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SBS 라디오 김성준의 '시사전망대'. 진행자는 김성준 앵커, 출연자는 부산의 장제원 국회의원. 전화 인터뷰였다. 사회자: "부산의 지역구에 내려가 계시나요?" 출연자: "아닙니다. 올라왔습니다." 사회자: "다시 올라오셨어요? 지역민들로부터 연휴 기간에 무슨 얘기를 들으셨나요?"
인터뷰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 칼럼을 읽는 독자들은 두 사람의 대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할까. 그때 청취자들은 두 사람의 단어 구사에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이 칼럼을 쓰는 기자도 한 달 전쯤의 모임이 없었더라면 인터뷰의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서울에서 근무한 지 2년 6개월이 지났을 무렵. 홈플러스 사장을 지내다가 홈플러스 e파란재단 대표로 옮긴 도성환 이사장과의 자리. 주말에 뭐하냐고 묻길래 특별한 일이 없으면 대구에 내려갔다가 월요일 새벽 올라온다고 했더니 정색을 했다. 언론인이 쓸 표현이 아니라는 것.
고등학교까지 대구에서 나오고 대학부터 줄곧 서울에서만 살아온 도 이사장의 주장은 이랬다. 그는 우리 국민들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너무 쉽게 '서울'을 '높은 곳'으로 떠받들고 있다고 했다. 서울에서 고향 갈 때 왜 내려간다고 하고, 돌아올 때 왜 올라온다는 표현을 쓰느냐는 것. 서울과 대구는 서로 독자성을 가진 도시이지 종속된 도시가 아니란 것이 그의 논지였다. 요즘은 이런 방송사가 없지만 1990년대에는 지상파 방송에서 기상캐스터가 이런 일기예보 방송을 한 적도 있다. "드디어 장마가 지방으로 물러갔습니다." 참 웃기는 얘기다. 서울에 지긋지긋하던 장마가 지방으로 물러가면 지방은 어떻게 될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신문지상이나 방송에도 숱하게 나오는 단어가 '상경' '상행선' '하행선'이다. 왜 서울을 기준으로 모든 게 설정되는가. 신문도 중앙지, 지방지로 구분하는 사람들이 많다. 서울에서 발간되는 일간지가 중앙지이고, 지역에서 발간되는 신문은 지방지로 분류한다. 여기에는 서울 사람들의 묘한 우월의식과 지역민들의 나약한 열등의식이 깔려 있다. 그래서 지역 일간지보다 질과 내용 모두 훨씬 못한 신문이 많은데도 단지 서울에서만 발행된다는 이유로 중앙지로 군림하려 하고, 대우하려 한다. 대구시청과 경북도청에는 기자실이 2개씩 있다. 하나는 중앙기자실, 다른 하나는 지방기자실. 서울 일간지 지역 주재 기자들이 상주하는 곳이 왜 중앙기자실인가. 대구와 경북을 기준으로 보면 지역 일간지 기자들의 공간이 중앙기자실이어야 한다. 대구에선 우리가 중앙이고, 서울은 변방이다. 대화 중에 옆에서 떠드는 사람에게 "지방방송 꺼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을 종종 접한다. 지방은 방송조차도 시끄럽고, 귀찮은 존재로 나 자신도 모르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교묘하게 조선 사람은 낮고 하등하다고 교육시켰고, 우리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그때의 교훈을 잊고 아무런 여과 없이 순응적으로 이 표현을 받아들인다.
정부 부처의 각 지역 상주 사무소는 예외 없이 '지방'이란 표현을 쓴다. 대구지방경찰청, 경북지방경찰청, 대구지방국세청 등등. 지방을 빼고 대구경찰청, 경북경찰청, 대구국세청 등으로 써도 아무 문제가 없다. 검찰도 지역명만 앞에 붙이되 고등검찰청이 있는 경우 그걸 붙이면 될 일이다. 대구검찰청, 대구고등검찰청으로 쓰면 된다.
지방분권운동가들은 지방자치단체란 용어도 중앙집권의 잔재물이라고 주장한다. 종합행정을 하면서 정부의 기능을 하는 곳인데 광역지방자치단체, 기초지방자치단체라고 하는 것이 틀렸다는 것이다. 대구시청과 경북도청은 그 지역을 관할하는 정부이지, 단체의 개념이 아니다. 광역지역정부, 기초지역정부라고 하면 된다.
서울의 대칭어는 지역이며, 중앙의 대칭어는 지방이다. 서울은 한국의 수도일 뿐 중앙이 아니다. 우리가 '중앙'과 '지방'을 버려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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