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황병수의 배낭 메고 세계 속으로] 중세에 지은 아파트, 중국 푸젠성 '토루'

산속에 큰 버섯? 비행접시?…中 소수민족 객가인 집성촌

홍보용 책자에 소개된 푸젠성 남정에 있는 대표적인 토루인 전라갱토루는 가장 큰 토루 집단이다.
홍보용 책자에 소개된 푸젠성 남정에 있는 대표적인 토루인 전라갱토루는 가장 큰 토루 집단이다.
3층과 5층의 기둥이 각기 반대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는 유창루는
3층과 5층의 기둥이 각기 반대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는 유창루는 '토루의 어머니'라 불린다.

美 위성이 정보수집 중 발견

핵 시설로 오인했다가

공동주택으로 세상에 공개

명나라 때부터 내려온 건물

한가운데엔 우물'식량창고

높고 두꺼운 벽, 작은 창문

적 침입에도 거뜬한 구조

가장 큰 승계루 방만 400개

인터넷 검색 중 이상한 건물에 시선이 멈추었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곳은 중국 동남부 연해지역 푸젠성(福建省)의 남정과 영정에 위치한 토루군이다. 궁금하면 못 참는 성격이라 이내 항공 티켓을 예약해 버렸다. 아름다운 해양도시인 하문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 날 기차를 타고 남정으로 갔다. 남정역은 한적한 시골 외진 곳에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다. 토루는 여기서 차량으로 1시간 이상 이동해야 한다. 내리는 승객 대부분은 단체 관광객들이고 개별적으로 오는 여행객들은 많지 않은 듯하다. 처음 방문한 외지인은 현지인들 보기에 금방 티가 난다. 티가 많이 날수록 여러 가지 협상에 불리하다. 이럴수록 내공을 모아 유리한 고지를 점해야 한다. 오래되어 보이지 않는 승용차를 가진 젊은 청년이 최대한 친절한 표정으로 다가와 일정을 묻는다. 미리 검색한 정보를 떠올리며 시작한 협상은 싱겁게 끝이 났다.

토루는 넓은 산간지역에 흩어져 있는데 규모가 워낙 넓고 방대해서 모두 둘러볼 수는 없다. 남정과 영정의 대표적인 곳만 돌고 다시 이곳까지 데려다 주는 조건으로 모두 400위안에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오전 이른 시간이라 일일투어치고는 괜찮은 금액이다. 청년의 환한 웃음으로 보아 서로가 윈윈한 협상.

가는 길 양쪽에 바나나 농장이 수없이 펼쳐진다. 이곳은 중국 최대 바나나 생산지라고 한다. 중국 소수민족인 객가인의 전통가옥인 토루. 푸젠성에 위치해 있어 푸젠토루로 불린다. 세계서 유일한 산간지대 대형 건축물로서 중국 5대 민가 건축물 중 하나로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다.

미국 위성이 중국 정보 수집 중 특이한 형태의 건물이 잡혔는데 핵시설로 오인하여 확인한 결과 공동주택으로 밝혀지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명나라 때부터 내려오고 있다고 전해지는 건물은 위에서 보면 거대한 버섯 또는 비행접시 같은 독특한 형태이다. 둥근 형태나 네모난 형태의 건물에는 벽을 사방에 두껍고 높게 쌓아 적의 침입을 어렵게 해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돼 있다. 바깥 벽 하부에는 창문이 없고 상부에만 감시와 공격용으로 조그만 창문을 두어 남방지역의 강한 햇빛을 피할 수 있게 했다. 공기가 습할 경우 수분을 흡수하고 건조할 때는 수분을 방출하여 내부는 늘 상쾌한 환경을 제공하도록 과학적으로 설계된 건물이다.

토루에는 규모에 따라 수십 개에서 수백 개의 방이 있어 수백 명씩 함께 살았다. 건물 한가운데는 우물과 식량창고, 정원 등 공동시설이 있다. 공동우물에는 혹시 모를 독약 살포를 감시하기 위해 항상 잉어를 키웠다고 한다. 구조는 대부분 4층으로 되어 있는데 1층은 주방과 가축 우리, 2층은 음식물 보관소, 3층과 4층은 침실로 되어 있다. 객가인들은 한밤중에 결혼식을 하는데 신부는 시집갈 때 반드시 큰소리로 울어야 하며 피로연에 12개 그릇을 놓는 독특한 풍습이 있다. 현재 1층은 대부분 기념품을 파는 상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단독생활보다 공동생활이 여러 가지 장점이 많아 공동체의 결속력을 다지는 적절한 주거 공간이었던 것 같다.

토루는 남정과 영정에 주로 흩어져 있는데 남정에는 전라갱토루와 유창루, 화귀루가 대표적이다. 전라갱토루는 다양한 형태의 토루가 한곳에 모여 있는 가장 큰 토루 집단이다. 가운데 방형을 중심으로 4개의 원형 토루가 보호하듯 둘러져 있으며 산기슭에 층층이 만들어진 다락 밭과 조화를 이룬다. 홍보용 책자에 소개되는 대표적인 토루 관광지다. 유창루는 700년 이상 된 가장 오래된 토루로 '토루의 어머니'라 불리기도 한다. 3층과 5층은 기둥이 각각 15도 정도로 서로 반대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는 특이한 형태이다. 5개의 성씨가 살았고 방이 270칸이며 건물 안 사당에는 관음보살이 모셔져 있다. 유창루 가까운 곳에 하천을 낀 아름다운 마을 탑하촌이 있다. 장씨 성의 집성촌이며 대표적인 장수마을이다. 산속의 아담한 하천을 따라 양쪽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 풍경이 평화롭고 정겹다. 조그만 언덕에 올라가면 한눈에 들어오는 마을에 장씨 일가의 사당인 덕원당이 자리 잡고 있다. 사당 옆 석재 기둥에는 후손들의 성공 내력들이 기록되어 있다. 화귀루는 1732년에 방형으로 지은 5층 구조물로 남정서 가장 높은 토루다. 견고하지 않은 소택지 위에 지은 건물로 마당을 밟으면 땅이 말랑말랑하다. 두 개의 우물이 있는데 한쪽은 물이 맑고 다른 한쪽은 혼탁한데 그 이유는 모른다고 한다. 맑은 물을 마시면 여자는 미인이 되고 남자는 총명해진다는 구전이 내려온다. 그리고 매일 아침 우물의 수위가 지면보다 30㎝나 올라오는데 지금까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라고 한다.

영정은 토루의 발원지이며 전체 토루의 70% 이상이 있다. 둥근 형태의 토루가 많고 객가인의 이미지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으며 대표적으론 진성루, 승계루, 유경루 등이 있다. 진성루는 4층 건물 안에 또 다른 2층 건물로 이루어진 토루 안의 토루가 있는 독특한 구조다. 바깥 건물을 외환루, 안쪽을 내한루라 한다. 담은 흙으로 지어졌지만 내부 구조는 대부분 목조로 되어 있다. 화재에 대비해 방화벽 역할을 하도록 외환루 중간에 돌로 벽체를 쌓아 분리해 놓았다. 입구에 있는 우물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사당이 나온다. 220여 개의 방이 있고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 '토루의 왕자'라 불리기도 한다. 승계루는 토루 중 가장 규모가 크다. 내부는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미로처럼 길이 이어져 있다. 400개의 방과 현재 800여 명의 객가인이 살고 있다. 바로 옆에는 사각루인 세택루, 오운루가 자리 잡고 있다. 유경루는 가장 큰 장방형 토루이며 280칸으로 1851년에 건설되었다. 군사 훈련하듯 빡빡한 일정을 보내고 하문으로 돌아오니 어느덧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호텔 식당에서 피곤한 몸을 독한 백주로 달래고 침대에 누우니 천장에 둥글둥글한 토루가 질서 없이 돌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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