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중력가속도(배명훈/ 북하우스/ 2016)
가을이다.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핀 풍경을 바라보며 너나없이 '예쁘다'라는 감탄사를 자아낸다. 코스모스! 그 얼마나 멋진 이름인가. 우주를 의미하는 코스모스(cosmos)와 같은 이름을 가진 꽃이라니! 이름 때문에 그 가늘어 보이는 꽃이 숭고해 보이기까지 한다. 꽃의 한가운데에 별모양(★)의 꽃들이 빼곡히 들어선 것을 보면 그 이름이 더욱 신비롭다. 신이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이 꽃에 우주를 담았던 것일까.
코스모스를 보며 우주를 떠올리게 된 것은 순전히 '배명훈'이라는 작가 때문이다. 과학소설(SF) 작가인 배명훈은 2005년 '스마트 D'로 '과학기술창작문예 단편 부분'에 당선되어 활동을 시작하여 연작소설, 중'장편 소설 등 다채롭고 실험적인 작품들로 평단의 관심을 끌고 있다.
데뷔작 '스마트 D'가 실린 그의 세 번째 소설집 '예술과 중력가속도'는 2005년부터 2015년까지 집필했던 단편들 중 10편을 묶어낸 책이다. '스마트 D'는 자살을 하려 했던 한 남자가 스마트 D 때문에 죽지 못해 일어나는 사건들, '티켓팅&타겟팅'은 핵잠수함에 탄 사람들이 콘서트 표를 티켓팅하기 위해 벌어지는 사건들, 표제작인 '예술과 중력가속도'는 달에서 온 무용수가 지구에 돌아와 무중력 공연을 벌이며 생기는 웃지 못할 해프닝을 다뤘다.
각각의 단편 속 가상세계는 하나같이 낯설고 참신하며 작가 특유의 유머가 담겼다. 하지만 무엇이든 낯선 것은 거부반응을 동반하기 마련인데 그는 자연스럽게 독자를 자신의 세계로 초대한다. 심지어 '진짜 이런 게 있나?'하고 생각될 정도로 섬세한 작업이다. "조개들은 말이야. 딱 한마디 말만 해. 태어나서 평생 죽을 때까지 딱 한마디만 하는 거야. 여기 봐. 조개껍데기를 보면 이 안쪽에서부터 점점 몸집이 커지면서 자라온 흔적이 보이지? 나이테같이 생긴 이거. (중략) 어렸을 때 한 번 '파랗다'고 말하기로 마음을 먹고 그렇게 말하기 시작하면 죽는 순간까지 다른 말은 못 해."(82쪽)
흔히 SF 하면 큰 스케일의 우주전쟁이나 외계인의 지구 침공쯤을 떠올린다. 그러나 배명훈은 대체로 평범한 개인과 일상을 가져와 우리가 사는 현실과 가상세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소속된 세계만 다를 뿐,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그들. 그래서일까. 단지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닌 지금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을 것 같은 현실감을 가져다준다.
이야기의 생생함은 작가가 가진 세계를 해석하는 다양한 도구도 한몫했다. '유물위성'에는 고고학, '스마트 D'에는 언어학, '예언자의 겨울'과 '조개를 읽어요'에는 해양생물학, '티켓팅&타겟팅'과 '예술과 중력가속도'에는 대중음악과 무용에 대한 지식이 녹아 있어 가짜를 더 진짜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현실과 가상이 헷갈릴 수도 있으니 유의하자. 이런 그를 만나고 나면 현실의 작은 꽃에서 심오한 우주를 탐색하는 것쯤은 아주 흔한 일이 되어버릴지도 모르겠다. 또 한 가지. 그가 익살스럽게 한 이야기들 속에서 던진 날카로운 사회비판과 질문들 또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