산을 바라보며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마침 차 경철 병장이 담뱃불을 붙이며 분대 벙커에서 나오다가 나를 보고 다가왔다.
"편지 다 썼어? 기분이 이상하지? 처음엔 다 그래. 곧 괜찮아질 거야."
"차 병장님, 몇 개월 됐습니까?"
"4개월 넘었어."
"처음부터 100 소총수였습니까?"
나는 그동안 궁금해 못 견디겠던 것을 물어 보았다. 2사단에서 차출될 때 연대나 최하 대대 통신대에 배속될 것이라고 들었다. 그러나 막상 여기에 와보니 내 주특기는 온데간데없고 말단 소총소대 소총수로 꽂아 버린 것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경운가 싶었지만 달리 물어볼 때도 없고 해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던 것이다.
"김 일병, 주특기가 뭐야?"
"713 무선전신입니다."
"여기서는 주특기 찾아가기 힘들어. 그때그때 병력수급에 따라 달라져. 따라와 봐."
차 병장은 나를 관망대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남쪽으로 19번 도로에 걸쳐있는 고지 능선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앞에 있는 고지 보이지? 누에고지라고 부르는데 어때? 누에처럼 보여? 오른쪽 꼬리부분 있지? 우리는 저 지점을 '신병 사고지점'이라고 불러. 전에 전입 신병들이 저기서 놈들의 습격을 받아 모두 당한 곳이야. 한 달 전에도 대대장이 우리 OP를 방문하고 돌아가다 놈들한테 기습을 당했어. 그 자리서 대대장, 참모, 통신병, 운전병까지 모두 전사했어. 그래서 우리 3소대가 급히 출동했는데 놈들과 교전 끝에 11명의 사상자를 내고 말았어. 그래서 우리 소대 병력이 많이 모자라 이번 차수에 20명이나 우리 중대에 배속된 거야. 이 판에 주특기 따지게 됐어?"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어찌 그런 일이 ... , 저 평화스러워 보이는 녹색 정글이 피의 현장이었다는 것이. 월남 전선에 와서 총 한 번 쏘아보지도 못한 채 무참히 쓰러지고, 대대장 일행이 당하고, 또 출동했던 병력이 11명이나 당하고 ... , 그래서 분대장급 하사가 2명이나 우리 소대에 배속되었구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내가 보통 전쟁터에 온 게 아니구나 싶다. 말 그대로 사고 소대에 긴급 충원되어 온 소모품인 생각이 든다.
'앞으로 얼마든지 나도 ... , 아멘이다. 아멘!'
저녁에는 분대원들에게 내가 한 턱 쐈다. 지금까지 훈련과 이동 중에 있어 몰랐는데, 한 달 전 3월 1일부로 상병으로 진급 되었단다. 그래서 수당을 잡혀 월남소주 '럼주'를 쏘았다. 진급 신고식을 한 것이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은 상병 봉급이래야 국내서 받는 400원 남짓이라고 하지만, 이역만리 타국 전선에 와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해외근무 수당' 말하자면 목숨 값이 한 달에 45달러 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 오는 동안 귀국자들이 죽으면 개 값이라고 듣기 지겹도록 말했구나. 그런데 그마저도 80%인 약 40달러는 의무저축이라고 해서 국내로 송금해 버리니 너나없이 여기서 여유 있게 돈을 만져볼 기회가 없는 것이다.
'에라, 지금 이 판에 돈이 뭐 그리 대순가!'
내게 있어 지금 중요한 것은 돈보다도 어떻게든 살아서 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직 아침 햇살이 펼치기도 전인데 벌써 온몸이 끈적거린다. 간밤에 마구 들이킨 럼주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아침식사를 마친 후 사수인 차 경철 병장한테 연막탄과 수타식(적, 록, 조명) 사용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때 관망대 근무자로부터 송콘강 근처에 악어가 나타났다는 전문이 흘러 나왔다. 귀국 대기 중인 안 병장이 구경거리가 생겼다며 관망대로 뛰어갔다.
"송콘강이면 우리가 작전 나갈 때 늘 다니던 곳인데 ... ,"
분대장이 걱정하고 있는데 무전망에 중대장이 등장했다.
"관망대 계속 관찰하고, '은하수 하나' 출동해서 포획하도록. 이상!"
"어이! 김 상병, 출동 준비해. 악어 잡으러 가자."
탄대를 메고 방탄조끼를 입고 소총을 집어 들었다.
분대장 이하 전원 출동이다. 완전 전투 출동하는 기분이다.
째째산 쪽 출구를 열고 강 쪽으로 진로를 잡았다. 10분 남짓 걸었는데 전투복이 흠뻑 젖었다. 아직 방탄조끼가 몸에 익지 않아 무겁고 거치적거린다. 무전기를 짊어진 차 경철 병장이 계속 관망대와 교신을 하면서 진로를 잡아준다.
"벽계수, 벽계수, 여기는 은하수 하나!"
"송신"
"당소 목표지점 도착."
"귀소. 박제할 수 있도록 생포 바람. 이상!"
엄청난 크기의 대물악어다. 길이 3~4m 정도에 80~90kg은 족히 나갈 듯하다. 이 일준 병장이 준비해간 밧줄로 올가미로 만들어 악어한테로 다가갔다. 위험을 감지한 거대한 덩치의 악어는 고개를 치켜들고 내젖는다.
"어이! 가만 있어봐. 좀 이상하지 않아? 악어가 아닌 것 같은데?"
"그래. 목이 길고 입이 짧잖아. 이빨도 없어!"
"야! 저것 봐. 혀가 둘로 나눠져 날름거리잖아. 혹시 도마뱀 아니야?"
"그래. 맞아! 악어가 아니고 도마뱀이야."
"와! 저렇게 큰 도마뱀도 있어?"
"어이, 이 병장! 어쨌건 목에 올가미부터 걸어."
이 병장이 목을 겨냥하여 올가미를 던지자 이 괴물은 혀를 날름거리며 되레 공격 자세를 취한다. 다시 올가미를 던지자 이번에는 풀쩍 뛰면서 이 병장을 덮치려고 한다. 몇 차례 생포를 시도했지만 약이 오른 괴물은 더 거칠게 날뛴다.
"야! 이 병장, 비켜! 위험해."
이 병장이 물러섰다. 분대장은 M16소총으로 신중하게 정조준 했다.
"탕, 탕!"
심장 부근에 2발을 박아 넣자 괴물은 거꾸러졌다. 중대장에게 사살 보고를 했다. 중대장은 운반해 오란다. 괴물을 밧줄로 묶어 막대를 질러 넷이서 목도를 해서 메고 운반을 했다. 워낙 덩치가 커서 5분 정도 메고 나니 숨이 턱까지 찼다. 땀을 뻘뻘 흘리며 교대로 메고 OP로 올라와 휴게실 앞에 부려 놓았다. 구경거리에 중대원들이 몰려왔다. 누군가가 악어가 아니고 왕 도마뱀이란다. 이놈은 침 속에 독이 있어서 물리면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어이쿠! 그것도 모르고 맨손으로 생포 하겠다고 ... , 까딱했으면 헬기 탈 뻔 했네."
포획에 나섰던 이 일준 병장이 그 소리를 듣고 한바탕 너스레를 떨었다. 잡아온 왕 도마뱀은 박제를 위해 급수차에 실어 곧바로 연대에 보냈다. 그렇구나! 여기서는 베트콩뿐 아니라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구나! 앞으로 펼쳐질 1년 동안 매사 조심뿐이라는 생각이다
8, 첫 전투.
첫 매복 작전 출전이다.
자대 배치를 받고 한 달이 지났다. 이젠 전투 열외도 끝났다. 지금부터 연습도 아니고 훈련도 아니다. 요행은 통하지 않는다. 삶과 죽음을 목전에 두고 되돌릴 수 없는 '단 한발'의 승부를 해야 하는 것이다.
오후 6시 30분. 해가 막 넘어가고 있다. 달이 뜨기 전 야음(夜陰)을 틈타 매복지에 진입해야 한다. 매복지점은 중대OP북방 1km 지점의 송콘강을 건너 200고지 하단부. 놈들은 이 지점에서 강을 건너 OP 뒤쪽에 있는 띵장 마을에서 쉬었다가 바슈엔산을 넘어 딩칸계곡을 타고 안캐페스 하단부를 돌아 소도산으로 숨어드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이다. 오늘 매복 작전은 월맹군 이동통로를 차고 앉아 놈들의 멱통을 눌러 버리는 것이다.
소대장 인솔로 3개 분대가 OP 북쪽 통로로 내려섰다. 처음 나가는 매복 작전의 내 임무는 첨병이다. 그것도 소대의 운명을 책임질 첨병이다. 부담감이 양어깨를 짓누르면서 뒤 목덜미가 뻣뻣해진다. 낮에 관망대에서 분대장이 턱짓으로 우리 갈 곳의 이동로를 일러 주었다. 이곳에서는 작전 지시를 할 때 절대 손가락질을 하지 않는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동로를 설명하는 것은 전우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짓이라고 한다. 놈들이 띵장 마을에 기거하면서 항상 이곳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분대장은 한 마디 덧붙였다. 적은 마을에도 있지만 숲 속에도 있고, 늪지대에도 있고, 동굴 속에도 있고, 물속에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했다. 적은 우리가 움직이는 곳이면 어느 곳 없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이제 분대장이 일러준 대로 진입로를 찾아가야 한다. 사주경계를 하며 전진했으나 막상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던 지형과는 사뭇 다르다.
특히 첫 매복, 처음 가는 길, 야음마저 짙어 길 찾기가 무척 힘겹다. 탄대에는 4개들이 탄창주머니 2개, 탄창주머니에 각각 수류탄 2발씩, 수통 2~3개, 1갤런용 물 백 1개, 연막탄 3개(황, 적, 록), 가스탄 1개, 대검과 압박붕대 2개가 달려 있는 것이 기본이다. 그리고 탄대 멜빵에 도 수류탄 4발, 배낭에는 식량(통상 3박4일분), 크레모어 2발, 1회용 휴대 로켓포 2문, 예비실탄 200~300발, 수타식 3개, 판초우의와 스프레이 모기약 등이 들어 있고, 야전삽과 정글도(刀)까지 꽂았으니 군장만 해도 한 짐이다. 몇 분 걷지 않아 몸은 땀범벅이 되어 버렸다.
어깨까지 자란 사탕수수밭을 지나 빈 독립가옥을 우회했다. 가옥 옆으로 펼쳐진 담배 밭과 감자밭을 기다시피 통과했다. 이곳의 감자는 열대지방이라 그런지 '감자나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크게 자란다. 은폐하기 좋아 그나마 전진이 수월했다. 밭이 끝나고부터는 강이다. 듬성듬성 자란 갈대 무더기를 은폐물로 삼아 물가에 닿았다. '앞에 총' 하고 허리까지 차는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건기철이라 수위가 낮아 다행이다. 뒤로는 최 봉석 상병, 장 필호 분대장, 무전기를 진 차 경철 병장 순서로 분대원과 소대원들이 줄줄이 강으로 들어섰다. 도강(渡江)하면서 내는 작은 물결 소리도 내 귀에는 우레같이 들린다.
도강 후 갈대숲을 지나 둑 밑에 앉았다, 뒤이어 분대원들이 좌우로 붙는다. 소대원들이 모두 강을 건널 때까지 경계를 해야 한다. 어느 듯 후장산 중턱으로 보름달이 휘영청 솟아오른다. 시계(視界)가 한결 밝아졌다. 달빛에 무성한 나무들이 음산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소대원들은 속속 진입하여 자리를 잡는다. 그때였다. 전방으로부터 3시 방향에 2명이 나무그늘을 은폐삼아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옆에 있는 분대장에게 알렸다. 유심히 살피던 분대장이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엎드려 경계하라고 했다.
'V'는 베트콩의 영문 첫 철자. 적을 알리는 수신호다. 절대 기도비익이 요구되는 야간작전에는 말을 하지 않는다. 모두 수신호다. 분대장은 모두 자세를 낮추도록 손바닥을 아래로 하여 상하로 흔든다. 그리고 적 출현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손가락 수로 인원수를 알려준다.
적과 첫 조우다. 가슴이 벌렁거리고 심장이 마구 뛴다. 목젖이 컥컥 막히고 온몸이 떨려 철모가 다 덜컥거리는 것 같다. 뒤쪽으로 계속 '적 출현' 신호가 보내지고 있다.
"휘~익"
그때 정적 속에서 누군가가 휘파람 신호를 보냈다. 다가서던 놈들이 자세를 낮추더니 홱 돌아서 버렸다. 모든 행동이 중지 되었다. 도강 중이던 소대원들은 물위에 얼굴만 내놓고 동작 그만이다. 천지가 적막에 묻히고 시간마저 멎어 버렸다. 모두 숨을 죽이고 번들거리는 눈으로 전방만 주시하고 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전방에 두 개의 그림자가 다시 나타났다. 자세를 한껏 낮춰 경계하며 한 발짝 한 발짝 전진해 온다. 놈들은 아마 휘파람 소리를 새소리로 착각했나 보다. 숨을 죽이고 기다린다.
전방 30m, 25m, 20m ... , 숨이 거칠어지고 가슴이 콩닥 거린다.
"사격개시!"
"드르륵, 드르륵, 탕 탕 ... ,"
어디서 누가 내린 명령인줄 모르겠다. 탄창의 20발이 모두 날아갔다.
그때서야 정신을 차려보니 달빛아래 검은 물체가 거꾸러지는 것이 보인다.
"사격중지!"
분대장이 수류탄 두 발을 까 던졌다. 단 10여초의 집중사격. 그 순간 하나의 목숨이 앗기고 앗아간다. 실로 찰나이다. 소대장은 적색 타식을 올리며 조명을 요청했다. 무전기에서 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OP에서 4.2인치 포의 조명이 올랐다. 강변과 숲이 대낮처럼 환하다. 모래 한 알, 개미 한 마리까지 볼 수 있을 정도다. 분대원들은 사주경계를 하고 분대장이 상황처리를 했다. 적 사살 2명, AK소총 2정, 소련제 수류탄 6발, 각종 장비를 노획하는 전과다.
"어이! 김 상병, 위치로!"
분대장이 상황보고를 마치고 나를 부른다. 적의 시체와 노획품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집중사격에 걸레처럼 돼버린 몸에서 흐른 피가 땅바닥으로 배어나오고 있다. 처참한 모습과 피비린내로 온몸에 소름이 확 끼친다. 분대장이 내 탄대에서 대검을 쑥 뽑아 손에 쥐어 주었다.
엉겁결에 건네받았다.
"찔러!"
"... "
심장이 쿵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배를 찔러! 어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차마 쳐다보기도 섬뜩한데 그 시체를 대검으로 찌르라니 ... , 이 상황을 구해줄 사람은 소대장뿐. 소대장을 돌아보며 구원해 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소대장은 멀찍이 돌아서서 허공중에 담배연기만 내뿜고 있다.
대검을 들고 덜덜 떨고 있으니 분대장은 빨리 찌르라고 욱박지른다.
그렇게 형님처럼 잘 대해주던 분대장이 이 순간 야속하기만 하다.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이제 차 병장까지 가세해 소총 개머리판으로 내리칠 듯 위압한다. 이판사판 심정으로 눈을 질끈 감고 배를 찔렀다. 피가 확 솟구친다. 손이며 전투복이며 얼굴로 튄다. 넋이 나간 채 주춤하고 서 있었다.
"눈 똑바로 떠! 두 번 더 찔러. 새끼야!"
분대장은 악귀처럼 소리치며 엉덩이를 걷어찬다. 두 번, 세 번 ... ,
이를 악물고 눈을 질끈 감고 찔렀다. 아! 피비린내.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내 정신이 아닌 것 같다.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동안 최 봉석 상병이 놈들의 시체에 녹색 인계철선을 매달아 근처 나무로 연결했다. 최 상병은 능숙한 솜씨로 나무에 수류탄을 매달고 인계철선을 수류탄 안전핀에 연결했다. 놈들이 시체를 건드리면 수류탄이 터지도록 부비트랩을 설치한 것이다.
철수를 하는 동안 지독한 피비린내와 함께 눈을 까뒤집고 죽은 시체의 처참한 모습만 떠올랐다. 계속 전투복에 손을 문지르고 소매로 얼굴을 닦으며 최 상병의 뒤만 보고 정신없이 따라붙었다. 다시 강을 건너 OP로 향했다. 검은 강물 위에 달빛이 출렁이고 있다. 최 상병은 내 심정을 훤히 꿰뚫고 있기라도 하듯 강을 다 건너왔을 때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라고 한 마디 던졌다. 대검으로 적의 시체를 찌르도록 하는 것은 신병의 담력을 키우기 위한 전통이라고 했다. OP로 들어서니 중대장을 비롯한 중대원들이 하이파이브를 하며 반겨준다.
벙커로 돌아와 담배를 빼어 물어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비누로 손을 씻고 또 씻어도 냄새를 맡아 보면 쇳내와 같은 피비린내가 여전하다. 메스꺼움에 나도 모르게 연거푸 침을 뱉는다. 침을 뱉을수록 목구멍은 굵은 사포로 민 듯 깔깔하고 목이 마르다. 내가 본디 이렇게 잔인 했던가? 손목에 채워진 묵주가 오히려 거추장스럽다. 잊자. 잊어 버리자. 여기는 전쟁터 아닌가.
그러나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 전쟁터에서 나는 죽임으로써 내가 살게 된다는 철리를 헤아리게 된 것이다.
9, 제 16교량
첫 전투를 치른 나는 이제 엄연한 전사가 된 것 같다.
5월 들면서 16교량의 1소대와 교체명령이 떨어졌다. 교량근무 교대를 하는 것이다.
퀴논에서 출발한 19번 도로는 안캐페스의 준령까지 17개의 다리가 있다. 각 교량은 사단 전술지역 내에 있기 때문에 우리 한국군이 지키고 있다. 특히 우리 중대 작전지역 안에 있는 16교량은 정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우리들은 무전교신을 할 때 '열여섯 통나무'라고 부른다. 이 철근 콘크리트 교량에는 하루에도 수백 대의 오토바이, 승용차, 버스 그리고 트럭과 군용차량들이 통과한다. 안캐로, 플레이쿠로, 투코로 다시 퀴논으로 지나다닌다. 16교량은 지리적으로 요충지일 뿐만 아니라 미군의 '오일펌프 스테이션'이 자리 잡고 있다. 퀴논 항에서 19번 도로를 따라 송유관을 설치하여 플레이쿠를 지나 투코까지 오일을 공급하고 있다. 평지를 따라 오던 송유관은 이곳 16교량에서부터 시작되는 안캐페스의 높고 험준한 고개를 넘어야 한다. 때문에 미군은 이 16교량에 오일펌프 스테이션을 설치하여 고개를 넘는 송유관에 가압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 미 공병대가 파견 나와 있다.
우리 중대는 이곳에 1개 소대를 파견하여 16교량 경계임무를 맡기고 있다. 교량뿐만 아니고 똥포 삼거리에 위치한 누에고지, 17교량, 안캐페스 주요지점, 딩칸 계곡, 20고지의 넓은 평원, 100고지, 231고지, 개나리고지, 3A도로까지 전술책임을 진다.
16교량이 월남 중부내륙 기지에 피를 공급하는 심장 역할을 하는 만큼 언제나 적들은 이곳을 노리고 있다.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곳이다. 2개조로 나누어 24시간 경계근무를 서야한다. 놈들이 교량과 오일펌프 스테이션을 공격하여 폭파시키겠다는 첩보를 전달 받았다. 항상 적이 우리 허점을 노리는 곳이다 보니 이곳 근무도 녹록치 않다.
첫날부터 정신없이 움직여야 했다. 우선 관망대와 공용화기 벙커, 개인호와 교통호 점검 보수, 철조망 점검과 제초작업, 설치된 크레모어, 네이팜탄, 조명지뢰 점검 등 부지런히 움직여야 끝낼 수 있다.
누에고지에는 2분대를 올려 보내고 3개 분대가 종일 움직여도 내무반 막사 보수는 끝을 맺지 못했다.
16교량 교체 근무 이튿날, 매복명령이 떨어졌다. 안캐페스와 바슈엔산 사이에 넓게 펼쳐진 딩칸계곡으로 적의 소부대가 이동할 것이라는 정보가 있어 우리 1분대가 3박4일간 매복 작전을 나가게 되었다.
새벽 04시를 기해 기지를 출발하여 일출 전에 매복지점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잠자기 전 모두들 군장을 꼼꼼히 점검하고 꾸려 놓았다.
새벽. 일찌감치 출발준비를 마친 이 일준 병장은 내무반 거울을 들여다보며 얼굴이며 목덜미에 꼼꼼하게 모기약을 바르고 있다. 자칭 별명이 왜 '영등포 바람'인지 알만 하다. 모기약을 다 바른 이 병장은 호주머니에서 분홍빛 여자 삼각팬티를 꺼냈다. 무슨 성물(聖物)을 다루듯 경건하게 입맞춤을 한 후 팬티를 머리에 뒤집어썼다. 그리고는 휘파람을 불면서 거울을 보고 앞뒤 돌리며 반듯하게 위치를 잡았다. 중심을 잡은 후에 양 옆으로 삐져나온 짧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손질하고 그 위에 철모를 썼다. 통통 튀는 성격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 병장의 기상천외한 행동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워낙 진지해서 장난으로 보아 넘길 수 없었다. 마치 검도 선수가 오구를 쓰기 전 두건을 두르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김 상병, 볼만 해? 이 병장님 지금 양 밥하는 거야 양 밥, 알아? 재수 좋게 하는 거."
모기약과 면도날을 철모에 끼우며 히죽거리는 나를 보고 박 점득 상병이 호주머니에서 빨간 여자 팬티를 꺼내 흔들면서 말했다. 박 상병 말로는 웬만한 병사들은 여자 팬티 한 장씩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에서 노름꾼들이 끗발 선다면서 여자 팬티를 입거나 호주머니에 넣어 다니는 것과 같이 양 밥을 하는 것이란다. 마치 부적과도 같이 작전에 나갈 때면 이 병장은 늘 여자 팬티를 뒤집어쓴다는 것이다. 이 병장은 '분홍팬티 두건'이 총알이 피해가는 행운을 가져다줄 것으로 굳게 믿는 것 같았다.
"어이! 김 상병, 어때? 섹시해 보여? 김 상병도 문주란이 오면 꼬셔 봐. 능력이 안 되면 애인한테 보내 달라고 그러던지."
철모 끈을 조이며 이 병장은 씽긋 웃으며 말했다.
"문 주란이를 꼬신다고요?"
"야, 이래 뵈도 이거 박 재란 거야. 진짜 박 재란이 입던 거라고."
옆에 있는 박 상병 말로는 고국에서 위문공연단이 가끔 오는데, 그 때 여자 가수나 댄서들이 팬티를 나누어 준단다. 이야기인 즉, 직접 주는 것이 아니고, 여자 팬티가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알려지면서 고국의 위문공연단이 숙소에서 땀에 젖은 팬티를 빨아 널어놓으면 남아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자 가수나 댄서들은 월남 위문공연을 올 때, 아예 팬티를 수 십장씩 갖고 와서 일부러 물에 적신 후 밖에 널어둔다는 것이다. 그러면 병사들이 밤중에 몰래 가서 걷어오는 것이다. 물론 보초서는 경계병은 모른 척 한다.
생과 사를 종이 한 장 사이에 두고 사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다. 이승과 저승의 담벼락 위를 걷는 이 전투 속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 그 마음 알 것 같다. 이 병장의 팬티 두건과 내 손목의 묵주가 뭐가 다를 것인가. 물론 묵주보다 빨간 팬티, 그것에는 수컷들만의 또 다른 묘한 그 무엇이 있겠지만 ... ,
04시. 우리는 기지를 출발했다. 3박4일간의 군장은 장난이 아니다. 20kg은 넉넉하니 그 무게에 눌려 지레 질식할 것만 같다. 계곡이라고 하지만 국내의 계곡과는 사뭇 다르다. 산골짜기가 아니다. 무성한 열대림으로 우거진 광활한 지대에 깊게 패여 물이 흐르는 곳을 말한다.
공작새의 날카로운 울음소리에 소름이 돋는다. 찢어지는 소리가 음산하기만 하다. 눅눅한 열기 속에 물기 머금은 새벽 공기가 온몸을 휘감는다. 야광물질들이 빛을 발하고 밤이슬에 젖은 나뭇잎들이 축 늘어져 있다. 전진하다 갑자기 개활지가 나오면 정글 쪽으로 붙어 우회하여 간다. 적들이 언제 어디서 튀어 나올지 모른다는 긴장감 속에 놈들이 은거 했다는 동굴 아래를 지날 때는 온몸의 신경이 날카로워 진다. 한 발 한 발 내딛을 적마다 첫째도 정숙, 둘째도 정숙이다. 기지 밖을 나서면 모두가 적이고 모든 곳이 적진이다. 그래서 행동이 워낙 신중하다 보니 행군이 더뎠다. 출발하기 전 차 경철 병장이 한 말이 이해될 듯 말 듯 하다.
'아직 김 상병은 여기에 적이 어디 있나 싶을 거야. 조금만 지나 봐. 곳곳이 적이라는 걸 알게 될 거야.'06시. 예정보다 좀 늦었지만 다행히 여명이 틀 때쯤 매복지점에 도착했다. 동녘이 훤히 밝아올 무렵에는 모두 매복을 완료하여 경계에 들어갔다. 이제부터 절대 기도비익이다. 어떤 경우에도 소리를 내선 안 되고 이동도 물론 안 된다. 담배 연기는 물론 말 할 것도 없고 냄새나는 것도 절대 금해야 한다. 그야말로 철수할 때까지 쥐죽은 듯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한다. 힘겨운 싸움이 시작 되었다. 적과의 싸움,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3박4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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