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이슬란드 동화' 러시아서 다시 본다

아이슬란드가 동화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지난해 2016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16)에서 8강 진출에 성공해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아이슬란드는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아이슬란드는 10일(한국시각) 2018 러시아 월드컵 유럽예선 I조 코소보와의 경기에서 2대0으로 승리해 7승 1무 2패 승점 22로 크로아티아(승점 20점)를 제치고 조 1위를 확정했다.

아이슬란드의 월드컵 진출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마치 동화처럼 다른 나라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이야기들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우선 구성원 중엔 특이한 이력을 가진 이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아이슬란드 대표팀을 이끄는 헤이미르 할그림손(49) 감독의 본업은 축구 감독이 아니라 치과의사다. 그는 취미 삼아 아마추어 축구선수 생활을 병행하다 국가대표 감독 자리까지 올랐다.

골키퍼 하네스 할도르손(32)은 영화감독 출신으로, 뮤직비디오 제작에 전념하기 위해 5년 전 은퇴했다가 복귀하기도 했다. 또 다른 골키퍼 외그문두르 크리스틴손은 법학도다. 그는 축구선수 생활을 병행하며 법학사 학위까지 받았다. 그는 최근 스웨덴 언론 익스프레센과의 인터뷰에서 은퇴 뒤 변호사의 길을 가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특이한 이력을 가진 이들이 많은 까닭은 아이슬란드의 인구가 워낙 적은 데다 생활 체육을 기반으로 축구선수의 길을 택한 선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이슬란드의 인구는 약 33만5천명으로 월드컵 역사상 본선 무대를 밟은 국가 중 인구 수가 가장 적다. 이전까지는 2006년 독일월드컵에 출전한 트리니다드토바고(약 130만 명)가 인구가 가장 적은 나라였다. 게다가 국토의 80%가 빙하 및 용암지대로 이뤄진 척박한 나라다. 자국 프로축구 리그가 없고 불과 7년 전까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112위에 불과했다.

최악의 환경 속에서 아이슬란드는 기적을 쓰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지난해 사상 최초로 유럽축구선수권 대회 본선에 진출했고, 본선 무대에서는 16강에서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를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불과 일 년 뒤 월드컵 유럽예선에서 크로아티아, 우크라이나, 터키 등 만만찮은 상대들이 몰린 I조에서 독보적인 실력을 과시하며 러시아행 티켓을 따냈다.

'얼음과 화산의 나라' 아이슬란드가 유럽 축구 강국들을 누르고 러시아월드컵 진출에 성공할 수 있었던 까닭은 20년 전 발동한 국가 차원의 사회 복지 프로그램 덕분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갖는다. 아이슬란드는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청소년들의 약물 복용과 흡연이 심각한 사회 문제였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청소년 비행 문제 해결을 위해 1998년 국가 차원의 사회 복지 사업을 펼쳤다. 동네마다 스포츠센터와 체육관을 짓고 청소년에게 체육 활동을 권장했다. 학교와 각 가정에는 스포츠 활동 지원책을 마련해 청소년들의 이탈을 줄여나갔다.

그 결과, 청소년들의 약물 남용, 흡연율, 알코올 중독률 등은 크게 줄어든 반면 청소년 스포츠 인구가 대폭 늘면서 전국민적으로 생활 체육 분위기가 조성됐다. 건강한 토양을 다진 아이슬란드는 엘리트 스포츠에서도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아이슬란드의 경제 상황도 국제무대 성적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아이슬란드 리뷰는 "실업률이 크게 떨어지면서 엘리트 스포츠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뒤에도 직업을 다시 구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며 "인구가 적은 아이슬란드에서 엘리트 스포츠가 활성화하고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국가가 주도한 사회시스템 덕분"이라고 전했다.

아이슬란드는 월드컵 진출로 인구 증가도 기대하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지난해 6월 유로 2016에서 8강 진출에 성공하고 9개월 뒤인 올해 3월 '역사적' 수준의 베이비붐이 나타난 것으로 알려졌다. 유로뉴스 등 현지 매체는 당시 "전례 없이 출산율이 치솟았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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