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자동차, 한길만 달려왔다<9>…제3회 매일시니어문학상 논픽션 특선-이헌원

21. 양양길 전무

그러나 마누라는 건강이 점점 좋지 않았다. 간병인이 잘 해 주었지만 재활치료가 충분하지 못한 것인지 조금 씩 조금 씩 다리에 힘도 빠지고 팔 다리가 아픈 고통도 자주 호소하였다. 사위 헥터가 시내 한 병원에서 리브란도(Librando)라는 의사가 독일에서 수입한 혈관 청소 제 같은 것을 주사를 하여 중풍환자 들을 치료하고 있는데 그 효과가 뛰어나다고 알려왔다. 약품명을 통보 받아서 한국의 병원에 문의하여 보았으나 아무데고 아는 데가 없었다. 선희도 첫 아들은 출산하여 몸이 안 좋은 상태여서 회사 일은 더 보기 힘들어졌다. 아내도 더운 지방에서 지내기가 수월하다는 이야기라서 필리핀 행을 결심하였다. 한국에서 내 대신 일을 처리해 줄 사람을 물색한 결과 양영길씨가 적임자로 생각 되었다. 먼저 채용하여 업무처리를 익숙하게 하였다. 그는 컴퓨터에서 서류를 작성하는 것이 서툴렀으나 선적서류나 세무 신고자료 작성 등은 시간이 걸려도 혼자 할 수 있게 되었다. 직위는 전무라고 호칭하였고 명함을 만들어 주었다. 모든 일을 양전무에게 맡기고 2006년 7월 19일 나는 아내를 데리고 필리핀에 오래 거주할 목적으로 떠났다.

먼저 헥터가 추천한 병원을 찾았다. 리브란도 의사와 면담하였다. 2개월쯤 치료하면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병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혈관 주사를 맡고 있었다. 약 값이 만만치 않은 큰 금액이지만 신체의 마비가 어느 정도까지는 풀린다고 하니까 그의 처방을 받기로 하였다.

의사 리브란도가 아내를 진료하고 프로그램을 짜 주었다. 한달 치료비용이 우리 돈으로 8백만 원가량 되었다. 스포티지 한 대를 판값이다. 그래서 치료비 명목으로 차 한대를 미리 주었다.

약은 주로 혈관을 청소하는 것이며 뇌 세포에 산소를 공급하기도 하였다. 2주일 지나니 그 효과가 크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다리에 힘이 올라서 내가 조금만 부축해 주면 잘 걸었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나서 많이 좋아졌을 무렵 마누라는 급성 신장염으로 중화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리브란도의 약이 신장에는 무리가 된 것이라 한다. 3일만에 곧 퇴원을 하였다. 하여간 몸은 많이 가벼워졌다.

리브란도가 다시 검진을 하였고 신장에 무리가 갈 만한 약은 제외하는 등 새로운 처방으로 한 달간 더 혈관 주사를 맞았다. 차 한대 값이 더 들어갔음은 물론이다. 총 두 달 치료를 받은 결과는 많이 좋아졌다. 휠체어 없이도 바깥 출입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간병인도 잘 구했다. 키도 크고 힘도 세어서 마누라를 잘 돌봐 준다. 전에 다니던 빈센테(Vincente)라는 재활 전문 병원에 매일 잘 갔다 오고 있다. 그런 한편 선희는 막탄에 집을 지어 이사를 갔다. 헥터의 큰 누나가 살고 있는 주택단지 내에서 같이 살게 된 것이다. 회사 일을 내가 인수를 받았고 딸은 가정주부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래서 내가 큰 방으로 옮기고 빈 방에는 마누라가 여러 가지 운동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꾸몄다. 방 벽에 사방 파이프를 설치하여 마누라가 이것을 붙잡고 방안을 걸을 수 있게 하였고. 천정에 도르레를 설치해서 팔 운동도 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아내는 운동을 하는 것을 극히 싫어하였다. 언제나 간병인하고 실랑이를 하였다.

한편 자동차는 호황 국면으로 들어섰다. 지금까지는 한 주에 한 컨테이너 6대를 들여왔으나 판매가 호조를 보이니 수입물량을 늘려나갔다. 물량을 2배로 늘리기 위해서 한 주에 2컨테이너를 싣도록 양 전무에게 지침을 내린 한편 생산량 배증을 위해서 도장 작업장을 늘리는 투자에 박차를 가하였다. 판매가 계속 호조를 보이자 이번에는 매주 2컨테이너를 싣게 되었다. 양 전무는 참으로 동분서주 하였다. 좋은 차를 매주 아벨라 6대 스포티지 6대씩을 구입해야 했으니까 절대 만만한 일이 아닐 것인데 양 전무는 묵묵히 할 일을 다해 주었다. 입사 5개월만에 회사는 매달 50대 판매를 할 수 있는 큰 회사로 발돋움하였다. 세부에서는 단연 제일 큰 회사가 되었다.

12월 마지막 선적 작업을 끝내고 양 전무 부부와 배은효 부부를 세부로 오도록 초청하였다. 고생하는 양 전무를 위로하고 또 필리핀 현지 공장을 와서 눈으로 봄으로써 업무 수행에 감을 익히도록 함이었다. 두 사람은 나의 공장 규모에 놀라움을 표시하였다. 이는 무엇보다 공장 터가 넓었기 때문에 마음대로 설비를 증설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앞서 황전무가 좋을 터를 잡아 주어서 회사 발전의 기틀이 되었던 것이다.

다음해에는 정비 사업을 해 보고 위하여 10스톨 짜리 정비 공장 표준 레이아웃을 만들도록 양 전무에게 지침을 내렸다. 그는 이 작업도 대우자동차 정비의 인맥을 통하여 생생한 자료를 입수하였다. 그리고 모든 장비 일체를 선정하고 구입하여 보내왔다.

그리고 양 전무는 내 조카를 갱생의 길로 이끌어 내는데 중요한 일을 하였다. 두 사람 황전무와 양전무는 부산 버스공장 생산과에서 오래도록 같이 일을 한 바 있는데 이 인연으로 나의 사업을 성공으로 이끄는데 큰 공을 세운 것이다. 두 사람의 은혜는 평생 잊을 수가 없다.

22. 셋째 사위 입사

셋째 사위가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를 하였다. 40초반의 나이지만 재취업이 어려운 모양이다. 셋째 딸이 앞으로 살아갈 일이 걱정인 모양으로 솔직히 아버지 회사에서 근무하도록 조치하여 주십사 하고 몇 번 부탁이 왔다. 양 전무를 채용한지 아직 1년 미만인데 그만두라는 이야기는 차마 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양 전무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하시는 자동차 일을 셋째 사위 소군에게 인계하여 주십시오. 그 대신 양 전무에게는 다른 일감을 찾아보도록 합시다. 여기 필리핀에는 참치를 위시한 수산물이 풍부한 곳이니까 이곳 수산물을 한국으로 수출할 가능성을 찾고 있습니다."

"나를 위해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 계시다니 고맙습니다. 한국에서 필리핀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는 수산물이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며칠 뒤 양 전무가 조사 결과를 메일로 보내왔다. 한국의 두 업체 동원 참치와 사조 참치에서 냉동 참치를 수입하고 있으나 이들은 대기업으로써 필리핀의 공급처를 이미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후발주자가 이들 업체에 수출 길을 터는 것은 불가해 보인다고 하였다.

그대신 생 참치를 수입하는 곳이 한군데 있는데 아주 적은 물량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한 번 찾아가서 사장을 만나보고 어떤 가능성이 있으면 2차보고를 하겠다고 하였다. 덧붙여 어묵을 생산하는 사업도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 하였다.

제9부. 새로운 사업을 찾아서

1. 젠산 어항(Gensan Fish Port)

문제가 생겼다. 내년 2008년도부터 세부에는 승용차 수입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자동차 사업을 못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양 전무를 내보내지 않고 생참치나 생선 수출 또는 어묵사업을 검토하게 한 것이 마치 이런 때를 예상하고 미리 준비를 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본격적으로 이 일을 서둘렀다.

먼저 양 전무가 조사한 생 참치 판매를 하고 있다는 김성진 사장에 대한 조사 내용을 보고하여 주었다. 그는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판매점포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그가 수입하고 있다는 가격을 알려왔다. 그리고 필리핀을 방문해 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 한편 어묵을 만드는 재료인 연육을 생산하는 공정과 설비 내역 등을 보내왔다.

그래서 김성진 사장과 연육사업팀 조사단을 구성해서 필리핀으로 오는 출장 일정을 수립하라는 지시를 양 전무에게 보냈다. 그런 한편 짧은 일정으로 젠산이라는 곳을 다녀올 계획을 세웠다. 젠산이라는 곳은 민다나오섬의 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참치와 온갖 생선이 많이 들어오는 곳이라 한다. 그곳엔 사위 헥터의 고향이고 또 바깥사돈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다. 아내에게 출장 이야기를 하였더니 함께 따라가고 싶다고 하여 같이 가게 되었다. 사위 헥터도 동행 하였다.

젠산으로 가는 비행기는 오전에 있었다. 공항에 도착하니 오래간만에 바깥 사돈을 만났다. 헥터가 미리 자기 아버지에게 이야기 하여 두었으므로 쉽게 어시장(Fish Market)에 들어갈 수 있었다. 먼저 참치가 들어오는 부두로 갔다. 항구에는 하얀 어선들이 줄을 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으며 바로 선착장에 있는 배에서 많은 일꾼들이 어깨에 참치를 둘러메고 걸어 나와서 검사장에 올려놓고 있었다. 200m는 좋게 보이는 긴 선착장 부두에는 검사라인이 40개는 되어 보였다. 검사대에서는 제일 먼저 참치의 무게를 잰다. 그 다음 검사컨베이어에 올려 진다. 검사원이 쇠꼬챙이를 참치에 찔러서 살점을 찍어 내어 색깔, 기름함유량, 맛을 보면서 등급을 매기고 있다. 컨베어 위를 흘러가는 참치는 아가미가 제거되고 꼬리가 짤려진다. 이때 나온 피가 바닷물로 들어가서 선착장 바닷물 색깔이 온통 피빛으로 물들었다. 처리된 참치는 대기하고 있던 냉동선에 차곡차곡 쌓이고 그 위에 얼음이 듬뿍 덮어지고 어디론가 쉴새 없이 떠난다.

참으로 장관이다. 이 많은 참치가 들어오고 있다니 참으로 놀라웠다. 다음은 생선하역장을 차례차례 둘러보았는데 선착장마다 하역되고 있는 물량이 엄청나다. 선착장의 길이가 200m나 되어 보이는데 이런 곳이 세 군데나 있다. 고기 중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전갱이 같은 것도 있다. 사돈 사위와 함께 다 둘러보고 난 소감은 한마디로 바로 이것이다.

시내 좋은 식당에 들러 좀 늦은 점심식사로 생선요리를 즐겼다. 생선이 많이 나는 곳답게 값이 싸고 맛도 있다. 마누라를 데리고 온 것이 잘 하였다.

식사 후 헥터는 아버지 집으로 들어가고 우리 부부는 젠산에서 제일 비싸다는 호텔로 들었다.

이 사업을 어떻게 전개하여 나갈 것인가? 나는 호텔에 들어가서 마누라와 얘기를 나누었다. 참치나 생선은 한국으로 수출하거나 여기서 연육 공장을 설치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이야기 하였는데 마누라도 이렇게 많은 생선을 본 것은 처음이라면서 이 남편보고 잘 해 보라고 격려를 보낸다.

한편 다바오란 곳이 젠산에서 150km정도 떨어져 있으니 자동차 사업을 다바오로 옮겨서 헥터가 경영하겠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육 사업 시 혹시 필요한 일이 생길 경우에는 헥터의 도움을 쉽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하던 사업을 이어가면서 사업의 주체로 삼아야 하는 전략도 필요한 것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4년 전에 황전무를 다바오에서 철수시키지 말았어야 하는 것인데 좀 아쉬운 마음이 든다.

2. 참치와 연육 사업 조사단

한국에서 조사단 4명이 필리핀으로 오는 일정 계획이 왔다. 3박4일의 일정이었는데 손님맞이 준비를 단단히 하였다. 젠산 바깥사돈에게 참치 가공 및 수출하는 회사를 한군데 선정해 두고 협의할 사항을 미리 알려주도록 하였다. 그러나 사돈은 컴퓨터를 사용할 줄 몰랐으므로 회사가 선정되면 그 회사 책임자를 만나서 면담하고 그 책임자의 이메일 주소를 문자 메시지로 보내 달라고 하였다. 한 두 시간 후 답장이 왔다.

회사이름은 필립스(Philips)라고 한다. 나는 먼저 방문하는 목적을 메일로 송부한 다음 전화를 걸어서 확인하였다. 책임자 되는 사람은 여성이었다. 전화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무척 상냥하다. 호텔 예약도 미리 해 두었다. 승용차 한대도 렌트해 두니 모든 준비는 끝난 것 같았다.

젠산이라는 곳을 미리 가 보았으므로 헥터가 나설 필요는 없고 사돈만 도와주면 되었다. 일행 4명은 양전무, 생참치 수입자 김사장, 연육 수입회사 노이사, 최씨 마케팅 담당 등이었다. 세부 공항에서 바로 다바오 어항으로 향하였다. 사돈이 선정한 회사 필립스는 부두 중간지점에 있었다. 전화로 먼저 인사하였던 메니져 메린다(Manager Melinda)와 굳게 악수를 나누었다. 모두 인사가 끝나자 현장을 보여 주겠다고 한다. 아래층 탈의실에 들러서 준비해 두었던 장화, 흰색가운, 마스크, 머리덮개 등의 위생복을 갖추고 멜린다가 안내하는 대로 공장 안으로 들어섰다. 큰 얼음물 통에 참치가 담겨 있다. 나즈막한 지붕에 조명이 밝게 켜져 있고 남녀 직원 모두 똑같은 위생복을 착용하였다. 공장내부는 에어컨이 잘 가동되는지 무척 시원하다.

남자직원 두 명이 물통에 들어 있는 참치를 들어 올려 작업대 위에 놓는다. 첫 공정은 머리와 꼬리를 자른다. 짤린 꼬리를 살펴보니 크기가 거의 일정한데 등뼈가 여덟 마디이었다. 머리 부분은 아가미를 따로 떼어 내고 또 볼태기(Bangha) 살을 도려낸다. 몸통의 지느러미를 모두 제거해서 다음 공정으로 넘어간다. 긴 칼을 든 작업자가 내장을 가르고 내용물을 다 꺼낸다. 그런 다음 등뼈를 남기고 몸통을 2등분 한다. 등뼈가 있었던 부분이 쭉 검게 보이는데 이를 다시 제거한다. 이 검은 부위를 검은 살점(Black Meat)라고 하였다. 다음 공정에서는 껍질을 벗긴다. 그 다음은 뱃살 부위를 따로 떼어 낸다. 나머지 몸통 부위가 몇 개의 토막으로 짤랐는데 이를 로인(Loin)이라고 불렀다. 마지막 CO 처리를 하니 고기 살이 보기 좋게 붉은 색을 띄었다. 포장을 하고 냉동을 한다. 냉동이 된 것을 대기하고 있는 냉동 컨테이너에 싣는다.

생참치를 수입하고 있는 김 사장은 일본에서 6개월간 참치를 손질하는 방법에 대한 연수를 받은 바 있다고 하면서 공정 중간 제품의 이름들을 말해 주었다. 사무실에 다시 들어오니 테이블 위에는 참치회와 와사비 일본간장을 준비해 놓았다. 멜린다가 친절하게 시식용이니 맘껏 맛보라고 한다. 이 여자가 손님을 대하는 예의와 방법이 아주 상큼하게 느껴진다.

시식을 하면서 김 사장이 많은 관심사를 질문하였는데 이를 내가 통역을 하였다. 가끔 전문용어가 많이 나왔고 내가 이해할 때까지 설명을 듣고 통역을 하다 보니 좀 길어지기도 하였다. 김사장은 빅아이(Big Eye; 큰 눈을 가진 참치)의 A등급을 생으로(냉동처리하지 않은 상태)수입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멜린다 대답은 이것은 여기 젠산에서는 잘 들어오지 않고 있으며 다바오의 후왕부왕(Huwang Buwang)이라는 회사를 통하여 수출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수입할 물량을 물었다. 김 사장은 일주일에 50-60kg짜리 두 마리라고 한다. 멜린다의 대답은 그 정도라면 자기가 적극 나서면 그 양을 대줄 수 있다고 하였다.

점심 식당을 지난번 가 본 그곳으로 이미 예약을 해 두었다. 멜린다에게 함께 갈 것을 요청하였으나 겸손히 사양하였다. 할 수 없이 식사 후 다시 들리기로 하고 우리 일행만 식당 란체리스(Rancherris)로 갔다. 필리핀 토속 해산물(Sea Food)를 먹어 본 일행들은 연방 탄성을 지른다. 마냥 즐겁게 식사를 마치고 어항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부두로 가서 일반 잡고기가 들어오는 것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내가 놀란 것처럼 일행 모두가 수많은 물고기가 배에서 내려지는 것을 보고 놀라워하였다. 이 각양각색의 물고기중 연육으로 가공하기 좋은 물고기를 선정해 달라고 하였더니 잘 모르고 있다. 어떤 물고기가 수율이 좋은지를 모르는 것이다. 이번 팀에서 연육 생산기술자가 빠진 것이 몹시 안타까웠다. 마지막은 참치 등급을 검사하는 라인에서 김성진 사장은 등급 판정을 서슴없이 하였는데 그곳 검사원들이 등급표 스티카와 일치하였다. 나는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모르겠다. 내 눈에는 그 놈이 그 놈이니까 (이거 큰 일 났다) 그런데 빅아이(Big Eye) A급은 좀처럼 보기 힘들었다.

오후 늦은 시간 다시 멜린다 사무실에 들렀다. 이번에는 참치 가공 식품들을 테이블 위에 가득 올려놓고 시식해 보라고 하였다. 참치꼬치, 참치햄, 볼태기와 꼬리부분 숯불구이, 참치껍질 튀김 등 이름도 모를 가공식품들이 선을 보인다. 일행 중 최씨가 조심스럽게 맛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한국에서도 잘 팔릴 것이라 예상하는 품목을 그가 추천하는 대로 나는 받아 적었다.

첫날 조사는 무사히 끝났다. 사무실을 나오면서 나는 멜린다에게 정중히 저녁식사에 초대하였다. 직원 모두가 함께 오도록 바란다고 간곡히 청했다.

시내로 들어오는 차 중에서 해산물 상점을 발견하고 잠시 들렀다. 거기에는 필립스 사무실에서 보았던 식품들도 많이 있었다. 최씨는 이들 식품들을 한국으로 가지고 가서 개발하고 판로를 개척해 보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내일 저녁에 요청하는 물량을 사 주겠다고 하였다.

저녁식사 자리는 낮에 들렸던 장소인데 VIP룸으로 식당 측에서 자리를 내 주었다. 멜린다와 사무실 여직원 두 사람이 함께 참석해 주었다. 나는 멜린다에게 여기 한국 사람들은 무엇이나 잘 먹으니 당신이 먹고 싶은 대로 최상의 요리를 주문하라고 아예 일임해 버렸다. 다만 술은 산미구엘 맥주(San Miguel Beer)라고

이윽고 병맥주와 간단한 안주가 먼저 나오고 모두 유리잔을 채워 들었다. 양전무가 나더러 건배 제의를 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렇게 만난 것을 기뻐합니다. 영원한 우정을 위하여 건배!"

맛있는 식사가 나오고 양전무의 재치 넘치는 화술로 자리는 점점 좋은 분위기가 되어 갔다. 양전무의 유창한 영어가 빛을 발했다. 나는 이를 중간 중간 동시통역을 하여 일행 세 사람도 같은 분위기 속으로 끌어갔다. 양전무의 유모와 위트가 좌중을 온통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예감이 좋다. 사돈이 회사를 잘 선택한 것 같고 메니져인 멜린다가 일을 깔끔하게 잘 처리해 줄 것 같은 기분이다. 늦은 시간 호텔에 들었고 사돈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 호텔 내 식사 자리에서 구수회의를 하였다. 그 결과 양전무가 두 사람과 함께 사돈의 도움을 얻어서 생선이름과 생선값, 반입량 등을 조사하기로 하였고 나는 김성진 사장과 함께 필립스와 수출상담을 하기로 하였다. 멜린다와 아침에 반갑게 만났다. 우선 참치부두로 함께 가서 관심사를 논의하기로 하였다. 우리는 여러 라인을 둘러 보면서 빅아이(Big Eye)를 찾았다. A등급은 한 마리도 없었고 B등급 몇 마리를 보았을 뿐이다. 김사장은 나에게 등급 판정과 고기 보는 법 등을 다시 설명하여 주었다. 내가 이것을 빨리 깨쳐야 하는 것이다.

3. 다바오의 후왕부왕상사(Huwang-Buwang Co.)

사무실로 다시 돌아와서 멜린다 는 다바오로 가 볼 것을 권하였다. 여기 젠산에는 빅아이(Big Eye A등급)가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면서 다바오의 후왕부왕이라는 회사를 소개하여 주었다. 이 회사로 멜린다는 즉시 전화를 걸었다. 한참 긴 통화 끝에 오늘 오후에 출발해도 좋다고 하였다.

김사장이 가격을 물었다. 멜린다는 준비해 두었던 듯 자료를 들고 와서 보여 주면서 자기들의 수출가격을 말하였다. 김 사장은 한참 계산기를 두드리더니 나보고

"이 사장님 수수료(Commission)를 얼마나 원하십니까?"하고 물었다.

"나는 이 분야에선 처음이라서 잘 모릅니다. 김사장이 책정하면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그는 한참 더 계산을 하더니

"이 사장님의 수수료를 이 견적 가격의 20%로 정하여 드리겠습니다. 그리하면 제가 지금 인도네시아에서 수입하고 있는 가격과 같아집니다. 같은 가격이지만 이 사장님의 성실함과 좋은 매너에 호감을 갖게 되었고 한국 분으로부터 공급 받는 것이 의사소통이 원활할 테니까요"

"아 20%라고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L/C를 개설해 줄 건가요?"

"지금 인도네시아와 거래를 싣기 전에 50% 현금을 지급하고 B/L을 받으면 50%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멜린다에게 통역을 하였다. 멜린다의 대답은 싣기 전에 100%현금을 받던지 L/C가 Open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김사장은 좀 더 생각해 보자고 하며 수입에 따른 선적서류에 대해서 하나씩 샘플을 보여 주면서 가능하냐고 물었다.

멜린다의 대답은 모두 OK였다.

나는 사돈을 연락하여 먼저 점심식사 자리로 출발함을 알렸다. 멜린다가 알려준 다바오 어항의 위치, 상담자, 전화번호 등을 다시 확인하였고 바로 전화를 걸었다. 상담자는 부취(Mr Butch)라는 메니저인데 방문시간을 확인해 두었다.

사돈이 얘기한 점심 식당을 젠산에서 가장 유명한 참치구입 집이라 하였다. 나는 대충 위치를 알고 있었으므로 거침없이 차를 몰았다. 근처에 가서 길을 물으니 쉽게 찾았다.

이런 집은 다바오에서 들린 적이 있는데 구이 맛이 일품이었다. 그래서 식당 밖에서 연기를 내며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화덕을 김 사장에게 구경시켜 주었다. 그 자리에서 종업원을 불러서 꼬리구이 두 개 볼태기 구이 네 개 그리고 새우구이 두 개를 주문하였다. 맥주 두 병을 먼저 가져다 달라고 한 후 식당 안 자리에 앉았다. 김 사장은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다고 하며 한국에는 이런 구이전문 집을 열면 좋은 사업이 되겠다는 말을 한다. 나는 그러면 김사장이 바로 검토해 보라고 하였다.

이윽고 사돈이 일행을 태우고 왔다. 모두 바깥을 둘러보고 들어온 일행들이 맛있는 참치구이를 먹어 보게 되었다고 야단들이다. 대나무로 만든 의자며 식탁들이 소박해 보여서 좋다. 모두 술잔을 들고 건배를 하였다. 안주로 새우구이는 일품이었다.

볼태기살 구이의 깊은 맛은 천하일미라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 한다. 특히 내가 알려준 소스를 만들어서 먹는 맛은 필리핀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식사도중 나는 다바오로 가게 되었음을 일행에게 말하였다. 내일 오후에 돌아올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식당을 나왔다. 사돈은 다바오로 가는 큰 길에 나와서 초행길이니 천천히 가라고 하였다. 사돈은 일행을 태우고 다시 어항으로 돌아갔다.

다바오로 가는 길은 2차선 도로 하나뿐이다. 다바오 어항은 다바오 시내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다고 하니 그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천천히 차를 몰면서 주변 경치도 구경하고 김 사장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필리핀의 시골 길이 한결같은 모습이다. 깊은 산중을 돌아들어 몇 구비를 지나니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고 일망대해가 눈앞에 쫙 펼쳐진다. 조금 더 내리막길을 내려오니 오른편에 아담한 휴게소 건물이 보인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쉬었다.

커피를 한잔씩 들고 전망대 난간에 섰다. 멀리 새파란 산들과 뭉게구름이 지상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지나가는 모습, 그 너머로 아스라이 푸른 바다가 보인다. 김사장은 참으로 아름다운 경관이라고 하였다. 나도 처음 대하는 황홀한 모습이었다. 젊은 김 사장은

"이 사장님 덕분에 이런 좋은 경치를 보게 되었습니다"

라고 하였다.

"아니 내가 오히려 고맙지요. 김 사장이 오지 아니했으면 내가 어떻게 이런 곳을 올 수 있었겠습니까?"

나는 또 운전대를 잡았다. 조심해서 긴 내리막길을 내려왔다.

이번에는 평지대로를 만났다. 쭉 일직선으로 뻗은 길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 길 왼편에는 망고나무 과수원이 있고 조금 더 오니 오른쪽에 바나나 농장이 있다. 길 좌우 과수원은 차가 달려도 달려도 끝이 없이 이어진다. 이윽고 일직선 길 끝에 다다랐다. 좌우 과수원의 풍경도 다 지나갔다. 다시 해변가 도로를 지자던 중에 길가에서 두리안을 놓고 파는 데를 만났다. 좀 쉴 겸 과일도 맛볼 겸해서 차를 세웠다. 김 사장은 두리안의 고약한 냄새에 코를 막는다. 나는 아무 거리낌 없이 하얀 과육 덩어리 하나를 입에 넣었다.

"아! 달고 맛있다" 나는 김 사장에게

"이게 두리안 이라는 과일인데 그 냄새는 지독하나 맛은 기가 막히게 좋습니다. 신기하게도 입에 넣는 순간 고약한 냄새는 사라집니다"

나는 과육 한 덩어리를 그의 입에 대었다. 움찔했으나 곧 입을 벌였다. 맛을 본 김 사장은

"아! 세상에 이런 과일도 다 있나요?"

하면서 싱글벙글한다. 나는 한 개를 더 샀다. 둘이서 실컷 먹었다. 나는 이 과일을 두고 필리핀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려주었다.

"냄새는 지옥, 맛은 천국"

한 30분 더 달려서 다바오 어항 안내판을 발견하였다. 안내판을 따라 들어가니 바로 목적지를 찾았다. 젠산과는 달리 이곳은 그리 크지 않다. 한문으로 된 회사간판을 쉽게 찾았다. 부취(Mr. Butch)라는 사람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사장실로 우리 일행을 안내하였다. 중국인 사장을 만났다. 그는 한국에서 온 사람들로 젠산의 멜린다가 보낸 사람들이라고 사장에게 소개하였다. 사장은 나이가 좀 들어 보이고 무척 온화한 성품으로 보였다.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이곳 참치들은 대부분 인도네시아 영해에서 낚시로 잡아 온 것이라 하였다. 이곳의 업체는 한 20군데쯤 되며 여기 들어오는 참치는 빅아이 A등급이 많다고 하였다.

필립스 회사와의 관계를 물으니 필립스가 수출처를 찾으면 필립스의 이름으로 수출하도록 도와주며 소액의 커미션을 받는다고 하였다. 가격을 물으니 멜린다가 제시한 가격과 같다.

한국으로 수출한 일이 있느냐고 물으니 아직 생참치 수출실적은 없다고 하였다. 사장은 여기서 바로 선적 조치를 한다고 하였다. 부취가 이곳 포워더(Forwarder)에게서 받은 항공운임표(Air Freight)와 항공편의 시간, 한국도착 시간 등의 자료를 보여 주었다.

나는 포워더를 직접 만나고 싶다고 하였더니 부취가 전화를 걸었다. 포워다의 책임자가 직접 오기로 되어 있다고 하였다. 그 동안 우리는 하역작업을 하고 있는 다른 회사에 들려 빅아이 상태를 둘러보았다. 후왕부왕 회사는 참치 낚시배가 두 척 있는데 보름마다 입항한다고 하였다. 이곳에서는 과연 빅아이가 전체 물량의 20%정도나 되며 이 중 A등급은 3%선이라고 하였다. 등급 검사하는 방법은 젠산과 똑같았다. 다행히 일본으로 수출하는 참치의 포장하는 작업을 쭉 지켜보게 되었다. 한국이나 일본이 비슷한 거리에 있으니 포장방법은 똑같다는 것이다. 이를 지켜 본 김 사장은 대단히 만족해하였다. 수출하는 물량 이외의 것은 옆 가공공장으로 옮겨진다. 가공공장은 한 곳 뿐이라 한다.

포워더가 달려왔다. 김사장은 한 번 더 한국에서 필요한 통관서류목록들을 확인하였다. 항공운임 등은 앞서 부취가 제시한 것과 동일하였다.

수출계약문제는 자기들하고 직접 해도 좋고 필립스와 해도 좋으며 결과는 마찬가지라고 하였다. 대금 결제 조건도 똑같다.

첫 만남인데도 사장이 저녁을 사겠다고 하였다. 한국에서 온 우리 두 사람의 인상이 매우 좋다는 것이다. 거저 안내하는 대로 차를 몰고 뒤 따라 갔다. 밤이 되었으므로 사장이 천천히 내가 잘 따라가도록 앞서 갔다. 아까 그 큰길로 나와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로 접어 들어서 곧 한 음식점으로 꺾어 들었다. 이곳도 씨푸드 음식점이다. 중국인들이 사람을 대접하는 매너가 무척 좋다. 그 중국인 사장은 자기 고향은 대만이라고 하였다. 지금도 춘절에는 고향방문을 하고 있다고 한다.

식당을 나와서 저녁 숙소 크라운 레저시(Crown Regency) 호텔로 향하였다. 가는 길은 몰랐지만 시내에 들어가 보면 분명히 낯익은 거리를 만날 것이다. 다바오의 시내 길은 복잡하지 않아서 쉽게 찾아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다바오를 앞서 두 번 방문한 적이 있으므로 낯익은 거리를 만나니 길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 호텔엔 한 번 투숙한 일이 있다. 나는 선희의 주선으로 클럽 얼티마(Club Ultima)라고 하는 멜버쉽( Membership)을 샀던 것이다. 400,000페소 무려 한화 천만 원이다. 이 호텔은 도심 가운데 있는 리조트이다. 숙박료와 두 끼 식사가 무료이다. 체크인(Check-in)을 하고 로비에서 수영복 두 개를 샀다. 안에는 좋은 수영장이 있으니 오랜 만에 이를 즐기기 위해서이다. 방에 들어가서 수영복을 갈아입고 나왔다. 우리 두 사람은 수영을 즐겼다. 참으로 유쾌한 저녁이다. 카운터에 앉아서 맥주 한 병 씩도 마셨다.

사돈에게 전화를 하였다. 다행히 늦은 시간임에도 사돈은 아직 호텔에 있었다. 양전무를 바꾸어 오늘 하루 일의 진척을 물었다. 많은 것을 조사하였고 지금 정리하면서 서로 의견을 나누고 있다고 하였다. 내일 할 일을 물으니 내일 한 나절 확인만 하면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내일 오전에는 사돈 집 근처에 대형양어장과 바나나 농장이 있는데 이를 견학하고 오후에는 어항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방으로 들어와서 나는 노트북을 꺼내 들었고 김사장은 "삼국지경영학"이라는 책을 펴 들고 독서에 열중하였다.

나는 밤이 늦도록 매매계약서를 작성하였다. 이런 문서작성에는 나는 이미 이골이 나 있다.

계약을 두 군데 다 해두는 것이 좋아 보였다. 다음 날 후왕부왕 사무실에 들러서 내가 밤새 작성한 계약서을 보여 주고 의견을 물었다. 별 이의가 없었다. 곧 프린트를 해서 각자 서명을 하였다. 김사장은 이번에 참치 한 마리를 샘플로 실어 가겠다고 하였다.

4. 필립스의 생 참치 수출

무사히 일을 마쳤다. 젠산으로 돌아오는 길은 한층 기분이 좋은 드라이브 길이었다. 다시 한 번 두리안도 사 먹었고 고개 위 전망대에서 다시 한 번 자연 경관을 음미하였다.

필립스로 갔다. 멜린다는 자기 방에서 무언가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준다. 다바오에서 진행한 일들을 말해 주었다. 나의 매매계약서를 보고 이의가 없다고 하여 서로 서명을 하였다. 김사장이 이번에 빅아이(Big Eye A등급) 한 마리를 샘플로 수입해 가고자 하니 여기서 보내든지 아니면 다바오에서 보내든지 하여간 필힙스의 이름으로 수출해 달라고 하였더니 멜린다는 대단히 기뻐하였다.

곧 양 전무 팀이 합류하였다. 나는 멜린다에게 연육사업도 같이 해 보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하였다. 그녀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기꺼이 도와 주겠다고 한다. 내일 떠나는 양 전무 일행은 멜린다에게 작별인사를 하였다.

어항을 나선 일행은 예의 그 해산물 상점에 들렀다. 최씨가 샘플로 가져 가겠다는 식품이 많았다. 나는 좀 많다 싶었지만 요구하는 대로 다 샀다. 주인에게 한국에 가져갈 물건들이니 포장을 잘 하여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내일 아침 비행기로 떠나니 포장을 한 채로 보관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큰 냉장고가 있으니 문제가 없다고 하면서 포장하기 시작하였다. 한국에서 식품통관에 필요한 서류가 있다고 김사장이 말했다. 과연 상점이 그 서류를 만들어주었다. 하마터면 빼 먹을 뻔하였다.

호텔회의실에서 양전무가 조사한 사항을 전달 받았다. 나는 자료를 보면서 어떤 생선으로 연육을 만드는 것이 가장 좋으냐? 수율은 얼마나 되느냐? 첨가제는 무엇이며 가격은 어떠냐? 등 기초적인 질문을 하였으나 대답은 별무신통이다. 연육수입자 노이사란 사람은 생산 공정과 기계사진들만 잔뜩 보여 줄 뿐 사업계획을 수립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것이었다. 나는 좀 화가 났지만 참았다. 최씨가 미안한지 자기가 가져가는 샘플의 식품 개발과 판로를 적극 개척하겠다고 나섰다.

회의 말미에 나는 양 전무에게 빠른 시일 내에 연육 제조기술자를 파견해 줄 것을 지시하였다.

양 전무는 좀 민망한 모양이다. 처음 시작하는 일이고 전혀 모르는 일이니 이렇게 문제에 부딪힐 수 있다. 앞으로 어떤 일이 고비가 될지 충분히 예상하고 있어야 함이다.

양전무 일행 세 사람은 예정대로 돌아갔다. 김사장과 나는 필립스로 갔다. 멜린다의 허락을 얻어서 가공 현장을 다시 견학하였다. 이번에는 김사장이 하나 하나 설명해 주니 빨리 이해를 하였고 열심히 메모를 하였다. 전문용어가 많았고 이 때 공부한 것이 많이 있는데 뒷날 모든 자료를 컴퓨터에 담았다. 처리과정에서 나오는 검은 살점(Black Meat), 꼬리, 볼태기, 아가미, 껍질, 머리 부분 등은 대체로 값이 싼데 연구하여 보면 좋은 사업성이 있을 것이라 하였다.

참치부두로 또 갔다. 등급판정 검사원에게 양해를 얻어 김사장이 하는 것처럼 손끝에 올려놓고 비벼보면서 기름기 함유량을 알아보려 노력하였으나 역시 아직도 어려웠다. 내 눈에는 색깔도 비슷비슷하게 보이니 등급판정이란 단시일 내 체득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 다음날 김 사장이 원하는 참치 한 마리를 발견하였다. 대금은 내가 결재하였다. 필립스 직원들이 정성스럽게 수출포장을 하였고 모든 선적서류와 한국에서 필요한 통관 서류도 갖추어 졌다. 참치를 실은 비행기는 마닐라로 떠났고 내일 한국으로 환적 된다.

오후 좀 일찍 일이 끝났다. 멜린다와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호텔로 돌아오던 중 자동차 매장 한 군데를 발견하고 사돈에게 거기 가보자고 하였다. 제법 큰 매장이다. 우리가 빌려 썼던 아벨라도 이 집에서 빌렸다고 한다. 나는 순간 다바오 보다 이곳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 여유가 있었으므로 시내를 돌아보며 자동차매장을 할 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소규묘 매장은 몇 군데 더 있었다. 아직 한국 사람이 하는 곳은 없는 것 같았다. 몇 개 후보지를 둘러보고 사돈에게 임대료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 볼 것을 부탁하여두고 다음 날 아침 세부로 함께 돌아왔고 김 사장은 한국으로 떠났다.

5. 자동차 사업 유지에 대한 노력

2008년 1월 자동차는 수입 중단이 되었다. 약 2년간 계속될 전망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나의 예감도 2년 이내엔 반드시 재개될 것이란 생각이다. 이 기간 동안 이 자동차 사업을 유지하는 방법은 다른 회사들처럼 민다나오의 가가얀이나 다바오로 옮겨 가는 수밖에 없다. 젠산도 무스림 지역이라서 위험요소는 좀 있으나 사돈의 고향이니 오히려 괜찮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생 참치나 연육 사업을 병행해서 나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대략적인 계획서를 만들어 사위와 딸을 불렀다. 내 계획을 설명하고 잠정적으로 사업장을 옮기자고 역설하였지만 딸과 사위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나는 무척 당황하였고 심난하였다. 어떻게 해서라도 자동차 사업을 계속해야 하는데 사위마저 민다나오로 사업장을 옮기는 것에 반대를 하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하나?

문득 민다나오의 송사장이나 아이아를 찾아보고 싶은 생각이 떠올랐다. 거래가 끊긴지 오래이지만 다시 거래를 이어 갈 수 있다면 그건 현실을 타개해 나가는 최상의 방법인 것이다. 오래 된 명함철에서 전화번호를 찾았다. 먼저 송사장과 통화를 하였다. 근황을 물으니 자동차사업은 그만두고 주택사업을 하고 있다 하였다. 수일 내에 민다나오를 방문할 일이 있으니 그때 찾아뵙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은 아이아와 통화를 하였다. 그는 대뜸 나의 목소리를 알아 듣고 대단히 반가워하였다. 택시 사업에 대해서 잘 되고 있느냐고 물으니 잘 하고 있다고 하면서 아벨라 차가 더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러면 내가 다바오로 가겠으니 나와 상담을 해보자고 하였더니 대 환영이다. 좋은 예감이 온다. 나는 즉시 직원을 시켜 나와 마누라의 비행기표를 사오도록 하였다. 그리고 아이아와 상담할 자료를 준비하였다.

왜 세부에만 중고차 수입을 금지하는가? 어느 날 느닷없이 수입을 금한다고 선언했다가 언제 또 슬그머니 풀어 줄 지도 모른다. 여기 사업장은 그대로 두어 재활용할 방법을 찾아보고 다바오나 가가얀에는 소규모로 판매장을 개설하여 현상유지만 하자. 다시 풀릴 때까지 그렇게 버텨보자는 생각이 간절하였고 또 다시 협의를 하였으나 또 마음을 얻지 못하였다. 사위가 나서지 않으면 자동차 사업을 옮기는 일은 불가하다.

다행이 아이아가 아벨라 차량을 한 달에 두 컨테이너씩 4월말까지 수입하는 계약서에 사인을 해 주었다. 우선 이것만으로도 한국의 사업장은 현상 유지가 된다. 그 동안 다른 업체에 공급할 곳만 찾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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