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일의 태양을<7>…제3회 매일시니어문학상 논픽션 특선-김영곤

35, 무공훈장

어느덧 해는 안캐페스 고갯마루를 넘어가고 있다.

멀리 소도산 하단부에는 무장헬기가 아직도 로켓포와 캐리버 50을 집어넣고 있다. 중화기의 예광탄 불줄기가 일렁인다. 날이 어두워 더 이상 전진할 수가 없다. 현 지점에서 실탄과 크레모어, 식량과 식수를 보급 받아 밤을 새며 경계해야 한다. 밤하늘엔 조명이 정글을 환히 밝히고 있다. 지금 놈들은 포위 상태에 놓여 있다. 단 한 명도 살려 보낼 수 없다.

크레모어를 설치하고 경계태세에 들어갔다. 이제야 긴장이 풀리고 몸이 나른해 진다. 지난 3박4일간 매복에서 비를 맞으며 꼬박 밤을 새우고, 기지로 오자마자 무너진 벙커보수 작업을 하다가 이렇게 달려와 온 종일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경계를 하려고 해도 자꾸만 눈꺼풀이 처진다. 교대로 눈을 좀 부치기로 했다.

한성산 마루가 밝아 오면서 먼동이 텄다. 어제 일몰로 중단한 수색작전을 재개했다. 그런데 놈들은 언제 어디로 빠져버렸는지 사상자만 남겨두고 모두 달아나고 없다. 분노에 찬 소대원들은 숨이 붙어 있건 없건 그저 닥치는 대로 찌르고 갈겨댄다. 얼굴에 피가 튀고 피비린내가 역겨워도 미친 듯이 쏘아댔다. 이 봉석 상병의 죽음에 대한 보복, 아니 놈들의 총탄에 쓰러져간 전우들 생각에 마구 긁어댔다.

"개새끼들! 모조리 날려 버리겠어!"

그간 참았던 울분과 극도의 공포감이 광기로 폭발했다.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며, 어느 한 순간도 놓여날 수 없는 죽음의 공포가, 인간을 극단적 행동으로까지 몰아세운 것이다. 닥치는 대로 갈겨대는 것은 죽음에 대한 온몸의 저항이다. 삶에 대한 처절한 욕망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없으니까 ... ,

이윽고 놈들의 소탕작전은 종료 되었다. 사살된 놈들과 무기, 장비 등 모두 19번 도로에 끌어냈다. 전과가 상당히 많지만 아군 피해도 적지 않다. 3분대 이 봉석 상병이 전사하고, 우리분대 차 경철 병장이 후송되었다. 누에고지는 사상자는 없지만 놈들의 집중공격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은 것 같다. 무엇보다도 내게도 둘도 없는 불알친구이자 파월동기인 필수가 복부에 2발의 총상을 입고 후송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아픔이다.

'제발 필수가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야 할 텐데 ... ,'

오른손과 왼 팔목에 박힌 파편은 위생병이 제거하고 지혈도 했다.

또 하루해가 저문다. 오늘도 우리는 기지로 돌아갈 수 없다. 아직도 어디엔가 있을 놈들의 잔류 병력을 수색해서 잡아내어야 한다. 이왕 시작한 것 끝장을 볼모양이다. 이 밤도 우리는 이곳 20고지의 광활한 소 정글에서 밤을 지새워야 한다. 하늘의 별을 보며 철모를 베개 삼아 잠을 청해 보지만, 이미 생체리듬을 잃은 몸은 잠은커녕, 자꾸 필수의 늘어진 모습만이 아른거린다.

날이 밝으면서 격전지를 횡대로 훑으며 수색을 했다. 광활한 정글은 포격으로 처참하게 뒤집혔다. 아름드리나무들이 뿌리째 넘어져 있고, 그 위로 조명낙하산이 하얗게 널려있다. 해질녘까지 20고지를 샅샅이 뒤져 적의 시체 13구를 더 찾아냈다.

3박4일간의 매복, 2박3일간의 전투! 몸은 완전히 한계점을 넘었다. 그것도 지방 베트콩이 아닌 월맹정규군과의 전면전. 1개 대대와 맞붙어 싸운 것이 벌써 두 번째다. 정말 싸울 복이 지지리도 많구나 ... ,

그래도 손목에 파편 맞은 것 외에 아무 이상 없이 전투를 마치게 되었음을 주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OP로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잠 좀 자려는데 중대장이 부른다. 상처를 살펴보며 분대장도 없이 싸우느라 고생이 많다면서 담배를 권한다. 그리고는 어렵게 운을 뗀다.

"김 병장, 이번 공훈상신 말인데 ... , 인사계한테 양보하면 안 될까?"

"..."

"김 병장이야 더 이상 진급도 의미 없고, 훈장 하나 받아 봐야 기분 내는 걸로 그만이지만, 인사계는 다르잖아? 물론 훈장서열 1번은 김 병장이 맞지만 ... ,"

"..."

"인사계 말인데, 고참 중사 달고 월남까지 와서 곧 귀국해야 하는데, 진급해서 돌아가야 하지 않겠나? 양보하면 인사계도 가만있지는 않을 거고 ...,"

한참을 생각했다. 하긴 지금 내게 훈장이 뭐 그리 중요한가. 살아서 돌아가는 게 더 중요하다. 내겐 거금이 있다. 그러면 됐지. 장기 하사관들, 진급을 해야 처자식 먹여 살릴 것 아닌가. 그래, 양보하자.

"예, 좋습니다. 양보하죠. 뭐."

"야! 역시 김 병장, 경상도 사나이야. 화끈해서 좋아!"

중대장 말도 일면 수긍이 간다. 나야 훈장 받아봤자 철판 쪼가리 하나에 불과하지만, 인사계는 진급하고 평생 먹고 사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애초 내가 진급하려고 월남 온 것도 아니고, 돈 벌러 온 것도 아니지 않는가. 단지 끌려온 내가 훈장 따위야 아까울 것도 미련도 없다.

실제 인사계를 진급시키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이익이다. 장교나 하사관, 심지어 사병까지도 주월 한국군 사령부에서는 진급시킬 건더기만 있으면 시킨다고 하지 않던가. 중사와 상사는 미국으로부터 받는 전투수당이 몇 10불 차이가 난다.

'그래. 이것도 애국이라면 애국일 수도 있겠다. 한 푼이라도 나라에 보탬이 되니까 ... ,'

저녁식사 후 인사계가 잠시 보자고 했다. 인사계는 몇 번이고 고맙다고 하면서 포장도 뜯지 않은 캐논 카메라 박스를 내밀었다. 충무무공훈장과 캐논 카메라와 맞바꾸기. 그만하면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말인즉 양주 한 병 던져준들 뭐라고 할 것인가.

카메라를 관물함에 넣으니 기분이 뿌듯하다. 사실 우리 사병들의 전투수당이래야 참으로 몇 푼 안 된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곳 전장에서 돈 쓸 일도 그다지 많지 않다. 맥주야 박스째 쌓여 있으니 술값 들 일도 없고, 일용품과 소모품 모두 지급되니 돈이 들지 않는다. 굳이 쓴다면야 5불 주고 '붕붕' 한 번 하는 게 고작인데, 그것도 기회가 많지 않으니 말이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우리 같은 사병들은 한 푼이라도 모아서 귀국할 때 뭐든 하나라도 더 사가려고 한다. 하다못해 PX에 가서 TV라도 한 대 사서 국내 가져가면 세 곱절은 남기니까 그 이문이 쏠쏠하다. 자기만 알뜰히 하면 웬만한 논마지기 정도는 챙길 수 있다.

월남생활 반 고개를 훌쩍 넘어 이제 귀국일자 쪽으로 더 가까워지고 있다. 그럴수록 차곡차곡 쌓여가는 귀국 선물들에 절로 흐뭇한 생각이 든다. 3만 불에, 캐논 카메라에, 야외전축까지 ... ,

그런 한편으로 저녁에 가만히 누워서 생각하니 삶과 죽음이 불교에서 말하는 '찰나' 라는 생각이 든다. 되짚어 보면 이번 전투에서도 아찔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0.1초라도 늦으면 운명이 바뀌어버리는 전쟁터.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겠나마는 전쟁터에서만큼 '유무(有無)'가 극명하게 갈리는 곳은 없다. 그 감자밭에서 유탄발사기 탄환이 전후좌우(前後左右) 1~2m만 내 쪽으로 날아와 터졌어도 나는 지금쯤 유골 박스에 담겨 귀국하고 있었을 것이다. 전쟁터에서는 존재함과 존재하지 않음, 유와 무, 딱 두 가지 밖에 없다. 내가 살아있는 한 세상은 존재하는 것이고, 내가 죽으면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 내가 이렇게 걷고 있지만, 내일의 태양을 볼 수 있을 것인가 못 볼 것인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단지 희망사항이고 바램일 뿐이다.

생과 사의 틈바구니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놈이 아득바득 귀국 선물을 챙기는 꼴이 한편으로는 시장시럽기도 하다. 내 한 목숨 죽으면 그만인데 카메라가 무슨 필요가 있나. 그러나 단 하나뿐인 인간의 목숨 값을 생각할 때, 캐논 카메라 한 대, 참 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 이 전쟁터에서 살아나가는 놈이 장땡이다. 나는 용케 오늘도 살아있다.'

36, 피의 3A 도로

놈들은 며칠 전 누에고지를 공격을 하다가 역공을 당해 큰 피해를 입었다고 보복행위로 치사하게 송유관이나 폭파하고, 전신주를 넘어뜨리고, 도로에 TNT와 부비트랩을 설치한다. 어쨌건 놈들이 더 큰 도발을 하기 전에 소탕해야 할 텐데 ... ,

줄기차게 내리는 비로 교통호와 개인호들이 계속 무너지고 있다. 이 와중에 대민지원을 해야 하고, 정말 심신이 피곤하다. 엎친데 겹친다고

대대장이 찾아와 사격측정을 하겠단다. 피로에 지친 병사들 사기가 완전 땅바닥이다. 월남전 정말 피곤하다.

'정말 웃기고 자빠지셨네! 어디 한밤중 매복에서 조준사격하나? 한심하게 까는 소리만 하고 계시네.'

죽어라, 죽어라 한다더니 비는 잠시도 쉬지 않고 내리는데 또 3박4일 매복이다. 아직 분대장이 공석이라 3분대 곽 병원 병장을 지원받아 나갔다. 비를 맞으며 매복지에 진입하기는 여간 서글픈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빗소리에 풀 섶 스치는 소리가 묻혀 이동이 다소 안전한 이점이 있기는 하다. 쏟아지는 빗속에 진입하여 자리를 잡고 앉았다.

비 오는 날 매복은 오히려 판초를 벗고 비를 맞으며 앉아 있어야 한다. 판초에 투닥 투닥 비 떨어지는 소리에 위치가 탄로 날 수가 있다. 맨살에 맞는 빗줄기가 아플 정도로 세게 내린다. 이대로 3박4일을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참말로 환장할 지경이다. 생각 같아서는 날 죽이라고 뛰쳐나가 고함치며 내닫고 싶다. 고참인 나도 그런데 신참들이야 오죽 하겠나.

두 밤을 새워도 놈들은 기척이 없다. 모두들 감기가 들었는지 기침을 해댄다. 수건으로 입을 막고 기침소리를 죽여보지만, 느닷없이 터지는 기침소리에 몇 번이나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낮에 목동들에게 위치를 들켰다. 소 한 마리가 갑자기 매복지로 들어온 것이다. 목동이 소를 잡으러 왔다가 우리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중대장에게 보고하고 철수했다.

OP로 돌아오니 그 사이 소대장이 바뀌었다. 정말 황당하고 서운 하다.마음도 맞고 참 좋은 소대장이었는데 ... ,

새로 부임해온 소대장은 학훈단(ROTC) 출신으로 부산 사나이다. 일단 상견례를 마치고 벙커로 돌아왔다. 정글화를 벗으려 해도 벗기지 않는다. 물속에 오래 있어서 살이 불어 터진 것이다. 할 수 없이 칼로 끈을 잘라내고서야 벗을 수 있었다. 양말을 벗어보니 발도 말이 아니다. 퉁퉁 불은 발등을 손톱으로 긁으니 살점이 뚝뚝 떨어진다. 샤워를 하고 불어터진 몸에 약을 바른 후 모두 잠자리에 들었다.

그 동안 공석이었던 분대장이 충원 되었다. 무척 반가웠다. 고향이 안동인 김 성하 하사. 이미 결혼을 해 고국에 처자식이 있단다.

'김 영곤 병장! 그간 고생 참 많이도 했다. 분대장도 없이 신병들 데리고 전투 치르느라고 ... ,'

그나저나 고민이다. 중대장도 충무무공훈장을 수훈하고 소령으로 진급하여 귀국해 버리고, 육사 출신 중대장이 새로 부임했다. 그러고 보니 약 20일 사이에 내 직속상관 전부 다 바뀌었다. 아이 아빠 분대장, 학훈단 출신 소대장, 육사 출신 중대장 그리고 사단장에 주월 사령관까지 모두 월남신병(?)인 것이다. 오직 전과에만 눈이 어두운 대대장만 빼고 모두 물갈이됐다.

역시 우려했던 고민이 현실화 되었다. 월남신병 지휘관들, 신병 티낸다고 취임행차가 요란하다. 이 전쟁터에서 지시사항이 어찌 그리도 많은지, 미치고 폴짝 뛰겠다.

일조일석 점호 취해라. '허허! 이 월남 전선에서 탈영할 놈 누가 있다고?' 태권도 연습해라. '월남전 7개월이 넘도록 아직 태권도로 백병전 한 번도 못해 봤다.' 복장 단정히 해라. '그래 복장 단정히 하고 땡볕에 10분만이라도 서 계셔 보시지 ... ,'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이거 월남전 종 친 것 아니야? 앞으로 고생 많이 하게 생겼다. 그런들 어쩌랴? 우리 같은 졸병들이야 위에서 지시하는 대로 대가리 처박고, 까라면 까는 수밖에 없다. 해도 해도 너무 한다. 거기다 한 술 더 뜨는 우리소대장. 완전 물건(?)이다.

부임하고 째째산으로 첫 매복을 나가게 되었다. 이 물건 가라사대, 1인당 2발씩 갖고 나가던 크레모어를 4발씩 지참하라고?

'한 번만이라도 크레모어 설치는 해봤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매복 나가기 전에 기지 밖으로 나가서 매복 예행연습을 하잔다. 벌건 대낮에 소대원들을 째째산으로 데리고 가서 예행연습을 하잔다. 매복이 뭐 '국군의 날' 기념행사인 줄 아나? 자기 새끼들 다 쥑일려면 무슨 짓인들 못 하겠나. 째째산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면서 대낮에 드러내놓고 매복 나간다고 적들에게 광고를 해? 참말로 조개 껌 씹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뭘 모르면 그 잘난 권위의식 갖지 말고 아니꼽더라도 고참병들한테 한 번 물어나 보던지 ... , 앞으로 생사람 여럿 잡게 생겼다. 그나저나 이 꼴통신병들 틈바구니 속에서 내 모가지나 잘 잡도리해야 할 텐데 ... ,

어쨌건 이 전쟁터에서 살아나가자면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어수선한 가운데 사고가 터졌다.

여느 때와 같이 3A도로정찰을 시작했다. 과부촌 앞 3A교량을 막 지났을 때였다. 커브지점의 독립수(獨立樹) 쪽에서 폭음과 함께 불기둥이 솟았다. 검은 연기가 자욱하다. 도로정찰을 중단하고 급히 달려갔다. 우리가 미처 도로정찰을 하기 전에 운행수칙을 무시하고 운행하던 민간인 삼륜차가 당했다. '람브로 550'이 완전 분해된 채 나뒹굴고 있었다. 아침 일찍 띵장 마을 주민들이 똥포 삼거리 아침시장에 농작물을 팔러 나가던 차였다.

TNT로 만들어 설치한 부비트랩에 당항 것이 분명하다. 순간 등골이 오싹해 진다. 어쩌면 우리가 당했을지도 모를 텐데 ... ,

현장은 완전 지옥의 참상이다. 운전사와 옆에 탄 꽁까이는 팔다리가 날아간 채 저만큼 나가 떨어져 죽어 있고, 뒤에 탄 10여명의 여인들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모습들이다. 얼굴과 한 쪽 가슴만 남아 있는 사람, 하체가 완전히 없어진 사람, 온몸이 갈가리 찢긴 사람 등 등.

주위에는 살덩어리, 팔다리, 광주리, 과일, 채소들이 마구 흩어져 있고 피비린내가 진동을 한다. 떨어져 나간 허벅지에 노란 기름이 엉켜있는 걸 보고 나도 모르게 구역질이 나서 혼났다. 전쟁터를 누비며 그 많은 시체들을 보고 만져왔던 내가 구토를 할 정도이니 ... ,

지역 농민들이 통상 아침시장에 농작물을 팔려고 일찍 나가는데, 오늘따라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고 가다가 이렇게 변을 당한 것이다. 놈들이 설치한 부비트랩에 우리 대신 당한 것이다. 소식을 듣고 마을 주민들이 달려왔다. 가족을 확인하고는 반쪽만 남아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시신을 안고 몸부림친다.

차마 눈뜨고 못 볼 광경이다.

'천벌 받을 놈들! 띵장 마을 사람들 다 자기 편인데 말이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오전 중에 빈캐, 안캐까지 번졌다.

이번만이 아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3A도로에서 놈들이 매설한 부비트랩에 목숨을 잃었는지 모른다. CP 인사계와 서무계, 운전병이 중대OP에 왔다 돌아가다 3A교량이 폭파되는 바람에 순직했고, 놈들의 로켓포와 직사포 공격으로 3A교량 관망대가 파손되면서 2명의 사상자를 냈다. 미군과 월남군 차량은 헤아릴 수 없이 당했으며, 미군 특수부대 전차까지 날아 가버린 적도 있었다. 우리가 발견해 터뜨린 것만 해도 수도 없다. 워낙 악명 높은 곳이다 보니 군수부대인 십자성부대 수송차량은 아예 이곳으로 들어오려고 하지 않는다.

중대장과 소대장이 병력을 인솔해 와서 사체 수습을 도와주었다. 흩어진 시신의 살점들을 한 곳에 모았다. 울부짖는 가족들과 친지들의 동의를 받아 불에 태워버렸다. 종일토록 구역질이 나서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37, 적시 출(摘時 出)

급수차 선임탑승이 내키지 않지만 순번대로 나가기로 했다.

처참하게 희생된 민간인들을 본 후 마음이 편치 않다. 슈와네는 그런대로 생활형편이 괜찮은 편이지만 슈와 아버지가 항상 마음에 걸린다. 낡은 자전거가 언제나 마음 쓰였던 것이다. 마음 크게 먹고 새 자전거 한 대 사주기로 했다. 그래서 급수 받으러 가는 길에 빈캐시장에 들렀다. 위병소에 내려놓은 새 자전거를 타고 슈와 집에 갔다. 슈와는 자전거를 탄 내 모습을 보고 눈이 동그랗다. 슈와를 뒷자리에 태우고 떵하이 마을 쪽으로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슈와는 내 허리를 꼭 껴안는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 목덜미를 스치고 슈와의 긴 머리칼을 날린다.

한 바퀴 돌아 슈와 집 마당으로 들어섰다. 부모님과 동생들이 마당에 나와 걱정스레 지켜보고 있다. 두 손을 모아 인사하고 안심시켰다.

새 자전거를 슈와 아버지에게 건네면서 타보라고 했다. 슈와 아버지는 사양하더니 슈와가 권하자 자전거에 올라 마당을 한 바퀴 돌았다.

"김 병장님! 김 병장님!"

민 경래 상병이 뛰어오면서 불렀다. 슈와한테 철모를 받아쓰고 총을 잡았다.

"빨리 가야겠습니다. 대대장님이 곧 중대에 도착한답니다."

"그래?"

신임 중대장 부임 이후 처음이다. 사단장 역시 새로 부임한터라 곧 대대를 방문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대대장은 첫 방문하는 사단장에게 전과를 올려 선물을 안겨드리자는 간곡한 당부를 하러 온 것이다.

"우리가 이 멀리 월남 땅까지 와서 피를 흘리는 것은 세계 자유 수호를 위한 것이다. 세계 자유 수호는 곧 공산 침략으로부터 우리나라를 지키는 것이다. 힘이 들더라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맹호전사로서 매복에 임하여 혁혁한 전과를 올려 주기를 바란다. 반드시 이번 매복에서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믿는다. 이상!"

'개 풀 뜯어 먹는 소리 하고 있네. 입버릇처럼 말하는 조국애는 별 감동이 없다. 그러나 신임 사단장방문기념 제1호 전과! 그건 구미가 당긴다.'

아무래도 적기에 적시타를 때리기로는 전통의 2중대 3소대가 아닌가. 그 중에서도 우리 1분대. 한번 해볼 만하다. 똑똑한 소대장만 제발 가만히 있어주기만 한다면 말이다. 째째산으로 목표를 잡았다. 누구도 가기 꺼려하는 째째산. 그러나 그만큼 잡을 확률도 높은 곳이다. 우리는 이미 적들의 주요 이동로를 모두파악하고 있다. 째째산에 자리 잡은 지 2일째다. 먼동이 트자 신속히 아침식사를 마쳤다.

09시경, 무전기 배터리를 교체하고 있는데, 옆의 최 봉석 병장이 옆구리를 쿡 찌른다. 돌아보니 'V자'를 그려 보이며 손가락질을 한다. 전방에 두 놈이 총을 맨 채 끄덕끄덕 오고 있는 게 아닌가. 아예 저네들 세상이라고 활개를 치며 돌아다니는 꼴이다. 뒤에 오는 놈은 등에 작은 짐을 지고 있다. 신속히 크레모어 격발기의 안전핀을 풀었다. 놈들은 이미 크레모어 사선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게 바로 '적시 출' 이라고 하는 거다.

크레모어 격발기에 손을 올려놓고 기다렸다. 한참 정신없이 오던 놈들이 문득 고개를 든다. 뭔가 이상한 예감이 들었던 모양이다. 바로 우리와 눈이 마주쳤다. 놈들은 싱긋이 웃으며 손을 흔드는 것이 아닌가.

'야! 요놈들 봐라. 간 크게 노네?'

우리도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순간 놈들이 홱 돌아서 뛰었다. 확실히 웃기는 놈들이었어. 그대로 격발기를 눌렀다.

"콰쾅! 쾅!"

자욱한 연기가 걷히고 쓰러져 있는 두 놈이 보인다. 총 한 방 쏘지 않고 크레모어 한 방으로 두 놈을 깔끔하게 처리한 것이다. 우리 좌측에 자리 잡았던 소대장이 발바닥이 보이지 않게 달려왔다. 쓰러진 놈들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우리 소대장, 이런 상황 처음 구경 했을 거다.'

급히 무전기 배터리를 교환하고 'ON' 스위치를 넣었다. 은하수를 호출하는 소리가 요란하다. 무전망이 난리 났다.

"촌놈 둘 사살, 작대기 둘 확보. 이상!"

상황보고 하는 최 봉석 병장 목소리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우리 중대장과 소대장 부임 첫 전과를 올린 셈이다.

'중대장도 지금 좋아서 제 정신이 아닐 거다.'

실로 전통이란 이렇게 무서운 거다. 운도 실력이라 하지 않던가. 벌건 백주 대낮에 '날 잡아 잡숴' 하며 걸어와 싱긋 웃으며 손까지 흔들어주고, 이렇게 전공을 세우고 칭찬까지 받게 해주니 말이다. 햐! 요 귀여운 녀석들 하고는 ... , 매복을 나와 늘 허탕만 치다가 오랜만에 한 건 했다. 우리가 상황보고를 하는 시점에 마침 사단장이 탄 헬기가 대대 헬리포트에 내리고 있었나 보다. 영접 나가던 대대장이 무전망에 등장했다. 한껏 고무되어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헬기를 보낼 테니 무조건 대대로 오라는 것이다. 상황처리를 끝내고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근처에서 대기라도 한 듯 APC가 총알같이 도착했다. 사단장에게 직접 확인시킬 모양이다. 시체와 노획품을 실어 보냈다.

뒤이어 헬기가 요란하게 'All Along The Watchtower'를 울리며 날아왔다. 이미 소문을 들었는지 기총사수 마이클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우리는 헬기에 몸을 싣고 대대로 직행했다. 헬리포트에는 중대장이 미리 와서 활짝 웃으며 반겨주었다. 웬 일로 대대본부 요원들이 군장을 다 받아준다. 살다 살다 별 일 다 보겠네!

"또 너희들이야?"

하며 대대장도 기분이 좋은지 일일이 악수를 하며 등을 두드려 주었다. 참,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어이! 어쩐 일이야? 국가와 민족을 걱정하는 우리대대장, 평소 같으면 두 놈 정도는 콧방귀도 안 뀌는데, 우리 오늘 확실하게 국가와 민족에게 공헌한 것 맞아?"

대대본부 막사 앞에서 우리소대장이 사단장에게 직접 전과보고를 했다. 월남신병 우리소대장은 첫 전과보고인지라 무척 흥분해 있다. 목소리는 경상도 사나이답게 씩씩하다. 그런데 우리 귀에는 '와 이래 떨리노?' 하는 것처럼 들린다.

자리를 옮겨 식당으로 갔다. 사단장과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새로 부임한 사단장은 내가 월남 오기 전 소속인 2사단장이었다. 식사 후 소대 선임하사로부터 브리핑을 받다가 사단장이 갑자기 물었다.

"너 어느 부대 출신이야?"

두 달 전까지 우리분대장이었던 장 필호 중사는 부동자세로 거수경례를 하면서 큰 소리로 대답했다.

"2사단 31연대입니다!"

사단장은 벌떡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아, 그래. 반갑구나!"

아마 자기 휘하에 있던 하사관이라 기분이 더욱 좋았던 것 같다.

"저희 소대에 2사단 출신 두 명 더 있습니다!"

장 중사는 악수를 하면서 또렷하게 말했다.

"그래~애! 누구야? 이리와 봐."

나와 서 재윤 병장이 일어나 사단장 앞으로 갔다.

"산악!"

우리는 2사단 구호를 외치며 씩씩하게 경례를 했다.

사단장은 '어! 이놈들 봐라.' 하면서 무척 기분이 좋은지 우리 셋을 옆자리에 앉도록 하고, 2사단 시절의 소속을 물었다. 나는 31연대 11중대 통신병으로 '김 신조 사태' 후 군단 내 '공중기동 타격중대' 출동시범을 1군사령관 앞에서 보였고, 울진 무장공비 토벌작전과 그때 생포한 '조 응택' 이야기도 했다. 사단장은 그 당시의 상황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사단장은 '아! 맞아, 내가 약속대로 돼지 잡아 회식 시켜 줬지.' 하면서 기분이 무척 고조되었다.

그동안 수많은 작전을 치렀을 터이지만 오늘은 그래도 또 특별하게 여겨지는가 보다. 월남부임 후 우리대대 방문하는 날, 환영 전과를 올렸으니 말이다. 기분이 좋아 모두에게 잔을 채우게 했다. 그리고는 건배를 제의했다.

"자! 맹호!"

"파이팅! 파이팅! 파이팅!"

모두들 오랜만에 맛있는 식사에 술로 화끈하게 기분을 풀었다.

돌아오는 길. 대대장은 선물을 한 아름 안겨주었다. 중대장도 완전히 기분 만 충전이다. OP로 돌아와서 또 회식을 했다. 모두 휴게실에 모여 마시고 춤추고 노래 부르며 맘껏 기분을 풀었다.

"허리에 권총을 붙들어 매고 데리고 가주세요 / 월남 땅으로 데리고 가는 것은 좋지요마는 / 여자는 서지 않는 전선이라네 / 야~야!야!야!.

소령 중령 대령은 호텔방으로 / 소위 중위 대위는 여관방으로 ... "

38, 빈캐시장

중대 수색작전이다.

신임 중대장이 부임한 후 첫 중대단위 작전인 것이다. 중대장은 나름대로 주변 지형을 익히려는 것 같다. 바슈엔산 수색작전은 이제 산책이나 다름없다. 마침 날씨도 시원해서 나들이 하는 기분이다. 천천히 걸으며 신임 소대장에게 주변지형과 지난날의 마대 포 공격과 교전들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소대장은 남의 이야기 듣듯 한다. 계급이라도 낮으면 '야! 임마, 정신 똑바로 차려 내말 잘 들어, 그렇잖으면 나중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해. 알아?' 라고 한 마디 해 주었을 텐데 ... ,

가벼운 마음으로 산등성이를 훑어 내려오는데 갑자기 무전망이 시끄럽다. 3A교량 상류에서 부비트랩이 터져 목동이 다치고, 동시에 과부촌 입구에서도 부비트랩이 터져 월남군 차량이 대파되고 2명이 부상을 당했단다. 그나저나 내 코가 석자다. 앞으로 1주일간 급수차 선임탑승을 해야 하는데 자꾸 사고가 터지니 걱정된다.

빈캐시에는 연대본부가 있고 연대본부 가기 전에 시장이 있고, 시장가기 전 12교량에서 취수 및 정수한 식수를 연대 산하 각 부대에 공급한다. 우리중대에서 약 20km 떨어져 있다. 중대에서는 당번제로 고참병이 선임탑승을 한다. 운전병 외 4명의 경계병을 인솔해 매일 두 차례 급수작전을 한다. 내일부터 선임탑승이 내 차례인데 자꾸 사고가 터지고, 놈들의 기습이 또한 잦으니 걱정이다. 하기야 OP에 있다고 죽을 놈이 안 죽던가! 어차피 이판사판 아닌가. 기지에 갇혀 있는 것보다야 빈캐시장에 바람 쐬러 나가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자.

중대장의 첫 작전. 바슈엔산 수색은 득도 실도 없이 끝났다. 그냥 월남신병들 지형정찰 한번 시킨 것으로도 충분하다.

급수차 선임탑승을 하면서 경계병들에게 주의사항을 전달하면서 무장점검도 했다. 유 성종 상병도 오늘 경계병으로 나간다. 유 상병은 출발 전부터 마음이 좀 들떠있는 것 같다.

"유 상병, 오늘 기분 좋아 보이는데 빈캐시장 한번 들러야겠네."

"하모요. 그거 하나 보고 가는 건데."

"야! 임마 조심해. 여자 밝히고, 돈 밝히고, 훈장 밝히는 놈치고, 월남서 살아나가는 놈, 한 놈도 못 봤어."

"에이, 김새게 또 그 소리 ... ,"

우리는 언제나 급수장 가는 길에 빈캐시장부터 먼저 들른다. 늘 반복되는 수색과 매복생활에서 민간인들로 와글대는 시장 구경은 큰 즐거움이 되고, 가슴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에 딱 좋다. 전쟁터 가까이 있는 시장에는 대포부터 여자까지 팔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한다. 그야말로 볼거리, 살거리 천지다. 물론 베트콩도 있을 것이고, 첩자도 지천에 깔렸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관심은 역시 여자다.

우리 같은 전투병들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이 하루하루 총질로 넘긴다. 목숨을 내놓고 살다보니 그만큼 성적욕구도 강해지는가 보다. 누구랄 것 없이 가슴에 뭉친 것을 폭발시키듯 분출하고 싶은 성욕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나야 뭐 슈와가 있으니 몸 파는 여자 따위야 전혀 관심 둘 바 없지만 ... ,

"어이! 라이 라이. 붕붕 오케이?"

"오빠! 씹 안 해?"

"헤이! 따이한. 깰롱 좋아!"

중앙 통로를 지나가면 아가씨들이 눈웃음치며 호객을 한다. 꽁까이들은 여성 성기를 뜻하는 월남 말 '깰롱' 뿐만 아니라, 어디서 배웠는지 낯 뜨거운 한국말을 잘도 지껄인다. 어떤 꽁까이들은 꼬부린 검지와 중지 사이에 엄지를 끼우고 흔들며 호객하기도 한다. 이곳 매춘시장은 완전 성업 중이다. 시장통로를 중심으로 왼쪽 하우스는 한국군, 오른쪽 하우스는 미군 전용 하우스다. 굳이 그렇게 지정한 것은 아니지만, 언제부터인가 취향(?)에 따라 그렇게 드나들게 되었다. '숏 타임' 화대는 월남 꽁까이는 5불, 혼혈 아가씨는 10불이다. 가난한 한국군은 5불짜리가 많은 왼쪽, 사정이 좋은 미군은 10불짜리가 주류인 오른쪽이 된 것이다.

그렇게 구역(?)이 정해지니 좋은 점도 있다. 연대 의무중대에서는 언제나 병사들의 성병이 골칫거리였다. 그러나 자연스레 구역이 정해지고부터는 한국군이 자주 드나드는 왼쪽 하우스에 의무중대에서 주기적으로 꽁까이들에게 성병검사를 하고 감염자 치료도 해준다. 그러니 병사들도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어 좋고, 포주들도 좋아하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주 가는 병사들은 단골이 정해지고 서로 정이 들어 연인 사이가 되기도 한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 한국군 병사와 사랑에 빠진 꽁까이가 있었다. 두 사람은 만날 때마다 깊은 사랑을 나누었다. 어느 날 꽁까이가 물었다.

"자기야, 자기처럼 잘생긴 미남을 따이한 말로 어떻게 불러?"

"개새끼!"

"그럼, '사랑해'는?"

"조까네!"

두 사람은 만날 때마다 '개새끼' '조까네' 하면서 사랑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따이한 병사가 귀국을 하게 되었다. 꽁까이는 부두에 서서 떠나가는 배를 향해 눈물 닦으며, 손수건 흔들며 울부짖었다.

"개새끼~~~, 조까네~~~" -

달러를 만지기 힘든 우리 가난한 병사들은 물품으로 화대를 치른다. 자기 정량인 C-레이션을 아껴 1박스, 또는 담배 5보루가 '쑛 타임'의 화대로 거래되는 물품이다.

"김 병장님! 다녀오겠습니다."

경계병으로 따라 나온 유 성종 상병이 차에서 내려 달려간다.

"야! 너, 그거 할 때 총 잡고 해!"

농담 삼아 한 마디 던진다. 한 때, 빈캐시장이 어수선할 때 기분 풀러 들어간 병사가 총을 집어가도 모른 채 그 짓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곳에서 총이나 대검을 머리맡에 두지 않으면 낭패 당하는 수가 있다. 자칫 도난당할 수도 있고, 베트콩이 급습해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매춘 꽁까이들에게 왜 이런 짓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돈을 벌어 결혼하기 위해서라도 했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전쟁 통에 젊은 남자들이 귀한 탓에 돈이라도 많아야 좋은 남자를 차지할 수 있단다. 참 슬픈 현실이다.

유 상병이 볼 일을 볼 동안 어슬렁거리며 시장구경에 나섰다. 열대과일과 야채들을 무더기로 쌓아놓고 파는 가게들도 있고, 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군용물품을 파는 가게들도 줄지어 있다. 헬기하고 장갑차 빼고는 다 살수 있다는 말이 빈 말이 아닌 것 같다. 한국에서 공수해온 식료품이나 잡화를 파는 가게도 더러 있다.

"오빠! 이거 좋아!"

아직 소녀티를 벗지 못한 꽁까이가 '명랑' '아리랑' 잡지를 들고 펼쳐 보인다. 고국에서 건너온 잡지들은 2, 3개월 지난 것들이다. 그래도 고국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잡지들은 병사들에게 인기 독차지 한다. 특히 섹시한 여배우들의 화보는 모든 병사들의 연인이다. 화보는 관물함에도 붙어있고, 화장실도 장식한다. '명랑' 잡지 한 권을 샀다. 건너편 잡화점 앞에서는 재미난 입체사진을 흔들며 부른다. 사진인데 움직이는 각도에 따라 윙크도 하고 웃기도 한다. 입체사진은 동생들과 펜팔 아가씨들에게 보내면 아주 좋아한다. 이것도 몇 장 샀다. 그리고 일본제 브래지어와 팬티 한 세트를 샀다. 레이스를 수놓은 하얀색 팬티와 브래지어는 슈와에게 잘 어울릴 것 같다.

장보기를 마치고 주차한 곳으로 왔다. 유 상병이 차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고 있다.

"야! 벌써 나왔어? 토끼 새끼야?"

"김 병장님, 뭘 그렇게 잔뜩 샀어요?"

유 상병은 봉지를 받아들고 슬쩍 벌려본다.

"우와! 브래지어!"

"야! 인마, 손대지 마. 부정 타!"

"누구 줄려고요? 슈와?"

"..."

"목숨 바쳐 번 돈 슈와한테 다 갖다 바치네."

"짜아식이 ... , 헛소리 하지 말고 경계나 잘해. 요즘 계속 터지는 거 봤지?"

OP로 돌아온 후 곧바로 슈와한테 갔다. 빈캐시장에서 산 것과 담배, C-레이션의 과자류, 캔 맥주 등을 챙겼다. 물론 위병소를 나올 때는 근무 중인 후진에게 만약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알려달라고 일러두었다. 이젠 기지 내에서는 나와 슈와의 로맨스가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버렸다. 슈와 집은 위병소에서 바로 보이고, 걸어서 2, 3분 거리다.

집 가까이 가자 밖에서 놀던 동생들이 달려와 매달렸다. 슈와 어머니는 미소로 맞아주며 슈와를 불렀다. 방에 있던 슈와가 나와 철모를 받아준다. 마치 외출에서 돌아온 남편을 맞이하듯이.

'슈와는 지옥 같은 전쟁터에서 한 떨기 연꽃이다.'

39, 신임 소대장

오랜만에 소대 매복이다.

매복지점은 유방고지와 째째산 사이의 여러 통로를 차단할 수 있는 곳을 잡았다. 그런데 신임 우리분대장 김 성하 하사가 갑자기 말라리아에 걸려 후송을 가는 바람에 소대장이 우리 분대와 함께 매복에 임했다. 매복 진입은 다른 작전을 하는 것처럼 팅손 마을(과부촌) 뒤를 돌아 진입하기로 했다. 이곳은 목동들이 자주 다니는 길이다. 이 마을 주민들 일부는 소규모 목축도 한다. 기껏해야 소 2, 30마리 정도다.

아이들은 아침에 소떼를 끌고 산 아래 목초지를 돌아다니며 종일 풀을 뜯어 먹이다가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들은 점심으로 주먹밥에 젓갈 반찬을 비닐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그리고 이 어린 것들이 담배를 무척 즐기는 것이다. 말린 엽연초를 잘게 썰어서 담배 페이퍼에 말아 피운다. 그 독한 것을 어떻게 피우는지 모르겠다.

마을 앞을 지나갈 때나 작전 중에서도 아이들을 자주 만난다. 이 아이들은 우리 한국군을 만나면 '헤이! M, 헤이! M' 하며 검지와 중지를 펴 입에 대는 시늉을 하면서 담배를 달라는 것이다. 'M'이 왜 담배인지는 알 수 없지만, 6.25 전쟁 직후, 내 어린 시절 미군들을 따라다니며 '헬로! 기브 미 쵸코렛' 하면서 껌과 비스킷을 얻어먹던 기억들이 떠올라 기지 밖으로 나갈 때는 항상 담배 몇 갑을 넣고 나가서 나누어 준다.

이번 매복 작전을 마치고 크리스마스는 기지에서 쉴 수 있도록 해준다기에 산뜻한 마음으로 출발했다. 지금은 한창 비가 올 철이지만 날씨가 좋아 비는 맞지 않을 것 같다. 제멋대로 자란 나무사이로 길을 터면서 진입했다. 땡볕아래 정글을 헤쳐 가는 일은 정말 죽을 고생이다. 진입로를 만들고 주위를 경계하며 가자면 땀도 많이 흐르고 호흡도 가빠진다. 숲속은 역시 폭격과 포격으로 박살난 놈들의 시체 썩는 냄새에 머리가 다 지끈거린다.

'기분 더러운 째째산.'

매복지점에 도착하여 분대별로 자리를 잡기로 했다. 똥포 마을에서 정상으로 난 길은 2분대가, 유방고지에서 똥포 마을 가는 길은 화기분대가, 정상에서 똥포 마을과 과부촌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는 3분대가 맡았다. 우리1분대는 유방고지의 젖무덤 사이를 차단키로 했다. 그곳에 새로 난 길을 발견했다.

매복지에는 마침 앞이 확 트인 꽤 넓은 바위틈이 있었다. 이곳을 취침호로 정하고 위와 앞을 나뭇가지로 위장했다. 크레모어 설치를 끝내고 분대원들은 잠시 휴식을 취하게 했다. 그동안 나는 소대장과 주변 지형정찰을 나섰다. 유방고지의 봉긋 솟은 두 개의 봉우리가 시야에 들어온다. 언뜻 그녀의 풍만한 젖무덤을 연상케 한다. 새로 난 길을 살펴보니 놈들이 최근에 다녔던 것 같다. 예감이 좋다.

일단 분대원들을 모아놓고 매복수칙을 다시 한 번 주지시켰다.

"첫째는 인내, 둘째는 침착. 어떤 경우에도 이동하지 말고 말도 하지 않는다. 대화는 손짓, 나 하나의 실수가 전우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알았지?"

아직 월남신병인 민 경래 상병과 천 기성 일병을 단단히 일러 경계병으로 내보냈다. 잠시 후 천 일병이 바짝 낮춘 자세로 돌아왔다. 6, 7명의 적이 좌측 유방 7부 능선에서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밖으로 나가 살펴보니 놈들의 움직임이 보인다. 일단 민 상병도 철수시켰다.

모두 정숙을 지키도록 하고 크레모어 격발기 안전핀을 풀었다. 놈들이 똥포 마을로 가지 않으면 틀림없이 이 길을 지나갈 것이다. 내 판단이 틀림없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어떻게 된 걸까? 이제 다 내려왔을 텐데, 아무런 기척이 없다. 아직 해가 지려면 두어 시간 있어야 한다. 설마 놈들이 야음을 기다리는 걸까?

'기다리자. 곧 나타나겠지.'

그러나 소대장이 조급증을 낸다. 자꾸 시계를 들여다보며 목을 빼고 살핀다. 급기야 소대장은 민 상병과 천 일병을 관측병으로 내보내려 한다. 앞쪽에 펼쳐진 개활지 건너 언덕으로 가서 놈들의 동태를 살피라는 것이다.

'턱도 없는 짓이다.'

이제 곧 나타날 시간이다. 그 새를 못 참다니 ... , 뭘 몰라도 한참 모른다. 매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번 앉은 자리에서 절대 움직이면 안 된다. 두 번째는 인내다. 거기에 한 가지 더 보탠다면 침착. 일단 자리를 잡으면 적이 있든 없든 이동하거나 위치를 노출 시켜서는 안 된다. 만일 매복 중에 적이 나타나더라도 유효사거리 밖이면 그냥 조용히 보낸다. 아군이 불리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10명의 적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 명의 아군 희생자를 내어서는 안 된다. 이건 우리 전쟁이 아닌 타국의 전쟁이니까. 월남에서 베트콩을 모두 몰아내건 그렇지 못하건 그것은 우리의 책임이 아니다. 다만 우리는 할당된 전술지역에서 암약하는 베트콩을 소탕하기만 하면 된다. 영웅을 꿈꾸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다. 자칫하다가는 모두 몰살당하는 수가 있다. 지금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고 말렸다. 소대장은 명령이라면서 두 졸병을 내보내려 한다.

"이 새끼들! 누구라도 한 발짝만 움직이면 죽여 버린다. 가만히 있어!"

총구를 민 상병의 정수리에 들이대며 나지막이 소리쳤다. 소대장은 그래도 막무가내다. 안경을 꺼내 끼더니 나가려고 한다. 나가면 안 된다. 건너편은 크레모어 사선 안이다. 만약 상황이 벌어지면 모두 희생당한다. 그러나 두 명의 부하들을 앞세우고 취침호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어쩔 수 없다. 말리지 않았다.

'사단장에게 전과보고 한번 하더니 간덩이가 부었나? 어이구, 저걸 소대장이라고 ... ,'

온몸에 힘이 탁 풀린다. 경험이 없는 탓이겠지. 실패한 뒤에는 땅을 치겠지. 그땐 이미 깨진 사발이 되겠지만.

후회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민 상병과 천 일병이 취침호 밖으로 나가다가 막 정글에서 개활지로 나오는 놈들과 바로 마주친 것이다.

"온다! 온다!"

천 일병이 소리치며 취침호로 뛰어든다. 뒤이어 민 상병도 하얗게 질린 채 허겁지겁 들어온다.

"이 새끼들이 ! 그냥 확! 어휴!"

눈앞이 캄캄해지고 완전 총 맞은 기분이다. 앞에 적이 나타나면 신속히 자세를 낮춰 은폐하던지, 상황이 급박하면 그대로 갈겨 버리던지 해야지. 뭐? '온다, 온다.' 소리치며 취침호로 소리치며 들어와? 분대원들 다 죽이려고? 와! 열불난다. 가슴이 답답하다.

"이 새끼들! 기지로 돌아가서 함 보자. 너들이 죽던지 내가 죽던지!"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대책이 서질 않는다. 일을 저지른 소대장은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 정말 미치고 폴딱 뛰겠다. 급한 대로 각 분대에 '적 출현'을 알리고 분대원들을 다독거렸다. 갑자기 온몸이 확확 달아오른다. 언제 역습 당할지 모른다는 압박감과 초조함 속에 눈에 핏발을 세워 살펴보았다. 혹시 다시 나타날까 기다리는 시간은 1분이 1시간 같다. 어떻게 되든 한 판 붙어버렸으면 싶다.

어둠이 서서히 내리기 시작한다. 놈들은 이미 우리를 피해 가버렸거나, 아니면 공격을 위해 어둠이 짙어지기를 기다리든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자리를 옮겨야 역습을 피할 텐데 이미 너무 늦다. 이윽고 화기분대에서 연락이 왔다. 방금 놈들이 유방고지 뒤로 넘어가는 것이 관측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놈들이 우리 후방으로 역습해올 가능성이 있다. 넋이 나가 입맛만 다시는 소대장을 무시해버리고 크레모어를 걷어왔다. 얼마 전 진급한 박 동식 병장과 눈짓으로 이동을 결정했다. 3개조로 나뉘어 이동하여 자리를 잡고 크레모어 설치를 한 뒤 운명은 하늘에 맡기고 꼬박 밤을 새우기로 했다.

자리를 옮겨 3개조에 크레모어 설치를 해주고 앉아 있으니 분통이 터진다. 얼마만의 매복에, 얼마 만에 만난 적이냐. 그것도 1개분대나 되는 놈들이 바로 코앞까지 제 발로 오는 것을 말이다. 그 뿐인가! 소대장이란 작자는 부하들 목숨을 지켜줘도 시원찮을 판에 사지로 몰아넣기나 하고 ... ,

"씨팔! 저걸 그냥 뒤에서 확 갈겨 버릴까보다."

박 동식 병장이 화가 나서 씩씩거린다. 참으로 이 지긋지긋한 생활 하루라도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더럽고 아니꼽고. 자기가 아무리 소대장이라지만 이럴 땐 고참병 부하의 말도 한 번쯤 새겨들어 줄만도 하지 않는가! 여기가 어딘가? 이름만 들어도 머리털이 곤두서는 째째산이 아닌가. 놈들의 주 활동무대가 아닌가.

대낮에 매복예행 연습 시키는 것까지는 참아준다고 치자. 그러나 적을 앞에 두고 되지도 않은 고집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오는 적을 쫓아내고, 밤새 역습을 대비하며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게 하다니. 정말 소대장 꼬락서니 보기도 싫다. 빨리 귀국하고 싶다.

오만 잡념 속에 날이 밝았다. 중대장이 역습에 대비하여 병력을 이끌고 철수를 도우러 왔다. 전과 올려 마중 나와도 시원찮을 판에 철수 지원을 나왔으니 마냥 고개를 못 들겠다. 모두 비루먹은 강아지마냥 땅만 내려다보며 기지로 돌아왔다.

'귀국 날짜까지 앞으로 100일. 저 인간 밑에서 내 목숨 부지 하겠나? 도저히 자신이 서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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