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헌재소장 권한대행 체제, 국민의 '코드'는 무시한다는 건가

문재인 대통령이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김 헌재소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부결됐음에도 새 후보자를 지명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현재 9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김 권한대행 체제는 김 재판관의 임기가 만료되는 내년 9월 19일까지 이어지게 됐다. 헌재소장을 비워둬야 할 불가피한 이유가 없음에도 이렇게 권한대행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권한대행 체제 유지의 이유로 청와대는 몇 가지를 들고 있다. 헌재소장 임기 명시와 관련해 국회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후임자 지명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것, 그럼에도 헌법 최고기관 수장의 공백 사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이런 결정에 헌재 재판관 전원이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절차적으로도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속내는 다른 데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주된 이유는 문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후임자를 찾지 못한 데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이유정 전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사퇴로 공석이 된 자리에 헌재소장 겸 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적임자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현 재판관 가운데 소장을 지명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접었다고 한다. 재판관 대부분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명한 재판관이란 사실은 그 이유를 가늠케 한다.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관측이 사실이라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문 정부 출범 후 '사법의 정치화'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과 청와대가 앞장서 헌법 최고기관을 '코드'에 맞게 정치화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헌재의 권위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이유가 무엇이든 헌재소장 권한대행 체제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게 해야 할 이유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킨 국회의 결정을 무시하는 처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국회의 결정은 대통령의 '코드'가 아니라 국민의 '코드'에 맞는 사람을 헌재소장 후보로 천거하라는 뜻이다. 문 대통령의 결정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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