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락길을 걷는 날이다.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처음 가보는 곳이라 설레는 마음이 어린애다. 바람 한 점 없는 따뜻한 날씨에다 마치 여성의 아기집처럼 생긴 안온함이 육신사가 있는 마을 묫골에 깃들어 있다.
육신사(六神祀)는 조선 세종대왕의 손자요, 문종의 아들인 어린 단종 임금의 보위를 끝까지 지켜주려다 목숨을 바친 충신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곳이다. 박팽년, 성삼문, 이개, 하위지, 유응부, 유성원 등 여섯 분이다. 역적에 몰리면 내외척을 불문하고 삼대까지 멸족시킨다는, 듣기에도 소름이 끼치는 끔찍한 형벌이다. 이러한 때 박팽년의 후손만이 혈통을 잇게 되었다고 하니 그 내력이 궁금해진다.
이들 충신들의 가문이 위기에 놓여 있었을 때, 박팽년의 둘째 며느리인 성주 이씨가 임신을 해 있었다. 다행히도 이 씨 부인은 친정이 있는 대구 관아의 관노로 와 아이를 낳게 되었다. 때마침 친정 집안의 노비가 딸을 낳아 서로를 바꾸어 기르면서 간신히 멸족의 화를 면하게 된 것이다. 박팽년의 손자인 박비는 이 씨 부인의 친정집에서 노비의 아들로 길러지게 되었다. 노비(奴婢)의 아들이란 뜻으로 朴婢로 불러오다 뒷날 성종의 사면령을 받아 박일산이라 개명되었다. 이로 인하여 박팽년 집안만이 대를 잇게 되었으니 가히 하늘의 뜻이 아닐 수 없다. 이들 후손들이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내오다 선생의 현손인 박계창이 선생의 제사 전날 밤 꿈을 꾼다. 꿈에 사당문 밖에서 누더기를 입고 서성거리는 다섯 분들의 모습을 보았다. 이로 인하여 나머지 분들에 대한 제사도 같이 지내기 시작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육신사를 둘러보고 나니 문득 18대 조부이신 금은공(琴隱公) 선생의 일대기가 생각난다. 일찍이 포은 선생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오다 철인(哲人)을 살해해 가면서까지 새 나라를 세운 것은 살일불고(殺一不辜)하면 득천하(得天下)라도 불위(不爲)라 여겨 분개하셨다고 한다. 왕도의 정신에 위배된 이 씨 왕조의 처사를 보고 마뜩찮게 여긴 선생께서는 임금의 부르심에도 완강히 거절하고 향리에서 은거했다. 그러던 중 외적이 쳐들어 왔을 땐 조정에서 선생을 원수(元帥)로 등용하자 이에는 거절하지 아니하고 기꺼이 출정하여 승전의 큰 공을 이루셨다. 이 때 왜구의 소굴인 대마도까지 정복하였다는 기록을 보고 나니,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 일컫는 일본의 만행에 대마도도 우리 땅이라 외치고 싶다. 전란을 수습한 후에도 간곡한 등용의 기회마저 간곡히 사양하고 향리에서 후학 양성에만 힘쓴 분이다. 나라보다 자신의 영화만을 지키기 위하여 동분서주하는 처사들에 비긴다면 이 또한 의인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셔도 역사에 크게 뜨지 못한 것이 후손으로서 애석한 일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그려지니 가슴이 더욱 쓰려온다.
조선시대 동방 5현에 꼽히는 회재 선생께서도 "학문은 천인(天人)의 도(道)에 통하셨고 공적은 사직(社稷)의 업(業)에 존(存)하며 문무를 겸한 걸출한 분이시다."라고 칭하셨으니 가히 선생의 인품과 공적을 가늠하고도 남을 일이다.
선생의 피가 대대로 내려왔음인가. 선친께서도 일본에서 자금을 모아 독립운동에 힘쓰시는 숙부님을 도운 일이 있었으나 흘러가는 구름에 가려있어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삼족을 멸하게 되는 대역 죄인으로 몰린 가족은 물론이요, 당사자가 당해야 하는 참혹한 그 형벌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가끔 영화에서 보여주는 처참한 장면을 볼 때마다 고개가 절로 돌려지곤 한다. 그 무서운 극형에도 꺾일 줄 모르는 굳은 절의는 만고에 길이 빛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그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며 비를 세워 기리고 있음은 그 충신에 그 후예라 해도 그리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충효는 죽음도 초월한 숭고한 도덕적 관념을 지니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일 것이리라.
우리 선조께서도 불의로 왕조를 세운 이들에게 동조하지 않았지만, 외침이 있었을 때는 분연히 일어나 백성을 구하고 나라를 지킨 청사에 길이 빛날 의인이셨기에 정몽주 선생이 지은 시조 한 수로 추모에 대신한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약속을 헌신짝처럼 던져버리는 오늘날에 비하면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전범(典範)이 되지 않겠는가. 불의에 항거하고 자신의 안위보다 나라를 위해 홀연히 일어선 고귀한 정신을 보여준 분들의 넋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었기에 천여 번의 외침이 있어도 우리 민족이 이 땅위에 굳건히 자리하고 있음이리라. 꺾이지 않은 절개와 신의, 구민애국의 고귀한 정신을 기르기 위하여 우리의 조상들은 늘 푸른 소나무와 대나무를 즐겼을만하다. 부귀영화는 한순간이라도 숭고한 넋은 시간을 초월한다는 옛 현인들의 말씀이 되새겨진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싶다.
육신사를 뒤로하는 발걸음 위로 무거운 침묵이 깃들어 숨소리도 죽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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