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깜깜이 분양

도시의 인구 집중은 주거 양식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노동자가 도시로 몰리기 시작한 18세기 중반 산업혁명은 이런 고민을 더욱 깊게 했다. 당시 공간 효율을 우선하는 건축이 하나의 대안으로 떠올랐는데 공동주택 등 '고밀도 건축'이 새로운 건축 형식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아파트'로 불리는 주거 양식이 어디에서든 다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문화성' 비판과 함께 '빈부 계층 인식의 고착화'라는 한계를 드러내면서 나라마다 그 편차가 심했다. 1930년대에 처음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한 한국의 경우 그 유래를 찾기 힘들만큼 큰 성공을 거뒀다.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별명처럼 특이한 성공 사례다.

우리나라 아파트의 시작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충정아파트(1932년)와 일본인 회사인 미쿠니(三國)상사의 회현동 관사(1930년), 내자동 미쿠니아파트(1935년)가 효시다. 미쿠니아파트가 직원 관사인데 반해 도요타 아파트로 출발한 충정아파트는 임대아파트라는 성격과 구조상 오늘날의 아파트와 동일해 사실상 최초의 아파트로 꼽힌다.

이런 태동기를 거친 아파트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1960, 70년대 경제 발전이다. 1964년 마포아파트를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 대규모 아파트가 우후죽순 건설됐다. 대표적인 주거 양식으로 자리 잡은 동시에 투자'투기 수단이 된 것도 이때부터다. 현재 전국 주택 수 약 1천700만 호 중 60%가 아파트다. 국민 10명 중 6명이 아파트에 산다.

아파트의 눈부신 성공은 주택 부족과 건설사에 유리한 주택 정책이 맞물린 결과다. 대표적인 것이 1977년 도입된 현행 아파트 '선분양제'인데 견본만 본 채 선금을 내고 집을 구하는 이상한 주택시장이 40년째 이어지고 있다.

최근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전체 공정 80%에 도달해야 입주자를 모집할 수 있는 '후분양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앞으로 주택시장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이른바 '깜깜이 분양'이 투기를 부추기고 집값 폭등을 부르자 정부가 수술대 위에 올리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후분양제는 2004년 노무현 정부 때 도입을 추진하다가 무산되기도 했다. 당시 참여정부의 고민에서 보듯 어느 제도든 장'단점이 있다. 하지만 아파트를 둘러싼 사회 구조적인 문제점 해결에 한 발 더 다가가기 위해서라도 이제 분양 패러다임을 바꿀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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