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씨38도를 오르내리는 날씨가 온 대지를 폭염으로 가득 채운다. 나는 오늘도 2층 계단을 숨 가쁘게 오른다. 복도에 올라서자, "똑딱똑딱" "와 !" " 까르르......." 탄성과 웃음이 문틈으로 넘쳐흐른다.
주민센터 탁구장 문을 열고 들어서며 어제도 나누었던 인사를 반갑게 주고받는다. "안녕하세요?" 탁구장에는 60 ~ 70대 남녀 90여 명이 회원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매일 30여 명이 나와서 탁구를 친다. 8월의 숨 막히는 염천에도 탁구장은 늘 만원이다. 탁구대는 다섯 대 밖에 없는데 탁구를 치러 오는 사람들은 계속 늘고 있다.
탁구는 치는 사람은 치는 대로 즐겁고 보는 사람은 보는 대로 좋다. 내가 친 스매시가 멋지게 성공하여 상대가 받지 못하면 주위에서 "와 !" 하고 환호성이 쏟아지며 공이 마룻바닥에 부딪혀 튀어나오는 파열음을 삼킨다. 파트너가 "나이스" 하고 하이파이브로 "짝" 손바닥을 힘차게 쳐 주면 그 통쾌한 기분은 어디에 비교할 수가 없다. 상대방의 공격을 받지 못하거나 공을 잘못 넘겼을 때는 탄성도 가지가지다. "어머나!", "우야꼬!", "어허!"
내가 탁구를 다시 시작한 것은 7년 전이다. 30여 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나니 섭섭한 마음과 아쉬움이 많았다. 한편으로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소원했던 친인척(親姻戚)도 찾아보고 여행도 하면서 한동안 바쁘게 보냈다. 그런 생활은 잠시일 뿐 일상이 될 수 없었다. 주말마다 열심히 치던 테니스는 무릎 관절에 무리가 오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시간을 내서 아내와 산행을 하였다. 40 ~ 50대에는 아내가 뒤따라오기가 바빴는데 이제는 아내가 앞서가고 나는 허겁지겁 따라가며 좀 쉬어서 가자고 소리를 지르게 되었다.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갈 때에는 무릎마디가 시큰하고 통증이 오곤 하였다. 건강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무기력과 우울에 빠져 만사가 귀찮아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직장 생활을 같이 하던 친구를 만났다. 반갑게 마주 앉아 막걸리 잔을 나누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그 친구가 요즈음 탁구를 열심히 치고 있다고 했다. 운동, 특히 구기에 대해서는 별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던 친구였는데 탁구를 치면 재미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건강에도 좋고 시력이 좋아진다면서 적극적으로 권하였다, '탁구가 내 무기력하고 우울한 일상에서 벗어날 탈출구가 될 수 있을까?' 친구와 헤어져 심사숙고한 끝에 탁구장을 찾아 등록을 하였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탁구를 시작해서 중학교 3학년까지 쳤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또래에 비해 기량도 상당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에는 저녁에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우면 천장에 탁구공이 왔다 갔다 할 정도로 열심히 쳤다.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는 탁구를 접할 기회가 없이 50여 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너무 오랜만에 다시 시작하는 탁구인지라 기본과 자세를 제대로 익히기 위해 전문 코치에게 레슨을 받기로 했다. 탁구장 관장은 기왕 새로 시작하는 탁구인데 라켓 잡는 방법을 옛날 방식인 펜홀더 그립(펜을 잡는 자세)으로 하지 말고 세이크 핸드그립(악수하는 자세)으로 하는 것이 요즈음 대세이고 나이 들어서도 치기가 수월하다고 하면서 세이크핸드그립을 권했다. 오랜만에 잡는 탁구 라켓인데 자세까지 바꾸고 나니 더욱 새로웠다. 일주일에 3일씩 열심히 레슨을 받아 자세가 좋다는 말을 들었다.
레슨을 받은 지 4년이 되면서 탁구에 대한 재미도 붙고 기량도 나아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하루는 관장이 탁구 대회가 있으니 출전해 보라고 권했다. 나는 자신이 없다고 사양하다가 타의 반 자의 반으로 출전해 보기로 했다. 떨리는 마음과 한편으로 기대를 가지면서 대회장에 나갔다. 탁구계는 넓었고 탁구를 치는 사람은 많았다. 더구나 잘 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나는 기량을 제대로 발휘해 보지도 못하고 중도에 탈락 하였다. 그로 인해 다른 시각에서 탁구에 대하여 눈을 뜨게 되었다.
탁구를 다시 시작할 때에는 열심히 배우고 익혀서 실버 급에서는 정상에 올라 보고 싶다는 욕심을 가졌었는데 그 마음을 접기로 했다. 생각을 바꾸어 건강을 유지하면서 즐기는 탁구를 치기로 했다. 공자 어록인 논어 옹야편 18장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知之者不如好知者好知者不如樂之者(지지자불여호지자호지자불여낙지자 :아는 이는 좋아하는 이만 못하고 좋아 하는 이는 즐기는 이만 못하다)"
탁구는 잘 치면 잘 치는 대로 못 치면 못 치는 대로 다양한 기능과 기술을 활용하여 자신의 체력에 맞게 운동량을 조절 할 수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 해소와 건강 증진을 위한 운동으로 적합하다. 순발력과 민첩성 등 체력을 향상시키고 시력을 좋게 할 뿐만 아니라 동호인 간에 서로 신뢰하고 예의를 갖추는 스포츠 정신도 함양 할 수 있다. 탁구를 칠 적에는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가짐이 꼭 필요하다. 상대가 잘못 치거나 실수를 할 적에 잘못 지적하면 상대방 기분을 상하게 하고 큰 실례가 된다. 주민센터 탁구장에 들어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처음 보는 사람과 탁구를 치게 되었다. 탁구공을 몇 번 치고받고 했는데 대뜸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고 간섭을 했다. 나는 그저 아무 대꾸 없이 공을 주고받는데 평소에 나와 자주 치던 그의 친구가 보다 못해 그에게 귓속말로 무어라고 말을 하니 계면쩍어 하는 모습이었다. 근간에 와서 한 탁구 동호인이 탁구의 기본기 중 하나인 '화'가 잘 안된다면서 같이 좀 쳐 달라고 했다. 몇 회 치고 부터는 다른 사람과 치면 잘 안 맞는데 선생님과 치니 잘 된다면서 탁구장에서 만나기만 하면 같이 치자고 하면서 꼭 사부님이라고 호칭을 한다. 변변찮은 탁구 실력으로 사부님 소리까지 들으니 민망하고 쑥스러운데 이를 지켜보는 다른 동호인들은 둘이 치는 것이 잘 맞는다면서 한술 더 떠 환상의 파트너니 커플이니 하면서 놀리기도 한다 .
지난 4월 제1회 대구광역시 남구 협회장배 탁구대회가 있었다. 우리 탁구회에서도 7명이 참가하였다. 나도 실버부에 출전하였다. 단식에서는 초장에 탈락하고 복식에서는 여회원과 한 조가 되어 공동 3위를 했다. 단식에서는 이질라바를 부착한 고수에게 핸디 3개를 받고 1:3으로 졌는데 한 세트를 이겼다는데 위안을 가졌다. 최 하위부수가 고수에게 핸디 몇 개 받는 것은 의미가 없다, 기량의 차이를 극복 못해 결국은 지니까. 복식에서는 참가 15개팀 중 우리팀이 부수가 제일 낮았다. 부수는 실력 순위별로 6부에서 시작해 0부까지 있는데, 대회 사정에 따라서는 남여 혼합 경기에서 8부까지로도 적용하여 나는 6부, 내 파트너는 7부로 합이 13부로 출전해 상위 부수를 차래로 이기고 4강전에서 이대회 우승팀인 합이 4부(0부와4부)에게 제대로 쳐 보지도 못하고 무너졌다. 그래도 그날은 운수 대통의 날이었다. 파트너가 잘 해주었고 기대 이상의 선전을 했으니까 ... ... .
인간 수명을 연구하는 의학자들은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꾸준히 운동하고 즐겁게 살아야 한다고 한다. 매일 운동하고 즐거움을 찾는 생활이 쉬운 일이 아니나,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탁구는 친구와 혹은 생면부지(生面不知)의 남녀노소가 함께 더불어 즐길 수 있고 친해질 수 있는 운동이다. 탁구장에는 건강이 있고 즐거움과 웃음도 있어 좋다. 나는 탁구를 꾸준히 치고 몸 관리를 게을리 하지 않은 결과 체중이 8kg 정도 줄고 무릎관절에 통증이 없어졌으며 몸도 가벼워져 건강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다. 오늘도 탁구공 2.7그램에 건강과 자신감을 즐겁게 실어 보내고 받는다. 끝 .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이재명, '선거법 2심' 재판부에 또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