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올빼미족'의 변명

'근사한 삶을 원한다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세요.'

지난 2003년 폭발적인 인기를 끈 '아침형 인간'에 나오는 문구다. 일본 의사 사이쇼 히로시의 책에 열광한 수많은 한국인들이 자신의 생활 방식을 바꿔가며 '아침형 인간'으로 변신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침형 인간'이 되면 인생을 두 배로 활기차게, 효율적으로 살 수 있다고 하니 누군들 좋아하지 않겠는가. '조찬 모임' '새벽 공부모임'이니 하면서 새벽에 잠이 덜 깬 채 참석하는 자리가 크게 늘어난 것도 그때쯤이다. 출근 시간을 두세 시간 당긴 회사가 많았으니 사회 전체가 얼마나 호들갑을 떨었던지….

그 뒤로 '아침형 인간' 종달새형은 '저녁형 인간' 올빼미형에 비해 일 능률이 뛰어나고 명랑하고 쾌활한 기질이 높다는 각종 서적과 연구 결과가 쏟아져 나왔다. 지난해 분당서울대병원 연구에서도 '저녁형 인간'의 수면의 질이 상대적으로 나쁘고, 카페인 음료와 야식, 담배 피우는 빈도가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들이 한국에서 유독 관심을 끌었는데, 그 이유는 인간의 하루 생활 리듬을 결정하는 '생체시계'를 연구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낮에 일하고 밤에 쉬게끔 '생체시계'가 내장돼 있어 건강하게 살려면 자연의 법칙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이 연구 결과다. 2007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생체시계' 교란을 지속적으로 일으키는 야간 교대 근무를 발암성 추정 요인이라고 발표했다. 이 연구들에 따르면 올빼미족은 일찍 죽으려고 작정한 유형인 셈이다.

그렇지만, 올빼미족을 옹호하는 연구도 적지 않으니 실망할 필요는 없다. '저녁형 인간'이 통상 '아침형 인간'보다 우뇌를 많이 쓴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우뇌를 많이 쓰니 직관적 판단과 전체적인 그림을 보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IT나 벤처 사업가 등은 당연히 올빼미족이다.

요즘에는 '아침형 인간'의 신화가 퇴색되고 있다. 건강 측면에서는 '아침형 인간'이 낫긴 하지만, 자신의 생체 리듬에 맞춰 활동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이다. 수면 전문가 마이클 브레우스는 '시간의 심리학'에서 "사람마다 다른 '생체시계'를 갖고 있다. 어떤 일을 하거나 잠을 잘 때, 최적의 타이밍은 자신의 유전자에 정해져 있다"고 했다. 자신의 리듬을 망쳐가며 졸린 눈을 비비면서 억지로 '아침형 인간'이 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올빼미족은 달콤한 아침잠을 즐길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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