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笑而不答(소이부답)…제3회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 특선-이원달

사람이 할 말이 있어도 그냥 웃어넘겨야 할 경우가 있다.

지난 사월 초, 먹던 약이 떨어져서 두 달 만에 병원을 찾아갔을 때였다. 여러 병원들이 한 건물 안에 모여 있어, 그 뒷마당에 공동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는데, 무단주차를 막기 위해서인지 전에는 없던 주차관리원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주차장에 들어서는 나에게 육십 대 전반으로 보이는 그 관리원은 주차권을 건네주면서 어느 병원을 방문했는지 확인도장을 받아오라고 한다.

그런데 3층에 올라가서 의사와의 면담을 마치고 주차장에까지 내려와서야 비로소 호주머니 속의 주차권 생각이 났다. 확인도장 때문에 다시 승강기를 타고 오르내리기가 번거로워 관리원에게 주차권 대신에 처방전을 보여주었더니, 그는

"비뇨기과에 다녀왔습니까."

하며 내 아랫도리를 슬쩍 훔쳐본다. 그러고는 궁금증이 발동한 듯 어디가 어떻게 안 좋으냐고 묻는다. 전립선 비대를 앓고 있다고 하자,

"아이고, 나도 전립선 비대입니다."

하며 반색을 한다. 同病相憐동병상련의 벗을 만난 것이 그리도 반가운 모양이었다. 이럴 때 가만히 있는 것도 실례인 것 같아서 나도 그의 증세가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마치 나에게 하소연이나 하듯 이것저것 자기의 딱한 사정을 늘어놓는다. 소변을 보아도 도시 시원치가 않으며, 특히 밤에는 수도 없이 화장실에 들랑거리느라 마누라와의 잠자리 기분까지 잡쳐버리니, 혹시 이러다 남자 구실까지 못하게 되는 것이나 아닌지 걱정된다는 등.

내가 겪었던 초기의 증상 그대로였다. 나는 자동차 출입이 거의 끊어진 늦은 하오의 시간이어서 그동안의 내 경과에 대해서 자세히 얘기하면서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하면 차차 회복될 것이고, 또 수술이라는 마지막 수단도 남아있어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일러주었다.

나의 말을 다 듣고 나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가 다시 말문을 연다.

"실례입니다만 금년에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무언가를 더 캐내려는 듯한 이 질문에 나는 바로 답을 하지 않고 도리어 내가 몇 살로 보이느냐 되물었다. 그는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다가 아무래도 얼추잡기가 쉽지 않은지,

"환갑은 넘으신 것 같고…"

하며 끝을 맺지 못한다. 이 과분한 착각에 내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팔순잔치를 치룬지 몇 해가 된다고 하자, 그는 적잖이 놀라는 기색이었다. 넉넉잡아 70대 초로 보이며, 흰 머리만 아니면 60대로도 보인다고 했다.

좋은 소리 들을 때 그만 물러가야겠다고 눈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는데, 그가 아직은 작별할 때가 아니라는 듯 "선생님" 하면서 나를 불러 세운다. 그러고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얼굴에 야릇한 웃음까지 지으면서 한마디.

"그건 잘 됩니까."

초면의 연장자에게 사생활의 은밀한 프라이버시까지 캐묻는 그의 당돌하기 짝이 없는 물음에 대해서 어찌 할까 잠시 망설이다 결국 나는 그냥 笑而不答하기로 하였다. 물론 '가까이하되 함부로 어울리지 않는' 和而不同화이부동의 군자다움을 보이자는 뜻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자발없이 "잘 된다."고 대답했다간 더 짓궂은 질문 공세에 시달릴 것이 뻔하며, 그렇다고 그 반대로 대답하자니,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하게 비칠 것만 같아 입을 다물기로 한 것뿐이다.

주차장을 빠져나와서도 내 마음은 그가 내게 던진 마지막 질문의 언저리를 내내 맴돌았다. 만약 내가 누군가의 곁부축이라도 받아야 할 노물이었다면, 그가 나를 어떻게 대했을까. 아마 그는 연민의 눈으로 나를 바라볼 뿐 아무런 호기심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얼굴에 야릇한 웃음까지 지으면서 야하디야한 질문을 주저치 않았던 까닭은 분명 그의 눈에 내가 아직은 그런 불쌍한 노물이 아닐 뿐더러 지금도 남자의 반열에 떳떳이 남아 있을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백발만 아니면 60대로도 보인다고 했는데, 그것이 한낱 공치사만은 아니었을 터이고…

어쩌면 제자랑 같기도 한 자문자답 하느라 얼마가 지났는지, 어느덧 땅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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