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돌아오지 않는 연어…제3회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 특선-도무웅

연어의 모천회귀(母川回歸)는 극적이다. 강에서 태어났으나 바다에서 살다가 어미가 되어 산란기가 되면 강으로 되돌아온다. 폭포를 거슬러 뛰어오르는 사생결단의 투쟁과 산란, 부화 후, 먹이를 찾지 못하는 새끼를 위해 자기 몸을 보시하는 어미의 헌신적인 희생은 감히 상상을 초월한다. 이 종족보존의 본능은 연어뿐 아니라 모든 생물의 기본 생태이기도 하다.

  이처럼 만물이 공존하는 자연에는 나름의 질서가 있다. 계절 따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며, 생태계의 법칙에 의해 생사가 아름다운 연결고리를 갖고 조화를 이루며 쉼 없이 순환한다. 그런데도 근간, 이와 같은 자연의 순리를 배격하는 돌연변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외국에 나가 사는 외아들이었다.

  세월의 순리인가, 노년에 접어들며 내 심신은 석양의 연 노을처럼 사위어가기 시작했다. 일에 대한 자신감과 체력에 한계를 느낄 무렵, 아들이 배턴터치를 하듯 사회생활로 접어들었다. 낯선 외국에서 직장을 얻고 한 사회인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결혼에 이어 손자까지 얻게 되었고 완연히 따로 한 일가를 이루어 살고 있으니 듬직하기가 천군만마였다.

  마침내 그러기를 햇수로 또다시 십 년, 정녕 마음 속 정년 나이를 이미 넘기고 있었다. 이때쯤이면 누구나 갖는 소망으로 힘든 삶의 멍에를 벗고 퇴임하여 쉬고 싶은 것이 순리요 희망이다. 그것이 삶의 보람이요, 기대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매사가 실타래 풀어지듯 쉽게 풀어지지는 않았다.

추석 명절에 찾아온 아들에게 새봄이 오면 귀국할 것을 제의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아들은 내 바람과는 달리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지금껏 그곳에서 닦아온 생활터전을 쉽게 포기할 수 없으며, 오히려 손자를 그곳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겠다는 배수진을 치는 것이 아닌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동안 이심전심, 자연스럽게 내 속마음을 알아주기를 기대했으나 믿은 도끼에 발등 찍힌 꼴이 되고 말았다. 심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글로벌 시대라고 한다. 빨라지는 소통문화의 덕으로 세계는 일일생활권으로 되어가고 교역은 더욱 활발해졌다. 그 틈바구니 속에서 자원이 열악하고 기술력도 부족하지만, 성실과 근면으로 이겨내면서 세계인과 더불어 어깨를 겨누어야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의 현주소다. 그 위에 커다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으니 시대에 맞는 생활사고 방식의 전환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외국어 학습 열풍이 조수처럼 밀어닥쳤다. 단순히 외국어 몇 마디 더 잘하고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는다고 모두 훌륭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웃이 이른바, '기러기아빠'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고, 심지어는 원정출산이라는 생소한 풍습마저 생기는 현실이었다. 아들 내외 역시 이러한 문물에 점차 젖어 들고 있었다.

서양에서는 우리의 정신문화를 더 많이 부러워하기도 한다. 외국에서 교육을 받는 것이 더 좋다고 볼 수도 없을 것이다. 연어가 넓은 대양에서 자란 후 회귀하듯, 아들도 돌아와 가업을 잇고 전통문화의 대를 이을 때 삶은 더욱 보람 있으리라 믿었다. 아들의 '귀국 불가'의 그 한마디 말은 내 자존심에 대못을 박고, 기대는 휴지조각처럼 힘없이 구겨져 버려지고 말았다.

  문득 학교 동기 K가 생각났다. 두 아들이 근년에 외국에서 돌아왔다는 그였다. 그의 조언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통화 후, 그의 회사에서 회포를 풀기로 했다. 오랜만의 해후였다. 악수할 겨를도 없이 차를 탄 채, 그는 호기 있는 손짓으로 차를 몰고 뒤따라오라고 했다. 비록 퇴색하긴 했으나 옛날의 그 목소리, 그 얼굴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 역시 이미 세월의 덧에 걸려 희끗희끗한 흰 머리카락에 젊은 날의 빛나던 안광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졸고 있는지 앞서가는 그의 차가 가끔 차선을 벗어나면서 약간씩 좌우로 흔들리기도 했다. 열정적으로 살던 그도 노년으로 접어든 세월과 함께 이제는 어쩌면 모든 것이 그렇게 흔들릴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퇴근 무렵으로 도로가 많이 붐볐다. 도심을 벗어나 한참을 달려가니 드디어 그의 회사가 나타났다. 매우 큰 규모였다. 이윽고 사무실에 도착하여 소파에 피곤한 몸을 털썩 던지고 웃으면서 그가 먼저 말을 끄집어냈다.

"이젠 우리도 지칠 수밖에 없네. 자네도 뭔 문제가 생겼다고 했던가?"

탄식 같은 술회였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사회 통념상 그는 분명 성공한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의 꿈을 실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무실 안의 잘 갖춰진 집기, 잘 정돈된 넓은 공장은 그 동안 그의 역정의 결실임을 충분히 말해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 위에 특히 이른바 자식 농사를 잘 지었다는 항간의 소문이 가장 내 관심을 끌고 있었다.

  그는 직접 공장의 구석구석을 안내했다. 만나는 직원마다 그에게 깍듯한 인사를 했다. 여유 있는 모습은 개선장군처럼 호기가 있었고 모든 것이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충분히 짐작케 해주었다. 그럼에도 처진 그의 어깨에서 청춘을 묻은 훈장이 오히려 약간은 짐스러워 보였다. 나이가 들면 놀라거나 감격할 줄 모른다고 했으니, 감성 수치가 낮아지기 때문인가.

  하지만 뒤늦게 이어지는 이야기는 너무나 뜻밖이었다. 그의 남은 삶의 목표는 종족보존의 본능으로 아들에게 사업을 대물림하는 것이라고 했다. 두 아들에게 3년째 경영 수업을 시키고 있으나 그들은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지 않으려 한다고 하지 않는가. 때문에 기운이 빠지고 많이 초조해하고 있었다. 동병상련의 아픔만 가슴에 저려왔다.

  지난날, 우리에겐 보릿고개가 있었다. 이는 지울 수 없는 정신적 상흔이며, 그 때문에 그 회한을 가진 우리는 빈곤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삶의 철학이 생겨났다. '눈물로 빵을 먹어보지 않는 사람은 꿈을 이룰 수 없다.'라는 지난날 가슴에 새긴 구호가 아직도 뇌리 속에 남아있지 않는가. 삶의 의지를 굳게 실천하기 위한 각오가 신앙처럼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저녁이 되어 그와 함께 소주잔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그 역시 모천회귀를 바랐으나 뜻대로 되지 않은 한 마리 연어였다. 한마디 탄식이 내 입에서 새어 나왔다.

"말을 강가에 끌고 갈 수는 있으나, 물을 먹일 수는 없다고 한 것 같네."

세상이 바뀌어 이제 연어는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다. 따로 그들의 길을 찾아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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