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호찌민-경주 엑스포'를 기다리며

한국과 베트남은 지형적'역사적으로 흡사하다. 두 나라 모두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한국은 35년간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으며, 베트남은 87년간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은 공산 진영과 민주 진영 간 이념 전쟁이었으며, 국토가 초토화되는 아픈 경험을 겪었다. 베트남은 통일을 이룬 반면 한국은 여전히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남아 있는 것이 차이점이다.

베트남전쟁은 복잡한 의미를 갖고 있다. 한국에게 베트남전쟁은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는 전쟁이었지만, 베트남인들에게는 외세의 침략에 대항하는 민족적 저항 전쟁이었다.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베트남에 파병했다. 1965년 8월 전투병 파병을 시작해 1973년 3월 철수할 때까지 32만 명의 장병을 참전시켰다. 베트남전쟁 기간 한국군은 5천여 명이 숨지고 1만1천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40여 년 전 전장에서 서로 총부리를 겨눴던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는 이제 끈끈한 경제 파트너로 바뀌었다. 베트남은 '도이 머이'(Doi moi'쇄신) 정책을 도입해 개혁'개방에 나섰고, 과거의 전쟁 상대국들과도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있다. 지나간 원한을 되갚으려 하지 않는다는 문화적 특성도 작용한 결과다.

한국과 베트남은 1992년 수교한 뒤 사회'경제적으로 활발한 교류를 이어왔다. 베트남은 9천500만 명의 인구 그 자체로도 한국의 중요한 수출시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국내 체류 중인 베트남인도 13만 명에 이른다. 결혼이주여성은 6만 명에 달해 '사돈의 나라'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1975년 전쟁이 끝난 지 42년이 됐지만, 전쟁에 얽힌 과거사는 양국 외교 관계에서 여전히 금기사항이다. 현재까지도 생존해 있는 수많은 참전 당사자들과 피해자들의 이익과 입장이 크게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피를 흘렸던 안타까운 과거사를 뒤로하고 교류와 협력을 확대하면서 전쟁의 상흔도 점차 치유되고 있는 듯하지만 후유증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동안 베트남 정부는 한국과의 과거사를 공식적으로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러나 현지에선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양민 학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지난 6월 현충일 추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베트남 참전용사의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조국 경제가 살아났다"고 한 것에 대해서 베트남 일각에서 격렬한 비판이 쏟아졌다. "한국군의 월남전 파병 이유가 돈 때문이었음을 인정하느냐, 그렇다면 그 참전은 결국 '청부 살인' 아니냐"는 과격한 주장도 나왔다.

두 나라 사이에 또 다른 역사의 이정표가 될 행사가 곧 열린다. 경상북도와 경주시, 호찌민시는 11월 11일부터 12월 3일까지 베트남 호찌민 시청 앞 광장, 통일궁, 9'23공원, 오페라하우스 등 인파가 몰리는 명소에서 '호찌민-경주세계문화엑스포2017'을 개최한다. 문화 교류를 통한 양국의 우호 증진과 아시아의 공동 번영에 기여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주최하는 행사다.

호찌민-경주 엑스포는 중앙과 지방을 통틀어 새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해외 문화 행사이다. 무엇보다 한때 총칼을 겨눴던 한국과 베트남이 경제 교류를 뛰어넘어 문화와 전통을 함께 만들고 공유하는 관계로 발전하는 디딤돌을 만들겠다는 포부가 크다.

경북도는 개막식에 문재인 대통령의 참석을 바라고 있다. 경북도는 다음 달 10, 11일 베트남 다낭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문 대통령의 일정에 맞춰 개막식도 당초 11월 9일에서 이틀 뒤로 연기했다. 호찌민-경주 엑스포가 전국적인 관심과 호응을 얻어 새로운 화합의 역사를 여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다음 달 열리는 호찌민-경주 엑스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기 위해서는 너무 경제적인 관점에만 집중하지 않았으면 한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점검도 두 나라의 관계를 한층 더 공고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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