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학폭위에 멍드는 학교

대구 A중학교는 올해 16차례나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를 열었다. 방학을 제외하면 한 달에 3, 4건꼴이다. 학교폭력 신고가 되면 가해자와 피해자 목격자 등을 대상으로 조사하고 진술서를 받는다. 보호자 면담도 해야 한다. 연루 학생이 다수이고 진술 내용이 엇갈리면 쉬는 시간마다 찾아다니며 확인도 한다. 사안 발생부터 조사, 보고, 조치 결정에 이르기까지 꾸며야 할 서류가 10여 종류 넘는다. 교사들은 교재 연구는커녕 퇴근도 제때 못하기 일쑤다. 사안 조사 전담기구 책임교사인 생활교육부장은 억지로 떠밀려 이 업무를 맡았다고 했다. 교사 기피 업무 1순위다. 책임교사는 1년 이상 버티지 못한다. 기간제나 신규 교사에게 이 업무를 맡기는 학교도 있다.

지난해 대구 전체에서 열린 학폭위는 1천190건으로 날로 증가 추세다. 중학교가 735건(학교당 평균 6건 정도)으로 가장 많았다.

현행 학교폭력예방법(학폭법)은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각종 신체'정신, 재산상 피해 전반'을 학교폭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피해 학생(또는 보호자)이 요청하는 경우, 학교폭력을 신고받거나 보고받은 경우 반드시 학폭위를 소집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이 겹치면서 사소한 다툼도 사건화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친구들끼리 가벼운 욕설 한마디, 한때 친하게 지내다 사이가 벌어져서 생기는 '뒷담화'도 대상이 된다.

학교가 겪는 또 다른 어려움은 학교폭력이 '어른들의 싸움'으로 번진다는 점이다. 학생들 사이에서 크고 작은 갈등과 다툼으로 인해 학폭위가 열리는 순간 '사건'이 된다. 강력한 처벌을 원하는 피해자 쪽과 이를 벗어나기 위한 가해자 쪽 부모들 간의 공방이 치열하다. 여기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개별적으로 선임한 변호사가 개입할 경우 일이 더욱 커진다. 행위의 유무와 관계없이 변호사들의 '코칭'에 따라 부모들은 상대방을 공격하고 자신을 방어한다. 감정이 격해지고 처분에 대한 불만은 재심 요구로 이어진다. 소송도 마다하지 않는다.

수성구 B중학교 교감은 "일부 학부모들은 변호사를 선임해 적극적으로 학폭위 회의록 발언을 살피고, 학교의 대응 절차 등에서 문제점을 찾아서 상황 반전을 노린다"고 귀띔했다. 이런 과정에서 꼬투리를 잡히면 교사가 징계를 받는다. 최근엔 교직원이 학교폭력 사건 등에 휘말려 소송을 당할 경우 관련 비용 등을 지원하는 '교직원 법률비용 보험상품'까지 등장했다. 교사에게는 버거운 업무가 아닐 수 없다.

학부모들이 학폭위 처분에 민감한 것은 고입, 대입에서 불이익을 받는 등 지우기 힘든 '주홍글씨'가 되기 때문이다. 학폭법은 학폭위로부터 가해 학생으로 결정될 경우, 반드시 서면 사과부터 퇴학까지 9가지 중 하나 이상의 처분을 내려야 한다. 또 결과를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필사적으로 가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피해 학생에 대한 진정한 반성, 관계 회복은 안중에 없다. 피해자가 다른 학교로 전학 가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현재의 학폭법은 신고와 처벌만 있고, '교육'이 빠져 있다. 개전의 기회를 주어 교육적 해결이 가능하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 처분을 무조건 학생부기록에 남기는 엄벌주의가 강조되어선 곤란하다. 일벌백계가 필요한 행위에 대해서는 현재의 소년법이나 형법으로도 충분하다. 학교는 교육적 가치 판단을 우선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어른들 시각 대신 학생들이 중심이 되는 또래 조정이나 자치법정을 통해 무엇이 잘못인지 알아가면서 반성과 화해를 유도하는 것은 어떨까? 친구들과의 '관계 회복'을 배워야 건강한 성장이 이어진다.

한편 대구의 교사들은 광주교육청이 시행하는 학교폭력 신속대응팀 '부르미' 제도를 부러워하고 있다. 교육청이 전담기구를 둬서 학교에서 요청이 들어오면 2시간 내에 출동해서 도와준다. 대구시교육청도 학교가 지고 있는 짐을 덜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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