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경철이 만난 사람]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군비 균형 이뤄야 협상도 가능, 전술핵으로 北 인식 바꿔야"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의 라마다서울호텔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태우 건양대 군사학과 교수(전 통일연구원장)는 1991년 얘기를 꺼냈다. 그의 경북고 선배(김 교수는 49회다)인 노태우 대통령(32회)이 '비핵화 공동선언'을 내놨을 때였다. 선언의 핵심 내용은 한국이 먼저 비핵화를 선언, 핵무기 개발의 준비 단계라 할 수 있는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 등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당시 국방연구원에 있으면서 반기를 들었다. 핵무기는 한국이 가져서는 안 되지만 농축과 재처리는 미국하고 담판을 해서라도 반드시 우리가 할 수 있도록 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을 포기하면 일방적으로 북한에 밀리게 된다는 보고서를 수도 헤아릴 수 없이 써냈다. 그러나 당시 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은 들은 척도 안 하고 밀어붙였다고 그는 허탈해했다.

당시에는 핵 논리를 공부한 박사가 국내에 별로 없었던 상황이었다. 김 교수는 뉴욕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핵 논리에 대해 전문적 지식을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의 말은 철저히 무시됐고 그의 말을 빌리면 김 교수는 조직에서 내몰리기까지 했다.

"1991년 비핵화는 우리에게 큰 실책이었습니다. 당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절대 핵 잠재력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죠. 북한은 반드시 핵무장을 할 테니 우리만 병신 된다고, 그때 분명히 경고했어요. 하지만 결국 (북한이 핵을 갖게 되는) 오늘의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북한이 핵으로 위협하는데 미국이 우리나라에 전술핵을 제공해 주면 우리도 마음이 놓이고 미국도 오히려 편하지 않나? 미국은 전술핵의 한반도 배치를 왜 꺼리나?

▶미국의 전문가와 정부 관리들은 한결같이 한미동맹이면 충분하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미국이 지난 수십 년 동안 만들어온 핵무기 비확산 정책에 예외를 만들고 싶지 않을 것이다. 동맹국에 핵우산을 제공하지만 동맹국의 핵 보유는 핵무기 비확산 기조를 거스르는 것이다. 그래서 꺼린다. 겉으로 표현하진 않지만 미국이 중시하는 것은 중국이다. 한반도의 전술핵 배치와 관련해 중국의 반발에 신경 쓰고 있다. 또 하나, 미국이 공식적으로 이야기하진 않지만 한국의 정치적 불안정성에 대해 미국은 신경 쓴다. 미국은 한국의 보수정부와 동맹 관계를 맺고 진척시켜 왔다. 그런데 한국의 진보정부는 대북관이나 안보관이 보수정부와는 다르다. 다른 나라도 차이는 있지만 우리나라 정도는 아니다. 집권 정당이 바뀌더라도 안보 정책 등 대외 기조의 변화 폭이 다른 나라는 크지 않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정권교체기마다 안보 정책이 큰 폭으로 바뀐다. 그동안 미국은 이러한 한국 정부의 정권교체 관련 정보를 수집하느라 고생을 했다. 정권이 바뀌면 대북관과 안보관이 큰 폭으로 바뀌는 나라에 핵무기라는 최상의 전략 자산을 배치할 수 있느냐 하는 생각을 할 것이다. 물론 전술핵을 한반도에 들여와도 미군이 관리한다. 그런데 한국 내에서 국론분열이 일어나고 반미의식 확산이 일어날 수 있다. 궁극적으로 한미동맹이 파탄 날 수 있다는 생각도 하는 것 같다. 우리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연속성 부족을 이 부분에서 반드시 짚어봐야 한다.

-미국이 문재인 정부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는 의미로 들리는데?

▶당연히 그러리라고 본다. 미국 사람들은 문재인 정부의 중요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 있다. 청와대에서 대외 정책을 주관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잘 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성향도 알고 있다. 그러나 말은 하지 않는다. 한국과 미국의 전문가들끼리 만나면 비공식적으로 그에 대한 말을 한다.

-미국이 전술핵 한반도 배치를 허락 안 하는데 자유한국당 등 보수정당은 실현 불가능한 얘기에 왜 매달리나?

▶어렵다는 것을 왜 모르겠나? 이 주장을 하는 분들 모두 단점을 잘 안다. 그런데 전술핵 도입을 둘러싼 국내의 궤변들부터 정리한 뒤 왜 우리가 전술핵 얘기를 꺼내는지를 설명하고 싶다. 첫째 궤변은 전술핵을 가지고 오면 한반도 비핵화가 요원해진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이 있다. 북으로부터 핵미사일을 맞아 죽고도 비핵화를 얘기할 것인가. 북한은 여섯 차례 핵실험을 진행하고 수소폭탄까지 언급하는데 한반도 비핵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무책임하다. 북한이 약속을 다 어겼는데 이제 와서 이런 궤변이 어디 있나? 한반도가 군비경쟁의 장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두 번째 궤변이다. 내가 군비통제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배운 것은 군비경쟁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어떠한 축소도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상대를 설득해서 상대가 스스로 무기를 내려놓는 경우는 없다. 군비경쟁을 통해 균형을 이룰 때 협상과 군비통제가 시작된다. 또 전술핵을 도입하면 돈이 많이 든다고 하는 게 세 번째인데 우리가 말하는 전술핵은 과거처럼 900개에서 1천 개를 배치하자는 것이 아니다. 미국이 보유한 업그레이드된 B61-12라는 신형 전술핵 30개 정도를 가지고 와서 한국 공군기에 달자는 것이다. 30개의 전술핵을 가지고 와서 운용하는데 무슨 돈이 그렇게 드나. 우리 공군기가 운용하기 위해 체계를 점검하는 정도다. 무슨 수조원이 든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한다. 궁극적으로 북한에 대한 억제는 퍼셉션(Perception'인식)이다. 전술핵을 통해 우리를 함부로 못 보게 만드는 강력한 인식을 북에 보내는 것이 전술핵이 갖는 가장 중요한 의미다.

-최근 미국에 다녀왔다고 들었다. 미국 조야(朝野)의 분위기는 요즘 어떤가?

▶미국 정부의 관리들과 지식인들은 북한이 미국을 공격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물론 우발적 충돌, 비이성적 돌발 상황 등을 걱정하고 있지만 북한이 미친 척을 하는 것이지 진짜 미치지는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미국이 북한을 제대로 다루지 않으면 핵확산금지조약(Non-Proliferation Treaty'NPT) 체제가 위태로워진다는 점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핵확산금지조약 체제가 흔들리면 미국의 패권적 지위가 흔들릴 수 있다. 반대로 미국 국민들은 북한이 괌과 본토 공격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니까 '대한민국을 지켜주려다 우리가 당하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을 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가 한미동맹을 흔들고 있다. 미국 국민들은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다만 정부 관계자와 지식인층은 일반 국민들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미국을 걱정한다. 미국이 패권적 지위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겠느냐가 그들의 관심사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 군사적 옵션을 꺼낼 가능성이 있나?

▶북한이 미국에 까불고 있지만 미국에 대한 선제공격을 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안보 전문가들은 안보 위협 수준까지는 느끼지 않는다. 미국이 북한에 군사적 옵션을 쓰지 않을 가능성은 쓸 가능성보다 높다. 다만 전 세계에서 미국이 군사적 옵션을 사용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라가 북한인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지금은 중국 때문에 미국이 북한을 쉽게 폭격하지 못한다. 미국이 북한에 군사행동을 취한다면 반드시 중국하고 전략대화를 한 후에 할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북한에 대한 미국의 군사행동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있다. 군사적 충돌이라고 하는 것이 반드시 이성적 판단에 따라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둘러싼 북한의 게임을 '계산된 광기'라고 부른다. 북한이 미친 척을 하고 있지만 가장 냉정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말로는 벼랑끝 전술이라고도 한다. 북한은 지금 죽기 위해서 게임에 임하는 것이 아니다. 같이 죽자고 협박을 하면서 양보를 얻어가는 방식이다. 북한이 미국하고 전쟁을 벌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물론 갈등 과정에서 계산착오가 발생할 수 있다. 북한 입장에서 내가 어느 선까지 해도 미국이 군사행동을 하지 않겠지라고 생각하고 도발을 했는데 미국 입장에서 인내의 한계를 넘을 가능성도 있다. 역사를 살펴보면 이성적 판단이 아닌 상황에서 전쟁이 많이 일어났다. 뜻밖의 사고나 돌발상황이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전술핵을 제공하지 않아도 일부 우리나라 핵공학자들은 우리 스스로 핵무기를 6개월 안에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일부 공학자들이 그런 말을 하는 데 현혹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핵무기를 만든다는 것은 간단한 게임이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붕어빵을 만든다고 할 때 밀가루 화덕은 만들 수 있지만 앙꼬가 없으면 붕어빵이 안 된다. 이 비유를 빌리면 핵폭탄에서 앙꼬는 고농축 우라늄, 재처리된 플루토늄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생산하는 체계가 없다. 미국에 의해 거부됐고 우리 스스로 포기한 측면도 있다. 독자적 핵무장은 성급한 이야기다.

-미국이 지금 한반도의 위기를 방치하는 것이 아닌가?

▶미국 정부는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질서와 지형이 바뀌고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전문가들은 현재 중국이 무자비한, 무차별적 대외 팽창주의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이 사드 배치 문제 때문에 한국을 때리는 것이 아니다. 사드는 빌미일 뿐이다. 사드 배치가 아니면 다른 빌미를 잡아서 한반도를 길들일 것이다. 중국은 지금이 그 시기라고 생각한다. 중국의 대외 팽창을 분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상태로 방치하면 미국은 패권 유지 여부를 놓고 기로에 서게 된다. 한국은 독립성 여부를 놓고 기로에 선다. 중국은 과거 한반도 종주국이니 향수가 있을 것이다.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우리는 보다 큰 그림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보수정권은 그동안 뭐했느냐"는 얘기도 한다.

▶북한의 핵개발 책임론을 두고 정치권이 이념적으로 갈등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보수정부가 압박을 더 강하게 했거나 진보정부가 더 달콤한 유화정책을 사용했다고 해서 북한의 핵개발을 막을 수는 없었다. 기본적으로 북한의 핵개발은 북한이 가고자 한 길을 의지를 가지고 강하게 갔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다. 우리끼리 논쟁을 벌이는 것은 굉장한 자학론이다. 그동안 보수정부가 강경한 압박을 했지만 북한은 핵개발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진보정부가 북한을 설득하기 위해 유화정책을 썼지만 북한은 웃는 얼굴로 대화에 응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과제로 핵 개발을 추진했다. 결코 수그러들지 않는 야망으로 핵개발을 시도한 것이다. 근본적인 원인은 북한에 있다. 우리끼리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별 소득이 없는 일이다.

-북한이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통해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은 무엇인가?

▶북한의 핵무기는 대내, 대미, 대남 세 방향으로 향한다. 대내용은 북한의 핵 보유가 수령으로 대표되는 지배체제의 과학적 업적을 과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세습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체제 수호를 위한 홍보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미용이다. 북한이 3천㎞ 이상 날아가는 ICBM을 가진다고 해서 미국을 집어삼키겠다는 의중은 아니다. 북한의 목표는 한반도뿐이다. 중거리 미사일을 만들어 괌과 본토를 위협, 한미동맹을 떨쳐내겠다는 의중을 보이고 있다. 미국 내 여론을 움직이고 한국 피곤증을 만들고, 미국 국민들이 '한국 돕다가 우리 당하겠다'는 생각을 하게끔 해서 한국으로부터 미국을 이탈시키려는 의도다. 북한의 타깃은 미국이 아니다. 남한 공략 차원에서 공세적 전술을 통해 미국을 떨쳐내겠다는 의중을 보이고 있다. 그다음이 대남용 측면이다. 핵무기와 ICBM을 통해 공세적 대남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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