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총 쏘는 세상

"이것이야말로 러시아의 문화 브랜드입니다."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러시아 문화부 장관의 발언인 만큼 뭐라고 딴지를 걸기는 마땅치 않다. 그렇지만, 이 말을 AK소총 개발자인 '미하일 칼라시니코프'(1919~2013)의 동상 제막식에서 했다니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전 세계에서 매년 20여만 명이 이 '죽음의 소총'에 의해 살해되는데도, '러시아의 문화 브랜드'로 칭송받고 있다니 웃지 못할 희극이다.

지난달 17일 모스크바 중심가인 가든 링 로드에서 벌어진 칼라시니코프 동상 제막식은 군국주의 러시아의 실체를 보여준 자리였다는 것이 서방 언론의 시각이다. 러시아정교회 사제까지 참석해 이 소총을 '신성한 무기'라고 떠받들었다니 푸틴 치하 러시아의 생각과 지향점이 어떠한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이렇다면, M16 소총을 개발한 유진 스토너(1922~1997)와 맥심 기관총을 발명한 '죽음의 상인' 하이럼 스티븐스 맥심(1840~1916) 경의 동상도 세워야 한다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러시아가 생각하는 AK소총의 가치는 서방인과는 확연히 다르다. AK소총은 피압박 민족이나 가난한 반군이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구원의 무기' '인간 해방의 무기'라는 것이다.

얼마 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끔찍한 총기 난사 사고가 있었다. 사망 59명, 부상 500여 명이라고 하니 엄청난 숫자 같지만, 미국에서 매년 총기 사고로 3만 명 이상 죽는 것을 감안하면 그리 놀랄 일이 아닌지 모른다. 미국에서 2001년에서 2013년까지 13년 동안 총기 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무려 35만 명이었다. 에이즈'약물 사망자,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사자 숫자를 합한 것보다 많다.

사고 때마다 총기 규제 목소리가 드높지만, "총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는 반론이 더 많다. 칼라시니코프도 생전에 "빈 라덴 추종자의 손에 AK소총이 들려 있는 것을 보면 너무나 안타깝다"고 했다. 맥심은 기관총이 전쟁을 끔찍하게 만들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 "오히려 전쟁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도구가 될 것"이라는 낙관론을 편 적이 있다. 아무리 봐도, 칼라시니코프나 AK소총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 욕심이 문제인 것 같다. 언제쯤 총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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