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를 학교에 보낸 정찬웅(가명'72) 씨는 홀로 방바닥에 엎드려 연신 기침만 했다. 탁한 소리의 기침이 나올 때마다 온몸을 뒤틀며 힘겨워했다. 기존에 앓던 당뇨와 후두암에 더해 지난 8월 암세포가 폐로 전이됐다는 진단까지 받으며 정 씨는 제대로 식사하기 힘들 만큼 건강이 악화된 상태다. 3년 전 아들과 며느리를 암으로 잃고 홀로 남은 손자를 부양하는 상황에서 병마는 잔인하게도 그에게까지 손을 뻗었다. 정 씨는 가래를 빼내기 위해 생긴 목의 구멍을 막으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내가 죽는 것은 상관없지만 홀로 남게 될 손자만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들, 며느리에 이어 본인까지 암에 걸려
백혈병으로 부인을 떠나보낸 뒤 택시 운전을 하며 살아가던 정 씨의 삶은 3년 전부터 기울기 시작했다. 둘째 아들과 며느리가 한 달 사이에 각각 피부암과 위암 진단을 받으며 세상을 등지면서부터다. 정 씨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건강하게 지내던 아들이 어느 날 컨디션이 좋지 않다며 병원에 갔는데 암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며 "충격에서 채 빠져나오지도 못했는데 며느리마저 아들을 따라갔다. 세상이 너무 야속했다"고 말했다.
이후 홀로 남은 손자 정성우(가명'7) 군의 부양은 오롯이 정 씨 몫이 됐다. 장남과 막내딸은 각각 사정을 이유로 조카 맡기를 거부했고, 정 씨는 늦은 나이에 또다시 부양해야 할 가족이 생겼다.
한번 가슴에 큰 구멍을 낸 병마는 끝까지 정 씨네 가족을 따라왔다. 지난 8월 갑작스러운 고통때문에 찾은 병원에서는 후두에 생긴 암세포가 폐까지 전이됐다며 길어야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선고를 내렸다. 손자 성우 군 입장에서는 부모님과 할아버지를 3년 사이 모두 암으로 잃게 된 절망적 상황이다. 정 씨는 "손자라도 건강하게 잘 키우겠다는 생각에 돈을 벌려고 잠자는 시간만 빼고는 온종일 운전대를 잡았었는데 또 암이라니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내가 죽으면 손자는 시설로 가야 하는 상황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성우 군의 건강도 좋지 않다. 현재 성우 군은 극심한 정서불안을 호소하고 있는 데다 또래에 비해 언어발달도 늦어 초등학교를 입학했음에도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 씨는 "하루 20시간 가까이 돈을 벌면서 잠시 다른 집에 아이를 맡긴 적이 있었는데 어느 날 보니 아이 몸에 피멍이 가득했다. 정서불안 증세도 그때 온 것이 아닌가 싶다"며 "돈을 벌겠다고 지옥 같은 곳에 보낸 것 같아 손자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암으로 정 씨가 일을 그만두면서 현재 가족의 수입은 손자 앞으로 들어오는 기초생활수급비에 정 씨 노인연금을 더한 70여만원이 전부다. 회당 50만원이 넘는 항암치료에다 월 30여만원의 아동심리치료 비용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정 씨는 "돈이 없어 또래 아이들이 좋아하는 피자나 치킨을 한 번도 먹인 적이 없다. 올해 입학한 학교에서 피자 파티를 했는데 아이가 한 입도 먹지 않았다고 했다"며 "집에서는 인근 복지관에서 받아오는 국에 물을 붓기를 반복하며 끼니를 때우는 상황이다. 아이가 밥과 국 이외의 다른 음식을 아예 먹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가난이 너무도 원망스럽다"고 했다.
정 씨는 손자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곁을 지켜주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전에 자신마저 세상을 떠난다면 성우 군은 복지시설로 가야 하는데 그 상황만은 막고 싶다는 것이 그의 마지막 소망이다.
"시한부 인생을 살다 보니 매일 손자와 잠드는 하루하루가 소중해 잠든 아이를 바라보는 것이 낙입니다. 성인이 될 때까지는 옆에서 지켜주고 싶은 것이 마지막 소원인데 이것도 지나친 바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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