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구철의 새論새評] 영웅의 아름다운 퇴장을 보면서

서울대 법대, 동 대학원(헌법 전공). 영국 브리스틀대 대학원 법학과 (환경법, 독점방지법 연구). 아리랑TV미디어 상임고문. 공주대학교 미디어 영상학부 객원교수. 전 KBS 국제부장, 전 TV조선 부국장
서울대 법대, 동 대학원(헌법 전공). 영국 브리스틀대 대학원 법학과 (환경법, 독점방지법 연구). 아리랑TV미디어 상임고문. 공주대학교 미디어 영상학부 객원교수. 전 KBS 국제부장, 전 TV조선 부국장

현역 떠나는 이승엽·권오현

후배들 걱정 잠 못 이룰 수도

두 사람 성공경험은 큰 자산

떠나지만 지혜 소중히 활용

추석 연휴 '국민 타자'가 그라운드를 떠났다. 사실 나는 '국민' 배우, '국민' 타자식의 수식어 '국민'에 대해 별로 느낌이 좋지 않다. '인민' 배우 같은 북한 용어를 떠올리게 해서도 그렇고, 특정한 정당의 접두어 같아서 더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어울리는 수식어는 역시 국민 타자였다.

국민 타자의 은퇴 경기는 장엄했고 숙연했다. 은퇴하는 날 그는 홈런을 쳤다. 한국 야구 사상 전무후무라 한다. 그렇다면 은퇴 경기 연타석 홈런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깨지지 않을 대기록이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대부분의 현역을 능가하는 능력과 집중력을 과시하면서 왜 그가 국민 타자인지를 다시 한 번 입증했다. 그렇다. 그는 아쉬워할 때 떠났다.

과거 대통령 선거를 앞둔 추석에는, 차례상 앞에 둘러앉아 대선을 화제로 음복을 나눴다. 올해는 5월에 대통령을 뽑아버렸으니 그럴 일이 없었다. 대신 내년 지방선거 전망이었다. 그러나 후보도 가시화되지 않고 6개월 이상 남아 실감이 덜 난다. 북한 핵과 미사일, 사드와 한미 FTA 등은 심각할뿐더러 전문적 지식이 필요해 차례상 앞에 올리기 어려운 화제다. 그래서 이번 추석 연휴를 지배한 화제는 이승엽이었다.

혹자는 말한다. 이승엽이 일본에 가지 않았다면 홈런을 700, 800개도 쳤을 것이라고. 그럴지 모른다. 한국에서 한 해 50개의 홈런을 넘기던 이승엽이 일본에 가서는 고전하다가 한 해 30개 남짓에 그쳤으니, 산술적으로는 일본을 간 게 기록에는 매우 불리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승엽이 한국에 머물며 800개 기록을 남겼다면 천재 타자로 기억할지언정 국민 타자로 기억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승엽이 국내 챔피언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기에 그를 영웅으로 기억한다. 슬럼프에 빠져 고민하고 고통받는 인간적 모습 때문에 그를 영웅으로 기억한다. 찬스 때마다 범타로 일관하던 국제대회 중간, TV 인터뷰에서 말을 잇지 못하고 끝내 눈물을 흘릴 때 그는 '우리'의 영웅이 되었다. '끝났다'는 말을 듣던 그가 나이 30대 중반에 돌아와 부활했을 때, 진정한 영웅이 되었다. 진정한 국민 타자였다.

며칠 전 경제계에도 그런 신선한 충격을 주는 사건이 있었다. 기업이 최고의 실적을 낸 시점에, 조직이 이제 새 경영진으로 새 체제로 새 출발해야 한다면서 은퇴를 선언한 최고 경영자가 있었다. 삼성전자에 평생을 바치면서 삼성전자를 세계 제1의 반도체 회사로 키워낸 권오현 부회장 이야기다. 평소 칭찬에 인색한 사람도 삼성전자의 저력이 바로 저기 있다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은퇴 문화까지도 선도하는 삼성!

아마 이승엽은 은퇴하고 나서도 후배들이 못 미더워 라이온즈의 미래를 걱정할 것이다. TV 중계를 보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 직접 배트를 들고 타석에 들어서는 상상을 할지도 모른다. 은퇴 경기에서 후배들이 보여준 졸전 때문에. 권오현 역시 삼성전자의 미래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신제품은 제때 개발돼 출시될지? 혹시 신제품에 문제는 없는지? 자신도 모르게 새벽 일찍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있지는 않을지?

이승엽이 아니었다면 과연 한국 야구가 일본 야구를 이겨볼 엄두나 냈을까? 권오현이 아니었다면 한국 전자 산업이 일본을 추월해 세계 1위를 겨눌 엄두를 낼 수 있었을까? 그들은 존재 자체가 국가적 자산이다. 그들의 성공 경험은 더욱 귀중한 자산이다.

1990년대 초 고흥문, 이철승 등 원로 정치인들이 후진들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은퇴를 선언한 적이 있었다. YS가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의 일이다. 정치권과 언론은 그들이 현역에 있을 때보다 더 비중 높게 취급하면서 중요한 현안마다 그 경험과 지혜를 귀하게 들었다.

우리는 아쉬워할 때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제안한다. 이승엽과 권오현을 그냥 놓아보내지 말자고. 그들의 경험과 지혜를 귀하게 듣고 간직하자고. 떠나는 그들에게 박수를 치되, 그들의 땀과 노력은 고이 간직하자고.

나는 소망한다, 간절히. 우리 사회 다양한 분야에서 제2, 제3의 이승엽, 권오현이 나타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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