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공, 그들이 정말 재앙인가.
누가 붙여 만든 말인지는 모르지만 지하철을 공짜로 타고 다니는, 65세 이상 된 사람들을 이라고 부른다. 5, 6년 전 내가 지공의 문턱에 들어섰을 때 누군가가 내게 한 말이다. 당시는 그 말을 대수롭잖게 우스개로 듣고는 넘겼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속에는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들어있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무거운 것이 차비가 들지 않는다고 너무 많이 쏟아져 나와 설친다는 지청구다. 하긴 경로석이 따로 마련되어있지만 그 범위를 벗어나 일반석 까지 점령하고 있으니, 노인 가운데 한사람인 내가 봐도 좀 답답할 때가 있다. 하지만 세상에 어떤 사람이 일도 없으면서 단순히 지하철을 타기위해 돌아다닐까.
대한 노인회에서 출퇴근 시간대에는 출입을 좀 자제해달라는 당부까지 있는 걸 보면, 지공을 보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 어떠하다는 건 짐작이 간다. 어쨌거나 한번 다시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그렇다고 그 사실을 재앙으로 본다면 그런 서글픔이 없다.
국어사전에서 노인을 풀이해놓은 말이다. 나이가 많다는 그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설명이 나와 있다. 우리는 현제 65세를 기점으로 그 이상의 연세를 으로 성문화 시켜 놓고 경로 대우를 하고 있다.
65세 이상의 고령인구가 7%가 넘으면 고령화 사회가 되는데 이미 우리는 2000년도에 그 과정에 들어섰다. 그리고 2018년이 되면 14%가 되어 고령사회가 된다고 한다.
고령화에서 고령사회가 되는 기간이 프랑스에서는 115년, 미국은 72년, 독일은 40년, 일본은 24년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18년으로 경제성장에만 속도가 붙은 것이 아니라 늙어가는 데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야유인지, 푸념인지 모를 이야기들이 난무한다.
아직은 두고 볼 일이지만 지금 추세라면 2020년엔 65세 이상이 15세 미만 청소년보다 많다며, 노인 부담률이 20%로 젊은이 4명이 노인 1명을 먹여살려야한다는 계산을 내놓고 있다. 그야말로 엄청난 부담이다.
단어 가운데 늙은 노(老)자가 들어가서 좋은 말은 좀처럼 찾기가 힘 든다. 이미지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다. 노추(老醜)가 그렇고 노회(老獪)가 그렇다. 좋은 말이라야 노마지지(老馬之智) 정도이다. 그것도 사람이 아닌 말을 칭송해놓은 터다. 그러하니 서러울 수밖에 없다. 거기에다가 경제적 궁핍까지 보태진다면 그 서러움은 더하다.
소는 움직이면 똥을 싸고 사람은 움직이면 돈이 든다. 시골에서 부자라는 과수원 가진 사람들도 밭에 능금 떨어지면 돈 떨어진다는 말이 있듯, 월급쟁이들도 월급 안 나오면 돈이 떨어진다는 건 지극히 당연한 사실, 그들의 주머니도 냉기가 돈다는 건 불을 보듯 번한 일이다.
세상에 나이 안 먹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그게 허물이 되어서는 천만에 안된다. 나이는 사람만 먹는 게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물건이면 다 먹게 돼있다.
이 나라 노인들은 나이를 먹어도 공으로 먹은 게 아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이만큼 성장된 이면엔 그 나이가 밑거름이 되었다는 건 누가 뭐래도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나이를 재앙으로 치부하는 사람이 있다니, 세상에 이런 서러움이 있는가.
# 퇴직자 모임 사단법인 K동우회
우리 K통신동우회 D본부에는 2,000명 가까운 회원이 등록되어있다. 본회(本會)는 서울에 있고 각 시도 단위로 본부가 구성 돼 있으며 전체 회원은 2만 명이 훨씬 넘는다.
회원 자격은 K통신에 몸담았다가 정년 또는 명퇴한 사람으로 본인이 희망하면 누구나 될 수가 있다. 재직시의 직위로 보면 장관 지낸 사람에서부터 고용원 직에 이르기까지 여러 계층의 사람이 다 들어있으나 회원이 되면 누구나 지난날의 위계와는 관계없이 동급의 친구, 즉 동우(同友)로 지내는 걸 원칙으로 하고 만든 사단 법인체다.
공직에 있다가 나온 사람들이 퇴직 후에도 인간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동우회란 이름으로 만든 단체는 여기저기에 많다. 그들 가운데는 전관예우 같은 유별난 행동으로, 또는 구설에 오르내릴 만큼 많은 이재(理財)를 이뤄 운영하는 단체도 있지만, 우리 K동우회는, 회원들이 정기적으로 내는 회비와 협찬금으로 운영하는 순수한 친목단체다.
우리 동우회에는 전회원이 지켜야하는 정관(定款)이 있고, 지회에는 회칙이 있으며 그 수칙에 따라 임원이 구성되어, 그 임원들에 의해 회가 운영된다.
100여 평 남짓 되는 우리 동우회 사무실은 세 개의 방으로 나눠 서예, 바둑, 등 회원들 기호에 따라 서로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해놓았다. 하루 평균 3, 40여명의 회원이 들쑥날쑥 나와서 그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무상으로 커피 정도의 음료도 제공하며 K통신의 협조로 시내, 시외 전화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회원 평균 연령은 64, 5세쯤 되지만 자주 나오는 사람들은 70안팎의 회원들이 주류를 이른다. 그 보다 더 아래층은 젊기 때문에 아직은 생활전선에서 뛰어야하는 것도 그렇지만, 기성(?)회원들과 나이 차이에서 오는 거리감으로 주춤하는 상태이고, 그 위층은 몸이 말을 듣지 않아, 공식행사 외에는 출입을 삼가고 있는 것으로 보면 된다.
여기에서 회원들이 하는 일도 동네 사랑방에서 일어나는 일과 흡사하다고 보면 된다. 흘러간 이야기들을 쏟아놓고 회억(回憶)속에 잠간씩 빠져드는 것도 그렇고, 바둑이나 고스톱을 치며 여가를 보내는 것도 그렇고, 가끔 듣게 되는 친구의 자식자랑도 그렇고, 쓸데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신문이나 TV를 보다가 열을 받아 핏대를 세우는 것도 그렇다.
한쪽에서는 골프 치는 이야기, 다른 쪽에서는 PC로 주식 정황을 알아보고, 또 다른 쪽에서는 어제 부인과 같이 산나물을 뜯어왔다는 이야기를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는 곳이 우리 동우회 사무실이다.
여기 등록된 회원이라면 길게는 40년, 짧아도 20년 이상은 K통신에서 몸을 바친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관계의 호불호(好不好)를 떠나 모두가 20년 내지는 40년 지기(知己)들이다. 말하자면 그놈의 정 때문에 다시 묶어놓은 것이 동우회란 틀인 셈이다.
우리 본부 양쪽 옆으로 액자가 하나씩 걸려있다. 오른쪽에 걸려있는 건 훈요십조를 연상케 하는 건강십훈(健康十訓)이고, 왼쪽엔 치매예방 수칙이다. 여기 소개해 본다.
健康十訓 (十少十多)
1. 少食多嚼 (적게먹고 많이 씹는다,)
2. 少肉多菜 (육식은 적게, 채식을 많이 먹는다,)
3. 少鹽多酸 (짠 음식을 줄이고, 식초가 든 음식을 낫게 먹는다,)
4. 少糖多果 (설탕을 적게, 과일은 많이 먹는다.)
5. 少乘多步 (적게 타고 많이 걷는다.)
6. 少言多行 (말은 줄이고 운동을 많이 한다,)
7. 少欲多施 (욕심을 버리고 많이 베푼다.)
8. 少憤多笑 (화를 내지 말고 많이 웃는다.)
9. 少煩多眠 (번잡한 생활을 줄이고, 충분한 수면을 취한다.)
10. 少酒多水 (술을 줄이고 물을 많이 먹는다.)
치매방지 10가지 수칙
1. 머리를 쓰라. 하루 한 시간 이상 바둑, 장기, 고스톱을 쳐라.
2. 매일 일기를 쓰라.
3. 스포츠와 같이 정신적, 육체적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는 생활을 즐겨라.
4. 주 1회 음악, 서예, 미술 등 예술작품을 감상하라.
5. 일상생활을 긍정적으로 즐겁게 받아들이자.
6. 가급적 혼자서 지내는 시간을 피하라.
7. 술, 담배를 끊든지 줄여라.
8. 하루 30분 이상 운동을 하라.
9. 성인병(고혈압. 당뇨, 고지혈 등) 유의하라.
10. 하루 6시간 이상 수면을 취해 뇌를 편안하게 하라.
# 김 회장과 박 사장과
위계(位階)의 직장생활을 하다가 나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한때는 모두 높고 낮은 직위를 다 가졌던 사람이다. 그렇다고 직장을 나와서까지 그 직함을 그대로 부를 수는 없다. 과장은 일흔이 넘어도 과장이고, 부장은 갓 퇴직하고 나온 사람도 부장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위화감을 조성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시골의 면장 댁은 대를 이어서까지 면장 댁이라는 우리 문화도 외면만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거기에다가 퇴직 후 새로운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한테는 그 직장에 따른 새로운 직함도 붙는다. 어제의 과장이 오늘은 사장으로 변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동우회에 가장 큰 걸림돌이 호칭문제다. 대안으로 여러 가지 안이 나왔다. 그중 하나는 아호(雅號)를 저마다 하나씩 지어서 부르면 어떻겠느냐는 안이다. 직장생활을 해온 요즘 사람들한테는 생소한 것이지만 모두 연치로 봐서 아호를 가질 연배도 된 터라 한번 시험해 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생각처럼 어울리는 건 아니었다. 아호 뒤에 지난날 직위가 따라붙어 옥상옥(屋上屋)이 되는가 하면, 열 살 터울 연상한테 아호만 달랑 부른다는 것도 이상하긴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선배, 후배가 제일 무난하다는 안도 있었다. 학교에선 먼저 졸업한 사람이 선배이듯 직장에도 먼저 퇴직한 사람이 어쨌건 선배이니까 김 선배, 이 선배,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나 여기에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나이와 계급은 비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젊은 상위직 출신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양이다.
편법의 하나로 서로가 사장(社長)으로 부르는 방법이다. 명동거리에서 사장님 하고 부르면 열에 아홉은 돌아보고 안 돌아본 한 사람은 전무라는 유행가 가사를 떠오르게 하는 대목이다.
얼마 전에는 실제로 이런 일이 하나 있었다. 한 예식장에서 재직시 국장과 그의 승용차 운전기사였던 사람이 만났다.
"어이, 김 기사 오랜만이여."
국장의 말이었다. 물론 상대를 비하시킬 목적으로 그렇게 부른 건 아닐 것이다. 어쩌면 본인은 친밀감으로 뱉은 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과는 정 반대로 나타났다.
"이 봐여, 내가 아직도 당신 기사여. 말 좀 조심하시우."
직장 그만 둔지 10여년이 넘어 머리에 서리가 앉은 사람으로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가보다. 재직시 고용직으로 있으면서 수도 없이 들은 말인데, 떠난 뒤에까지 따라다니며 듣게 되었으니 본능적으로 반감이 나타났던 모양인데,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일이기도 했다.
뒷이야기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당사자들은 물론 주변에서 듣는 사람들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사건임에랴.
이런 일까지 생기고 보니 요즘 우리 동우회에서의 호칭은 모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당사자들끼리 해결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아호를 그럴싸하게 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김 선배와 박 후배, 김 형과 박 형, 김 사장과 박 사장, 등이 적당하게 공용되고 있으며, 골프 치는 이는 그쪽 문화를 적당히 혼용 김 프로, 박 프로로 부르기도 한다. 대여섯 명으로 조직된 계모임의 회장도 회장으로 통용되며, 심지어는 아들이 운영하는 병원 이름을 따 원장이라 부르는 이도 있다. 모두 그만큼 호칭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되지 싶다.
이런 일에도 과도기가 있는지, 또 앞으로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날지 모르지만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필요악, 고스톱
우리 동우회에서 신나게 자랑할 게 하나 있다면 그건 오락실이다. 이름은 오락실이지만 쉽게 말해 고스톱 치는 장소다.
입구엔 고우수도부(古友修道部)라는 글씨가 하나 붙어있다. 고스톱을 해학적으로 한역(漢譯)한, 이란 뜻이다.
고스톱을 곱지 않는 눈으로 보는 우리네 정서 속에서, 이처럼 공개적으로 고스톱을 치는 곳을 마련해두고 상습적으로 치는 곳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본다. 그것도 어제, 오늘 생긴 것이 아니고 벌써 20년이 넘게 그렇게 해왔으니 말이다.
고스톱을 칠 수 있는 최소한의 인원은 3명, 최대한 인원은 6명다. 고스톱 판을 벌릴 수 있는 대(臺)가 네 개 있으니까, 24명은 언제든지 수용할 수 있는 상설시장(?)을 갖춘 셈이다.
여기에서 규율은 엄하다. 이를 안 지킨 사람은 누구라도 여기에서는 퇴출된다. 지금까지 아무런 탈 없이 고스톱을 즐길 수 있는 건 이런 엄한 불문율 때문이다.
몇 가지만 짚어보자.
점에 백 원이다. 어떠한 경우든 이 이상은 허용하지 않는다. 외상 거래도 불가다. 시간도 퇴근시간을 넘길 수는 없다. 설사를 하면, 한 사람이 다른 두 사람한테 2백 원씩을 받는다. 이는 좀처럼 보기 드문 우리 동우회서만 통하는 수칙인데, 수입과 지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이다. 한도는 5천원으로 했다가 최근에 만원으로 인상했는데 하루에 한두 번 나올까, 말까다.
하루 평균 서로 잃고 따는 금액은 예외가 있긴 하나 평균 5천원에서 만원 안팎이다. 요즘 어디 가서 놀더라도 하루해를 보내는데 그 돈 안 쓰곤 놀 수 있는 곳은 없다는데 입법취지(?)가 있다. 그렇다보니 사람에 따라서는 아예 고스톱 때문에 출근하는 이도 있다.
오락실 벽에는 이런 글이 담긴 전서체 족자가 하나 걸려있다. 고스톱 좋아하는 서실 회원이 자필로 쓴 글인데, 베낀 것인지 자작인지는 모르겠다.
雖不蝕善哉古友(수불식선재고우), 는 내용이다.
또 이런 글도 하나 있다.
오래 전 J일보 (02. 07. 18일자)에 난 신문기사를 그대로 복사 확대한 것이다. 우리가 치는 고스톱은 노름이 아닌 건전한 여가선용이란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서다.
우리 회원들이 고스톱 관(觀)에는 긍정적인 면이 많다. 일찍이 고스톱이 없었더라면 노후를 어떻게 보낼 번했을까 싶을 만큼 애착을 갖는 놀이로 본다. 혹 사람에 따라서는 돈이 오가니까 노름에다 비중을 둘지 모르지만 여기 우리들은 천만에 그렇게 생각하질 않는다.
산업사회의 오락이란 농경사회의 오락과는 다르다. 많고 적음을 떠나 경제적 손익이 생겨야 재미가 있고 할 맛이 난다. 아무리 고스톱을 즐기는 사람이라도 오가는 것 없이 치라고 해보라, 아무도 치는 사람이 없다.
바둑 역시 무척 신성한 놀이 같지만 그냥 두라고 하면 두 판 이상은 못 둔다. 기원에 가보면 잘 알 수가 있다. 천 원짜리 한 장이라도 묻어두어야 두고, 자장면 내기라도 해야만 둔다.
같은 칼이라도 강도가 들면 무기가 되지만 의사가 들면 죽을 사람을 살려내듯, 그들의 든 화투도 치는 사람이 어떻게 치느냐에 따라 패가망신과 여가선용을 넘나든다는 이론을 내세워, 우리 동우회에서는 전자를 택한 것이다.
만약 고스톱이 없다고 해보자. 회원들이 모여서 하는 일이란 뻔하다. 술이나 마시고 이놈저놈 찍어다가 욕하는 일 밖에 더 있겠는가. 바로 이게 우리 동우회 회원들이 고스톱을 사랑하는 까닭이다.
그러니까 20년을 넘게 화투 속에 묻혀 살아도 큰 말썽 없이 어제도 오늘처럼, 오늘도 어제처럼 고스톱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누가 뭐라든, 우리 회원들한테 고스톱은 유일무이한 낙이 되었다. 바둑도 있고, 최근엔 인터넷 오락도 많지만 어느 것도 고스톱을 따르지 못한다. 그래서 요즘은, 우연히 모였기 때문에 소일의 한 방편으로 고스톱을 치는 게 아니라, 고스톱을 치기위해 찾는 회원이 많다. 어떻게 등장한 말인지는 모르지만 치매에 좋다는 말이 나돌고부터는 더 활성화 된 셈이다.
# 칠순 자축연
점심 먹고 3시쯤 돼 느지막이 동우회에 들렸더니 동료 한 사람의 칠순 자축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가끔 우리 동우회에서 볼 수 있는 그림 가운데 하나다.
참석자는 스무 명 쯤 될까, 특정한 사람을 초청형식으로 하는 게 아니라 그날 모인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잔치가 된다.
술잔을 채워 들게 하고는 동료 한 사람이 건배를 제의한다.
"이번에 운정 선배가 칠순을 맞았습니다. 일주일 동안 호주로 기념여행을 떠났다가 어제 돌아왔습니다. 여비 남은 것으로 조촐한 술상을 마련했으니 기분 좋게 한 잔씩 드십시다. 자, 우리 회원들의 무병장수를 위해…."
이런 식으로 운을 떼어 분위기를 잡아주면 술자리는 자연스럽게 무르익게 되어있다. 운정(雲亭)은 그가 동우회 회원이 되고 지은 아호다.
운만 띄어놓고 술잔이 돌아가게 되면 다음 이야기는 절로 이어지게 되어있다.
이어서 이사람, 저사람 입에서 만리장성, 장가계가 나오고, 에펠탑이 나오고, 백두산 이야기가 줄줄이 이어 나온다. 모두 그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한두 번씩은 이미 들은, 리바이벌한 이야기들이지만, 하는 사람도 신이 나고 듣는 사람도 맞장구를 치며 들어준다. 자기네들도 바다 물 건너 구경을 했다는 자랑들인 셈이다.
"우린 너무 늦었어. 진작 한 번씩 댕겨 와야 하는 건데 말야. 그것도 나이라고 이자 맨손으로 기냥 따라 댕기는 거도 힘이 달리더구만."
"미국을 가든, 구라파를 가든 한번만 댕겨오믄 돼. 나는 구경 갈라고 갔는 기 아이고 정말로 그런 나라들이 거기 있능강 확인하러 가봤다니께."
"또 노랑 깃발만 처다 보고 왔능 거 아녀."
"나는 이제 외국엔 더 안 나갈 거다. 그 돈 있으믄, 팔도강산에도 안 가본 데가 수두룩한데 그런 데나 조용히 한번 둘러볼 참이구마
"사람들은 미국이 조으니 어쩌니 하더라만 나는 하나 존 거 없더라. 이젠 누가 오라고 빌어바라, 가능강."
김만수씨 이야기다. 그에게는 그런 까닭이 있다. 그는 작년 가을 아들의 초청을 받고 미국을 다녀왔다. 아들 내외가 미국에 살고 있는데, 자식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 미국을 한번 다녀왔다면서, 여러 사람들 앞에서 이런 말을 밭은 적이 있다.
"야, 이 사람들아, 한번 들어보기나 해바라. 시상에 이런 노무 꼬라지가 어데 있노 말이다. 며느리가 퇴근을 했답시고 들어와 마루에 턱 걸터 앉으이까, 나랑 같이 앉아있던 자식놈이 얼른 나가서 지 여편네 장화(부츠)를 빗겨 주더라 카이. 그것도 지 애비가 떠억 보는 앞에서 말이다. 시상에 이기 무슨 꼬라지여. 맘 같아서는 달고 있는 걸 떼 냈던지라 카고 싶더라만. 미국 물이 들어도 오지게 들었지. 한 달 게획으로 갔다가 그런 노무 꼬라지가 보기 싫어 사흘 있다가 안 나왔나."
모르긴 해도 그 이야기를 많이 들은 사람은 서너 번도 더 들었을 것이다. 그는 자식의 그런 행동에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지금 우린 남이 장에 가이까, 거름 지고 따라가는 거하고 똑 같은 거여. 촌놈 소리 안 들을라고 나댕기는 거 하고 똑 같다 이거야. 물론 가 볼 사람들이사 당연히 가 봐야지. 돌아댕겨서 얻은 기 머가 있더노 말이다. 구경 가는 기 아이라, 그건 돈 내던지러 가는 거여."
"그래서 안 가더라, 백두산에도 구름 끼서 다 못 밧다고는 두 번이나 갔다와놓고는."
"모르겠다. 대한민국 곗돈은 여행사에서 거둬 외국에 다 갖다준다는 말도 있더라만, 아이그, 세상이 그런데 우짜갰노. 그래 따라가는 수밖에는."
"동남아는 다 돌아 댕겨봤다만 우리나라보다 나은 게 뭐가 있더노. 아무 것도 볼 거 없더라 카이. 인도네시아 거 무슨 호텔이더라 거긴 울 동네 목욕탕보다 못하더라이까."
"그래도 제주도 이박 삼일 다녀올 돈만 들이면, 중국 땅 사박오일 다녀올 판인데 자네 같으믄 어델 가겠노. 그러이까 자꾸 나가는 기라."
"다른 데는 안 가봐서 모르겠다만, 동남아 이쪽으론 운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러큼 많노. 식당마다, 관광지마다 모두 우리나라 사람들 뿐이더라카이.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잘 살았노 싶은 기, 나는 솔직히 부끄럽더구마."
"구경 가는 기 아이라, 돈 갖다 내삐리러 가는 거 아이가. 서로 뜯어 묵고 사는 기라 카지만 우리국민들도 자숙할 사람들 많다. 알기를 그래 알믄 댄다."
술이 한잔씩 들어가자 그들 입에서는, 그것도 빠지면 못난 축에 들까봐 저마다 다퉈가며 안하는 소리, 못하는 소리가 없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길을 꺾는다. 술이 그쪽으로 안내한다.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자네가 벌써 칠순이다 이거지."
회원 중 운정과 가깝다는 이의 이야기다.
"그렇잖아도 이번에 여행하문서 그거밖에 생각 안 했다. 우리 집안에서는 남전네가 칠순 넘긴 사람이 없었거등. 아버지도 환갑 겨우 넘기고는 돌아가셨고, 할아버진 환갑도 못 채우싰고, 그런 집에서 내가 이래 오래 산다카이 신기하기도 하고 그러쿠마. 내가 정말 칠순이 맞기는 맞는가해서 울 집사람한테 한번 물어보기까지 했다카이. 도무지 실감이 안나. 이래 살다간 팔십, 구십도 쉽기 넘기지 싶은데."
"아인 게 아이라, 요새 모두 참 오래들 사는 기라.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동네에서 일흔 노인 구경하기가 힘들었는데."
"어쨋거나 여기 나오신 분들은 그래도 복 받은 분들입니다. 지금 우리 회원들 중에도 기동이 어려운 분이 여남은 명이 넘습니다. 병원에 있는 사람도 네 분이나 있고, 요양원에도 가있고."
또 이야기 방향이 바뀐다. 술의 힘을 빌려 저마다 하고 싶은 답답한 자기 속을 털어놓으려다가보니 이야기가 왔다, 갔다 한다.
"난 올해 설을 거꾸로 쇠었구만."
그들 가운데서도 연장자인 백수(白樹 : 아호)가 없는 듯이 실컷 남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다가 뱉은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련 이야기를 별렀다는 듯이 꺼내놓는다.
그믐날 서울에 살고 있는 큰자식 내외가 내려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런데 집에 들어올 시간이 지났는데에도 나타나질 않았다. 버스나 승용차 편이라면 지연될 수도 있다지만 기차로 내려온다고 했기 때문에 지연될 이유가 없다. 넉넉히 두 시간을 더 기다리다가 행여나 하곤 사돈댁에 전화를 한번 해 보았다. 물론 느낌이 이상해서다. 자식이 거기에 있었다. 지난 추석 때 내려오고 처음 내려오면서 처가를 먼저 들린 것이다.
백수로선, 지금까지 자기가 배워온 범절로선 자식들의 행동이 이해할 수 없다는 정도를 넘어 반란으로 본 것이다. 그 자리에서 그는 지금부터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 처가살이를 하든지 네 맘대로 하라고는 전화를 끊었다. 이내 자식들이 돌아와 사유를 늘어놓으며 잘못을 빌었지만 그는 문을 단단히 잠가둔 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그만 자식도 아버지의 성질을 잘 아는 터라 하룻저녁을 처가에서 보낸 뒤 서울로 올라가버렸다.
설 다음날부터 출근을 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면서 서울에서 걸려온 자식의 전화를 아내가 받긴 했는데 마음은 편치 않다는 것이다.
이야기 끝에 그는 이런 질문을 명제(命題)로 내놓았다.
"하나 물어보자. 이런 경우 난 지금도 용서가 안 되는데 임자들 같으믄 어찌 하겠나?"
"곡절이 있을 거 아니오. 왜 거기를 먼저 갔는지."
"곡절은 무슨 얼어 죽을 곡절이고. 처남이 차를 가지고 나와 그만, 그쪽으로 먼저 갔다는데, 그건 이유가 될 수가 없지."
답은 여러 가지로 나왔다. 며느리가 생각이 좁았다는 사람, 그만 모른 척 받아들일 것이 아니냐는 사람, 나도 똑 같이 그렇게 하겠다는 사람, 그러나 제 아버지를 만나지 않고 서울로 올라간 건 자식한테 잘못이 있다는 사람, 문을 안 열어주는데 무슨 재주로 만날 수 있느냐는 사람, 등 여러 가지다.
"요샌 세상이 어디로 굴러 가는지 모르겠더라이까. 그 놈들이 내 성질을 번히 알면서 그런 짓을 했다카는데 그게 난 울화통이 터진단 말야."
"세상 돌아가는 건 아무도 몬 막는다. 따라가는 기 상수다. 힘이 없으문 도리가 없는 거여."
"시끄럽다. 지 성(姓) 지대로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큰 다행으로 알아라. 이자 좀 있어바라 카이, 호주젠가 먼가 그것도 없어지고 했으이 제사도 제대로 몬 얻어 묵는구마. 지금, 시상이 그래 돌아가는 거 아이가."
세상을 지배해오던 유교문화가, 그 속에서 뼈가 굵어온 자신들의 이데올로기가 마침내 흔들린다는 것일까, 주고받는 이야기들 속에 땅이 꺼지는 한숨도 섞인다.
칠순 잔치 분위기로 시작된 이야기는 이제 끼리끼리 붙어 갑론을박이다. 그나마 듣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저마다 일가견으로 떠드는 사람들뿐이라 거의 난장판에 가까운 풍정을 만든다.
그때쯤 누군가가 더 붙들고 자꾸 이야기 해봐야 그 소리가 그 소리일 뿐 더 이상 뾰족한 수가 없다는 걸 알고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한다.
"짜른 밤에 자꾸 물레질만 할 거야. 공장도 돌리야지. 자, 그만들 드시고 자리를 한번 옴겨보더라구."
# 신나는 화두(話頭), 비아그라
오늘의 화두는 노인의 성생활이다. 우리들 대화 가운데 곧잘 등장하는 주제다. 이런 주제가 대개 그렇듯 잡담 속에 진솔함이 들어있고, 그런 진솔함이 잡답처럼 서로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
"비아그라, 진짜 하나 구경 할 거야. 요즘 가짜가 어찌 많던지 도무지 믿을 수가 있어야제. 중국 내왕하는 보따리 장사들도 이걸 봉다리로 들고 댕기믄서 팔더라 카이."
누구의 입에선가 던져진 말이다.
"나는 그런 거 필요없다 카이"
"자네는 산삼 묵었나?"
옆에서 또 한 사람이 싱겁게 끼어든다.
"그런데 하나 물어보자. 임자는 그거 누구한테 써묵을라고 그런 걸 찾노? 기필코 사모님은 아일 거고…."
"시상에 지 마누라한테 비아그라 쓰는 놈이 어데 있더노. 긴요하게 쓸 곳이 있다카이."
"그거 보관 잘 하라구. 나는 마누라한테 들키가지고 죽을 번 안했나. 내가 유경험자로 가르쳐주는 거니까 참고하라구. 그라고, 자네 첨이걸랑 온 거 다 먹지 말고 반만 먹어라. 진짜라카믄 반만 먹어도 죽여준다 아이가."
거래가 무르익는 듯하자 어느 틈에 이야기는 그쪽으로 르네상스를 맞는다. 스스럼없는 발언들이 백화제방(百花齊放)을 이룬다.
"나도 하나 물어보자. 그런데 그게 약을 써가믄서 발광을 해야할 만큼 필요한 기가 말이다. 힘 부치믄 안하면 대는 거 아이가."
"여기 또 공자 하나 나왔네. 야, 이 친구야. 그거 끝나믄 인생 종치는 거 아이가. 알기를 그래 알믄 댄다."
"칠십생남(七十生男)이란 말 들어밨어. 그게 공자 아버지 이야기 아이가."
"그때야 어데 비아그라가 있나, 모두 지 힘으로 한 거이까. 우리가 이러쿵저러쿵 할 거는 앙이고."
"우리네 아버지, 어무이는 모두 나이 들면 사랑방, 안방 따로 거처했잖아. 나는 그게 얼매나 자연스럽다는 걸 그 나이가 돼이까 알겠더구만."
"그럼 임자는 각방 쓴다 그 말이야."
"어제, 오늘 쓴 거도 아이고 환갑 전부터 그래 지낸다."
"허허, 저런. 그래도 어부인께서 조용하시던가."
"조오타 그러지. 코 더렁더렁 골지, 냄새나지, 사실 그래 자이까 나도 핀하더라카이. 서로 핀하믄 댄 거 아인가."
또 한 사람이 끼어든다.
"나도 독방 차린지 한참 대능구마. 우린 티비까지도 따로 보는구마. 운 연속극을 그러큼 조아하는지. 살아갈수록 닮아간다카더이만 그것도 말짱 거짓말이라카이."
"왜 말이 있잖어. 쉰 넘기면 잘 생기고 몬 생긴 거 아무 소용없고, 육십 넘기면 마이 배우고 적기 배운 거 다 소용없고, 일흔 넘기면 있는 놈 없는 놈 다 똑 같고, 여든 넘기고 나면 이제 집에 누워 있으나 산에 있으나 똑 같다는 말 말야. 그라이까 모두 그만한 용기라도 있을 때 잘들 해보더라고."
"아네끼(형님)말씀도 일리는 있구마. 그러나 이젠 한 계단 뛰어 넘어라. 동물의 성생활하고 사람의 성생활은 같을 수가 없어요. 동물은 단순한 종족보존이 목적이지만 사람의 성생활은 그게 아이라니까. 그 자체가 생활이고, 목적이라 카이"
"시방 목적이라켔나?"
"그래. 사람 사는데 그거 빼바라. 무슨 낙이 있노 말이다."
"참 골치 아픈 이야기구마."
"이 사람이 머라카노. 그게 우째 골치아픈 이야기고. 멀 몰라도 한참 모르는구마."
"의성(醫聖) 히포크레데스라는 양반이 머라켔는 줄 아나.
"머라켔길래."
"자연이 가장 훌륭한 의사라고 했다. 무슨 이야긴고 하믄, 모든 생활을 자연법칙에 다라 활동하라는 거야. 여자한테 폐경이 오믄 그걸 하지 말라는 거야. 힘이 한계에 오믄 안 해야지. 묵고 살 거도 안인데 와 목숨을 걸고 거기에만 메달린단 말이고."
"이런 거 얘기할 땐 사람이 솔직해야한다. 탁 까내놓고 예기해서 시상에 그거보다 더 존 기 머가 있더노? 나는 누가 머래도 그래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는 데까지 해보고 그래 살다가 가는 거지 머, 안 그러나."
"오냐, 오냐. 이녁 말이 옳다. 내가 졌다. 한 나이라도 덜할 적에 부지런히 써먹어라. 그것도 일종 보시(報施)아이가."
"이자 바른 말 나오는 구마."
"하나 당부하는데, 복상사 소리만은 안 나오도록 해라."
우리들한테 이런 이야기는 끝이 없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야기 자체가 소일거리며 즐거움이다. 오늘만 있는 이야기도 아니며 어제도 있었고, 내일에도 또 등장할 이야기다.
# 제 2의 인생을 찾아서
우리 동우회에는 별도로 공간을 가지고 있는 모임이 하나 있다. 청묵회(靑墨會)라는 서예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그것이다. 현 회원은 30여명. 우리 동우회의 창립과 역사를 거의 같이 했으니까 30년 가까이 된다.
월, 수, 금요일은 그들의 정기 수업일이다. 여기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10년 이상 된 사람으로 이미 각종 서예전시회에 출품을 해서 시상한 이력을 갖고 있다. 특, 입선은 물론 추천작가로서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으며, 요즘도 계속해서 더 큰 세계를 꿈꾸며 경력을 쌓고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나이가 있는데 지금 붓을 들어, 무슨 팔자 고칠 일이 있느냐며, 차라리 그 시간에 딴 거 하는 게 낫지 않느냐고 빈정거리는 시각도 있지만,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천만에 말씀이다. 제 2의 인생을 묵향 속에서 보내는 새로운 삶을 도모하고 있다.
그들 가운데는 자기의 글이 나름대로 인정을 받아 곳곳에 걸린 사람도 있다. 그들은 그것을 하나의 자부심으로, 또 하나의 성취감으로 치부하고 있다.
금년 봄에는 달서구청의 지원을 받아 월배 지하철역에서 지역주민들한테 을 전개, 일주일동안 캠페인을 벌려 무료로 가훈을 써주는 행사를 가져 호평을 받은 일도 있다.
동우회에는 서예모임 외에도 여러 모임이 있어 저마다 그쪽 활동을 신나게 하고있는 사람들이 많다. 섹스폰과 하모니카, 가야금 등의 연주자들 모임이 있는가 하면 농악단을 조직, 사물놀이로 각종행사에 출연도 한다. 그들 가운데 몇몇은 이미 디스켓을 내어 활동영역을 꽤 넓힌 이도 있다.
시중 문예지에 생활수필로 등단을 해서 나름대로 지평을 확보해서 활동을 하는 회원들도 더러 있다. 대부분 퇴직 후에 맞은 일들이라 전문인들에 비하면 능력이 못 미치지만 열성 하나는 누구 못지않게 활동적이다.
낚시모임이나 바둑모임, 파크골프모임 같은 동호인조직도 마찬가지다. 말하자면 그동안 마음엔 항상 두고 있었지만 직장 때문에 묶여 있다가, 좀 늦긴 하지만 이제야 새로운 자기를 발견 그 길을 찾아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이다.
은 정기적으로 보훈청에서 선정해주는 사람들을 찾아 돕고 있다. 호스피스로 활동하는 회원들도 있다.
그 가운데는 내가 중심이 되어 활동하고 있는 도 있다. 회원들이 매월 읽고 싶은 책을 한 권씩 읽게 해서, 한 달에 두 번 만나 읽은 책의 내용을 서로 토론하며, 인생을 주요 담론으로 지난날을 돌아보며 새로운 내일을 모색하는 모임이다.
자기 자식한테 물려줄 자서전을 쓴다는 사람도 여럿 있으며 요즘도 열심히 거기에 매달려 마지막 정열을 쏟는다. 엄동설한에 전신주에 매달려, 또는 맨홀 속에서 낮을 밤으로 알고, 이 나라가 오늘날 정보통신 강국으로 있게 한 주역인데 왜 할 이야기가 없겠느냐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백범일지도 한번 읽어봤지만 별 거 아니더라구. 김 구 선생이 썼으니까 그만큼 유명한 거지. 혹시 또 알어, 나중에 우리 이야기가 이 나라 문화사에 어떤 보탬이 될는지."
농으로 던지는 말이기는 하나 그 꿈이 야무지고 놀랍다.
궁팔십달팔십(窮八十達八十)이란 말이 있다. 우리한테는 강태공으로 잘 알려진 그는, 여든 나이가 되도록 때를 기다리며 가난하게 살다가 마침내 그 나이에 주인을 만나 제(齊) 나라의 임금에 오른 그 태공망이 우리나라 국어사전에 올려놓은 단어다. 혹 우리 동우회 회원 가운데서도 그런 사람이 안 나온다는 보장이 어디 있느냐고, 나도 감히 한번 참견해본다.
# 익은 감도 떨어지고 생감도 떨어지고
작년 가을부터 금년 봄까지 6, 7개월 동안 우리 곁을 떠난 회원이 5명이나 된다. 모두 나랑은 그냥저냥 지내는 사람들이다. 어느 죽음치고 슬프지 않은 것이 있을까만 그 가운데서도 김장수씨의 죽음은 너무 안타깝다.
퇴직 후 4, 5년 뒤 전원생활을 한다며 시골에 들어가 산다는 소문을 들었다. 부인과는 제대로 협의가 안 되었던지 혼자 들어갔는데 서로가 필요할 때 한 번씩 내왕한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음이 날아든 것이다.
나는 직접 가보지 못했지만, 나중에 빈소를 다녀온 동료 계원들의 이야기를 들음으로서 그의 죽음이 어떠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말은 안 해도 언제 죽었는지 확실하게 죽은 날짜도 모른다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인가?"
"이쪽에서 종일 전화를 걸어도 안 받고 하길래 혹 싶어 찾아가 보이까 죽어 있더라는 거야. 그러니까 언제 숨을 거뒀는지 그것도 모른다는 거지."
"그럼 가족들이 임종도 못했구만."
"언제 죽은 지도 모를 판인데 임종이 다 뭐꼬. 제삿날을 어느 날로 잡아야 좋은지 걱정을 하더라이까."
두어 마디 주고받은 이야기만으로도 김장수씨의 전원생활, 아니 혼자 산 시골 생활이 어떠했다는 건 충분히 알만했다.
그리고 정운영씨의 경우도 당황스럽기는 만찬가지다.
밤에 자다가 갑자기 호흡곤란으로 헉헉 하며 몸부림을 치기에 119를 불러 병원에 갔더니 이미 숨을 거둔 뒤라는 것이다.
평소 심장이 좀 안 좋다는 지병을 가지고 있긴 하나 그게 2, 30년 전부터 있었던 것이라 지금까지 약으로 무탈하게 지냈기 때문에, 설마 그렇게 임종을 맞을 줄은 몰랐다는 게 가족들의 이야기다.
모두 칠순 나이를 넘긴 사람들 이야기니까 연치로 봐서는 살만큼 산 나이라고 하지만, 저마다 백세를 뒷집 강아지 이름 부르듯 구가하던 사람들이기에 더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상한 건, 모두가 죽음을 머잖은 곳에 두고 살아 그런지, 근간에 와서는 절친한 친구들의 죽음을 덤덤하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또 한사람이 우리 곁을 떠났구나, 생각할 뿐 크게 안타까워하거나 애닯아 하는 사람도 없는 듯 했다.
일흔 고개에 얹힌 사람치고 약 하나도 안 먹는 사람은 드물다. 고혈압, 당뇨, 관절염, 고지혈, 두통, 전립선, 위염 따위의 노인성, 퇴행성 질환 가운데 한두 가지는 다 가지고 있으니 어쩔 수가 없다.
고스톱을 치다가도, 바둑을 두다가도 한 사람이 약을 먹으면 하품이 전염되듯 아 참, 하곤 연쇄적으로 약을 따라 먹곤 하는데, 그런 것도 우리 사무실 풍정의 하나가 된지 오래다.
"죽을 때 죽더라도 안 아프고 살았으면 안 좋겠나."
"무슨 일이 있더라도 치매는 안 걸려야 될텐데."
"젠장할, 지 몸 지가 건사 몬하면 그때는 죽어야제. 그게 가장 잘 죽는 거라고. 축복이 다로 없다이까."
"오복 가운데 고종명(考終命)이 왜 들어가 있겠나. 웰빙 다잉이 그만큼 가치 있다는 거 아이가."
"어디 죽는데 순서가 있나. 익은 감도 떨어지고, 생감도 떨어지고 그런 거지. 그걸 누가 지 맘대로 한다카더노."
동병상련(同病相憐) 때문이라고나 할까, 저마다 병자랑 끝에 한숨으로 쏟아놓는 소리들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모두가 죽음과 대치해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자꾸만 움츠려 드는 신체, 희미해만 가는 정신력은 이길 방법이 없다. 행여 잊을세라, 초롱같은 정신력을 가진 사람들이 어느 틈에 아파트 열쇠와 휴대폰을 목에 걸고 다니는 걸 보면, 서글픔을 넘어 한심한 생각이드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 라는 명제 아래, 최근 죽음에 관한 학문적 접근을 한다면서 죽음학회가 발족되었다는 이야기도 모두 그런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규환회원의 푸념 비슷한 이야기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그는 금년 여든이다.
"너무 마이 살아도 존 건 아이대이. 건강하게 살믄 개한타카지만 그거도 욕이 되는 건 마찬가지라카이. 한번 들어보래. 일전에 친구 하나가 죽어서 오늘 영천(永川) 보훈묘지에 갔다 왔거든. 내 고향이 상주 모동인데, 모동국민학교 우리 동기들 가운데 여기, D시에 나와 자리 잡은 사람들이 모두 일곱 아이가. 계를 하나 만들어 서로 친하게 지냈거든. 하나, 둘 죽고 오늘 장례를 치룬 친구가 네 번째가 되는데, 처음 한 둘 죽을 때는 모르겠더이만 이번에 가 보이까 문상올 친구가 없는 거야. 남은 친구래야 셋이 모둔데, 하나는 풍을 맞아 죽을 날만 기다리고 앉았지, 성한 건 둘 뿐이라 둘이 안 갔더나. 그런데 가서 가마이 생각해보이 나 죽을 땐 아무도 올 사람이 없겠더라고. 시상에 이런 딱한 일이 있나 말이다. 우시개 소리지민 내 부조(扶助)는 어데 가서 받노 말이다. 허허허. 기가 찰 노릇 아이가. 칠면조 목에 나비넥타이 매고 살아바야 그게 축복이 아이라카이."
또 하나의 을 듣는 기분이다.
#지는 해도 아름다워라.
근간에 와서 는 투의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늘 우리들끼리만 만나 그런지, 아직 늙었다고 생각해본 일은 크게 없는데, 다른 사람들 눈은 그렇지 않는 모양이다.
하긴 일흔 고개를 넘어선 지도 한참이나 되었으니 적은 나이는 아니다. 일흔 근방에 한번 어른거리지도 못 해보고 세상을 등진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를 생각해보면 내가 어떤 위치라는 건 쉽게 알 수가 있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두보(杜甫)의 시구가 말하듯 예나 지금이나 일흔이면 살만큼 산 나이라고 본다. 백수(百壽) 시대가 왔다고 하지만 그 양반들 생활을 한번 돌아보라, 그게 어디 사람 사는 것인가. 산에 있으나 집에 있으나 똑 같은 사람들, 사회적 재앙이란 소리를 들어가면서 너무 수치에 연연할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요즘 젊은이들은 우리를 두고 구세대라고 몰아 부친다. 그렇다면 우리한테도 당연히 신세대의 과정이 들어있어야 논리상으로 맞아 떨어지는데, 어떻게 된 셈인지 우리는 신세대란 말은 구경도 한번 못한 채, 어느 날 갑자기 구세대란 이름으로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되어버렸으니 이런 딱한 일이 있는가. 혹 삼강오륜과 주름살 계급에만 너무 의존하다가 그런 애먼 소리를 듣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한때는 우리도 모두 한 시대의 주역으로, 그 중심에서 활동했었다. 해방 전후라는 이 나라 여명기에 태어나 전후의 가난과 설움, 격변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그 무지와 열등을 헤어나겠다고 온갖 발버둥을 다 치며 살아온 우리가 아니었던가.
전통적 인습의 고유문화와 새로운 가치관의 혼돈 속에서 샌드위치맨으로 좌고우면하면서 눈칫밥으로 허둥대는 것이 오늘 우리 노인네들의 현주소다. 서울 파고다공원이나 대구 달성공원에 가보면 그들의 오늘이 얼마나 허망하다는 걸 알 수가 있다.
천자문 세대로 출발을 해서 말년을 컴퓨터에다 인공지능 세대로 보내게 되었으니 그 갈등, 회한이 오죽했으랴. 그 허덕임이 궁상으로 자리 잡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것도 나이라고 이자, 여게 말고는 오라는 데도, 갈만한 데도 없다이까. 간다고 캐봐야 산인데, 좀 있으면 산에 가서 아주 뿌리를 박아야하는데 땀 빼 가며 거기 오르기도 그렇고. 동우회 이거 참 잘 만들었지. 이걸싸나 안 생겼더라면 어딜 가겠어. 시상에 늙어 대접 받는 건 호박뿐이라 카더이만 빈말이 아이제."
곧잘 우리끼리 하는 푸념이다.
65세 이상 자살률이 10만 명당 71명으로 OECD국가 가운데 1위를 누리고 있다니, 이 또한 이 아닐 수 없다.
회원 가운데는 구세대가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도 많다. 가 십팔번이던 친구가 어느 날 를 부른다든가, 가 무슨 잡지책 이름으로 알고 있던 친구가 의 리더가 라는 거까지 들먹이며 왈가왈부하는게 모두 그런 거 아니겠는가. 이런 게 모두 밀려오는 세월한테 앙탈로 저항해보는 맞불이라고 본다.
인터넷으로 노인방을 기웃거리는 것도 그렇고, 문자 메시지로 곗날을 통보해서 친구들을 놀라게 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건 필요해서라기보다는, 는 존재의 확인,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본다.
명문장으로 알려진 정비석의 수필 의 마지막장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금강산 마의태자의 무덤 앞에서 백을 못 채우는 인간사의 허무함을 절규하는 작가의 마음이 눈에 선하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왔다가 갈 뿐이다.
인생 종착역이 머잖은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포물선 고개 넘어 저쪽 일은 잊어버린 지가 오래 된, 그리고 이제는 자신도, 힘도 없이 퇴행성 질병에 시달리며 눈치 하나로 사는 사람들.
"이자 그냥 눈치껏 사는 거다. 눈치가 싸면 절에 가서도 젓국을 얻어 묵는다고 그러잖어. 버스를 타더라도 젊은들 옆에는 가지 말고, 저 앞에서 담뱃불 든 애들이 오거들랑 먼눈이나 팔고, 그래그래 살믄 대는 거여. 우리가 그래 배웠다고 동몽선습(童蒙先習)이나 명심보감의 잣대로 잴라 캐가지고야 어림없는 소리지."
이맘때쯤이면 누구나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보며 보내는 시간이 많은데 어느 틈에 우리도 그런 시점을 맞은 것 같다. 어디 흐르는 것이 강물뿐이겠는가. 삼라만상이 다 그렇게 태어나서는 흘러가는 것을….
뜨는 해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지는 해도 아름답다. 그런데 어인 까닭인지 사람들은 동해로만 모여들고 일출(日出)에만 박수를 보낸다.
일출과 일몰(日沒)은 다르다곤 하지만 사진으로 붙들어놓으면 하나도 다를 게 없다. 희망으로 솟는 해야 당연히 아름다울 수밖에 없지만 산전수전의 일생을 열심히 살다가 고단한 몸으로 잠자리에 드는 해도 한번 보아라. 이미 기울고는 있지만 그것 또한 아름답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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