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생각이 많은 사람

1960년 상주 출생. 연세대 법학과 졸업. 한국일보문학상,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요산문학상 수상
1960년 상주 출생. 연세대 법학과 졸업. 한국일보문학상,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요산문학상 수상

보행자 우측통행의 원칙이 시행되면서 지하철의 계단을 이용할 때마다 전에 없던 번민이 생겼다. 계단에 붙어 있는 '보행자는 오른쪽으로'라는 팻말에 따라 오른쪽으로 내려가고 있는데 올라오는 편에서는 예전처럼 좌측통행을 하는, 곧 내가 내려가는 방향으로 올라오고 있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있다. 계속 가게 되면 부딪치게 될 게 뻔하다. 올라오는 쪽에서는 팻말을 보지 못하는가 싶어 둘러보면 그것도 아닌 것이 곳곳에 오른쪽으로 통행하라는 표지가 있다. 상대와의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먼저 올라오는 사람이 노인이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인 경우, 그들이 '좌측통행'을 하는 게 상당한 편리를 준다면 양보할 뜻이 있다.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이 나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큰 키에 짧은 머리를 하고 팔뚝에 '착한 사람'이라는 뜻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면 비켜주는 게 내 신상에 이로울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알고도 습관적으로 그리하는 경우, 알 만한 사람이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도끼눈을 뜨고 오는 경우 과연 내가 비켜주어야 하는가. 내가 계속 우측통행의 원칙을 지키겠다면 상대는 어떻게 나올 것인가. 그 원칙이 언제 누구에 의해서 어떤 합의에 의해 정해진 건지 따져오면 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럴 때 오른쪽도 왼쪽도 아닌 중간으로 갈 수 있으면 좋은데 계단이 좁아 중도적인 선택을 할 수도 없다. 날아오를 수도 없는 것이 내게는 박쥐와 같은 날개가 없기 때문이다. 아 참, 박쥐는 날개가 아니고 비막이라고 하던가. 계단 하나 오르내리면서 이렇게 생각이 많으니, 많아야 하니 과연 이 나라에서 살아가려면 유독 뇌에서 요구하는 고농축 에너지, 탄수화물이 듬뿍 든 음식에 중독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사람이 복잡한 환승역에서 계단을 오르내리는 데는 원칙이 지켜져야 소통이 원활하고 사고가 줄어든다.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막히고 사고가 난다.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례를 얼마든 더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인도의 일부로 만든 자전거 통행로로 보행자가 무심히 걸어가고 있을 때 뒤에서 자전거가 시끄럽게 벨을 울려서 '비켜나세요! 자전거가 나갑니다, 따르르르릉' 할 수 있을까? 도로교통법상 자전거는 차라는 것을 믿고 차도로 당당하게 가고 있는데 차가 걸리적댄다고 빵빵거리면 '오늘 도로교통법 공부하고 나오셨어요?' 하고 물을 시간이 있을까.

정치, 경제, 사회, 심지어 문화에서조차도 서로가 마주 보고 달려가는 열차가 되었을 때 서로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함에 비례하여 위험성도 높아진다. 아예 상대의 조심성과 사려를 '미치광이 전략'으로 짓뭉개는 것을 용인하면 제정신으로 이성적으로 살아가는 절대다수의 삶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알 수 없게 된다. 광인을 치료해주든가 광기를 우리의 일상에서 분리해야 한다. 어떤 미치광이가 나와 가족, 친구와 이 나라의 장래를 한번에 날려버릴 수도 있는 도박을 하도록 내버려둘 것인가.

다시 지하철 환승역의 계단에 서서 아래에서 좌측통행으로 올라오는 사람들을 본다. 이어폰을 끼고 선글라스를 썼으며 손에 든 스마트폰에서 눈을 뗄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여러분, 나도 인내심에 한계가 있습니다! 원칙을 지키세요, 원칙을!" 하고 외친다면 그들은 잠시 내게 눈을 돌리겠지만 곧 하던 대로 할 것이다.

나는 계단 우측에서 올라오는 사람이 나와 마주치게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결정적인 순간 그에게 '우측통행'이라는 푯말을 넌지시, 의미심장하게 가리켜 보이려고. 그때 누군가 뒤에서 떠미는 바람에 고꾸라질 뻔했다.

"아저씨, 아까부터 안 가고 뭐해요! 여기 계단 전세 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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